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96
“······.”
[···시레나 갑자기 졸려.]눈치를 살피던 시레나가 동굴장식 안으로 들어간다.
[죽어어어어!]TV의 사망에 분노한 스핑크스가 어항을 엎지르고 또다시 싸움판이 벌어졌다. 나는 물바다가 된 바닥을 슬프게 바라봤다.
나는 어쩌다 이런 헬파이어 난이도의 세계에 떨어지고 만 것일까.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일까.
아무튼 시레나 너는 새 어항으로 이사가는 거 1주일간 보류다.
***
“자퇴서를 제출하고 오도록.”
여진성의 말은 완전한 통보였다. 여한설은 여진성을 노려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랬다가는 불호령이 다시 떨어질 것이기에.
그녀가 있는 곳은 자택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병실인 11병실이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러 나갔다 죽을 뻔한 직후에 여진성이 바로 그녀를 집 안에 감금한 것이다.
조부가 자신을 집 안에 가둔 이유는 그녀가 더 다칠까봐서나 아카데미의 치료시설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다. 지금 여진성의 노기가 보이는 것은 오로지 그녀가 어둠 속성의 카드를 썼기 때문이다.
여진성은 이지후를 뜯어먹을 듯이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집사라는 것은 집에 불법 기기를 들여놓고, 어둠 속성 카드들을 공수해 주고, 덱을 들고 다니는 걸 방조까지 하고 있고.”
“죄송합니다.”
“네년의 계약은 오늘까지다. 당장 나가라.”
여한설은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뭐라고 한단 말인가. 불법 기기를 들여놓은 것도, 카드를 사러 간 것도, 덱을 들고 다닌 것도 모조리 자신이라고?
그것을 여진성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가 이지후를 자르는 것은 다분히 위계를 보여주기 위함.
저항할 방법 따위는 없다.
긴 시간동안 그녀는 이곳에 감금당할 것이다. 아카데미에 준하는 교육을 받고, 듀얼을 배우고, 아마 강해질 것이다. 아카데미의 교사진들보다 훨씬 뛰어난 강사진을 구성하는 것은 청노두의 자금력으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그러고 나면 다시는 ‘경멸스러운’덱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는 일이기에.
여한설은 이지후를 바라봤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겨우 입을 떼서 두 글자를 뱉어냈을 뿐이다.
“잘 가.”
그게 끝이었다. 이지후는 담담하게 짐을 쌌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으나 각오하고 있는다고 해서 상처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라고 해 봤자 최대한 짐을 천천히 싸는 정도뿐이다. 그것마저도 짐이 거의 없었기에 별로 시간을 지연할 수 없었지만.
이지후는 그렇게 고용인, 아니, 전前고용인의 집을 나섰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몸을 으슬하게 만들었다.
‘뭘 하지.’
반평생을 넘게 고용인의 옆을 따라다녔다. 이지후의 거의 모든 일정과 행동은 여한설에게 맞춰져 있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자유인이 되면 뭘 할 지에 대해서 꽤 오랫동안 생각해 왔었다. 역시나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녀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여한설을 자유롭게 만드는 일이다.
“잘리고도 고용인을 위해서 일을 하다니. 이래서는 잘린 보람이 없잖아.”
그녀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여진성과 비슷할 정도의 듀얼리스트이면서도 청노두의 자본에도 굴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
그런 인간이 있기는 했다. 부탁하면 들어 주려나. 아마도 들어줄 것이다. 근거는 없지만.
이지후는 툴툴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끝
딩동.
물바다가 된 바닥을 닦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주문한 중국집 음식이 도착한 모양이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여한설의 옆에 항상 붙어다니던 집사인 이지후다.
왜 여기 있는 거지. 스토리대로라면 지금 집에서 열심히 여한설을 보좌하고 있어야 하는데.
“무슨 일이시죠?”
“상담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까. 여한설이 어둠 속성을 썼고, 그것 때문에 당신이 쫓겨났다는 이야기죠?”
“맞습니다.”
이런 스토리였던가. 솔직히 자동사냥으로 퀘스트 클리어를 해 놨던 나였던지라 정확한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그녀가 나를 찾아왔단 건 변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지.
이지후가 도와 달라고 왔지만 크게 내키지는 않는다. 가만 있어도 해결이 되는 퀘스트와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퀘스트를 해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기에.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수업이 너무 많다는 거다.
“죄송하지만 제가 수업이 많아서.”
“수업은 공강 처리해 준다고 이현일 총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일처리가 빠르시네요. 그보다. 제 집은 어떻게 찾아오신 거죠? 오늘 이사 했는데?”
이지후가 말 없이 소파 뒤에서 칩 하나를 꺼내든다. 뭐야 저거. 도대체 언제 설치한 거야. 그보다 저런 거 마음대로 설치해도 돼?
“안심하시길. 위치 추적 기능만 있지 녹음, 녹화 기능은 없으니까요.”
“다른 칩은 없죠?”
“없다고 해 두겠습니다.”
“신고해도 되나요?”
“해 보시길.”
이지후가 할 테면 해 보라는 미소를 얼굴에 그린다.
···최대한 빨리 전파 탐지기 하나 장만해야겠다. 그보다 공강 처리라. 자체휴강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는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크게 구미가 당기는 일은 아니다.
“제가 거절하면요?”
“매일같이 집 앞에 서 있을 겁니다.”
“요새 날이 쌀쌀한데요.”
“그럴 줄 알고 주변에 거점을 확보해 놨습니다.”
이지후가 창문 밖에 있는 커다란 아파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커다란 크기에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 아파트다.
“저기 들어가신 거에요?”
“퇴직금까지 모아 전세로 들어갔습니다. 구매하기엔 많이 비싸더군요.”
“······.”
“전익현 씨를 감시하기 위해 망원경도 구매해 놨습니다.”
이거 완전 스토커잖아. 스토커에게 들키지 않고 경찰서에 전화를 할 방법을 모색하려는 찰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섬전처럼 스쳤다.
나는 신축 아파트의 창문을 바라봤다. 커다란 거실이 있고, 화장실도 두 개고, 전망도 좋아 보이고, 방도 여러 개다.
“이번 사건이 처리가 잘 되면 저 집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마 비게 될 겁니다. 2년짜리 전세 계약을 했으니까요.”
뭔 벌써 계약을 했대. 밀어붙이는 속도가 불도저다.
“방이 비면 제가 써도 되나요? 저렴하게.”
“전세 이중계약은 안 됩니다.”
“그런가요. 아쉽게 됐네요.”
“그러니 돈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무료로 쓰게 해 드릴 수는 있지만.”
“···이번 임무. 목숨을 걸고 완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짜 집은 못 참지.
***
여진철은 의자에 몸을 밀어넣었다. 안 그래도 생각해야 할 거리가 많은 상황이었다. 여한설이 아카데미에 얼마나 다니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 그는 알고 있었다.
여한설이 단순히 듀얼리스트들을 상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지원을 얼마든지 할 용의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탑」과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과, 어둠 속성의 카드들을 쓴다는 것이 밝혀진 시점에서 그녀의 손녀가 아카데미를 계속 다니도록 할 수는 없었다.
“감시 상황은?”
“제대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의 교수진들이 못 오도록 감시하도록.”
“이미 블랙리스트 목록에 추가해 뒀습니다.”
집사의 말을 들으며 여진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편집증적으로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들을 모았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해 봤자 완전히 믿을 수 없지만.
‘그나마 가장 믿을 만한 인간들이라면 고르디우스의 ‘제왕’과 아카데미 최상층의 인간들뿐인가.’
심지어는 그것마저도 100%는 아니다. 강자라면 「탑」의 인간이 되었을 가능성이 낮을 뿐이니까.
그들을 믿는다고 해도 음모론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추측을 말할 수도 없다. 세계가 종말할 수 있다는 것쯤이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일. 그러나 그가 생각하고 있는 추측은 그런 종말론과 비추어봐도 아득하게 기묘한 것이었다.
정신병자의 망상이나 다름없는 추측을 누군가에 내뱉기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컸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다리는 것 뿐. 이 세계의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혹은 세계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제로에 한없이 가깝겠지.’
닫혀 있는 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화는 한정적이다. 영화속의 인물들은 아무리 영화를 되돌려봐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 결과가 확실시되는 세계를 뒤틀기 위해서는 외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자유의지는 우스운 말이다. 의지는 연약하기 그지없다. 의지만으로 해일을 막아낼 수는 법이기에.
그럼에도 여진철은 종말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세계에서 무슨 비난을 듣든 간에. 약속을 지켜야만 했으니까.
한설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며늘아이의 유언.
그러겠노라 며늘아이에게 해 준 약속을 여진철은 떠올렸다. 행복이라는 것은 살아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탑」을 공략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 죽을 것이 분명한 일을 손녀가 하도록 놔둘 수는 없다.
죽어야 한다면 다른 이들이 죽도록 하는 게 낫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악인을, 그리고 못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만약 세계가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면 여한설이 가장 마지막에 죽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그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제대로 감시하도록. 물 샐 틈 없이.”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버지의 소재는 확인됐나?”
“정확한 소재가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끄응. 여진철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탓에 며칠 단위로 행방이 묘연해지고는 하는 여진철의 아버지다.
감시원들을 몇 명 붙여 놨더니 죄다 듀얼로 초살을 내 버린 다음 사라져 버렸다.
“수색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알겠습니다.”
위아래로 말썽이 지나치다. 여진철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의자에 더 몸을 파묻었다.
***
끼이익.
나는 듀얼 바이크를 타고 여한설의 집 앞에 도착했다.
[도착하셨습니까?]“도착했습니다.”
헤드셋 너머로 이지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잘린 이지후가 집에 들어가려고 하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컸기에 나 혼자만 저택에 온 것이다.
지금 내 앞에는 으리으리한 크기의 문이 눈 앞에 있었다. 역시 부자는 다르긴 다르다. 무슨 집채만한 문을 달아놨대.
[거기가 17번 문입니다.]“17번 문이라니.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이런 크기의 문이 최소 16개는 더 있다는 뜻이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누군 평생 일해도 집 하나 못 사는데 누구는 집보다 더 큰 문을 17개나 가지고 있고. 프롤레타리아 혁명 마렵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경호반에 음식 배달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카데미 관련자들은 들어갈 수 없도록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어떡하죠.” 나는 소근거리며 말했다. [···문제가 생기면 듀얼로 지나갈 수밖에요.] 말도 안 되는 답변이 돌아온다. 여한설 옆에 붙어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경비원이 내 얼굴을 묘한 기계를 써 스캔한다.
“확인 완료 되었습니다.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네?”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왜?
“아카데미 관련자들은 못 지나가지 않나요?”
“맞습니다. 총장, 학장을 비롯해 테뉴어, 조교수, 정교수 등의 교수진과 대학원생, 아카데미 생도까지. 누구도 통과시키지 않도록 데이터가 내려왔습니다.”
“시간강사는 사람도 아닙니까?”
“네?”
“아무 말 안했습니다.”
젠장. 일이 간단하게 풀렸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대학원생도 등록되어 있는데 시간강사는 비포함이라는게 말이냐?
당장 뒤집어엎고 싶지만 참는다.
다행히 덱은 반입이 가능했다. 이 세계에서 덱은 시민권과 같은 것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의외로 쉽게 들여보내 주네요.”
[뭐, 하루에 오가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당연한 일이겠죠.]“에이. 그래봤자 집인데 얼마나 사람이 많이···.”
말을 이어나가던 나는 말을 멈췄다. 집이 아니라 평야가 펼쳐져 있다. 산도 몇 개 보이고, 평야 너머로는 지평선과 수평선이 동시에 보인다. 이게 말이냐. 내가 지금 집에 들어온 거 맞지?
[문 바로 옆에 있는 18번 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할 겁니다.]“집 안에 버스가 있어요?”
[세금이 아닌 가문의 돈으로 운행되는 버스이니 걱정 마시길. 버스를 타시기 전에 ‘대동여지도’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셔야 길을 찾기 편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