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2
12화
탈출.
지금 진우로서는 오직 그 방법밖에 없는 듯싶었다. 아버지가 재차 부엌칼을 휘두르자 그 틈으로 몸을 빼, 현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이 공간에 들어온 이후 곁에서 사라졌던 어머니가 모습을 보였다.
[도망쳐 진우야. 일계산으로 가. 그곳에서 인신 선생님을 찾아. 그곳이라면.. 네가 안전할 수 있을 거야.]어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아버지의 악다구니.
“너는 살겠지. 하지만 네 아비는 죽는다. 결정해라. 오늘 끝을 보자.”
[그만해, 왜 내 아들에게 그러는 거지?]“어리석은 년, 네 아들의 몸뚱이가 어떤 몸뚱이인지 모르진 않을 텐데?”
[그냥 평범하게 살게 해줘. 제발..]“그럼 네 남편이 죽는 거지. 병에 골았지만, 이 몸도 그럭저럭 쓸 만하니.. 후후. 오진우! 조만간 다시 찾아오마. 그땐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가 부엌칼을 바닥에 내리꽂더니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진우의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엄마, 아버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진우야, 네 아버지는 이 엄마가 찾을게. 그러니까..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이곳을 떠나.]“그 인산 선생님을 만나면 아버지를 구할 힘을 얻을 수 있는 거예요?”
어머니의 슬픈 눈이 진우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내일, 꼭 내일 떠나도록 해.]어머니가 사라졌다. 진우는 방바닥 한가운데 꽂혀 있는 부엌칼을 보며 몸서리를 쳐야 했다.
**
“오빠?”
아영의 부름에 덕팔이 오랜 상념에서 깨어났다.
“응?”
“그날 말이야.”
“언제?”
“오빠가 동네를 떠나던 날.”
“응..”
“가던 길이었지?”
“….응”
“내가 오빠를 찾아가지 않았으면 인사도 없이 그냥 그렇게… 맞지?”
“그땐…”
“오빠가 떠나고 오빠 집에 가봤어. 주인집 아줌마가 난리를 치고 있더라고. 방바닥 한가운데 부엌칼이 꽂혀있고 집은 엉망이 되어 있고… 보증금은 절대로 못 돌려준다고 악다구니를 쓰시는데 그 와중에도 알 수 있었어.
오빠가 위험 속에서 도망을 쳤다는 거. 그래서 원망하지 않았어. 그렇게 오빠가 간 거. 혹여 나한테 인사도 없이 그냥 갔다고 해도 원망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정말 위험해 보였거든.”
“그랬구나.”
“검사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공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한 게.. 오빠를 찾는 일이었어. 웃기지?”
아영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덕팔도 같이 웃어주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오빠가 없었던 10년 내내 오빠만 생각하며 살진 않았어. 그 망할 처녀 귀신들이 방해하는 바람에…”
“후후.. 그랬구나.”
“웃지 마!! 난 진짜 심각했다고! 그래서 오빠를 찾기로 했지. 오빠라면 어쩌면..”
“꿩 대신 닭이었군.”
“닭 대신 봉황이었지.”
“말은 잘해요.”
“아무튼, 공권력을 동원했음에도 오빠를 못 찾았어. 정말 열 받아서.. 어휴.. 그날, 검사가 된 이유가 사라져 버렸어.”
“날 찾으려고 검사가 됐다고? 그 거짓말 믿어도 되는 거야?”
“그건 사실이야. 방법이 없었으니까.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흥신소에 맡기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하더라고… 한 일 년쯤 걸렸을 거야. 오빠 주소를 보내 줬는데.. 무슨 산 몇 번지라고 되어 있더라고?”
“나 그 오두막으로 전입신고를 해 놓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차라리 전입신고를 해놨으면 얼마나 편했겠어. 하여간 오빠가 있었던 그 오두막 주소가 산 몇 번지였는데.. 얼마나 넓은지 알아?”
“글쎄?”
“2헥타르.. 1헥타르가 1만 제곱미터니까… 2핵타르면 2만제곱미터 그러니까.. 20제곱키로미터인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
“주소를 알아도 못 찾는다는 말이잖아?”
“정답! 그래서 군부대에 요청했어. 정밀 항공사진이 필요하다고!!”
“너.. 은근 집요하구나.”
“내 인생이 걸려있는 문젠데.. 그 정도쯤이야.”
“날 찾으면 내가 너랑 결혼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응”
“왜?”
“내가 이쁘잖아.”
덕팔이 무표정한 얼굴로 아영을 바라보자 아영이 덕팔의 옆구리를 찔렀다.
“운전 똑바로 해!”
“이제 손각시도 없는데 생각이 바뀌지 않아?”
“응, 점점 더 그런 확신이 들어. 많은 악귀 중 처녀 귀신이 내게 붙은 이유는 오빠를 만날 때까지 오빠만 기다리라는 하늘의 뜻이었다는 걸!”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듯싶은데?”
“그걸 운명이라고 하는 거야.”
“남자는 질척거리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괜찮아. 나는 이쁘니까!!”
“… 졌다.”
덕팔과 아영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덕팔의 픽업은 아영의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다.
“마트는 안 가는 거야?”
“시간도 늦었고, 내일 아침 식사 거리는 있으니까 너 출근한 다음에 나 혼자 장을 봐 올게.”
“호텔엔 안 가고?”
“응, 필요한 것은 다 준비되었으니까 당분간은 집에 있을 생각이야.”
“홍홍.. 알았어. 내일은 일찍 집에 와야겠다.”
아영이 기분이 좋은지 콧바람을 날리며 차에서 내렸다. 그때,
띠리리링..
덕팔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덕팔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설마…”
[주소는 문자로 남겨 놓을게요.]은혜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상황이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덕팔이 아영을 바라보았다.
“미안한데, 너 먼저 집에 가 있어야겠다.”
“왜?”
“최은혜씨에게 전화가 왔어. 악귀를 보고 있나 봐.”
“그때.. 그?”
“응, 이상한 신안을 가진 여자.”
“얼른 가봐,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아영이 함께 가자, 안 가면 안 되냐 등등 덕팔의 발목을 잡을 거라 예상했지만 아영은 쿨하게 덕팔을 보내주었다.
“먼저 자.”
“알았어.”
아영이 손까지 흔들어주며 덕팔에게 빨리 갈 것을 재촉하였다. 덕팔의 차가 급히 주차장을 빠져나가자 아영이 핸드백을 열고 그 안을 뒤적였다.
“여깄다.”
아영이 자신의 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덕팔의 네비게이션에 찍힌 은혜의 위치는 도로 한복판이었다. 그것을 보자니 덕팔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던 지박령을 찾아간 모양이군.”
어쩌면 길 한복판에 누워있는 지박령이었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은혜의 큰 착각이었다.
“지박령의 무서움을 모르는 아가씨로군.”
덕팔의 오른발에 힘이 들어갔다. 20여 분을 달려 한적한 4차선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운 덕팔이 한숨을 내쉬었다.
낯설지 않은 얼굴을 가진 여인이 마치 부상을 당한 듯 도로 한복판에 누워 바닥을 기고 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덕팔이 트렁크 문을 열더니 이런저런 물건을 꺼낸 후, 바닥을 기고 있는 은혜 앞으로 다가왔다.
몸은 빼앗겼지만, 정신만은 그대로 인지 은혜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박령이라고 쉽게 본 당신의 잘못입니다.”
은혜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빙의의 최강자가 바로 이 지박령이죠. 잘 알아 두세요.”
은혜의 고개가 다시금 작게 끄덕여졌다. 교육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는지 덕팔이 자신의 오른손 엄지손가락 끝을 작은 소도로 찔러 피를 내었다. 낡은 붓에 피를 묻히곤 눈 아래에 발랐다. 소도에도 피를 덕지덕지 바른 후, 큰소리로 외쳤다.
“떨어져라. 그렇지 않으면 소멸시키겠다.”
덕팔의 말에 은혜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은혜의 그런 모습에 덕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박령은 미련, 원한 때문에 그 땅을 떠나지 못하는 원귀를 통칭하는 말이다. 지박령이라는 것만으로 선악을 규정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인근을 지나는 인간들의 몸에 빙의하여 같은 사고, 혹은 같은 사건을 만들기에 악귀라고 평가되곤 하였다.
지박령은 대부분 직접 인간을 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진 못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여러 인간을 해함으로써 원한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신력이 상승하게 되면서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되기도 하였다. 바로 지금처럼!
은혜가 매우 불편한 동작으로 덕팔에게 달려들었다. 느리고 어색한 동작이었지만 덕팔은 은혜의 공격을 쉽게 피해내지 못하였다. 이 지박령이 가진 능력은 바로 상대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빨라지는 대신 상대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어 자신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빨라지게 하는 효과, 나름 잘 먹히고 있었다. 은혜의 손톱이 덕팔의 남방을 찢고 살을 파고들었다. 덕팔이 인상을 썼지만 덕팔의 움직임은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듯 답답하기만 하였다.
은혜가 덕팔의 손에서 소도를 빼앗아 들더니 덕팔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그때, 덕팔의 손이 소도를 쥔 은혜의 손을 말아 쥐곤 힘을 주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도의 방향이 바뀌더니 은혜의 심장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찔러 들어갔다.
제 3자가 보았다면 둘이서 연극이라도 하는 것인 양 보였겠지만 덕팔도, 은혜도 목숨을 건 짜릿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푸욱
은혜의 가슴에 소도가 박혔다.
“크악…크아아아악”
여자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는 걸죽한 비명과 함께 은혜가 괴로워하더니 이내 풀썩 쓰러졌다.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덕팔이 얼른 은혜를 받아 들었다.
“어이구야.. 무겁네.”
덕팔이 은혜를 어깨에 걸쳐 메더니 뒤를 돌아 큰소리로 아영을 불렀다.
“아영아, 다 끝났으니까 나와서 좀 도와주라.”
저쪽 코너에서 검은 인형이 모습을 보였다.
“빨랑 와라. 오빠 쓰러지겠다.”
아영이 달려왔다. 덕팔은 은혜를 트럭 보조석에 밀어 넣곤 찢어진 남방을 잘 봉했다. 그러나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는 감출 수 없었다.
“오빠, 피..”
“손톱이 날카롭네. 살이 다 패였어.”
“이년이 미쳤나. 당장 구속을!!”
아영의 뒤늦은 흥분에 덕팔이 웃었다.
“가까운 병원이 어디 있을까?”
“내가 알아.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날 따라와.”
아영의 차가 먼저 출발을 하였고 덕팔의 차가 그 뒤를 따랐다. 불과 10여 분을 달리니 준 종합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덕팔은 향숙에게 전화하여 이곳으로 와주십사 청을 하였다. 은혜의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도 곁들였다. 그 일 이후, 은혜의 어머니가 사경을 헤매었다는 이야기가 뇌리 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팔도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응급실 의사는 덕팔과 은혜의 상대를 살피곤 데이트 폭력을 의심하여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였다. 물론 이를 눈치챈 아영이 검사 신분증을 보여주고 수사 중이라고 둘러댔다.
의사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아영의 소속과 연락처를 받아 놓고 경찰에 신고만은 하지 않았다. 덕팔이 간단한 응급조치를 받고 있을 때 향숙이 민수와 함께 병원에 도착하였다.
“아 놔, 일주일 만에 처음 오프였는데…”
민수는 잘 자고 있다가 향숙에게 끌려 온 모양이었는지 입이 댓발은 나와 있었다.
“미안하다, 민수야.”
“형 잘못이 아니지. 근데 옆에 계신 분은? 아! 내 소개팅 상대인 형수님?”
“??”
“??”
덕팔도 아영도 민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 위에 물음표만 띄우고 있었다. 향숙이 민수의 어깨를 찰싹 때리곤 사과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