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77
쾅! 이번에도 외골격은 우그러지지 않는다. 그녀가 해 왔던 작품들 중 단연 발군이다.
“이거. 주인 될 사람은 누구에요?”
“이름은 밝힐 수 없어.”
“아카데미랑 관련 있는 사람인가요?”
“왜. 궁금해?”
“조금은.”
김태양은 머리를 긁었다. 본래라면 이런 개인 정보는 유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전혀 관심이라고는 없던 진슬아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금쯤은 알려줘도 괜찮으려나.’
“···관계 있는 사람이야.”
“강한가요?”
진슬아의 질문에 김태양은 잠시 멈칫했다. 기세를 보아하니 한 번 듀얼해 보고 싶은 모양.
여한설이 굉장히 강한 것은 맞지만, 그래 봤자 1학년이다. 진슬아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힘들 터.
‘···제대로 알려 주면, 아카데미에 들어갈 일이 없겠지.’
그러니 거짓말을 하자. 거짓말을 결심한 김태양은 선글라스를 고쳐써 표정을 숨겼다.
“1학년인데. 성적은 밑바닥을 겨우 면한 모양이야.”
“그런가요?”
“이런 취미생활을 하는 듀얼리스트가 강할 리 없잖아.”
그도 그러네요. 진슬아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꼴찌인 학생이라면 약한 듀얼리스트인 자신의 상대로 안성맞춤이다. 충격 실험은 며칠간 지속될 터. 그 사이에 우연을 가장해 만나서 듀얼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길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강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천천히, 느리지만 착실히. 그렇게 강해지고 나면 언젠가는···.
「해신」을 성불시킬 수 있을 것이다.
끝
해신을 성불시키는 일을 끝내고 나니 시간이 조금 널널해졌다. 나는 바닥에 엎어져 누워 있었다. 다른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에도 휴식이 필요하듯이 듀얼에도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아이고. 죽겠다.”
몸이 너무 아프다. 시레나가 줬던 포션이 만능은 아니었다. 시레나의 포션을 당장 썼을 때에는 몸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다. 고통도 사라졌었고.
근데. 그게 외견뿐이었을 줄이야.
만능일 줄 알았던 포션은 포션이 아니라 진통제였다. 상처는 아물긴 했지만 고통은 그대로였다는 말이다.
[시레나 배고파!]시레나가 사각 어항(원형 어항은 물고기의 시력에 좋지 않다며 용인 아재가 준 어항이다)안에서 배고픔을 호소하며 물을 찰랑였다.
너는 남한테 진통제 멕여서 억지로 듀얼시켜 놓고, 배고프다고 징징댈 시간이 있니?
하지만 짜증난다고 끼니를 걸렀다가는 물벼락을 맞을 게 분명하기에 투덜거리며 먹이를 어항에 집어넣었다.
그보다 시레나가 밥을 찾는 것을 보니··· 슬슬 시간이 됐다.
“형씨! 밥 때가 됐네! 일어나게!”
점심 시간에 맞춰 용인 아재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안 먹겠다고 해 봤자 소용없다. 바닥에 늘어붙어 있을 수도 없다.
“일어나게! 밥 먹어야지!”
“몸이 아파서···.”
“대체 뭘 잡았기에 그렇게 비실대는 건가?”
“해왕류 잡았다니까요.”
해신을 잡았다고는 절대 말 못한다. 나는 대충 「해왕류」를 잡았다고 말했지만, 용인 아재는 안 믿는 눈치다.
“그렇게 비실대는 몸으로 해왕류를 잡는다는 게 말이나 되나? 크하하!”
랜다.
듀얼은 몸에 있는 근육과 전혀 연관이 없다고 말해 봤지만, 용인 아재는 듀얼근이 없으면 강한 덱이 있어도 덱이 제대로 안 굴러간다며 내 말을 그대로 부정해버렸다.
듀얼근이 도대체 뭔데.
아무튼간에 나는 용인 아재의 손에 들려 식탁으로 소환됐다.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소환당하는 꽃잎 토큰 카드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나는 내가 무가치하게 소환해왔던 꽃잎 토큰 카드들에 대해서 잠시간 미안해하는 감정을 가지며 곧 있을 식고문에 대비했다.
“자! 먹게! 상처 치료에는 음식이 약이야!”
오늘 음식은 돈까스 덮밥이다.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 올려놓은 것 같은 돈까스 양을 보며 나는 숟가락을 들어올렸다.
우물우물.
여전히 맛있다. 한국 최고의 맛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르다. 말 그대로의 의미다. 어제 먹은 산채비빔밥이 아직까지 위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살려줘.
밥을 최선을 다해 께작이는데 용인 아재가 밥을 후루룩 넘겨버린다.
“오늘은 집에 내가 없을 걸세!”
“왜요?”
드디어 장판파로 출진하시는 겁니까? 라는 말을 돈까스 조각과 함께 목으로 꿀떡 넘겼다.
“오랜만에 낚시를 가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요근래 물고기들도 많고, 남해 주변에 몬스터들도 거의 안 나와! 해신을 누가 없애 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그럴 리가 없죠.”
“그렇지! 해신이 잡혔을 리가 없어! 해신을 잡았다면 우리 딸내미 얻겠다고 줄을 섰을 테니 말이야!”
“그럴 리가 없죠.”
크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용인 아재가 내 등을 후려갈겼다. 여전히 엄청난 공격력이다. 스틱스 강이 눈 앞에 보이는 것을 겨우 돌아왔다.
아무튼, 오늘은 용인 아재가 없다는 말이군. 그렇다는 건 진슬아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최대한 빨리 튜닝을 해 줘야 하는 입장이니, 내 입장에서는 환영이다.
***
하아암. 뒷 공터에 나온 진슬아가 길게 하품을 했다. 하루종일 자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시간을 이야기해 놓으면 칼같이 나타난단 말이지.
“시간이 많이 없어요.”
“···반말 하세요. 가르침받는 입장이고. 나이 차이도 꽤 나는 것 같은데.”
“나이차는 별로 안 나요.”
“그렇다고 쳐요.”
아저씨 취급이다. 전익현의 몸이 내 몸은 아니지만 아저씨 취급에 조금 울컥한다.
그래도 반말을 하는 게 편하니, 말을 트기로 할까.
“먼저. 덱 튜닝부터 해야지.”
“튜닝이요?”
튜닝이란 말에 진슬아의 불신에 빠진다. 한 학기 동안 튜닝의 위대함에 대해서 매일같이 주입했던 학생들만 봐서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튜닝이란 거. 좋지 못한 취급이었지.
심지어 동의 없이 남이 해 주는 튜닝이라는 건 거의 강도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
한 학기 내도록 주입식으로 튜닝의 위대함을 설파하고도 튜닝에 대한 시선이 크게 좋지 않은데, 진슬아를 짧은 시간 동안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생각보다 큰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듀얼로 계속 이기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보아하니 진슬아는 지금 많은 듀얼을 해 보지 않은 상황이다. 많은 듀얼을 거치지 않은 알에서 갓 깨어난 아기새와 같은 상황이란 거지.
아기새는 처음 본 움직이는 물건을 어미라고 인식한다.
처음 알을 깨고 나온 새내기 듀얼리스트는···
‘자신을 개바른 덱을 개사기 덱이라고 생각하지.’
“내 덱을 튜닝해야 된다는 말이었어. 새 카드들이 들어왔거든.”
그런가요.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진슬아를 바라보며 나는 카드들을 꺼내들었다. 그녀에게 맞춰 주려던 덱의 핵심 요소는 ‘꽃잎 토큰’덱.
네 가지 속성을 사용할 수 있는 쿼드러플 소울인 그녀와 다르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속성은 하나뿐이다.
꽃잎 토큰과 단독으로 쓰이는 속성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나 숲 속성.
하지만 나는 지금 진슬아에게 임팩트를 심어 줘야만 한다. 꽃잎 토큰 덱 중 가장 임팩트가 강한 덱은 뭘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꽃잎 토큰덱과 함께 사용할 덱으로 「대지」속성을 고르고 덱을 맞춰나갔다.
“자. 튜닝 완료.”
“듀얼!”
듀얼 필드가 솟아올랐다.
정식 듀얼이다. 모바일 버전으로 할까 했지만, 모바일 버전은 튜닝학에 조금 물든 다음에야 소용이 있다.
쌓인 데미지로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지만, 애초에 꽃잎 토큰 덱의 수비능력은 발군이다.
“드로우!”
패를 확인했다. ···패를 보아하니 수비고 뭐고 생각할 필요도 없구만.
두 번째 턴이면 게임 종료다.
“나는 민들레 홀씨를 소환하고 턴 엔드!”
민들레 홀씨를 소환하자 진슬아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꽃잎 토큰 덱이네요.”
“이걸 아나?”
“중립 덱 중에 얼마 전에 유행했던 덱이죠. 아카데미의 어떤 교수가 만들었다던데.”
그거. 나다. 교수가 아니라 시간강사긴 하지만.
“누구한테 들은 소문이야?”
“김태양 씨요.”
“그 사람. 가까히 해도 괜찮나?”
“생각보다는 좋은 사람이에요.”
진슬아가 김태양의 사진을 보여준다. 태닝한 양아치 차림의 금발 머리가 혀를 내밀며 웃고 있다.
···아무리 봐도 좋은 사람일 리가 없다. 그것까지 다 수작이야. 편견덩어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아무튼. 이 꽃잎 토큰 덱은 강해.”
“···그래봤자, 중립 카드들이 메인인 덱일 뿐이죠.”
“마음대로 생각해.”
진슬아가 패를 훑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속성은 네 가지. 숲, 불, 빛, 대지. 덱의 테마는 템포 미드레인지다.
왜 미드레인지로 덱을 구축했느냐를 추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불, 빛, 대지 속성의 중간 레벨 소환수들의 교환비가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무리지도 사자」, 「홍염 검사」, 「호크맨」으로 대표되는 5-6레벨 소환수들은 동일 마나 대비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이런 카드들을 꾸역꾸역 넣은 다음 초반을 무난하게 넘기고, 중반에 필드를 장악해 후반이 오기 전에 게임을 끝낸다.
나쁘지 않은 덱이다.
“···턴 엔드.”
하지만, 최선의 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덱을 사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악惡이다.
그걸, 처절하게 느끼게 만들어 주지.
[당신의 턴입니다.]“나는 핸드에서 수다쟁이 꽃을 소환!”
+
【수다쟁이 꽃】
【1 mana】
【일회성 : 주문을 사용한 후, 「수다쟁이 꽃」을 소환합니다. 】
【1/1】
+
“수다쟁이 꽃이라. 나쁘지 않네요.”
“그 이상이지.”
수다쟁이 꽃은 대지 속성 꽃잎 토큰 덱의 핵심 축이자, 이 덱의 지원이 끊기게 만든 만악의 근원이니까.
“모래의 집중 두 장을 연속해서 발동.”
+
【모래의 집중】
【0 mana】
【이번 턴에 마나를 2 얻습니다.】
+
모래가 바닥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래 샤워를 받은 「수다쟁이 꽃」이 자신을 복제해 냈다.
그리고 복제된 수다쟁이 꽃이 다시 수다쟁이 꽃을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필드가 4체가 됐다.
“그래봐야···.”
“이어서, 「모래알 유희」사용.”
+
【모래알 유희】
【0 mana】
【이번 턴에 마나를 1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