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73
“인간!”
“전익현이라고 불러.”
떠나온 보트가 시야에서 멀어지자마자 시레나가 말을 걸어왔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나 보다.
“그냥 모습을 보여줄 거면, 처음부터 보여주지 그랬냐.”
“그치만 내가 있으면 사람들 무서워해.”
하이드로 펌프로 보트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괴물이면 나 같아도 무서워하겠다. 수호자들이 인간을 건드리면 안 되는 룰이 있어서 망정이지.
“그래서. 왜 왔냐?”
시레나가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어떻게 요 녀석을 설득하지’같은 눈이다.
“시레나. 지름길 알아!”
“지름길?”
“익현한테만 알려주는 지름길. 날 따라오면 해신을 만날 수 있어!”
“안전한 길이야?”
“맞아. 안전한 길. 어엄청 안전해.”
파닥파닥. 지느러미가 기쁨으로 춤추는 것을 보니 안전한 길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지름길’은 분명할 거다.
아마 나로 하여금 세이렌을 만나게 할 심산이겠지.
바라던 바다.
“좋아. 안내해.”
나는 시레나의 안내를 받아 길을 헤쳐나갔다. 몬스터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시레나의 기세에 밀려 도망친 것이겠지.
중대형 이상의 몬스터가 아니라면 수호자는 기운만으로도 몬스터들은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설정을 읽은 적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핑크스를 끌고 올 걸 그랬다. 머리에 얹어 놓는 것만으로도 몬스터들 걱정 안 해도 됐을 텐데.
보트를 몰아 도착한 곳은 커다란 암초가 놓여져 있는 곳이었다. 불길하기 그지없게 생긴 암초다. 딱 봐도 위험하니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 라는 포스를 줄줄 뿜어내는 공간.
“바로 여기 들어가면 돼!”
나는 보트를 암초 앞으로 몰았다.
[해류가 맥동합니다.]부우우. 듣기 싫은 고동나팔 소리가 울려퍼지며, 반인반수의 세이렌Siren이 나타났다. 인어와 매우 흡사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인 인어와는 다르게 세이렌은 보기만 해도 뒤틀린 형태의 존재다.
“인간! 속았다!”
“아이코. 깜짝이야. 속았네.”
“···안 놀랐어?”
“예상했으니까.”
“인간. 세이렌은 상대 어려워. 잘못하면 죽어.”
“잘 못하면 죽는 거고. 난 잘해.”
내 자신만만한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시레나의 얼굴이 숙연해진다.
“···인간. 죽으면 시체는 뭍에 가져다 줄게.”
“고맙다.”
“생각하니 무거울 것 같아. 귀만 가져가도 돼?”
진짜 너는 나중에 아카데미에서 보자. 내가 시레나를 쥐어팰 덱을 지금 가지고 있는 카드들로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세이렌은 나를 따개비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세이렌의 온 몸에 뒤덮인 따개비들의 갯수를 헤아리던 나는 입을 열었다.
“듀얼.”
카가가각! 따개비들이 세이렌의 팔에 엉겨붙으며 듀얼 디스크를 구성했다.
생긴 건 지나가는 잡몹처럼 생겼지만 세이렌은 꽤나 귀찮은 몬스터다. 체력은 500 가량. 기본적인 공격인 「세이렌의 손톱」의 공격력은 2.
어정쩡해 보이는 스펙이지만 세이렌을 상대하기 까다롭게 하는 것은 세이렌이 가지고 있는 특이성 때문이다.
+
【세이렌의 미혹】
【매 턴, 상대의 소환수 하나의 소유권을 가져옵니다. 소유권을 가져오지 않으면, 「세이렌의 손톱」의 공격력이 1 올라갑니다.】
+
필드에 소환한 소환수를 가져가는 「세이렌의 미혹」은 상대하기 까다롭기 그지없는 기술이다.
소환수를 빼앗기기 싫다고 해서 무기나 마법 위주의 덱을 짤 수도 없는 것이, 「세이렌의 손톱」의 공격력이 계속 올라간다.
단적으로 소환수보다 마법 위주인 신하연의 덱을 가지고 오면 「세이렌의 손톱」의 공격력이 30을 넘어가는 꼴을 보게 될 거다.
“그러면 못 이긴다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소환수 위주의 덱을 짜 오면 필드 전개력에서 밀려나고.
「꽃잎 토큰」같은 덱으로 필드를 틀어막는 것도 괜찮은 방식이지만, 빌드업이 오래 걸린다. 세이렌의 체력이 높은 탓에 광폭 타이밍을 넘겨 버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오고.
아무튼 어느 쪽으로 접근하건 상대하기 쉽지 않은 몬스터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만. 전용덱을 짜 오면 상대하기 쉽단 말이지.
그것도 심하게.
[듀얼 스타트]나는 첫 손패를 바라봤다.
+
【수룡의 주인】
【8 mana】
【물 속성】
【유언 : 소유자를 「수룡」으로 메타몰포시스(변태)시킵니다.】
【6/6】
+
+
【용의 파멸】
【1 mana】
【용족 하나를 파괴합니다.】
+
필요한 콤보 카드 두 장이 모두 핸드에 잡혔네. 운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버티는 것 뿐이다.
끝
첫 턴. 카드를 드로우한 나는 「얼빠진 거인」을 필드 위에 소환했다.
+
【얼빠진 거인】
【1 mana】
【이 소환수는 공격할 수 없습니다.】
【3/4】
+
“턴 엔드.”
[「세이렌의 미혹」이 발동합니다.]세이렌의 입에서 기묘한, 그런데도 저항하기 힘든 울음소리가 퍼져나온다. 수없이 많은 선원들을 홀리고 죽음으로 몰아간 노랫가락이다.
내 필드에 소환된 얼빠진 거인이 홀린 듯 세이렌의 필드로 걸음을 옮겼다.
[「얼빠진 거인」의 소유권이 변경됩니다.]얼빠진 거인을 가져온 세이렌이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그럴 만도 하지. 「얼빠진 거인」은 1마나 최상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카드다. 하지만 이 능력치는 아무 쓸모가 없다.
효과로 공격할 수 없다는 디메리트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내 덱과 핸드는 거의 대부분이 저런 「공격 불가」카드들로 채워져 있다.
촤악! 세이렌의 공격이 내 본체에 작렬했다. 데미지는 2. 견딜만 하다.
“버티기만 하면. 못 이겨.”
“구경꾼이면 조용히 좀 보지?”
“나한테 잘 보여. 시레나 있어야 전익현 죽어도 뭍에 갈 수 있어.”
에헴. 하고 가슴을 펼치는 시레나. 함정도 아닌 곳에 나를 데려다 놓고 선심쓰는듯 한 저 태도는 뭔지 모르겠다.
하긴. 물고기의 지능은 그리 크게 높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지도.
그 이후의 턴은 사실 꽤나 일방적이었다. 매 턴마다 컨트롤을 하나 가지고 가는 능력은 그만큼 위협적이다.
나는 소환수를 계속 소환하고, 할 수 있으면 도발 카드를 사용해 데미지를 줄이는 데 급급했다.
그리고, 여덟 번째 턴.
“나는 「수룡의 주인」을 소환.”
+
【수룡의 주인】
【8 mana】
【물 속성】
【유언 : 소유자를 「수룡」으로 메타몰포시스(변태)시킵니다.】
【6/6】
+
창 하나가 물살을 가르고 솟아올랐다. 뒤이어 반인반룡半人半龍의 눈을 한 청년의 몸이 바다를 가르며 솟구쳤다.
「메타몰포시스」류 카드들의 시초인 동시에 활용도가 높아 고레벨 물 속성 덱에도 자주 기용되는 카드가 바로 저「수룡의 주인」이다.
“와아! 잘생겨따!”
수룡의 주인을 본 시레나가 짝짝짝. 하고 박수를 쳤다. 저런 기생오래비같은 얼굴이 취향이구나. 남자는 자고로 기생오래비처럼 생긴 게 아니라 듬직하고 남자답게 생겨야 하는 법인데.
수룡의 주인이 열렬한 관객에게 호응하며 들고 있던 창을 휘리릭! 휘둘렀다.
음. 기생오라비 자식. 후려패고 싶다.
“···저 분. 전익현 에이스 카드?”
“에이스 카드는 아니야. 키 카드는 맞지만.”
“키?가 뭐야?”
“열쇠.”
“열쇠?가 뭐야?”
“문을 여는 거.”
“문?이 뭐야?”
대화가 선문답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으므로, 나는 시레나의 질문을 통째로 무시했다.
이어서 몇 번 질문을 던지던 시레나는 내가 반응하지 않자 서식지를 빼앗긴 물방개 표정을 지은 채로 물을 나에게 튀겨댔다.
“턴 엔드.”
턴을 종료하자마자 세이렌이 기쁘게 몸을 들썩였다. 처음으로 나온 공격이 가능한 소환수이니 그럴 만도 하다.
세이렌의 미혹이 다시 발동했다. 「수룡의 주인」의 눈에서 총기가 사라진다. 죽은 생선 눈이 된 수룡의 주인이 세이렌의 필드로 이동한다.
“세이렌의 필드. 가득 찼어.”
“보여.”
세이렌의 필드는 내가 소환한 쓰레기 소환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본래라면 ‘필드 락’에 걸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세이렌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다.
부우우. 세이렌이 가지고 있는 소라고동을 불었다.
+
【멸시의 소라고동】
【일회성】
【필드의 소환수를 모두 희생합니다. 희생한 만큼 적에게 데미지를 줍니다.】
+
소라고동의 소리에 내가 소환했던 소환수들이 눈이 풀린 채 필드 중앙에 뭉치기 시작했다.
뭉쳐진 소환수들은 하나의 구球가 되어 내 몸을 향해 짓이겨들었다. 이런 고데미지의 공격에 당하는 것도 꽤 익숙해진 나는 가드를 올리고 눈을 보호했다.
콰과과과! 쾅! 내 몸에 부딪힌 구가 산산조각이 되며 비산하며 내 몸에 박혀들었다. 진짜 빌어먹을 정도로 아프다. 초등학교 2학년때 짝꿍에게 꼬집혔을 때 다음으로 아프다.
[Hp -7]“어떡해! 어떻게 해에! 많이 아파?”
시레나가 피치 높은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어댄다. 너는 나 죽으라고 여기 데려온 거 아니냐? 니가 비명을 지르면 어쩌자는 거냐?
[남은 Hp : 5]간당간당해 보이는 체력 바가 위태롭게 깜빡인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내가 넘겨놓은 ‘독’은 이미, 세이렌의 몸에 퍼졌으니까.
[「수룡의 주인」의 유언 효과가 발동합니다.] [「메타몰포시스」가 발동됩니다.]우드득! 두득! 따개비가 뒤덮혀 있던 세이렌의 몸에서 푸른 색의 비늘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메타몰포시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메타몰포시스」는 보통의 카드들. 그러니까 무기, 소환수, 마법으로 대표되는 카드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꽤나 특이한 능력이다.
메타몰포시스는 듀얼을 하고 있던 듀얼리스트를 교체한다. 교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고, 추가적인 특이성을 얻고, 신체능력이 바뀌고, 특이성이 생겨나는 것 정도다.
메타몰포시스 카드들 대다수가 상급 이상의 특이성만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간은 쓸 일이 없었는데, 세이렌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 「수룡의 주인」만한 카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