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98
“여진철의 덱 리스트 보내줄 수 있습니까?”
여진철과 듀얼해 본 경험이 나에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매우 초창기 시절에 몇 번 해 본 것이 다였는데, 그 때의 테마는 데모 버전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덱 리스트가 바뀌었을 것이다.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덱 리스트를 보내 달라는 건···.]“줘 패겠다는 뜻이죠.”
[···그리 듣기 좋은 말은 아니군요.]“아무렴! 싸가지 없는 놈은 줘 패야지!”
할아버지의 호응에 이지후가 입을 다물었다.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인데.’ 라는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할아버지들 목소리가 그게 그거지. 어딘가에서 들어 봤다는 생각은 아마 착각일 터다.
[여진철의 덱 리스트 다운로드 중···.] [다운로드 완료.]+
덱 리스트
천군의 심판☆
위스프 x2
방어막 쓴 꼬마로봇 x2
···
+
+
[여진철의 특이성 : 하늘에서 내려오는 축복]+
천군의 심판 덱. 매우 강력한 덱은 아니지만 그의 특이성인 ‘하늘에서 내려오는 축복’과 연계되면 상대하기 심각하게 껄끄러운 덱이 된다.
여진철의 ‘진짜 덱’이 아니라는 점은 꽤 위안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까다롭다. 아무리 나라도 특수승리 덱을 상대로는 무조건 이긴다고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특수 승리 조건 덱이니만큼 진다고 해도 크게 패널티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화살표가 왜 안 움직이지? 나는 커다란 화살표가 떠 있는 곳을 바라봤다. 화살표는 지상의 방향이 아니라 하늘으로 향해 있었다.
타다다다다!
하늘에 떠 있는 한 대의 비행기. 그리고 그 비행기에서 낙하하는 수많은 특수요원들.
보아하니 이 특수요원들을 다 처리해야만 여진철과 듀얼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못해도 십수 명은 되어 보인다. 데미지 누적을 허용하면 여진철을 상대하기 쉽지 않은데 귀찮게 됐···
“듀얼!”
카가가각! 듀얼 필드가 비행기에서 떨어져 내린다. 듀얼을 선언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내 뒤에 타고 있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왜?”
“할아버지가 왜 듀얼을 시작해요?”
“저 자식들이 싸가지 없게 햇빛을 가리잖아!”
“그게 이유입니까?”
“싹퉁바리없게 어른 위에서 돌아다니고 말이야! 내 때는 어른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됐어! 하여튼 요즘 것들은!”
할아버지의 얼굴은 화내는 것보다는 즐거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긴, 새 덱 튜닝이 끝났는데 얼른 써 보고 싶을만도 하지. 나도 확장팩이 나오면 언제나 스파링 파트너를 잡고 사흘이고 나흘이고 듀얼을 했으니까.
“···하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교대해 드릴게요.”
“일 없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다.
[듀얼 스타트!] [퀘스트 카드가 발동합니다!] [퀘스트 「빛의 시대」 : 같은 소환수 카드를 네 번 패에서 내야 합니다.]뭐, 「빛의 시대」덱이라면 웬간해서는 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생겨난 듀얼필드 뒤로 넘어가 앉았다.
끝
[「빛의 시대」 : 같은 소환수 카드를 네 번 패에서 내야 합니다.]퀘스트 카드는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패에서 발동하는 형식의 발동형 퀘스트와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즉시 발동하는 개전형 퀘스트.
개전형 퀘스트 카드의 경우에는 덱에 한 장밖에 넣을 수 없다. 처음 개전형 퀘스트 카드가 만들어졌을 때에는 매수 제한, 속성 제한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똑똑하고 게임을 잘하는 익명의 듀얼리스트가 개전형 퀘스트들을 덱에 모조리 집어넣고 덱 압축을 해서 지역대회를 우승해 버렸다.
내가 생각해낸 사용법이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굿 아이디어였다.
아무튼 그 이후부터는 ‘개전형 퀘스트는 해당 속성을 사용하는 덱이 아니면 발동하지 않습니다.’ 라는 룰과 ‘개전형 퀘스트는 덱에 한 장 까지만’이라는 조건이 생겼지. 그러고도 계속해서 덱 압축 때문을 위해 개전형 카드를 쓰자 덱의 매수에도 포함되지 않도록 룰 개정이 됐고.
내가 얼마 전에 보상으로 받았던 「마스터즈 콜렉션 VII」은 이 룰 개정이 있고 난 다음에 룰 개정을 홍보하고 퀘스트 카드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재고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이벤트 부스터 팩이다.
부스터 팩이라고 하지만 팩의 가격은 평균 카드팩의 열 배 가량. 게다가 랜덤한 카드가 아니라 7속성 퀘스트 카드들이 모조리 들어 있는 식으로 발매가 됐지. 카드팩의 가격이 비쌌는데도 역대급 퍼 주는 카드팩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사실 이것만으로는 「퀘스트 덱 압축질」의 악랄함으로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에는 무리기는 했다. 소울 사는 이후에 대회 상금총액을 증액하고, 동호회 규모의 소형 대회들도 많이 열어주는 등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서 반 년 가량을 소모해야만 했었다.
주가도 꽤 폭락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충 십 퍼센트대의 주가 하락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내 잘못은 아니다. 룰을 쓰는 사람은 문제가 없다. 룰을 악용하는 듀얼리스트가 있다면 룰을 만든 회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룰을 악용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나도 ‘이딴 식으로 듀얼하는 새끼는 대회 못 나오게 하면 안 되냐?’ 같은 악플을 받았으니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드로우!”
오. 듀얼 시작했네. 할아버지가 당당하게 카드를 뽑아들었다.
“···같은 소환수 카드를 네 번 소환해야 한다고?”
“비효율적인 것 같은 카드인데요.”
“도대체 왜 저런 카드를···.”
주변에서 두런두런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다.
확실히 처음 「빛의 시대」가 나왔을 때에는 너도나도 비슷한 평가를 했었지. 처음 몇 판 당하고서도 저평가하는 사람도 있었고.
하지만 몇 번 당해 보면 그런 말 안 나올 걸. 「빛의 시대」카드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거든. 이 장점들은 직접 맞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장점들이다.
“나는 「위스프」를 소환!”
+
【위스프】
【1 mana】
【피해를 줄 때 1마나를 얻습니다】
【1/2】
+
띠링! 소리와 함께 퀘스트 게이지가 올라간다.
장점 하나. 「빛의 시대」는 특정한 카드가 아니라 어떤 카드건 간에 네 번 소환을 하면 퀘스트가 완료되는 형식이라는 점.
특정한 카드를 써야 한다거나, 「흡혈」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거나 하는 귀찮은 조건이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 종류의 카드를 네 번 소환하면 끝이라는 점.
“턴 엔드!”
“저는 밀물 썰물을 사용하고 턴을 종료하겠습니다.”
소환된 위스프가 특수부대원의 「밀물 썰물」에 의해서 파괴된다.
“이 싸가지없는 놈이! 위스프 하나 잡는데 마법을 쓰겠다고?”
“아니···그···.”
할아버지가 방방 뛰면서 화를 낸다. 보아하니 「위스프」의 빌드업을 통해서 퀘스트를 단번에 진행할 수 있었나 보다.
듀얼 매너 하고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건 덱 지식이 아니라 듀얼 매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그보다 노인공경이 확실한 특수부대원들이네. 노인네 하나 방방 뛰는데도 제지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걸 보면.
“···턴 엔드입니다.”
“내 턴! 「생환」을 발동!”
할아버지는 샐비지 효과가 있는 「생환」카드를 사용해 위스프를 다시 핸드로 가져왔다. 「빛의 시대」의 두 번째 장점은 빛 속성이 묘지의 카드를 다시 핸드로 가져오는 샐비지 효과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른 속성이었다면 핸드로 필드의 소환수를 다시 가져오는 바운스들을 주력으로 덱을 구성해야 했겠지만 빛 속성은 바운스와 샐비지, 두 가지 카드들을 통해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이거지.
“다시 위스프를 소환!”
띠링! 두 번째 게이지가 올라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운스. 세 번은 확정이군.
“퀘스트 깨는 속도가···!”
“패가 너무 잘 풀렸는데?”
미안하지만 저게 정속도다. 바운스, 리쿠르트 카드들과 1마나 소환수들을 우겨넣어서 어떻게든 퀘스트를 깨는 데 집중하도록 덱을 짜 뒀기 때문이지.
「빛의 시대」의 평균 퀘스트 완료 턴 수는 5턴에서 6턴. 할아버지는 6턴째에 「빛의 시대」를 완료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퀘스트 카드는 퀘스트 카드와 쌍이 되는 보상 카드가 존재한다. 달성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보상의 크기도 커진다. 「빛의 시대」의 보상 카드는 「빛의 길」. 소위 ‘샤이닝 로드’라고 불리는 카드다.
+
【빛의 길】
【mana : 6】
【이 게임에서, 내 모든 소환수들의 기본 공/체는 5/5로 고정됩니다.】
+
솨아아아! 천공에서 내려온 빛줄기가 필드를 휩쓸어내렸다. 주변에 있던 모든 자들의 눈을 가릴 정도로 맹렬한 빛줄기는 할아버지의 필드에 있는 모든 하수인들의 몸에 깃들어나갔다.
“···생각보다 소소한 효과군요.”
“그래. 5/5라면 그다지 높은 공체도 아니고.”
“저런 전용 덱을 짜는 것 치고는 보상이 너무 짜죠.”
주변의 분위기는 평범하다. 뭐, 저 덱을 처음 본다면야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겠지. 그 다음 턴, 특수부대원의 플레이.
“저는···물의 침묵을 발동해 필드 전체를 침묵시키겠습니다.”
+
【물의 침묵】
【3 mana】
【필드의 소환수 전체를 침묵시킵니다. 침묵시킨 소환수만큼 마나를 환급받습니다】
+
사아아아! 조용하기 그지없는, 하지만 맹렬한 물줄기가 필드에 깃들었다 내려갔다. 물의 침묵이라. 이걸로 게임 끝났네.
물줄기가 쓸려내려가고 난 뒤, 부대원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었다.
“?”
그럴만도 하다. 필드에 깔려 있던 할아버지의 소환수들의 능력치가 그대로였으니까.
“왜···효과가 발동이 안 되지?”
“「빛의 길」효과는 지속물 효과이기 때문이지.”
넌 누구야? 라는 표정이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 스쳐지나간다. 괜히 설명 시작했나. 그래도 기왕 말 한 거 끝맺음은 맺어야겠지.
“지속물 효과는 일시적 효과로 인해 지워지더라도 다시 효과를 발휘하지.”
즉 일반적인 침묵 효과로는 지속 효과인 빛의 길의 효과를 지워낼 수 없다는 뜻이다.
“전군! 돌겨억!”
“크···으윽!”
주춤거리던 특수부대원이 명치에 구멍날 정도로 얻어맞고 나가떨어진다. 전군 돌격이라니. 공격 대사 너무 올드하잖아. 기왕 공격 대사를 넣을 거면 「죠나우치 파이어」같은 멋들어진 이름을 쓰는 게 좋은데.
“덱 어때요?”
“좋아! 아주 좋아! 저 싸가지없는 놈들을 혼구녕을 내 줄 수 있겠어!”
“더 할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덱을 슬롯에 다시 박아넣었다. 음. 데미지를 좀 입어서 어떨까 했는데 괜찮은가 보네. 할아버지는 「빛의 시대」덱을 사용해 주변의 인간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전멸기에 맞아서 쓰러지는 토큰 카드들처럼 순식간에 부대원들이 나가떨어졌다. 그도 그럴만 한 게, 빛의 시대 덱은 원턴킬, 위니덱, 미드레인지 덱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공방 밸런스가 완벽한 덱 중 하나거든.
덱을 굴리는 할아버지의 실력이 깜짝 놀랄 만큼 괜찮기도 하고. 난이도가 낮지는 않은 덱인데 잘도 굴리네.
“크윽··· 어떻게 세상에 저런 덱이···!”
“말도 안 돼···.”
“세계는 저 덱에 멸망하고 마는 것인가···!”
오바하기는. 「빛의 시대」가 매우 강력한 덱이기는 하지만 최강의 덱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매우 강해 보인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기덱은 많다는 말을 해 두고 싶다. 초창기 시대라면 소울 사 사옥에 화염병이 투척되어도 이상할 거 없는 덱이기는 하다. 하지만 「빛의 시대」가 나왔을 당시는 듀얼 환경이 미쳐 돌아가는 중반기 시즌 이후.
저 정도 사기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 시즌이었다는 말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할아버지한테 「빛의 시대」를 막 줬을 리가 없잖아.
“···졌습···.”
“먹어라! 전군 돌격!”
그 와중에 할아버지는 마지막 부대원을 항복선언을 듣지도 않고 날려 버린다. 듀얼 매너는 여전히 없구만. 앞으로 저 할아버지 주변에 있게 될 인간들이 벌써부터 불쌍해지기 시작한다.
“더 없어? 더 없냐고!”
할아버지의 눈이 반쯤 돌아가 있다. 좋은 덱을 처음 시험하면 나오는 평범한 반응이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나는 훈훈하게 「빛의 시대」덱 뉴비의 평범한 반응을 바라봤다. 새로운 뉴비는 언제나 환영이다.
“···이 정도로까지 난장판을 만들어 놓다니.”
하늘에서부터 드론을 타고 노년의 남자가 내려왔다. 여진성이다.
“넌 뭔데 하늘을 날아다녀?”
여진성이 할아버지를 보고 푸욱. 한숨을 내쉰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여진성이 듀얼 필드에 올라선다. 잘 된 일일지도. 빛의 시대 덱은 여진성의 덱의 카운터라고 할 수 있는 덱이니까. 여진성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승산은 반반 정도겠지만 그 정도라면 충분히···.
“아이고. 힘들어라. 더는 듀얼 못 하겠네.”
할아버지가 허리를 두드리더니 듀얼 필드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