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75
375화
“후후..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길동으로부터 세 노인의 대화 내용을 전달받은 진우가 피식피식 웃었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걸 생각해 내느냐, 그렇지 못하는냐가 이 세상의 운명을 바꾸는 열쇠가 되었다.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이 감옥을 찾았다.
“제안할 것이 있다.”
“천문도룡도를 주세요.”
“당연히 너의 세상을 열 수 있는 천문도룡도는 줄 것이다.”
진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다 주세요. 그에게 빼앗은 천문도룡도들과 이 세상의 천문도룡도까지!”
“그럴 순 없다. 이 세상의 천문도룡도는!!”
“그것으로 무엇을 하시려구요? 저는 또 다른 그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길 원치 않습니다.”
“으흠…”
세 노인이 다시금 머리를 맞대었다. 진우의 요구는 자신들의 상상 속에 없었던 제안이었던 모양이다. 한동안 갑론을박이 계속되더니 인신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대신 황룡을 데리고 이 세상을 떠나겠다고 약속하거라.”
“우리 치우 스승님은 어찌할까요?”
어느새 나타나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치우를 가리키며 웃자 노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청룡이 아니었지만 인간들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강자였다. 성격도 괴팍하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화근 덩어리이니 이번 기회에 함께 사라져 주면 금상첨화였다.
“함께…”
“시끄럽다. 내가 어디에 있을지는 내가 결정한다. 네놈들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나의 처우를 결정한단 말이냐?”
치우의 따끔한 일침에 노인들이 움찔하였다.
“그럼 대충 이야기가 끝난 것 같으니, 계약서를 써볼까요? 치우 스승님, 입회인으로 참가해 주시겠습니까?”
“하하, 그거 재밌겠군. 이 시대의 참 입회인으로서 약속을 어기는 자에게 진정한 벼락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클클클”
치우가 세 노인들을 바라보며 노골적인 협박을 하였다. 노인들의 얼굴에서 두엄 냄새가 나는 건 진우만의 착각이었을까?
**
서른두 장에 걸친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진우는 계약서에 옥새를 찍는 이연성의 손이 떨리는 걸 지켜보며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이연성의 뒤에서 협상과정을 지켜보던 김상필의 표정은 이연성과는 사뭇 대조되었다. 진우가 간혹 김상필과 눈을 맞추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사심 없이 나에게 호의를 베푼 너의 선량함에 감사하거라.] [누구의 생각이었습니까?] [인신 형님이 그러더구나. 네 녀석이 심심해하는 것 같은데 그 책이라도 읽어보게 하라고.. 나는 그저 형님의 생각을 따랐을 뿐이다.]차원이 달라졌어도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진우의 믿음이 잠시 흔들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믿음은 사람은 배신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진우가 슬쩍 인신을 바라보자 인신이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이연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의 시선이 인신의 시선을 따라 이연성에게 향했다.
‘그렇게 날 고생시켰으니 이 정도 마음고생은 해야겠지. 미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고 말이야.’
치우가 잘 해줄 것이라 믿었다. 괴팍하지만 정의로웠고 공정했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는 세상을 아우르는 청룡이었으니까..
“자 그럼 가볼까요? 미스터 옐로우 드래곤을 만나러?”
**
중국 5악은 중국의 5대 명산을 가리키는 말로 진시황은 그 중 으뜸을 태산이라 하였다. 태산은 중국 산동성 태안에 자리 잡은 중국 최고의 명산으로 최고봉인 옥황봉이 1535m로 1950m인 한라산보다 낮은 산이나 진시황, 전한 무제, 후한 광무제 등 천하를 제패한 명군들은 천하가 일통되었음을 알리는 봉선제를 태산에서 지냈다고 한다.
도교의 성지로 인간들에 의해 산 자체가 신령화되어 있는 성지였다. 그런 태산의 주봉인 옥황봉에 작은 움막 하나가 지어져 있었다.
“아이고, 죽것네..”
진우가 앓는 소리를 하며 옥황봉 꼭대기에 다다랐다.
“젊은 놈이 앓는 소리는.. 쯧”
“스승님, 젊다니요. 팔팔했던 20대를 넘긴지가 언젠대요? 슬슬 뼈가 노곤노곤 해지고 있습니다.”
“훗.. 수만 년을 산 나에게 할 소리더냐?”
“스승님이야 애초에 청룡이셨으니 뼈도 튼튼하기로 유명한 용골 아니십니까? 어디 연약한 인간의 것과 같겠습니까?”
“그놈 참, 말이나 못하면.. 쯧”
치우가 혀를 차면서도 움막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주인이 없는 모양이군.”
“잠시 숨을 돌리며 기다려 볼까요?”
움막 근처 바위 위에 엉덩이를 붙인 치우가 은혜에게 수통을 내밀었다. 은혜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수통을 받아 들었다.
“고생했어.”
“고생은요. 우리 자기만 무사할 수 있다면 더한 일도 할 수 있어요.”
어쩜 말하는 것도 저리 이쁠까? 소룡이 웃으며 두 사람 곁을 피해 주었다.
“주인 없는 집에 객이 먼저 와 있었군.”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서양인이 움막을 열고 나왔다.
“오랜만입니다. 황룡님.”
“헌원을 만났을 때 보았던 아이로군. 날 보고 꼬리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황급히 내빼길래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리 또 보게 되니 놀랍군.”
“표현이 좀… 해학적이십니다. 하하하”
진우가 민망했는지 뒷머리를 긁으며 크게 웃었다.
“날 찾아온 이유는 뭐지? 설마 죽고 싶어서는 아닐 테고?”
“멋지게 자살할 곳을 찾고 계신다고 하여 도움을 드릴까 하고 찾아뵈었습니다.”
“멋지게 죽을 곳이라… 나는 청룡과 이 세상의 파멸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럼 제가 잘못 알고 온 모양이네요. 청룡을 찾게 되면 그때 다시 찾아뵈겠습니다.”
진우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켜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고 하자 황룡이 빙그레 웃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청룡이 둘씩이나 있으니..”
“한 명은 은퇴한 이빨 빠진 청룡이고 한 명은 아직 이무기도 되지 못한 지렁이이니 어디 황룡님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제가 이무기를 멋지게 용으로 만들어 다시 오겠습니다.”
“하하하, 유쾌한 아이로군. 너의 그 입부터 뭉개주어야겠구나.”
황룡이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 찰나의 틈을 타 진우의 입에 손을 대려 하였다. 그러나 그런 황룡의 시도는 치우에 의해 가로막혀 버렸다.
“이빨이 빠졌어도 청룡은 청룡이라는 건가?”
“이 쓸만한 도가 잠시 내게 힘을 빌려주고 있지.”
치우가 이연성으로부터 받은 천문도룡도를 빙빙 돌리며 뒤로 물러난 황룡과 진우 사이를 가로 막았다.
“훗.. 신들의 장난감이로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아 그 멍청한 아이가 가지고 온 것이로군.”
“그렇네.”
“그 아이는 어찌 되었나? 자신이 육신만 찾으면 날 죽일 수 있다고 헛된 꿈을 꾸던데?”
“저 아이에게 밀려 쭈구리가 되었지. 지금쯤 자신의 세상에서 죽은 자들의 왕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네.”
“그런가? 저 아이가 소멸시키지 않은 모양이군.”
“훗.. 물러 터져서…”
치우가 슬쩍 진우를 바라보며 입가의 미소를 머금었다. 입 밖으로 튀어 나오는 말과는 달리 진우의 행동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대와 닮았군.”
“그래서 말인데.. 나와 닮은 저 놈이 자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는 군.”
치우가 물러나자 황룡이 진우를 바라보았다.
“내 구미를 당기는 이야기이길 바란다.”
“저랑, 그 모자란 놈의 세상으로 가시죠.”
황룡이 대답 대신 진우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만 보았다.
“생각지 못한 제안이로군. 내가 그곳에 가면 무슨 득이 있는 것이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세상을 멸망시켜버리는 겁니다.”
“크크크, 마음에 드는군.”
“그렇게 다 깨부신 후에 다시 씨앗을 뿌리는 거죠.”
“다시 씨앗을 뿌린다?”
“하실 일이 엄청 많으실 겁니다.”
“그 세상에도 황룡은 있을 것이다.”
“그럼 더 좋죠. 황룡 대 황룡으로 한판 붙어보시죠. 책임을 회피한 그 세상의 황룡과 책임을 다한 후 권태에 빠진 이 세상의 황룡 간의 피할 수 없는 승부! 어떠십니까?”
“오호.. 그거 구미가 당기는군.”
“하지만 그 매치는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그 세상의 황룡님이 없다면 황룡님은 그 세상에서 온전한 황룡이 되지 못하실 테니까요.”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진우가 차원을 넘는 규칙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하자 황룡이 이해하였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모자란 녀석이 그 꼴이 되었던 모양이군. 슬슬 구미가 당기는데?”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처럼 정신 줄을 놓을 수도 있겠죠.”
“그것도 재미있겠군. 황룡이 악룡이 되어 세상을 멸망시키는 시나리오도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구나. 너의 설득은 50%쯤 성공하였다. 그러나 내가 결심을 하기에는 아직 뭔가가 부족한데?”
진우가 품에서 낡은 고서를 꺼내 들었다.
“이 [약속의 서] 정도면 나머지 부족한 50%를 채울 수 있을까요?”
“훗.. 네 놈이 그 책을 먼저 내밀었다면 너와 저 청룡은 오늘 나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그래도 황룡님께서 한 약속인데 그리 쉽게 깨버리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그 약속의 서가 만들어진 지 팔천 년이 지났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그 책을 들고 날 찾은 인간이 한 명쯤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
“글쎄요.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인 제가 그걸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해봤습니다. 이 책에 담긴 약속대로 황룡님께서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 주셨다면 이 책은 이미 진즉 황룡님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을까?”
진우가 빙그레 웃었다.
**
황룡이 잠시 이별의 시간을 주었다. 진우가 오진철을 안아주었다.
“잘 다녀올게요.”
“널 믿는다.”
“네, 아버지. 아참, 저는 처음부터 아버지의 아들이었다고 해요. 그 사람이 장난을 친 거랍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 그게요. 그런 게 있어요. 아버지께 꼭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차마 죽은 아버지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
“어머니,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제 동생과 아버지를 잘 부탁드릴게요.”
“호호호, 진우도 참…”
김향숙이 기쁜 얼굴이 되었다.
“돌아오면 다시 이렇게 꼬옥 안아드릴게요.”
진우가 김향숙을 안아주었다. 김향숙이 진우의 등을 쓸어주었다.
“잘 다녀와. 생채기라도 하나 생기면 이 엄마한테 혼날줄 알아.”
“네.”
진우가 마지막으로 민수의 머리를 헝클어주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내 머리를 이렇게 해주면 참 싫었다. 애써 만든 머리가 흩어지는 게 싫었거든.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팔과 다리를 잃고 오신 후에는 내 머리를 헝클어 주질 않으셨어. 그때 비로소 알 수 있었어. 내가 싫어하던 그걸 내가 진짜 원하고 있었다는 걸.. 너에겐 아직 기회가 있으니 늦지 않길 바래.”
최진학에 대한 이야기였다.
“알았어. 형.”
“그래, 그래야 내 동생이지.”
진우가 민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렇게 가족과의 인사를 마쳤다. 다른 이들과도 인사를 할까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마도 진우가 성공한다면 이 세상의 진우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 비로소 진우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조용히 엘리베이터에 오르려고 했던 진우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가는 거지?”
“응..”
“내가 최은혜가 아니라 걸 확실히 알았어.”
“너도 봤지?”
“응..”
“그가 이 세상의 역사를 비틀지 않았다면 너는 틀림없이 이 세상의 최은혜였을 거야.”
“그럼 날 사랑했을까?”
“아니, 네가 사랑하는 최은혜는 같은 모습을 한 최은수가 아니니까..”
“그렇구나. 그 생각을 해봤어. 네가 떠나고 이 세상에 남을 오진우를 사랑하면 어떨까? 하지만 너의 얘기를 듣고 나니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겠어.”
“그건 모르지. 날 닮은 오진우가 아니라 이 세상의 오진우를 사랑하게 될지..”
진우가 옅게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허름한 움막이 보였다.
“이런 능력도 있으셨습니까?”
“나는 황룡이다.”
“그렇군요.”
진우가 슬쩍 치우를 바라보았다.
“커음.. 나도 한 때는…”
“네네, 그러시겠죠.”
진우가 입꼬리를 올리며 호리병에서 천문도룡도 몇 개를 꺼냈다.
“가만있어보자. 몇 번이었더라. 옳거니 이거네.”
검 손잡이에 3번 스티커가 붙어있는 천문도룡도를 손에 쥔 진우가 생기를 풀어 천문도룡도에 주입했다. 천문도룡도가 생기에 반발하여 폭발을 일으키려 하자 천문도룡도를 허공에 그었다.
“열려라. 참깨!!”
과거로 가는 포탈과는 또 다른 포탈이 열렸다.
“가볼까요? 황룡님?”
**
인계산 오두막.
몽달과 소룡을 찾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허탈한 얼굴로 평상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글쎄다. 두 사람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구나.”
그때, 두 고부가 동시에 평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방님!”
“자기야~”
두 고부가 각자의 짝꿍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 자기야. 기운이 좀…”
유여름이 소룡의 변한 모습에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조금.. 그런 일이 있어서..”
소룡이 뒷머리를 긁으며 웃자 유여름이 소룡을 힘껏 안아주었다.
“무사히 돌아왔으니 되었어요. 그거면 된 거예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소룡에게 큰 일이 있었음을 알았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었다.
“서방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소.”
몽달의 모습도 변해있었다. 얼굴에는 긴 검상이 자리 잡고 있었고 옷소매 사이로 언 듯 보이는 흉터들도 꽤 있었다. 장군신의 영체에도 상처가 날 수 있었던 것인가? 하지만 어혜화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돌아왔고, 무사했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소룡아.”
“네, 아버님.”
“친우는 돌아올 수 있는 것이냐?”
“글쎄요. 그것은 알기 어렵습니다.”
“허어…”
두 부자의 알 수 없는 대화.
소룡이 품속에서 작은 나무 호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뒤집었다. 그러자 길동과 복길이 튀어나왔다.
**
“어휴, 답답해.”
“주인마님, 무사하셨습니까요? 어휴, 치우님이 소멸을 각오하고 막아주시지 않으셨으면 저희는 꼼짝 없이 죽…”
몽달이 복길의 입을 막았다. 죽는다는 말이 튀어나오자 지금껏 애써 무시해왔던 어혜화의 표정이 험상궂게 변했다.
“서방님? 듣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듣지 않을 수 없게 되었군요. 잠시 저와 담소를 나누시겠습니까?”
소룡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여름의 손에 끌려들어가는 소룡이 복길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길동이 피식 웃으며 복길에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이래서 싱글이 좋은 거야.”
“도련님 친구 2분,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에 나이트 어떠십니까?”
“돈은 있고?”
“도련님 친구분께서 아주 좋은 수법을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봐, 그건 범죄라고! 하지만 뭐, 한번쯤은 괜찮겠지. 어이쿠야,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슬슬 내려가 볼까?”
길동이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복길이 길동을 불러 세웠다.
“그런데 도련님 친구 2분, 도련님 친구분은 무사하실까요?”
“글쎄, 알 수 없지. 하지만 그 녀석이라면 틀림없이 어디로 가든 잘 살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길동이 히죽 웃으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
[왔군.]“이 사기꾼 쉐키!”
텅 빈 공간, 그 세상에서 진우가 천문도룡도에 갇혀 있던 그를 만났다. 아니 그들을 만나고 있었다.
진우가 달려들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고 하였지만 어느새 그가 있던 공간은 무로 돌아가 있었다.
“거기 딱 서 있어.”
[즐겁지 않았던 모양이군.]“즐거워? 내가 메뚜기도 아니고 이 세상 저 세상 뛰어다니며 이게 무슨 짓이냐고? 우리 자기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아?”
진우 곁에서 웃고 있던 은혜가 진우를 달랬다.
“자기야, 이제 그만해. 그래도 재미있었잖아.”
“그래도, 우리 자기가 맨날 고생을 하니까 그러지…”
“나는 괜찮다니까 그러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두 남녀를 지켜보고 있는 그들.
[이제 너의 일은 끝이 났다. 우리는 모두 모였고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그들에게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더니 새로운 하나가 되었다.
“이제 천문도룡도는 더 이상 세상에 남지 않게 되는 거겠지?”
[그것이 신과 인간의 약속이었다. 단 한 번의 기회! 그 증표가 세상에서 모두 사라졌으니 약속은 끝이 난 것이다.]“그럼 이제 너와 나의 약속만이 남았네?”
“말하라.”
진우가 고개를 돌려 은혜를 바라보았다. 은혜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진우가 그에게 뭐라 작게 속삭였다.
[너의 소원은 이루어졌다.]파밧..
진우와 은혜의 모습이 공간에서 사라졌다.
“행복할 지어다.”
**
“진우야. 일어나.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진우야?”
진우가 눈을 떴다. 그 오랜 시간동안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잊을 수 없었다. 보고 싶었던 얼굴이 진우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엄마…”
진우가 벌떡 일어나 여인을 안았다. 20년을 함께하였지만 한 번도 안아줄 수 없었던 그 여인이 진우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 많은 차원을 돌았지만 그녀를 볼 순 없었다.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났다. 행복했다.
“어이구? 우리 아들이 웬일이래?”
여인이 진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진우를 일으켜 세웠다.
“빨리 씻고 학교 가야지. 친구들이 벌써 와있어요. 우리 잠꾸러기 아드님!”
“친구?”
여인이 방을 나가고 진우가 눈을 비비고 있을 때, 다시 방문이 열리더니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들이 모습을 보였다.
“어이, 친구!”
“야, 아직도 자냐?”
“몽달?”
“어이, 친구. 몽달이 뭔가? 나는 남이라는 멋진 이름이 있다네.”
“난 안보이냐?”
“길동아!”
“성까지 붙이라고 했지? 아니 아니, 붙이지마! 그냥 동이, 아니 길이라고 불러. 우리 아버지는 아들 인생을 어찌 만들려고 이름을 이따위로 지었을까!!”
진우가 활짝 웃으며 두 친구를 안아주었다.
“아 참, 진우야! 오늘이 100일인 거 알지?”
“100일?”
진우가 의아한 눈이 되었다. 그러자 길동이 음흉하게 웃었다.
“오늘이 수능 D-100일이라는 말씀!”
수능 100일 남은 게 기념할 일인가? 잠시 생각해보았다.
“200일 남았을 때도 기념이라며 술을 사오지 않았나? 친구?”
“그러니까! 150일도 챙겼어야 했는데 하필 그날 성적표가 나와서 말이야. 우리 꼰대한테 붙들려 들어가는 바람에 이벤트를 못했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확실하게 알았지?”
“이보게, 길동 친구. 자네는 대학을 안 갈 셈인가?”
“당연히 가야지. 난 한국대 예약인데?”
“그 성적으로 말인가?”
“훗! 올해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입학제도가 뭐다?”
“설마 기부입학제로 입학을 할 생각인가?”
“당연하지!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우리 집에서 나라도 돈을 펑펑 써 줘야 국가 경제가 팡팡 돌아가지. 안 그래? 전국 수석?”
길동이 진우를 바라보았다.
“뭐, 그런 걸로 해.”
“친구들 나는 걱정일세. 나도 친구들을 따라 한국대에 가고 싶은데 성적이 따르질 못하니..”
“이보게, 몽달 친구. 고려 검술 계승자 특기생 전형으로 이미 한국대 합격증을 받아놓고 일반 전형으로 한국대 합격증을 또 받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자네가 이상한 것일세.”
“이보게, 길동 친구! 날 놀리는 것인가?”
“이보게, 몽달 친구. 그걸 이제 알았나?”
몽달의 눈에서 불이 나자 길동이 후다닥 도망을 쳤다.
“어머니, 저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
“친구, 이해할 수가 없다.”
길동의 너스레를 바라보고 있던 몽달이 고개를 흔들었다.
“왜?”
“길동 친구 집에는 7성호텔 주방장 출신 요리사가 아침밥을 챙겨준다는데 왜 항상 친구 집에 와서 밥을 먹는 걸까?”
“그냥 둬. 다 자기 입맛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7성 호텔 주방장 출신 요리사가 해준 스테이크보다 친구 어머니가 해준 된장찌개가 더 맛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흐음.. 이해가 되는 면이 없지는 않군.”
몽달도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 나갔다. 진우가 웃으며 거실로 나가 보았다. 그리운 아버지 그리고… 어라?
“형아, 고모가 밥 먹으래.”
소룡이가 아버지 곁에 앉아 나란히 TV를 보고 있다. 이제 10살쯤 되었을 것 같은 소룡이의 귀여운 모습. 오랜만이다. 진우가 달려가 소룡이를 안고 볼을 쭈욱 늘였다.
“호쥐마(하지 마)”
소룡이 발버둥을 쳤다. 그러자 오진철이 웃으며 여인에게 외쳤다.
“여보, 우리 진우가 또 시작을 했어. 아무래도 진우 동생을 낳아 줘야 할 모양이야.”
“어머, 당신은.. 애들도 있는데…”
그녀가 얼굴을 붉힌다.
“뭐 어때, 저 녀석들도 알건 다 알 나인데, 안 그러냐 이놈들아!”
“저희는 암 것도 모르는데요?”
길동이 음흉하게 웃자 오진철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
“고 3생활을 몇 번째 하는 건지 원…”
9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든 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도 전국 수석이다. 전국 수석이 아니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빌어먹을 녀석 때문에 차원을 수백 개 도는 바람에 수능만 100번도 넘게 봤네. 이젠 문제만 봐도 답이 보여.”
“뭐라고? 답이 보인다고? 그런 능력이 있으면 이 형에게도 전수를 해다오.”
길동이 뒤에서 나타나 진우의 성적표를 낚아챘다.
“역시 답이 보이는 놈의 성적표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군. 이 무자비한 놈 같으니라고! 또 1등이네. 하긴 1등이 아닐 수가 없지. 전과목 100점이라는 게 말이 되냐? 보통의 수험생들은 1등급을 노린다고! 너처럼 100점을 노리지 않고!!”
“진우 친구! 담임선생님께서 내일까지 원서에 부모님 도장 받아서 제출하라고 하신다.”
“무슨 원서?”
“수시 원서를 넣어야 하지 않나?”
“아. 수시!”
“어디 갈 건데? 법대?”
“아니, 의대 갈 건데?”
“야, 너 문과야.”
“그럼 재수하지 뭐.”
“진우 친구, 문.이과 교차지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그럼 감점이 생겨서.. 아니 그것보다 그럼 이과 수학을 해야 하는데 수능 100일 밖에 안 남았다고.”
“진우 친구라면 지금부터 공부해도 충분히 만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군.”
진우가 가방을 메자 몽달과 길동이 진우의 뒤를 따랐다. 교문을 나서자 길동과 몽달이 진우의 양 팔을 잡았다.
“왜?”
“이벤트 하러 가야지.”
몽달과 길동이 씨익 웃었다.
딸랑..
어디에나 흔히 있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 아닌 6성급 호텔 양식당이었다.
“우와, 오성그룹 적장손은 이런 곳에서 밥을 먹나 보지?”
“당연하지. 오늘은 날이 날이니만큼 특별히 룸을 예약해 주는 센스!”
길동을 알아본 종업원이 진우 등을 룸으로 안내해 주었다.
꽤 그럴듯한 방이었다. 고급스러웠고 매우 넓었다. 종업원이 먼저 차를 가져다주었다.
“오늘 이벤트는 뭐야?”
“후훗.. 기대하시라!”
길동이 웃었다. 몽달도 길동을 따라 웃었다. 아마도 몽달에게 길동이 귓뜸을 해준 모양이다.
진우에게는 국화차가 놓여졌다. 식후에 마시면 더 좋지만 식전에 입맛을 돋우는 대도 국화차만한 것이 없다. 차원을 돌면서 입에 대기 시작한 국화차의 슴슴한 맛에 길들여진 모양이다. 도돌이꽃잎차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런 차를 구할 수 없으니 국화차에 만족하기로 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종업원이 모습을 보였다. 특별한 날이라고 했으니 어떤 음식이 준비되었을지 기대가 가득하였다. 그런데 종업원은 음식 대신 여학생을 입장시켰다. 차향을 음미하고 있던 진우가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녀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의자에 단정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진우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가득하였다.
“최은혜!”
진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은혜가 자신의 이름이 상대에게 불리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진우가 손을 내밀자 은혜가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가자. 최은혜!”
진우가 테이블을 돌아 은혜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며 길동에게 윙크를 해주었다.
“뭐야?”
길동이 몹시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한눈에 반했다며 진우 친구와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고 했던 대한 그룹의 무남독녀가 저 낭자인가?”
“맞아. 근데 둘이 아는 사이 같지 않아?”
“흐음.. 그럼 우리의 소개팅 100번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글세? 좀 애매해졌지?”
길동이 두 사람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뭐, 오랜만에 저런 얼굴을 보니 좋네. 훗.. 행복해라. 오진우!”
-3부 및 귀신 잡고 먼치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