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87
“탑주로서의 힘이 거의 사라진 내가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근래 침식도가 많이 떨어졌지. 탑의 외부로 도플갱어를 보낸 모양이야.”
흐음. 이건 알고 있는 내용이다. 도플갱어를 탑 밖으로 내보내는 놈이 심장이라는 놈이었구만.
“도플갱어가 노리는 대상은요?”
“심장이 노리는 것은 언제나 탑을 공략하는 인간이지. 그 중에서도 특출난 성과를 내는 인간을 제거하려 들어.”
“누군진 몰라도 인생 힘들어지겠네요.”
풀무불꽃이 나를 실눈으로 노려다본다.
어. 방금 내 이야기였구나.
“근데 저는 딱히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 없는데요?”
내가 집에서 근래 느낀 위협이라고는 밥 달라고 아침마다 눈에 모닝펀치를 날리는 고양이, 책장 위에서 점프해 내 배 위에 착지하는 30kg짜리 금속 강아지, 잘때마다 눈코입에 물을 흩뿌려넣는 열대어뿐이다.
···생각해보니 생명의 위협이 넘쳐나고 있기는 하네. 혹시 얘들이 나를 암살하기 위해 보내진 도플갱어가 아닐까?
진지하게 암살 용의자 목록에 세 마리의 동물 친구들을 집어넣고 있는데, 풀무불꽃이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굳이 자네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노릴 수도 있지. 자네 입장에서 중요한 사람 없나?”
“딱히 없는데요.”
“그렇게 대답하는 인간일수록 중요한 사람이 많은 법이지.”
아니. 진짜 없다니까 이 양반아.
“정말 없다는 표정 지어 봐야 소용없네. 자네 주변에 심장의 마수가 뻗쳐오기 전에, 놈들을 처치할 방안을 강구해 봐야 할 걸세.”
하긴 생각해 보면 내가 특이성을 빌려쓸 수 있는 학생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그것만큼 큰 일은 없기는 하다. 당장 내가 내 수업에 걔들을 모아 놓으려는 것도···
모아 놓으려는 것도···
“아. 맞다.”
오늘, 면접일이었구나.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면접 신청자 엄청 많던데.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예정 시각보다 45분이나 늦었다. 아무리 빨리 스타 카페로 간다고 해도 1시간 30분 이상 늦는 것은 확정이다.
나는 두근거리려는 심장을 붙잡았다. 늦은 게 큰일이기는 하지만 그리 큰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불평불만이 좀 쌓이고, 내가 결제해야 할 커피값이 좀 불어나는 것 정도. 기본적으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지성인이다.
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
“돌격하는 개로 우측 플레이어를 직접 공격!”
“「소용돌이 폭풍」을 발동! 좌-우 필드에 각각 1데미지!”
“젠장! 내 필드가!”
“카드를 못 썼어!”
“끄아악!”
“불! 불이야! 소화기 가져와!”
신하연은 눈을 빠르게 돌렸다. 게임의 상황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프리 포 올 모드에서 모든 상황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허언증 걸린 인간이 가끔은 있다.
[죄다 외우는 건 안 되지. 하지만 필드 백몇개 정도쯤은 머릿속에 동시에 넣어 둘 수 있잖아. 다 카운팅을 하라는 것도 아냐. 게임이 진행되면서 살아남은 놈들 필드만 머릿속에서 꺼내서 다시 카운팅을 하면 돼. 뭐? 안 된다고? 거짓말이지?]택도 없는 소리를 지껄여대던 전익현의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채 신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봐야 할 필드가 많아. 그것도 너무나.’
그녀의 장기인 덱 카운팅(Deck counting)이 가능한 수는 최대 여섯 개. 그 중 하나는 자신의 덱을 카운팅해야 했으니 가능한 숫자는 다섯 개라고 봐야 했다.
문제는 어느 필드를 카운팅하느냐.
‘최우선적으로 봐야 하는 것은 좌, 우 필드.’
FFA(free for all)-인접 모드에서는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필드가 좌우로 한정된다.
즉, 좌우에 있는 듀얼리스트들의 덱은 반드시 카운팅해야 한다.
‘그 다음은···.’
정석적인 전략이라면 그 다음 칸에 있는 듀얼리스트의 덱을 카운팅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석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기에 상황은 너무 난잡했다.
그녀는 전체 필드를 바라봤다. 이 게임은 단판제다. 살아남는 듀얼리스트는 백여 명 가운데 네 명.
눈 앞만 봐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니··· 가장 강한 듀얼리스트를 본다.
여기에 있는 백여 명의 듀얼리스트 중 가장 강한 것은 누굴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여한설과, 남연철이다.
“기계 봇으로 직접 공격!”
콰드드득!
[플레이어 59번, 「이용준」이 패배했습니다.]남연철은 왼쪽의 플레이어를 최우선적으로 셧아웃시켰다. 수비를 굳히려는 「방밀」덱이 옆에서 살아남는다면 게임이 가면 갈수록 힘들어진다.
샌드백이나 다름없는 상대를 두드려팬 덕에 그녀의 필드는 꽤나 위협적이 됐다. 한 숨 돌렸다.
‘그것도 몇 턴 뿐이겠지만.’
그녀는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 룰에서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지금 그녀가 잡은 우세는 한 순간에 불과할 뿐이니까.
숨을 돌릴 수 있는 타이밍에 그녀는 자신을 노려보는 신하연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줄도 모르는 듯 그녀는 남연철의 플레이를 읽어내고 있었다.
신하연의 플레이에는 빈틈이 없었다. 필요한 만큼 자원을 소모하며, 미라클 덱의 콤보에 필요한 패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남연철은 뒷골목에서 FFA를 하는 듀얼리스트 무리들을 꽤 많이 봐 왔다.
‘끝까지 살아남겠네.’
저런 유형의 플레이어는 끝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콤보 덱인 「미라클」은 핸드가 많아지면 상대하기 까다롭다. 그녀의 주변에는 미라클을 카운터칠만한 덱이 없는 상황. 자칫 잘못하면 자신까지 휩쓸릴 수 있다. 남연철은 신하연 방향으로의 플레이어 수를 유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하연 말고는 누가 살아남으려나.’
FFA(free for all)모드에서 살아남는 방법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견 가장 좋아 보이는 생존법은 연합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룰에서의 공동전선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점이지만.’
“야! 도와 달라니까?”
“어떻게 도와 주냐? 네 상황은 네가 알아서 해야지!”
“공격하지 마! 연합하자고 했잖아!”
“연합은 무슨! 나 죽이려고 필드 짜고 있었던 주제에!”
“힐! 힐 카드 지원해 줘!”
“나 쓸 카드도 없어!”
연합전선은 서로의 전력을 합칠 수 있을 때에나 유효한 전략. 지금처럼 좌우의 필드만 사용할 수 있는 룰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전략이다.
연합을 선택한 군群이 내부로부터 빠르게 와해되어 나간다.
‘오히려 자신의 플레이를 유지하는 쪽이 생존률이 높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승리 패턴을 우직하게 구축하는 사람들. 생존률이 높다고 해 봤자 몇 퍼센트 정도다. 게임의 판세가 계속해서 바뀌는 상황에서 어지간한 덱의 완성도가 없으면 쉽게 휘말리기 마련이니까.
“「빛의 군세」와 「호크맨의 지원」을 발동.”
“어떻게 견제 좀 해 봐!”
“저걸 어떻게 견제해!”
“도망쳐!”
···물론, 여한설같이 덱의 밸류가 압도적이라면 다른 이야기지만. 보아하니 여한설도 이번 듀얼에서는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걸로 두 명.
남은 자리는 두 자리.
‘어그로 덱인 내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닌가.’
컨트롤 덱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FFA 룰에서 가장 상위 티어의 덱이다. 반면 어그로 덱은 반대다.
어그로 덱은 총 데미지량이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이런 FFA 모드에서는 가장 먼저 낙오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FFA는 계속해서 나오는 적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싸워야만 하기에, 덱의 마나커브와 특이성이 후반에 집중되어 있는 게 승리 확률이 높다.
「고철 로봇」덱은 후반을 지향하기 쉬운 덱이 아니다.
턴의 템포를 최대한 늦추고, 가능한 한 고레벨 카드들을 튜닝한 덕분에 아직까지는 살아남아 있지만···
‘오래 버티기는 힘들어.’
[남은 플레이어 수 : 87] [남은 플레이어 수 : 66]···
[남은 플레이어 수 : 47]턴이 진행되어 나가면 갈수록 한 명씩, 두 명씩, 패배한 듀얼리스트들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가장 빨리, 많이 늘어나는 것은 역시나 어그로 덱 유저들이다.
남연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존해 있는 어그로 덱 유저가 자신밖에 없다. 어그로 덱 중에는 1등이라. 누군가에겐 만족스러운 성적일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아니었다.
[당신의 턴입니다.]장내에 남은 유저들의 수는 절반 가량. 많이 줄었지만 그만큼 필드도 단단해졌다. 필드 뿐 아니라 핸드도 많이 확보되어 있는 플레이어가 대부분.
그녀는 자신의 핸드를 바라봤다. 템포를 계속 올린 덕분에 핸드에서 처리하지 못한「고철」카드 여덟 장. 그리고 「기사회생 고철봇」한 장.
+
【고철】
【1 mana】
【효과 없음】
+
+
【기사회생 고철봇】
【7 mana】
【기계 종족】
【소환 : 핸드의 「고철」카드만큼 +1/+1, 이 게임에서 더 이상 핸드의 「고철」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2/2】
+
마지막 순간을 위한 피니셔 카드로 넣어놓기는 했지만, 게임이 중반부라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쓸 수 없는 카드다.
패배 직전에 소환할 수는 있겠지만, 카운팅도 되지 않는 좌우의 플레이어에게 최우선적으로 저격당해 파괴될 것이 분명한 카드.
“···드로우.”
패를 뽑아든 남연철의 표정은 한 층 더 어두워졌다.
+
【투석로봇】
【소환 : 기계 하나를 희생합니다. 기계의 레벨만큼의 데미지를 대상 하나에게 줍니다. 핸드에 「고철」을 두 장 추가합니다.】
【0/1】
+
“망한 패네.”
아니, 망한 패는 아니다. 패는 꽤나 잘 풀렸다. 게임의 룰 자체가 자신에게 불리했던 것 뿐. 좀 더 고레벨 소환수들을 위주로 튜닝을 했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지만, 별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항복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항복하시겠습니까?]왜 이럴 때. 재수 없는 얼굴이 떠오르는 걸까.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 주저 없이 뛰어들고, 패배가 눈앞의 상황처럼 보이는데도 자신만만하게 웃고, 지독할 정도로 강한 듀얼리스트.
그 인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최소한···포기는 안 했겠지.”
“빨리 해!”
“패도 다 말라 놓고 왜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게임의 템포가 긴 탓일까, 중압감이 강한 탓일까. 불평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남연철은 패를 바라봤다. 여지없는 개패.
[턴 종료까지 15초 남았습니다.]사르르륵!
턴의 종료를 알리는 모래시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에, 남연철의 머리에 하나의 수가 떠올랐다.
어처구니없는 한 수, 정상인이라면, 뇌가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한 수.
하지만, 이길 가능성이 있는 단 하나의 수.
전익현이라면, 했을 것이 분명한 수. 하지만···
사르르륵!
주저하기에 시간이 없었다.
아니. 주저한다면 결코 하지 못할 플레이였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우자. 고민하는 순간 이 영감은 사라져 버릴 테니까.
고민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기 전에 그녀는 손패의 카드를 뽑아들었다.
장내에 거울이라고는 없지만, 그녀는 자신의 얼굴 표정을 알 수 있었다.
전익현이 이기기 직전에 짓는 그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끝
“나는 「기사회생 고철봇」을 소환!”
+
【기사회생 고철봇】
【7 m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