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67
이런 말을 하면 듀얼광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듀얼로그는 그 사람의 성향이나 생각에 대해서 천 마디 말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진짜 이상하게 들리네. 하지만 사실인 걸 어떡해. 수많은 선택들 가운데서 그 사람이 무슨 선택을 했느냐는, 그 사람의 생각과 현재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듀얼광처럼 들리니, 자기변호는 그만두도록 하겠다.
아무튼 여한설의 듀얼로그는, 많이 억압되어 있다. 플레이적인 면도 그렇고, 선택에서의 방향성도 그렇고. 전혀 재미없는 듀얼을 하고 있다.
“···높게 점수 주기 싫네.”
[그러면, 낮게 주면 되잖나?]“그러기엔 완성도가 꽤 높단 말이지. 저 상대편의 실력도 나쁘지 않고.]
누군진 모르지만 여한설이 구태여 초빙해서 듀얼을 한 것을 보면 꽤 유명한 사람이겠지. 과제로 온 상대 듀얼리스트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수준이다. 이현일에게 듀얼을 신청했다 거절당하고 권보람에게 듀얼을 신청했다 깨진 학생보다는 못하지만, 이 정도면 차석 점수는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덱 플레이···도 깔끔하고. 이건 만점짜리네.”
[실제로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맞아. 간단하게 몇 자만 적어 주면 되겠어.”
만점자에게는 플레이에 대한 코멘터리를 넣어 주기로 했었다. 아직 남연철의 듀얼 로그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몇 자 되지도 않을 테니 써 놓고 아니면 바꾸면 될 것이다.
[플레이가 너무 경직되어 있다. 다소간의 의외성이 없다면 상대가 예측하기 뻔해지고, 예측하기 뻔해진다면 상대의 승률은 높아진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모두 오픈하는 룰이라면 이런 방식의 듀얼도 나쁘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듀얼은 그렇지 않다. 조금 더 ···.] [···간단?]“왜. 5700자밖에 안 되네. 웹소설 작가들이 하루 연재하는 분량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 화 분량 ‘밖에’? 웹소설 작가들은 하루하루 피를 말려가면서 하루 분량을 연재한다고! 네가 창작의 고충을 알아?]왜 갑자기 급발진해서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 나는 스핑크스의 펀치를 피해낸 다음 평가를 저장했다. 총 점수를 합치니 89점이다. 덱 구성 점수에서 점수를 꽤 깎은 탓이다. 뭐, 그래도 현재까지는 1등이네.
그리고 마지막. 나는 남연철의 로그를 열었다. 그녀가 선택한 상대는 「은과 금」의 「금과 은의 기사」다. 나는 빠르게 로그를 돌렸다. 그리고 놀랐다.
“···이거. 내 덱인 것 같은데.”
[이젠 하다하다 제자의 덱을 가로채려 하는 건가?]나는 근거 없는 비방을 해대는 스핑크스에게 해태를 붙여 놓은 다음 -[핥지 마! 털 물어뜯지 마아! 갸아아악!]- 남연철의 덱을 다시 확인했다. 역시나. 내가 짠 덱 목록과 동일하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은과 금을 공략할 때에 짰던 「고철로봇」덱의 목록과 같다.
은과 금은 내가 난이도 검수를 할 때에 맡았던 지역이다. 당시에 소울 사에서는 어떤 덱으로 은과 금을 공략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를 원했다. 나는 요청이 들어오는 테마들로 「금과 은의 기사」를 공략해 나갔다.
그 안에는 고철 로봇 덱도 들어 있었다. 조금 고생했지만 결국 덱의 최적화를 만들어냈지.
그리고 지금 남연철이 가지고 있는 덱의 30장이, 내가 만들었던 덱 목록과 완전히 동일했다.
덱 리스트의 키 카드들은 내가 공략법을 전수하면서 추천해 준 「금속 기사」, 「기 가가 가가고기」들이 들어가 있어서 10장 가량은 고정적이긴 했지만. 나머지 카드들을 찾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엄청 열심히 했나 보네.”
최적화된 덱 리스트란 건 콜롬버스의 달걀과도 같다. 일단 만들어져 있는 최적화 목록을 몇 번 경험하고 나서는 그 덱 리스트를 눈 감고도 짤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이 노 베이스로 시작해서 쌓아올리는 것은 어렵디어려운 일이다.
아마 그녀는 이 덱 리스트를 만들기 위해서 며칠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실전도 꽤 경험하고 나서, 이 덱 리스트를 확정한 거겠지.
덱 운용은 아쉬웠다. 하긴. 하루이틀 하는 걸로 손에 익을 정도로 덱이란 것은 만만하지 않으니까.
총점은···94점.
“잘 했네.”
이제 해야 하는 것은 「튜닝」에 대한 평가다. 평가는 정말로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해태를 겨우 떼어낸 다음 내 평가문을 본 스핑크스가 물었다.
[이걸로 괜찮나?]“충분해.”
마지막 점수를 매긴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제 채점도 다 했고, 사냥을 나갈 시간이다.
“해남 갈 건데. 같이 갈래?”
스핑크스가 땡볕이 쪼아지는 바깥을 흘긴 다음 나를 바라봤다. ‘이 날씨에? 이몸께서? 바깥을?’이라는 표정이다. 그래. 처음부터 같이 가 줄 거라는 기대도 안 했다.
큰 맘 먹고 새로 산 먹이 급여대 -최저가 다음 품목-에 먹이를 모조리 채우고, 급수대에 물도 꽉꽉 채운 나는 잠시간 고민에 빠졌다.
에어컨 리모컨에서 건전지를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전익현. 네놈이 에어컨 리모컨에서 건전지를 빼놓고 간다면, 너와 나는 영원한 적이다.]“에이.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카드에 맹세코.]촤르르르! 모래가 스핑크스의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결사항전을 맹세하는 임진년 조선수군 눈빛을 하는 스핑크스. 위세에 밀린 나는 건전지를 놔 둔 채로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기세 많이 나오겠네.
전기세는 스핑크스의 월 급여 포인트에서 차감이다.
***
성적 확인 버튼이 포털 사이트의 창에 떠올랐다. 성적 확인을 위한 마지막 과목. 「튜닝학 개론」수업이다. 나머지 여섯 과목은 모조리 D, D-의 점수인 상태. 기말 시험을 통째로 날리고도 F가 없는 것은 그 전까지 점수를 많이 따 놓은 덕이다.
“···그 과목이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해.”
새벽녘은 가볍게 혀를 찼지만 타박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고 해도 기를 쓰고 들러붙었을 것이 분명했기에. 전익현이 해 주는 조언에는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으니까.
“···그보다 성적 확인 버튼. 안 누르나?”
“누를 거야. 하나. 둘. 셋!”
클릭은 없었다.
“언제 누를 거지?”
“지금. 하나. 둘. 셋.”
이번에도 클릭은 없었다.
새벽녘은 잠시간 침묵한 다음. 남연철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마우스의 버튼을 눌렀다. 괴악한 비명이 남연철에게서 터져나왔지만, 새벽녘은 자비없이 점수를 확인했다.
“94점. 1등이로군.”
“진짜인가?”
“그런데. 조금 이상한데···.”
“뭐가 이상하지?”
“코멘트가 없다.”
“뭐?”
남연철은 모니터를 바라봤다. 각 파트별로 만점을 받은 것은 총 세 명. 여한설과, 권보람에게 듀얼을 신청했던 사람과, 자신.
여한설에게 달려 있는 코멘트는 길디길었다. 스크롤을 몇 번 내려야만 될 정도의 긴 코멘트. 나머지 하나의 코멘트도 그에 걸맞게 길었다. 마냥 강한 상대를 찾아서 듀얼을 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지만, 패기 하나는 괜찮다는 덕담. 튜닝을 어떻게 해야 하고, 카드를 뭘 넣으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길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달려 있는 코멘트는···.
[ . ]점 하나. 오류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의없는 코멘트다. 길게 심호흡을 한 남연철은 새로고침을 눌렀다. 어쩌면 코멘트가 누락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번을 새로고침해 봐도 어떤 문구도 떠오르지 않는다.
점 하나. 다른 학생들에게 한 코멘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성의없는 코멘트.
이것을 받기 위해서, 그토록 시간을 들인 것이었던가?
후회감이 밀려들려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성의없는 코멘트로군. 이토록 신의 없는 인간이었을 줄이야.”
“···아니야.”
“아니라니.”
“성의없는 코멘트가 아니야.”
다른 두 개의 코멘트들은 만점을 부여했는데도 수많은 개선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반면에, 자신에게 달린 코멘트는 점 하나뿐.
이것이 말하는 바는 하나뿐.
[잘 했다. 내가 손 볼 데가 없을 정도로.]“···그냥. 잘 했다고 칭찬해 주면 될 것을.”
알아듣기 더럽게 어려운 칭찬.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알아들을 리가 없는 아무 것도 아닌 칭찬. 하지만, 그녀가 평생 받아왔던 어떤 칭찬보다도 기분좋은 칭찬이었다.
“···우는 건가?”
“안 울어.”
남연철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
여한설은 방학을 맞아 남해로 향하는 리무진을 타고 있었다. 시험 결과는 볼 것도 없이 1등이었다.
남연철에게 1등을 내어줬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너무나도 나빴지만. 더 기분나쁜 것은···.
‘나만의 듀얼을 하지 않았어.’
신하연과의 수많은 명국을 쌓아 놓고도 그녀는 결국 빛 속성의 덱을 선택했다. 틀에 박힌 기계같은 듀얼 로그. 높은 점수를 받고, 2등이라는 자리를 얻어냈지만 그것뿐이다.
그 점수는 그녀 자신을 나타내는 점수가 아니었기에.
아니. 그래도 상관없다. 총 점수는 압도적인 1등을 만들어냈고, 잠시동안의 자유 시간을 만들어냈으니까.
“갑자기 해남이라니. 특이하군요.”
이지후가 중얼거렸다.
“그냥. 가고 싶어져서.”
“그렇습니까. 아무 이유도 없는 거겠죠.”
“맞아.”
“‘수트 제작 비용’ U튜브를 보신 것도 아무 이유가 없죠.”
“맞아.”
“‘해남의 강화외골격 장인 리뷰’는 U튜브를 보신 것도.”
“······너. 어떻게 내가 본 동영상을 모조리 다 아는 거야?”
‘아가씨가 U튜브를 제 아이디로 보신 다음 로그아웃을 안 하셔서 그렇습니다.’ 라는 말을 꿀꺽 삼킨 이지후는 ‘비밀입니다.’라는 말을 하며 실눈을 떠 보였다.
뭐. 강화외골격이라면 그녀가 정체를 숨기고 움직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결국 여한설은 자신이 말리건 말건 탑을 공략할 테고, 그러려면 듀얼용 강화외골격이 필요할 테니까. 이 기회에 한 벌 마련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지후도 바다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이 외유를 막는다면 여한설을 아카데미에서 남은 방학을 덱 연구로 보낼 테니까.
이지후도 청춘의 나이다. 아카데미의 도서관만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여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해남은 볼 거리도 많고,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다(그렇다고 U튜브에서 그랬다.). 그런 곳을 구경나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해남은 게이트가 거의 열리지 않는 A급 안전지대이기도 하다.
인구수가 워낙에 적은지라 듀얼리스트도 없고. 수트는 제작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리는지라 일정이 붕 뜬다. 일정이 붕 뜬다는 말은, 그만큼 휴식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건을 몰고 다니는 폭탄이 돌아다니는게 아닌 이상에야, 별 일 없이 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름은 힐링하면서 보내야지.’
이지후는 며칠간의 휴가를 만끽할 생각을 하며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끝
“더워. 너는 안 더워?”
“괜찮습니다.”
여한설은 양산을 자신에게 씌운 채 정장 차림으로 버티고 있는 이지후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양산 아래로 같이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오지 않을 거고. 최대한 빨리 그늘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다.
“···대충 이 주변이라고 했는데.”
여한설은 해변을 돌아봤다. 해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대부분은 덱도 들고 있지 않은 채다. 듀얼리스트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무방비한 모습들에 여한설은 눈살을 찌푸렸다.
“썩 마음에 드는 장소는 아니군.”
“게이트가 열리지도 않는 안전한 구역이니까요. 그만큼 치안이 좋기도 하고.”
이지후는 부러운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여한설은 해변을 죽 둘러봤다. 여유로운 사람들밖에 없다. 아무리 돌아봐도 외골격을 파는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이. 아가씨들.”
“무슨 일이지?”
온 몸을 태닝을 한 채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입에 이쑤시개를 문 채 건들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둘이서 온 거야? 찾는 사람이나 물건 같은 거 있어?”
“대 듀얼용 충격완화외골격을 파는 사람을 찾고 있어.”
“아아. 외골격? 마침 내가 그걸 파는 사람인데 말이야.”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런가? 운이 좋았군. 어디로 가면 되지?”
“나만 따라와. 아무래도 여기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서 말이야.”
“아가씨. 기다리십시오.”
“왜?”
“저 자가 하는 말은 통째로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라니?”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이런 곳에서 으레 있는 소위 ‘헌팅’이라는 거죠.”
여한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다. 한시라도 빨리 일을 마치고 싶은데 이런 쓸데없는 인간이 꼬이다니.
“아. 헌팅 아니야. 진짜로, 나는 외골격을 파는 사람이라니까?”
남자는 짝다리를 짚은 채 건들거리며 말했다. 여한설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카드를 꺼내들었다.
“기다리십시오 아가씨. 이런 남자에게 듀얼을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이런 남자라니? 나는 진짜로···!”
남자의 말이 더 이어지기도 전에 이지후가 남자의 팔을 잡아챘다.
“자···잠깐만···!”
휘익! 이지후가 남자를 잡아채 바닥에 메다꽂았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제압이다.
“잘 했어.”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아가씨.”
여한설은 U튜브를 다시 켰다. 동영상 어딘가에 휴대폰 번호가 남아 있었던 기억이 났다. 휴대폰을 뒤적여 외골격 제작자의 번호를 찾아낸 여한설은 U튜브에 있는 전화를 걸었다.
♬♪~♬
상쾌한 벨소리가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호주머니에서 흘러나왔다.
***
해남에 도착한 나는 장시간의 버스탑승으로 찌뿌드드해진 몸을 풀었다. 길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에 카드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두 사람에 한 사람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평화로운 곳이다.
해남이 이렇게 평화로운 까닭은 인구 밀도가 그리 높지 않은 덕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게이트가 거의 열리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