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89
탑에서 보낸 암살자라는 놈. 바로 이 놈이다.
확신을 가지자마자 오랜만에 떠오르는 미션 창.
[Main mission] [「탑」에서 보낸 도플갱어, 「장백호」를 인식하셨습니다.] [장백호를 처치할 것. (보상 : 카드팩(선택 가능))]랜덤 카드팩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카드팩이라.
놓칠 수가 없는 미션이다.
끝
죽을 것 같다. 어제도 죽을 것 같았지만 오늘은 더 죽을 것 같다. 개강한 지 닷새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죽을 것 같다.
수업 일곱 개라니. 총합 21학점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에도 하지 않은 숫자의 수업을 내가 왜 강사가 된 상황에서 해야 하는 건데?
“빌어먹을.”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스타 카페의 수리비와 교외에서 발생한 학생 치료비 전액을 아카데미에서 지불해 줬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지하방에서 원룸으로 이동한 내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수업마다 포인트가 많이 쌓이기는 하는데···.”
수업마다 이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들어오고, 학습태도도 매우 좋다. 잠깐 수업을 해도 천 단위로 포인트가 쌓이니 노났다고 봐도 나쁘지 않을 상황이지만···.
“소울 커맨더스 할 시간이 없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날 집으로 보내줘. 이 빌어먹을 세상아. 가면 갈수록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를 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매칭 퀄리티는 안 좋지, 매칭 시간은 많이 걸리지, 심지어는 불법이라서 잡히면 10년 이하의 유기징역이다.
이런 극한 상황에 내모는 게임의 이름이 어떻게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란 건지 나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쩌다 이런 극한 상황에 내몰린 걸까. 아카데미 생활에서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를 아무리 되돌아봐도 딱히 잘못한 게 없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성실하게 아카데미 수업을 한 것과 성실하게 탑 공략을 한 것밖에 없는데.
그러니 지금 내가 이렇게 많은 학점을 받게 된 것은 모조리 제작사의 음모인 것이다.
소울 사에 대한 정기 증오의 시간을 보내며 나는 ‘듀얼 연구실F’이라고 적힌 교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일주일 수업의 마지막이자, 가장 난관인 「튜터」시간이다.
“헛소리 하지 마!”
“너야말로 헛소리 마!”
“머저리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난장판이 나 있다. 비치되어 있던 견본 덱들은 엎질러져 있고, 책상 위는 카드로 난장판이 된 데다가 몇 번 듀얼을 벌인 듯 바닥 여기저기가 얼어붙고 부서져 있다.
듀얼을 몇 번 했는데도 싸워대고 있는 여한설, 신하연, 남연철의 몸은 비교적 멀쩡하다.
여기 설치된 듀얼 필드의 데미지 억제력이 사상 최대라고 하던 이현일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설명으로는 듀얼 필드 한 대에 항모 한 척 값이라고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농담이 심하다. 듀얼 필드 하나에 항모 한 척 값일 리가 없지 않은가.
“왜 싸우고 있는···근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냐?”
이 수업을 들어야 되는 사람은 네 명이다. 장백호가 모종의 이유로 첫 수업에는 불참한다고 했으니 싸워대고 있는 세 명이 전부여야 하는데.
한 명이 더 있다.
“안녕하세요?”
“넌 또 왜 여기 있냐?”
“그렇게 됐어요. 입학 성적이 별로 안 좋았나봐요. 이런 특별반에 오게 되다니. 듀얼근 수련을 더욱더 해야···.”
입학 성적이 안 좋은 거랑 여기 온 거랑 무슨 관계인데. 진슬아의 자신감 없는 대답을 들으며 나는 머리를 짚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깜짝 선물은 도착했나요?]라고 보내진 권보람의 문자가 도착해 있다.
그래. 셋이나 넷이나 크게 차이도 안 난다. 어차피 관계성을 올려야 하는 것은 정해져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그래서. 왜 싸우고 있는데?”
“싸우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팩트 폭행이에요!”
“팩트폭행은 무슨! 우겨대지 마!”
“머저리들.”
세 명의 두서없는 난잡한 설명이 뒤이어 이어졌다. 세 명이 싸움박질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무슨 아키타입의 덱이 가장 강한가.’
사실 누가 가장 강한가에 대한 논쟁은 손오공vs슈퍼맨으로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전쟁이다.
듀얼이 전부인 이 세계에서도 다르지는 않을 터. 내가 아카데미에 올 때까지만 해도 사실상 돈을 있는 대로 쓸 수 있는 컨트롤 타입의 덱이 강하다는 것이 기정사실이었지만, 지금은 좀 의견이 갈린다.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 가운데서 암암리에 ‘굳이 컨트롤 덱이 아니더라도 강한 덱은 많지 않은가?’라는 의견이 나오는 것 정도지만.
“컨트롤 덱이 강인, 무적, 최강이다.”
“저러다 테크 올리지도 못하고 명치가 뚫려 봐야 정신을 차리지.”
“변수를 상대하는 데 능한 콤보덱이야말로 진리야!”
컨트롤, 어그로, 콤보 덱 중 어떤 타입이 소울 커맨더스에서 가장 강한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주제는 여기가 아니라 원래의 소울 커맨더스 관련 게시판에서도 허구한 날 싸움박질이 나는 주제다.
“네가 진짜 강하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듀얼로 증명해라!”
“안 그래도 그럴 셈이었어!”
“덤벼!”
듀얼 필드가 솟구쳐 올랐다. 이번에는 남연철과 여한설인 모양이군.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의자들을 가지런히 모아 일렬로 배열했다.
“듀얼!!”
여러번 봐서 알겠지만 나는 그때그때 메타 따라, 상대에 따라, 혹은 유저들의 덱 분포에 따라 사용할 덱을 변경하는 편이다. 내 안에서 덱의 아키타입에 따른 강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강한 듀얼리스트와 약한 듀얼리스트가 있다. 이런 쪽일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줏대없는 박쥐고, 좋게 말하면 메타 적응력이 좋은 인간이지.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안 말려요?”
“내가 왜?”
싸움이 나면 구경하는 현명하고 똑똑한 인간이었다는 뜻이다. 나는 의자 위에 드러누워 오랜만의 듀얼 워리어짓을 구경할 최적의 자세를 찾기 시작했다.
***
“다 싸웠냐?”
의자에 널부러진 세 명을 보며 나는 물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말할 힘도 없는 모양이다.
“다 싸웠으면 이제 슬슬 첫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지.”
수업이라는 말에 죽은 듯 고꾸라져 있던 고개들이 올라온다. ‘이 상태로 수업을?’이라는 표정이 좌우를 돌아보고는 ‘나는 하루종일이라도 수업 들을 수 있어!’라는 허세 가득한 표정으로 바뀐다.
“사실 도제식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아. 실력이 어느 정도 이상 올라오면 덱의 운영의 많은 부분은 개인의 스타일이 되는 법이거든.”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내 눈 앞의 세 명은 아슬아슬하게 실력의 하한선을 충족한다. 아예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틀을 잡을 필요는 없는 수준이 된 듀얼리스트들.
진슬아의 플레이는 부족하지만 본래 다중 소울의 플레이는 워낙에 테크니컬하니 자신의 스타일을 빠르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수업의 대부분은 실기로 진행될 거다.”
“실기요?”
“그래. 수업의 평가를 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평가 따위는 없다.”
애초에 P/F(pass or fail)수업이기는 했지만. 애초에 네 명···이 아닌 다섯 명뿐인 수업에서 점수를 매기는 것이 의미가 없다.
게다가, 점수를 정량화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 철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강해지는 것이 목표라면 학점이나 평가 따위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평가나 학점은 타인이 매기는 것.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누군가가 평가를 매긴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 평가에 맞는 방식으로 스타일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냥 강사님이 평가하기 편해서 그러는 건 아니죠?”
“아니야. F받기 싫으면 조용히 하도록.”
신하연의 흑색선전을 타당하기 그지없는 논리로 제압한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자율적인 환경에서 듀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보장하는 것과, 해당 환경이 위험하다면 같이 동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복기를 도와주는 것 정도다.”
“···그냥 네가 편하자고 자율식으로 수업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여한설. 너도 F받기 싫으면 조용히 하도록.”
여한설이 나를 노려본다. 불평 가득한 표정이지만 학점에 목숨 거는 여한설인지라 내게 대들지는 못할 것이다.
“복기는 일종의 토론이 될 거다. 연구회라고도 할 수 있지. 옆에 있는 학우들이 각자의 연구 파트너라고 보면 된다. 너희가 이번 2학기에 다니게 될 몬스터 토벌, 탑 공략, 빌런 퇴치를 끝내고 나서 여기 오면 감평회를 한다.”
내가? 얘들이랑요? 라는 표정들이 네 명 전부에게 퍼진다. 내가 예상한 반응과 그리 다르지는 않네.
이 세상에 있는 듀얼리스트의 생리라는 것은 꽤나 독특한 면이 있다. 하나의 덱을 오롯이 쓰는 것 자체야 꽤나 많이 봤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덱의 스타일이나 속성에 따라 서로 간의 관계가 좋고 나쁨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양보할 이유는 없지. 너희들이 빠르게 커야 곧 있을 여러 이벤트에 대항할 수 있으니까.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냅니다. (point -250)]포인트가 조금 내려가는 것 정도는 예상했다. 어느 정도 떨어져도 전혀 상관없다. 벌어 놓은 포인트가 꽤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이런 방식이 실력을 올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봤을 때 포인트가 조금 깎이는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출혈인 것이다.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냅니다. (point -250)]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냅니다. (point -250)]···
아니. 그렇다고 계속 포인트 깎아먹으란 이야기는 아닌데. 포인트가 깎이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나는 쫄아붙은 가슴을 포커 페이스로 숨긴 다음 자신만만하게 교실문을 열어젖혔다.
“싫으면 여기서 드랍아웃해도 상관없다. 너희가 선택한 수업이다. 그러니 나가는 것도 자유다.”
나가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포인트 하락도 그제서야 멈췄다. 젠장,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4천포인트 정도가 빠졌다.
엄청난 출혈이다. 이 포인트 출혈은 스핑크스의 식비에서 제해서 충당하는 수밖에 없다.
“나갈 학생은 없어 보이는군. 좋아.”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장백호 없을 때 해도 되는 건가요?”
“아. 장백호 말인데, 걔한테는 최대한 가까히 가지 말도록.”
“왜지?”
왜긴. 걔가 도플갱어고 현 시점에서 최흉급 티어인 매지션 테크 덱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지.
당장 처리하기도 뭣한 게, 놈의 정체가 정확하게 뭔지도 파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원래 있지도 않을 캐릭터가 돌아다니는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내야 하기에 당장 처리할 수 없다. 놈의 존재 자체가 현재의 비정상적으로 빠른 사건 진행 템포와 무슨 관계인지도 알아내야 하니까.
물론 이 내용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다.
“···됐고, 장백호랑 있을 때에는 학생이건 교사건 합해서 최소한 세 명이 같이 동행할 것.”
“그러니까 왜요?”
“···그냥 그런 줄 알아.”
네 명의 눈이 가늘어진다. 뭔가 완벽한 변명거리를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려 했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질투하는 거에요?”
“그건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아니야.”
“그럼 왜 같이 다니지 마라는 거지?”
“그냥 느낌이 안 좋아.”
네 명의 표정을 보아하니 내 진심을 다한 조언이 전혀 들어먹히지 않은 모양이다.
끝
여한설은 방구석에 앉아서 전익현이 했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장백호와 같이 다니지 마라고 하는 말을 하는 전익현. 그의 얼굴은 농담이 아니라 진지해 보였다.
“뭣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걸까?”
“뭐가 말입니까.”
“이상하잖아. 콕 찝어서 누구를 조심하라고 하는 거.”
“그건 그렇습니다만 전익현 강사가 이상한 게 하루이틀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다. 광기 어린 이상함의 총체 같은 인간이 이상한 말을 한 마디 더 했다고 해서 더 이상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익현은 이상한 짓을 하지만 멍청이는 아니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기는 한데···듀얼 관련해서는 특별할 게 없었단 말이야.”
이지후에게 받은 장백호의 듀얼 로그를 찬찬히 분석해 봐도 크게 대단할 것은 없었다. 성적도 그리 특이할 게 없다. 중간 정도의 성적, 특이한 대외 활동 없음. 「매지션 덱」이라는 특이하기 그지없는 덱을 사용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학생이다.
“그런데 대체 왜 가까히 하지 마라는 거지?”
이지후는 여한설의 고민을 바라보며 조언을 해줄지 말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평소라면 조언에 학을 떼는 여한설이지만, 그 평소는 언제나 듀얼에 관한 것.
듀얼에 관계된 일이 아니라면 조언을 해도 크게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듀얼에 관한 일이 아닐지도요.”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이지후는 여한설의 가까히 있던 거울을 가져다 놨다.
그녀는 아카데미 내외에서 인기가 정말로 높다. 이 인기는 단순히 그녀가 가지고 있는 듀얼 실력이 높다는 것과, 청노두 그룹의 외손녀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대형 그룹의 외손녀가 아니라면 모델이나 배우를 했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외견이 그녀가 가진 인기의 주축이다. 소위 ‘얼빠’라는 외모를 보고 추종하는 팬층이 꽤나 높은 것이다.
본인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자각이 크게 있지는 않다. 듀얼은 듀얼일 뿐이고, 외모는 외모일 뿐이라는 투다. 외모를 무기로 쓸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래서 듀얼만 하는 사람은 안 된다는 거다.
“전익현의 나이는 강사 치고는 꽤나 젊은 편입니다. 아가씨와의 나이 차도 크게 나지 않지요.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나도 저 나이가 되기 전에는 저 정도로는 강해져야 한다?”
이지후는 눈 앞의 듀얼바보의 눈을 검지로 콕 쑤셔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참으며 말을 에둘렀다.
“젊은 나이대의 남자는 호르몬에 쉽게 휘둘리는 법이죠.”
“전익현이 과감성이 있는 듀얼을 하는 건 알지만 그걸 호르몬 탓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틀렸다. 이 여자, 학기가 시작해서 그런지 완전히 듀얼 모드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서포트를 해 주는 수밖에 없다.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아무튼 여한설과 장백호를 붙여 놓는 수밖에.
“···조금 특이하기는 한 상황입니다만. 장백호에게 전익현의 관심이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마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