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86
“제가 새로 받아온 글이 장.인님께서 작업하시는 데 방해될 것 같아서요.”
“악마같은 놈.”
“악마 덱은 지금 1티어 덱이니까 나쁘지 않네요.”
소울 커맨더스를 여기까지 끌고 오지 마란 말이다. 라며 몇 마디를 더 꿍얼거린 풀무불꽃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할 일 없네. 어디서 일감 안 떨어지나 싶을 지경이야. 내 망치가 제련을 하고 싶다며 매일같이 울부짖고 있다네. 무슨 카드를 강화하려고 왔나?”
나는 가져온 캐리어 두 개를 열어젖혔다. 캐리어 안에는 튜닝이 끝난 덱 30개와 범용 중립 카드, 범용 속성 카드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게 뭔가?”
“카드들인데요.”
“···이걸 다 강화하겠다는 말은 아니지?”
“할 건데요.”
“오랜만에 와서 모르는 모양인데, 카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소울」이 필요하다네. 아무리 할인을 받는다고 해도 자네가 그만한 소울을···.”
[강화할 카드 총계 : 1229매] [소비 소울 : 「빛 속성 소울 47720」, 「불 속성 소울 42277」, ···] [강화하시겠습니까?]“···가지고··· 있···군.”
풀무불꽃의 얼굴이 헬쑥해졌다.
“하실 작업이 많이 생겨서 좋으시겠네요.”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풀무불꽃의 망치가 내 머리로 날아들었다.
늘어난 작업에 광분하던 풀무불꽃이 정신을 차릴 때쯤부터, 나는 가져온 판자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게 뭔가?”
“매대인데요?”
“매대인 건 나도 보면 알아! 그걸 왜 내 작업실에 설치하고 있느냔 말일세!”
“팔 물건이 있어서요.”
“···팔 물건?”
풀무불꽃의 고개가 좌로 우로 까딱인다.
“카드들 말고는 아무 것도 안 들고오지 않았나?”
“그 카드 팔 건데요?”
“설마 내가 두드려 강화한 카드들을 팔겠다는 뜻은 아니지?”
“맞는데요?”
풀무불꽃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하나도 재미없는 농담을 들었다는 표정이다.
미안하지만 농담이 아니다.
내가 농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풀무불꽃이 주섬주섬 던졌던 망치를 주워들었다.
“모루와 망치의 신들이시여. 제가 오늘 살계殺戒를 열겠습니다.”
살계란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풀무불꽃의 난동이 진정되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더 걸렸다. 고작 망치질 하면서 무슨무슨 파천검이니, 매화검법이니 뭐니 하는 탓에 두 배로 정신이 사나웠다. 다음 번에 소설을 담아올 때에는 무협의 비율을 좀 줄여야겠다.
“이제 좀 진정이 되세요?”
“전혀 안 돼!”
“어쨌거나. 요 입구에서 카드 좀 팔아도 되죠?”
허락을 하건 말건 카드샵을 열겠다는 내 의지를 읽어냈는지, 풀무불꽃이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원시천존이시여···.”
대체 무협소설을 얼마나 재밌게 본 거야.
“그래. 내가 좋다고 하든 싫다고 하든 자네가 카드를 팔아댈 테니 그렇다고 치고, 카드는 누가 팔 건가? 자네가 계속 여기에 죽치고 앉아있을 것 같지는 않고.”
“풀무불꽃 님이 팔아야죠.”
“가아아알喝!”
더럽게 시끄럽다. 귀청 떨어질 뻔 했네.
“인센티브 드릴게요.”
“인센티브?”
“일종의 판매 수당 같은 거죠.”
“미리 말해 두지만 유령인 나에게 인세의 금전 따위는 소용이 없어. 이 몸! 네놈에게 착취당하는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지만 대장장이로써의 자존심까지 허락하지는 아니할 것이야!”
“카드 백 장 팔면, 책 한 권 드릴게요.”
“오십 장.”
대장장이의 영혼은 생각보다 싼 물건이었다.
나는 풀무불꽃의 응원을 들으며 매대를 차근차근 조립해 나갔다.
뭔가, 중요한 것을 까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착각일 것이다.
보통 중요한 것을 까먹고 있다는 느낌은 허상에 불과하니까.
***
“이렇게 생긴 사람. 카페에 온 적 없나요?”
“···없어요. 없다니까요.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에요.”
몇백 번째 똑같은 대답을 한 알바생이 헬쑥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산하던 ‘스타 카페’는 아카데미 학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 면접을 하겠다고 해 놓고 안 나타나는 건 뭐 하자는 거야?”
“혹시 까먹은 거 아니야?”
“전화도 안 되는데?”
카페 안의 분위기는 폭발 직전이었다. 여한설은 자리에 앉은 채 불쾌감을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제기랄. 이게 뭐 하자는 건지.”
그녀의 눈 앞에 남연철이 털썩 주저앉았다.
“이곳은 내 테이블이니 앉지 말도록.”
“하! 니가 이 테이블에 전세라도 냈냐?”
“아. 그 테이블은 전세석이니까 나와 주세요.”
남연철이 주춤거리며 일어나 옆에서 의자를 당겨와 앉았다.
그냥 동네 카페에서 전세석을 사다니. 이 여자도 정상인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뭘.”
“전익현이, 면접일을 까먹었을 리는 없잖아.”
“···그렇겠지.”
남연철과 여한설은 듀얼에 관계된 일에서 전익현이 보이는 기억력을 몇백 번이나 봐 왔다.
세 달 전의 듀얼로그까지 기억하는 인간이 면접일을 까먹는다는 것은 얼토당토없기 그지없는 소리인 것이다. 아예 면접이 듀얼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면 모를까.
“그렇다는 건, 강사님이 이 상황까지 모두 다 통제하고 있다고 봐야겠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신하연이 옆에서 한 마디를 거들었다.
이쪽 테이블에 기묘할 정도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 팔에 스카프를 찬 복면의 남자를 노려보며, 남연철은 생각에 잠겼다.
많은 지원자, 멘토, 면접, 나타나지 않는 전익현.
“···혹시?”
남연철은 컴퓨터를 꺼내 주변의 CCTV와 듀얼 필드를 확인했다.
CCTV의 갯수는 충분히 많았다. 여느 서울의 거리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듀얼 필드도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노려다보고 있는 이현일과 멀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권보람까지.
“···벌써 면접 시험은 시작된 거군.”
“···아마 그렇겠지.”
“변함없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여한설의 말이 끝난 순간, 장내에서 볼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난 가겠어! 이딴 취급 받으려고 밤을 새 가면서 신청한 게 아니라고!”
“맞아! 강사 놈이 면접일을 까먹은 게 분명해!”
몇 명의 이탈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란과는 달리 덤덤하게 자리를 지키는 학생들도 꽤 보인다.
덤덤한 학생들 대부분은 전익현의 「튜닝학 개론」을 들은 학생들이다.
하긴. 튜닝학 개론에서 있었던 두 번의 생지옥을 견뎌냈다면 겨우 이 정도 상황에 평상심이 흐트러질 리가 없다.
첫 이탈자가 발생한 지 삼십여 분이 더 지났는데도 ‘탈락자’는 이삼십 명 정도에 불과했다. 남은 사람들은 백오십명 정도.
여기서 며칠이 지나도 사람은 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일종의 평형 상태.
“꼴을 보아 하니, 집에 돌아갈 인간은 더 없는 모양이로군.”
평형상태를 가장 먼저 깬 것은 여한설이었다. 여한설은 오만하게 카페의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수백 명의 지원자, 네 명 밖에 되지 않는 정원수, 그리고 12시까지로 제한되어 있는 면접 시간.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합격자를 나눈다. 단 ‘한 번’의 듀얼으로.
“듀얼!”
“···듀얼이라고?”
상황 설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여한설은 빠르게 듀얼 룰을 설정했다.
키기기기긱! 카페의 문이 뒤집어지며 수십 개의 듀얼 필드가 거리 여기저기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개개의 듀얼 필드가 조립되자, 백 명에 가까운 듀얼리스트가 동시에 듀얼할 수 있는 미니 돔 형태의 듀얼 필드가 만들어졌다.
“룰은 프리 포 올! 공격 가능 대상은 좌-우 한정! 게임 종료는 생존자가 네 명 남을 때까지!”
백수십개의 듀얼 디스크가 모두 장착됐다.
“프리 포 올 모드?”
“···이 룰로, 해 본 사람 있어?”
잠깐의 소란이 일었지만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하드코어 듀얼리스트들이다. 프리 포 올 모드가 어떤 모드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프리 포 올 모드는 난투亂鬪 그 자체인 듀얼이다. 한 순 한 순마다 플레이어들간의 이합집산이 빠르게 일어나는 혼돈의 듀얼.
[덱 튜닝 시간 10분이 주어집니다.]“···이딴 룰을 강요하다니. 제정신은 아니군.”
남연철은 전익현을 향해 이를 갈았다.
프리 포 올 모드를 비롯한 난국은 기본적으로 ‘강한 듀얼리스트’ 에게 불리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강하면 강할수록 최우선적으로 공격당하기 때문이다.
프리 포 올 모드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살아남기 가장 좋은 듀얼리스트는 역설적으로 ‘약한 듀얼리스트’다.
누구보다 늦게 공격의 대상이 되기에 가장 힘을 비축하기 편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라는 것은 예외의 경우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압도적으로 강한 강자는 「프리 포 올」모드에서도 살아남는다.”
이 시험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법칙’이나 ‘상식’을 상회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시험하겠다는 말이군요.”
이현일은 카페의 의자에 앉아 전율했다. 사자는 새끼를 키우기 위해 벼랑끝에서 떨어트린다고 하던가.
자격이 있는 자라면, 이런 듀얼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데 총장님도 시험에 참여해 보시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방식의 듀얼이라면 제가 끼어들었을 때 게임의 균형이 크게 무너지니까요.”
이현일은 허허로이 웃었다.
권보람은 이현일이 자신만만하게 사이드 덱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지금 이현일의 덱이 프리 포 올 모드에 쥐약인 유지력이 부족한 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권보람은 지적하는 대신 입을 닫았다.
이걸 지적했다가는 이현일이 총장실 옷장에 박혀 삐진 채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때문이다.
끝
“상점 완성!”
“처참하구만.”
풀무불꽃의 근거 없는 비방을 무시한 채 나는 뿌듯하게 허리를 폈다. 누가 봐도 카드 판매 매대인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가판대다. 판넬이 15도정도 기울어져 있긴 하고, 다리 하나가 하늘을 향해 있다는 사소한 미스들이 있지만, 현대 예술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전위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을 가진 카드 매대라고 할 수 있다.
“진지하게 이 매대가 잘 만들어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아. 소름이.”
“저는 제 미학적 재능에 소름이 돋네요. 소름이.”
“자네가 미술학도가 됐다면 그림 대신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걸세.”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그게 아니라면 사기꾼이 되었던가.”
나만큼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는 매대에 올려놓을 카드들과 내가 강화된 뒤 받을 카드들을 분류했다.
“그래도, 자네가 카드들을 분배할 생각이 있어 보여서 다행이군. 강한 듀얼리스트가 많아지면 그만큼 심장도 무리가 갈 테니까.”
“심장이 무슨 관계죠?”
“···심장에 대해서 모르나? 이 탑의 제작자이자, 모든 증오의 총체일세.”
그러고보니까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필독요망 : 소커아 최종 보스에 관해]라는 메일을 받은 기억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듀얼할 필요도 없다기에 대충 읽고 지워버렸었는데.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으므로, 나는 대충 아는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놈은, 요새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