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83
시끄러. 내가 못해서 진 게 아니야. 내 플레이는 완벽했다고.
“팀플레이에서 네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뭘까.”
[팀원을 믿는 마음?]“아니지. 팀원 믿는 게 아니야. 네가 다 잡아패야지. 팀원은 절대 믿지 마. 할 수 있는 최대한 이기적으로 플레이해.”
[···팀플레이 이야기 하는 거 맞지?]“그래.”
***
전익현의 택도 없는 대답을 들은 여한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리 그녀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팀 플레이’가 협동을 중시하는 플레이 포맷이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안다.
전화로 전익현에게 뭔가를 더 물어 보려고 했지만 전화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여전히 불친절한 태도다.
“누구랑 통화한 거야?”
“짜증나지만 실력은 있는 인간.”
“얼마나 실력 있는데?”
“개소리를 해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 정도.”
전익현이 수업 시간에 실없는 헛소리를 종종 하고는 하지만 카드에 관한 한,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팀 플레이에서는···
[남은 시간 : 15초]아니. 고민할 시간이 없다. 여한설은 숨을 골랐다. 스위치를 바꾸는 것은 쉬웠다. ‘할 수 있는 최대한 이기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그저 평소대로 플레이하면 된다는 뜻이니까.
“한 번 해 보자고.”
“뭘?”
좋은 팀 플레이어라면 여기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왜’ 할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했겠지.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평소의 여한설이었다. 귀찮은 질문 따위에 응대해 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진슬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여한설은 빠르게 필드를 훑었다. 여섯 개의 「희생」제물이 갖춰져 있다.
“나는 침묵의 암제를 소환.”
+
【침묵의 암제】
【7 mana】
【도발, 소환 : 아군 필드의 모든 소환수를 침묵시키고 파괴합니다. 그 수만큼 묘지를 추가 생성합니다.】
【6/6】
+
우드득! 검은 사제복을 입은 「침묵의 암제」가 필드에 소환되며 소환수들의 머리를 잡아챘다. 여한설이 소환해 놨던 소환수뿐만 아니라, 진슬아의 소환수까지도.
“야! 뭐 하는 짓이야!”
전 턴 필드를 밀린 다음 간신히 벽을 세워놨던 진슬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필드에 내가 쓸 자원이 있어서 쓴 것 뿐이다.”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소환한···.”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 이기기 위해서 최선의 플레이를 한 것 뿐.”
여한설의 말에 진슬아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대체 무슨 통화를 했기에 그나마 맞추려고 하던 플레이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제멋대로가 돼 버린 건지.
하지만 턴은 넘어가 버렸다.
[상대의 턴입니다.]두 교수의 덱은 「불」과 「숲」덱이다. 잘 맞는 타입의 듀오는 아닌 데다가 묘하게 플레이가 서로 어긋나고 있어서 지금까지 버텨 왔지만, 필드가 여한설의 트롤링으로 텅 비어 버렸다.
콰드득! 두 교수들의 공격이 「침묵의 암제」에게 덮쳐들었다. 순서가 맞지 않았던 탓에 데미지가 심하게 오버되기는 했지만···필드가 텅 비어 버렸다.
“다음 턴에 쓰려고 했던 서포트 카드들이 죄다 무용지물이 됐잖아!”
내 알 바 아냐. 라는 말을 중얼거린 여한설은 묵묵히 자신의 패만을 확인할 뿐이었다.
[당신의 턴입니다.]돌아온 턴. 진슬아는 옆을 흘끔 쳐다봤다. 서로의 카드들을 확인하고, 어떤 플레이를 해 나갈지 순서를 정해야···.
“나는 「데스 나이트」를 소환.”
여한설은 어떤 플레이를 할 지 묻지도 않은 채 데스 나이트를 소환했다. 그드드득! 끔찍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바닥에서 죽음의 기사가 몸을 드러냈다.
+
【데스 나이트】
【10 mana】
【5/5】
【소환 : 묘지에 있는 모든 카드를 삭제합니다. 삭제한 카드 2장당 +1/+1을 얻습니다.】
+
데스 나이트의 검에 섬뜩한 검광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죽음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는 데스 나이트의 검.
“내 묘지까지···!”
“어차피 쓰지도 않는 묘지잖아?”
“빛 속성도 엄연히 묘지 자원을 쓴다고! 알잖아!”
“알 바 아니야.”
“이게···!”
고오오오. 진슬아가 짜증을 내건 말건, 데스 나이트의 위세는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2:2 듀얼이기에 쌓이는 묘지 자원도 두 배. 거기에 전 턴에 「침묵의 암제」로 묘지 자원을 강제로 쌓기까지 했으니.
【27/27】
“스텟이 좋으면 뭘 해.”
2:2 듀얼에서는 상대가 볼 수 있는 카드의 수가 두 배로 많다. 저런 에이스 소환수가 소환되었을 때에 제압할 수 있는 카드가 있을 확률은 단순히 두배를 훨씬 넘어간다.
‘그러니까 저딴 카드를 쉽게 소환하면 안 되는 건데···!’
진슬아는 발을 동동 굴렀다. 묘지 자원도 완전히 말라붙어 버렸다. 좋든 싫든 자신들의 운명이 저 빌어먹을 죽음의 기사에게 달린 것이다.
그러니 서포트할 수밖에 없다. 진슬아는 패에서 아껴 두고 있던 버프 카드인 「대지 수호 토템」을 뽑아들었다.
“나는 빛의 수호물을 데스 나이트에게 사용!”
+
【빛의 수호물】
【7 mana】
【소환수 하나에게 「절대부활」상태를 부여합니다.】
+
본래 그녀의 패에 있는 에이스 몬스터인 「거석거인」에게 부여하려고 남겨놓은 카드지만, 앞뒤 잴 시간이 없다.
“턴 엔드!”
상대에게 턴이 넘어간 순간부터 진슬아는 손에 땀을 쥐었다.
‘제발 제압기 없어라. 제발 없어라.’
“불사조 깃털을 발동.”
콰앙! 데스 나이트가 허무하게 터져나갔다.
‘괜찮아.’
한 장만 있다면 문제없다. 「절대부활」은 버프 상태를 유지한 채 되살리는 최상위 부활 옵션. 한 번 제압당해도 다시 튀어나오는 데스 나이트는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
“뒤이어, 「자연의 반격」을 발동.”
숲 속성의 제압기인 자연의 반격이 발동했다.
우드득! 27/27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던 데스 나이트가 그대로 바닥에 쳐박혀 부서져내렸다.
“···젠장.”
진슬아는 허무하게 웃었다. 상대의 필드에 남은 소환수들이 여한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드득! 콰득! 도합 20에 가까운 데미지가 여한설의 몸을 유린했다.
고통에 비명을 내지를만도 하건만, 여한설의 입에서는 자그마한 신음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자존심인 건가?”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드로우.”
여한설은 담담하게 패를 뽑아들었다. 그녀는 오만하게, 그리고 고고하게 패를 확인하고, 미소지었다.
+
【죽음부터의 귀환】
【어둠】
【5 mana】
【묘지의 소환수 하나를 패로 가져옵니다.】
+
“···그딴 카드로 지금 상황이 역전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역전이 아니라. 여기서 게임 끝이다.”
[아군에게서 카드 양도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양도 요청 카드 : 「죽음으로부터의 귀환」]“카드 교환?”
“몰랐나? 이번 듀얼은 플레이어당 한 번씩 카드 양도가 허용되는 룰이다.”
“···어차피 카드 교환해 봤자야. 나는 어둠 속성을 못 쓴다고.”
“받기나 하도록.”
진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죽게 된다면 저 빌어먹을 여자의 명치에 자신의 붕권을 먹여 주겠노라 다짐하며.
[카드 양도를 받았습니다.]“그 다음은 뭘···.”
말을 이어나가던 진슬아의 표정이 카드를 확인한 다음 일변했다. 자신이 받은 것은 분명히 어둠 속성의 카드였다.
그런데···그녀가 쥐고 있는 카드는 노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전화통화를 마친 나는 가지고 있는 카드들을 이리저리 짜맞췄다. 이 잠깐의 달콤한 휴식이 끝나고 나면 탑으로 가서 카드 강화나 해야지.
무슨 카드들을 위주로 강화할지도 이미 생각해 놨다. 고 코스트 카드들, 콤보 파츠 카드들, 애매한 효과나 비용 때문에 아깝게 묻힌 카드들을 위주로 제련할 것이다.
그렇게 무슨 카드들을 강화할지에 대한 목록과 어떤 덱을 짜는 게 좋을지를 찾아보고 있는데, 시레나가 뻐끔거렸다.
[전익현 거짓말쟁이.]“뭐가.”
[팀 플레이 듀얼. 이기적으로 하면 안 돼.]“이기적으로 하라는 게 완전히 틀린 조언은 아니야. 오히려 올바른 조언이지.”
팀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협동심’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상황일 때의 가정이다. 비슷한 테마의 덱을 비슷하게 굴리는 통상적인 팀플 상황에서의 이야기.
듀얼이라는 것은 극히 많은 예외사항이 있다. 언제나 협동심이 최고의 미덕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도 팀플 듀얼에서 개인의 덱이 어떤가, 플레이 스타일이 어떤가에 따라 팀플레이에서 본인이 맡아야 하는 롤이나 행동방향이 달라지게 된다.
가령···
“여한설의 덱은 「빛」, 혹은 「어둠」속성의 덱이야. 어느 쪽이건 아군의 자원을 빨아먹으면 빨아먹을수록 강한 덱이지.”
[그래서?]“그러니 되도 않는 팀 플레이를 맞춰주는 게 아니라 이기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옳아. 일종의 캐리 롤(Carry role)을 맡는 셈이지. 나머지 한 명이 서포터 역할을 해 주고.”
[시레나 어려워! 잘 모르겠어!]“대충 팀원의 등골 빨아먹는다고 보면 돼. 아군이 허리가 부러져라 필드, 묘지 자원을 쌓아 놓으면 그걸 꿀꺽 먹으면 된다. 이 말이야.”
저기 졸고 있는 스핑크스가 하는 것처럼. 나는 어항에 대고 소근거렸다.
[시레나 이해했어!]“그래. 똑똑하네.”
[전익현. 생각보다 훨씬 듀얼 잘 알아! 신기해! 신기해!]칭찬에 기분 나쁠 듀얼리스트는 세상에 없다. 시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데 어항 안이라서 불가능했다. 사람 손을 타는 게 물고기한테 그리 안 좋은 일이기도 하고.
용인 아재 말로는 열대어는 섬세한 생물이란다. 비싼 몸이니 조심스럽게 다뤄 줘야 한다고 하니 스핑크스처럼 막 대하지는 않도록 하자.
[익현 생긴 거랑 달라! 보기에는 멍청한데!]“···그래.”
나는 카드 고르는 것을 멈추고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발포 비타민을 검색했다. 되도록 물에 들어갔을 때 탄산이 센 걸로.
어디 쓰려는 건 아니다. 그냥 문득 생각나서 검색한 것 뿐이다.
끝
진슬아는 손에 들고 있는 「죽음으로부터의 귀환」을 바라봤다.
+
【죽음부터의 귀환】
【빛】
【8 mana】
【아군 묘지의 소환수 하나를 패로 가져옵니다. 그 카드가 죽기 전에 받았던 이로운 효과가 유지됩니다.】
+
효과가 바뀌었다. 5마나이던 코스트가 8마나로 늘어나기는 했지만, ‘이로운 효과가 유지’된다는 텍스트가 추가된 상황.
“카드 중 일부는 여러 가지 속성에서 사용될 수 있지. 다른 속성에서 사용되는 카드는 마나, 효과가 변경된다.”
“···이걸. 머릿속에 넣고 있었다고?”
보통의 듀얼리스트들은 자신의 덱 패턴과 특이성에서 나오는 상황만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그렇게만 해도 수없이 많은 가짓수가 나오는 것이 소울 커맨더스이기에.
자신의 덱에서는 나올 일 없는 ‘속성 변경’의 상황까지는 염두해 두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