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66
일단 카드의 등급에 따라 필요한 강화 소울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알아냈다. 하지만 아직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
“안 할래요. 이 카드는요?”
[아!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게! 이 따위로 간 보지 말고!]벌컥 화를 내는 풀무불꽃. 카드별로 강화금액이 얼마인지 대략 알아보려는 내 시도는 실패했다. 게임의 NPC였다면 수백 번쯤 실험해서 대략적인 가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소득은 있었다. 내가 가진 카드 전체를 강화하기엔 내가 가지고 있는 소울의 양이 택도 없다는 것이다.
방학동안 소울을 모아야겠군. 소울을 모으기 위한 딱 좋은 사냥터가 있다.
여름방학, 바빠지겠군.
[이번엔 또 무슨 사악한 생각을 하고 있나?]“왜요.”
[수은 벌들을 도살할 때 보이던 미친 놈 얼굴을 또 하고 있기에 묻는 걸세.]가면 갈수록 말이 심해지네 이 양반.
***
총장실에 들어가는 권보람의 얼굴은 묘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총장실의 문을 열자 이현일이 밝게 웃고 있었다.
“20층이 돌파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맞아요.”
「탑주」들을 공략하는 일은 지지부진했다. 고르디우스와 집행자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공략을 시도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탑 공략의 한 축인「제왕」이 20층을 클리어하지 않고 넘어간 상태이니, 자신들이 클리어하지 않는다면 20층의 클리어는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마저도 탑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이현일의 상태를 생각한다면 앞으로 몇 년간은 탑의 공략은 불가능한 상황.
그런데, 갑자기 탑주인 풀무불꽃이 처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다니.
“대체 누가···?”
이현일은 여전히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미 누가 했는지도 다 알아 놓은 눈치다.
바닥에 부자연스럽게 세팅되어 있는 태블릿. 태블릿 안에는 보나마나 사진과 자료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권보람은 위계고 뭐고 태블릿을 뒤집어 버리려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놀라운 인물이 20층을 클리어해냈어요. 아니, 어쩌면 놀랍지 않은 인물일지도.”
전익현이로군.
그녀는 이현일의 첫 마디를 듣자마자 누가 20층을 클리어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장단을 맞춰 주는 것도 자신의 업무.
“대체 누구입니까?”
“후후. 맞춰 보시겠습니까? 권보람 씨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인물일 겁니다. 절대 맞추지 못하실 거라 자신하죠.”
이현일의 도발에 권보람의 목에 자그마한 힘줄이 돋아났다.
“정말로 의외의 인물인 모양입니다?”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하하. 제 기준에서 그렇다는 말이지만요.”
“전익현.”
움찔. 이현일의 얼굴이 작게 경련했다.
“···은 아니겠죠.”
“그···그런가요.”
“하지만 전익현 말고는 딱히 탑을 공략할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고 뻔한 답일 테니, 총장님이 낸 문제의 답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움찔, 움찔.
전익현에 대해서 몇 마디 말을 더 하자 이현일의 얼굴이 슬리퍼 물어뜯다 혼난 강아지 얼굴이 된다. 이 정도로만 해 둘까. 좀 더 건드리면 방에 틀어박혀서 식음을 전폐할 얼굴이다.
권보람은 적절한 오답을 입에서 뱉어냈다.
“러시아의 카렐린 팀이 분명하네요. 실력으로나, 타이밍으로나.”
“하하! 완전히 틀렸네요!”
탈각. 준비되어 있던 리모콘을 건드리자 태블릿이 켜지며 사진이 떠오른다. 수트를 입고 있는 사람이 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혀 있다. 저 수트는 자신이 전익현에게 직접 전해 준 것이다.
“전익현···!”
“맞아요.”
“어떻게 그라고 확신할 수 있죠?”
“20층까지 상주하고 있는 인원의 대부분은 클리어에는 관심이 없고, 몬스터를 사냥해서 카드팩을 얻으려는 인간들 뿐입니다. 클리어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저희뿐이라는 말이죠. 저희가 클리어하지 못했다면 남는 것은 당연히 뉴 페이스일 터.”
“그래서. 새로 들어간 사람을 골라냈다는 거군요.”
“새로 탑에 들어간 인물들을 엘로 레이트(Elo rate)추정 순으로 배열했죠. 그 중 독보적인 추정치를 가지고 있던 것이 전익현이었습니다.”
“명쾌한 소거법이군요.”
“새로 참가한 나머지 사람들은 별볼일 없는 사람들 뿐이었어요. 가장 높아 봐야 엘로 레이트 1500 가량의 범인凡人들 말이에요.”
뻔한 대답이긴 했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법은 흠잡을 데 없었다.
“···하지만. 전익현이 어떻게 20층을 공략할 멤버들을 모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탑을 공략하는 듀얼리스트의 수는 극히 드물다. 이현일이 20층을 공략하는 데 실패한 이후로는 더더욱 줄어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익현은 20층을 공략하는 인원을 다섯 명이나 어떻게 모아낸 것일까? 탑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탑을 공략하려 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세상에는. 힘을 숨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권보람은 눈 앞의 ‘○○가 힘을 숨김’ 매니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아카데미에만 해도 힘을 숨기는 것을 즐겨대는 인간이 두 명이나 있었다. 세계 전체로 따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짓거리를 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힘을 숨기는 자는, 자연스럽게 힘을 숨기는 자를 알아볼 수 있지요.”
“그 말은···.”
“아까, 새로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에 전익현과 함께 움직이는 ‘힘을 숨긴 사람’이 있다는 말이죠.”
“···그럴 수가.”
권보람의 등에 소름이 내달렸다. 확실히, 10층의 공략이 알려지고 나서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탑에 오르는 사람이 꽤나 늘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전익현의 ‘팀’이 섞여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까?”
“맞아요. 나무를 숨기려거든 숲에 숨기는, ‘이 분야’에서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책략입니다.”
힘숨찐이 ‘이 분야’라고 일컬을 만큼 거대한 팬덤이 있는 분야인지는 차치해 둔 채. 권보람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방식이라면 ‘이 분야’ 사람들이 힘을 숨긴 채로 탑 공략이라는 위업을 이뤄낼 수 있죠. 영리한 방법이에요.”
“그들을 찾아내야···.”
“아니에요. 그래서는 안 돼요. ‘우리들’은 관찰되는 순간 언제나 연기처럼 사라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무슨 미어캣입니까? 누가 쳐다보면 사라져 버리게? 권보람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하지만 권위자가 그렇다는 데 어쩌겠는가.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러면 그들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죠?”
“단체란 언제나 비슷하죠. 수장의 마음을 잡으면, 다른 멤버들도 우리의 편이 될 거에요.”
“···전익현을 우리 편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쉬운 일이기도 하다. 전익현이 학생들을 노린다는 것은 이미 한 학기동안 질리도록 확인했으니까.
“다음 학기. 전익현에게 맞는 강의를 제공해야겠습니다.”
“어떤 강의가 좋을까요?”
“도제徒弟식 강의이라면 충분할 겁니다.”
도제식 강의.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오롯이 몰두할 수 있는 강의법이다. 아카데미나 학교들에서 가르치는 일반적인 강의와는 달리, 한 명의 교사가 학생들 몇 명만을 맡아 가르친다.
교사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기계적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적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더욱 좋아할 수밖에 없다.
교수들이 대학원생들을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이 떡밥이라면, 전익현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방을 바닥에 살며시 놨다. 안에 들어있는 해태를 확인했다. 어디 다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잘 있다.
내가 해태의 몸을 만지고 있는데, 스핑크스가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이게 무슨 냄새야.]“냄새?”
[더러운 다른 속성 놈의 냄새가 나서. 굳이 따지자면 「금속」놈들의 냄새야. 동물형 기계 놈들이 보통 이런 냄새가 나거든.]코 한 번 더럽게 좋네. 어떻게 하지. 내가 해태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해태가 가방 밖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나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스핑크스의 눈초리가 따갑다.
“···귀엽지?”
[당장 버리고 와.]“안 돼. 해태는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살 거야.”
[당장 버려! 이 집에 금속 속성의 놈이 발 디딜 땅이라고는···.]핥짝핥짝. 해태가 스핑크스에게 다가가 볼을 핥는다. 아이고. 깜찍해라.
[···한 평도 없어! 야! 저리 가! 가라고!]스핑크스가 앞발로 해태의 몸을 필사적으로 밀어내 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해태는 애초에 통짜 쇠인 몸이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해태가 꼬리를 흔들어대며 스핑크스에게 몸을 비빈다. 스핑크스의 공격을 놀이라고 인식한 모양이다.
[저리 가! 몸 비비지 마아아! 인간! 도와다오! 도와줘!]둘이 금방 친해지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나는 재밌게 바닥에서 노는 두 마리의 동물을 놔 둔 채 휴대폰을 확인했다.
오늘의 승자와 듀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휴대폰에 듀얼 신청이 하나도 안 와 있다.
나는 신하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누가 이겼냐?] [여한설이요.] [근데 듀얼 신청이 안 왔는데?] [그래요? 이상하네.]나는 여한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듀얼 신청 안 하냐?”
[···안 해. 당분간은.]며칠 전까지만 해도 죽자사자 덤벼대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뭘 말하고 싶은지 깨달았어.]무슨 말.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여한설의 말은 속사포처럼 이어져 나갔다.
[나는 소울 커맨더스가 카드의 플레이만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더군. 튜닝이 아니더라도, 상대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은 엄청나게 많았어. 내가 약한 부분은, ‘튜닝’말고도 엄청나게 많다. 당신은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겠지.]그···랬던가?
[내가 더 강해지기 위해서 거쳐야 할 수많은 단계가 있다는 것도. 반년 정도면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와 당신간의 거리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이제는 조금은 알아.]긴 침묵이 이어진 다음에야 여한설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지금은 도전 안 해. 언젠가 당신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그 때에 도전할 거야.]그 말을 끝으로, 여한설은 휴대폰을 껐다.
뭔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여한설이 이겨도 나한테 듀얼 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제 내게 남은 일정이라고는 기말 과제 채점밖에 안 남았다.
개이득이란 말이다.
끝
“흐아아암.”
나는 빵빵하게 나오는 에어컨의 바람을 맞으며 듀얼 로그를 읽어나가고 있었다. 듀얼 로그, 그러니까 기보를 보는 것은 내 입장에서도 꽤나 공부가 된다. 되도 않는 시험문제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몇 배나 더.
사실 실력이나 메타 파악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나와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와의 듀얼이지만··· 아직까지 이 세계에서 나와 비슷한 듀얼리스트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외.
아무튼, 생각보다 준수한 듀얼로그가 꽤나 많이 와 있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1학년 2학기쯤 되면 여기 학생들도 기본 정도는 다들 하게 되···
파캉!
화면 안의 「불멸의 기사」가 필드 클린 마법 「금속 폭풍」에 쓸려나간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대상 비지정 효과는 효과 면역이랑 다르다니까. 몇 번이나 수업에서 설명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듀얼 로그를 빠르게 넘기며 점수를 매겨나갔다. 한 사람당 들어가는 시간은 대략 1분 가량. 파라락, 듀얼 로그를 빠르게 넘긴다. 다음, 그리고 그 다음.
[그렇게 보면서도 채점이 되는 건가?]“볼 건 다 보고 있으니까 상관없어.”
종종 생각을 요하는 국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빈도수가 그리 큰 편도 아닌 데다가 난국의 경우에는 다른 로그를 보며 머릿속에서 검토를 하니까 크게 틀릴 일은 없다.
전전 번에 채점했던 로그에서 잘못된 부분을 하나 더 찾아낸 다음 점수를 하향 조절한 나는 남아 있는 로그들을 확인했다. 남은 사람은 단 두명. 남연철과 여한설이다. 가장 늦게까지 뜸들이다 보낸 두 개의 로그들.
먼저 온 것은 여한설이다. 솔직히 더 기대되는 쪽이기도 하다. 신하연과 여한설의 듀얼 교류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하루에 이삼십게임 정도씩 했으니 쌓인 로그들이 백수십개는 될 거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로그라면 나름대로 꽤 괜찮은 듀얼일 터다.
나는 기대하며 제출된 로그를 확인했다. 그런데···
“신하연이랑 한 게 아니네.”
누군지도 모를 사람과의 듀얼이다. 여한설의 덱은 어둠 속성이 아니라 빛 속성 그대로다. 솔직히 좀 기대했었는데. 빛 속성의 덱을 그대로 쓰고 있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둠 속성이 이 세계에서 받는 취급은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솔직히 좀 아쉽다. 꽤 재밌는 로그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듀얼 내용은 나쁘지 않다. 처음 왔을 때보다 확실히 줄어든 실수, 세련된 선택, 하지만 너무나도 정직하다. 아니. 정직하다기보다는 경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