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 Station RAW novel - Chapter 1
01.
사창가 주위 미용실은 여느 동네보다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밤일을 하는 여자들이 으레 미용실을 들르다 보니 미용사들 실력이 좋다는 입소문이 돌아서였다.
그 수혜를 입은 건 차언이 일하는 ‘모란 미용실’도 마찬가지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미용실은 더욱 분주해진다. 이 동네는 이상하게도 비가 오면 손님들이 몰렸다.
‘이 동네’라 함은 많은 유흥 업소를 중심으로 그 주위로 뻗어 상권을 형성한 미용실, 모텔, 옷가게, 양장점, 목욕탕, 식당 등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차언은 그 동네에서도 꽤 목 좋은 곳에 위치한 모란 미용실에 말뚝을 박은 처지였다.
미용실 건너에서 재작년까지만 해도 국밥 가게를 하던 성호 할머니는 그것을 팔자라고 했다.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사람은 제 주제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에 연결된 것처럼 멀어지면 다시 끌려오고, 달아났다 생각하면 다시금 이곳으로 붙들려 왔다.
팔자에도 없는 대학에 가겠다고 이 문턱을 넘었을 때도, 캠퍼스 커플이네 뭐네 연애를 한다고 들떴을 때도.
그 모든 것이 결국엔 찰나일 뿐이었다. 자신은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날이 지면 장사가 시작되고, 해가 뜨면 하루를 끝내는 곳. 이곳 모란 미용실은 다른 동네 미용실과는 조금 다르게 시간이 흘러간다. 손님이 가장 몰리는 시간대에 영업시간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차언이 년은 마감해야 하는데 또 어디 간 거야.”
“왔어.”
차언은 옷깃에 묻은 빗물을 털며 미용실 안으로 들어왔다. 건넛집 식당에 밀린 외상값을 정리하러 갔다 온 사이를 못 참고 영림이 차언을 불러 댔다.
“싸돌아다닐 기력 있으면 바닥이나 닦아.”
“그럴 거면 외상은 밀리지 말아야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거 뒤치다꺼리하느라 귀찮아 죽겠잖아.”
“넌 참 너희 언니랑 안 닮았어. 수지는 정말 착했는데.”
“못돼 처먹어서 미안한데, 외상값 3만 원 빈대.”
“뭔 소리야. 계산 딱 맞게 했는데.”
모란 미용실의 원장인 영림은 들고 있던 빗자루도 내팽개치고 그 길로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잘 알고 있다. 수지랑 자신은 다른 거. 말은 저렇게 해도 영림의 말에 악의가 없단 것도 안다. 그녀는 수지와 자신이 절벽 끝에 서 있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기도 했다.
엄마는 열아홉에 언니를 낳았다. 아빠, 누군지 모른다. 엄마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인 양 아빠의 존재를 지웠다. 그렇게 살았다.
그래도 대충 짐작은 했다. 호기심에 했을 불장난, 혹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지 못했을 열병 같은 사랑. 어느 쪽이었든 태어난 언니와 자신의 존재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을 아빠.
그렇게 생각하려 애쓰다 보면 지금의 자신이 왜 있게 된 건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아빠와 헤어지고 새 사랑을 시작했던 건지, 자신 밑으로도 엄마가 낳은 배다른 여동생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앤 세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고 들었다.
사실 동생에 대해선 그다지 기억이 없어서 그것조차 언니를 통해 들었다. 그 뒤 보험금이 나오고 엄마가 사라졌다는 것도.
벼랑 끝에 서 있던 언니 수지와 제게 영림이 이 미용실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신도 당장 입에 풀칠할 돈을 구하기 위해 사창가를 드나들었을지도 몰랐다.
“차언아, 나 머리 좀 감겨 주라. 근데 샴푸 바뀌었니? 난 예전 샴푸가 더 괜찮은 거 같은데. 이건 향이 너무 난하다, 얘.”
“박하 함유량이 높아서 두피가 더 시원하대. 좋은 게 좋은 거라니까 그냥 써.”
“영림이 년이 비싼 샴푸로 바꿨을 리가 없는데.”
“나도 이걸로 감았는데 시원한 건 오래가더라. 향도 시간 지나면 더 좋아. 맡아 볼래?”
“그래, 영림이 년은 안 믿지만 내가 우리 차언이는 믿으니까.”
“나도 바꿔 주고 싶은데, 알다시피 나는 힘이 없잖아.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차언은 모란 미용실 단골이자 이 골목에서 유명한 마사지 숍 여자인 애란의 머리를 감겨 주며 싱긋 웃었다.
말이 마사지 숍이지 실은 유사 성매매 업소였다. 이 동네 간판은 다 그랬다. 남성 마사지 숍, 안마방, 대화방, 다방 간판은 그럴듯하게 만들어 놨지만 결국엔 그렇고 그런 일들이 이루어지는 동네였다.
이 동네의 밤은 유난히 길다. 그래서 좋았고, 또 그래서 싫었다.
“장마 끝난다고 하더니 그것도 아닌가 봐.”
기어코 협상을 한 건지 영림이 위풍당당하게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옷깃에 묻은 빗물을 털어낸 영림이 투덜거렸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던 영림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어째 오늘따라 김석진이 안 보인다?”
“곧 또 지랄하면서 오겠지. 그 성깔에 퍽도 얌전히 기다릴까.”
애란이 지긋지긋하다며 치를 떨었다. 김석진, 마사지 가게를 운영하는 동네 조폭 중 하난데 주로 여자들을 치장하는 데 데리고 가거나 가게 여자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일을 했다.
여자들이 사적으로 손님을 만나 가게 장사에 영향을 미치는 짓을 하지는 않는지 내지는 빚에 묶인 여자들이 도망가지는 않는지, 그런 지저분한 일들.
듣고 보니 늘 여자들을 단속하며 이 미용실 문밖을 지키던 석진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야. 네가 여길 벗어나서 뭐 어딜 갈 건데. 어차피 헛된 꿈이지만 여기서 나가도 더 좋은 꼴 못 봐. 너도 딴 년들처럼 돈 많은 남자 물어서 팔자 고칠 생각하고 있으면 꿈 깨. 나랑 같이 살면 너 팔자 피는 거야.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년이 그게 팔자 피는 거지, 뭐 따로 있는지 알아?”
석진이 자신의 치마를 뒤적거리며 했던 소리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 동네에서 자란 건 맞지만 태어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구태여 정정하며 꼬집기도 싫었다. 석진의 말을 바로잡자면 그 어디 그 한 가지뿐이겠는가. 결국 알아들을 리도 없는데, 제 입만 아플 뿐이었다.
여기서 나가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리 없다는 거. 누가 그거 모를까 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는데, 더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석진의 곁에 서서 감정 없는 인형처럼 살기는 더 싫었다.
석진의 빈자리를 대신해 성큼성큼 미용실을 향해 걸어 들어온 남자가 못마땅한 얼굴로 애란을 눈짓한다.
“야, 나와. 윤 사장이 너 찾아.”
“나 아직 머리도 덜 했어. 오늘은 다른 애들 대타로 보내.”
“넌 머리카락으로 좆 빠냐? 나도 네 성질머리 알아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윤 실장이 너 아니면 안 되겠단다.”
“알았어. 가니까 좀 기다려.”
결국 애란이 구불거리는 머리를 만지며 구두를 끌었다.
“차언아, 너 내일 시간 있지? 점심이나 먹자. 쇼핑도 가고. 너한테 할 말 있어서 그래. 알았지?”
“응.”
“연락할게. 참, 오늘 옷 예쁘다.”
그래도 애란은 빚으로 묶인 처지가 아니라 자유로운 편이었다. 점심도 먹고, 마음대로 쇼핑도 가고, 그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데가 바로 이곳이었다. 이 동네에는 빚 때문에 자유를 박탈당한 여자들이 길가 돌멩이만큼이나 많으니까.
애란이 미용실을 나가자마자 근처 술집 여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바야흐로 가장 손님이 많을 시간이었다. 하루 중 미용실이 가장 바쁜 시간이기도 했다.
저야 언니들 뒷바라지나 하며 가게 잡일을 돕는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지만 영림은 실력 좋은 전문가였다. 어쩌면 이 드센 동네에서 이만큼 손님을 받고 오랫동안 말뚝을 박을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몰랐다.
차언은 새벽이 되어서야 약품 냄새가 밴 손을 개운하게 씻었다. 여전히 비가 짓궂게도 내린다.
“퇴근 안 해?”
뒤늦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유리창을 타고 주룩주룩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있는데 영림이 다가왔다. 손엔 잘린 머리카락들로 엉겨 붙은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해야지.”
“우리 오랜만에 야식 먹고 들어갈까? 네들은 어때.”
“존나 좋지. 근데 차언이 년 또 안 갈걸?”
“집에 남자를 숨겨 놨나, 꼭 이럴 때 내빼요. 너 또 안 가?”
차언은 마시던 커피를 정돈하고서 한쪽에 놔둔 우산을 들었다. 그 단호한 답에 뒷정리를 하던 여자들이 알 만하다는 얼굴을 했다.
“다음에. 나 내일 애란 언니랑 약속 있어서. 아까 다들 들었지? 진짜야.”
“퍽도 애틋한 우정이다. 너 진짜 집에 남자 숨겨 놓고 살림 차린 거 아냐?”
“그런 일 생기면 제일 먼저 말해 줄게.”
“미친년. 또 마음에 없는 건 아닌가 보네.”
차언은 깔깔대는 모란 미용실 여자들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와 골목을 향해 걸었다. 각종 불법 업장과 유흥업소가 있어 모텔이 즐비한 좁은 동네. 그리고 그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원룸.
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텔 살이를 했다가 최근에야 작은 방 하나를 얻어 나왔다.
밤만 되면 양옆으로 들리던 남녀의 신음 소리, 술 마시고 복도로 나와 고래고래 고함치던 김 씨 아저씨, 겨울이 되면 곰팡이가 펴 매일 닦아야 했던 벽지,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던 모텔. 그 모텔을 탈출하기까지도 10년이 꼬박 걸렸다.
비 떨어지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릴 뿐, 오늘따라 골목이 유난히도 조용했다.
차언은 현관 앞에 우산을 접어 놓고서 도어 록에 손을 댔다. 도어 록 키패드에 불이 들어왔다. 비가 와 그런지 바닥이 빗물로 엉망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빌라라 누가 찾아올 일도 많지 않건만 이상하리만치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어쩐지 기분이 평소와 달리 묘했다.
이럴 땐 대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는데. 늘 일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일어난다.
문을 여는 순간, 차언은 그 기묘한 기분이 무엇 때문인지 알았다. 걸음을 돌릴 여유도 없이 몸이 굳었다.
“…….”
열린 문틈으로 축축하고도 습한 무언가가 비강을 후벼 파며 날아들었다. 비 냄새에 섞여 강렬하게 날아든 그것은 뒷덜미가 서늘할 정도로 기분 나쁜 냄새였다.
언젠가 길 건너 정육점에서 막 도축한 육고기가 들어왔을 때 맡아 본 적이 있는 피비린내. 그와 함께 집안을 가득 메운 매캐한 담배 연기. 그리고 그것들 사이로 은근하게 풍기는 차가운 향수 냄새. 선명한 남성의 체취.
숨이 턱 막히는 졸도감에 차언은 입을 틀어막았다. 잠시 소란스러웠으나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피가 흥건한 배를 움켜쥔 채 탁자 쪽에 기대앉아 있는 건 석진이었다. 김석진.
자신에게 몇 번이나 같이 살자며 손을 잡아끌고 이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남자. 거절했을 땐 온 뺨을 맞고 그가 운영하는 마사지 숍으로 끌려가기도 했었다.
네 스스로 날 원하게 해 주겠다고, 네 입으로 자신을 선택하게 하겠다고. 맨발로 도망쳐 나오다가도 반쯤은 알몸이 된 채 질질 끌려가기를 수차례, 그때마다 뺨을 때리던 남자.
“차, 차언. 아… 나 좀…….”
애타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석진을 보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뒷걸음질을 쳤어야 하는데, 그가 살려 달라 뻗는 손을 외면하지 못했다.
“김석…….”
석진을 막아선 검은 셔츠의 남자들이 자신을 본다. 그들의 얼굴엔 난감한 기색도 곤란한 안색도 비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신이 이 시간에 올 것이란 걸 예상이라도 한 사람들처럼.
차언은 직감했다. 이 집의 불청객은 자신이었다.
“귀가가 늦네.”
불쑥 말을 건넨 건 다리를 꼰 채 싸구려 침대 매트리스 위에 걸터앉아 있던 남자였다. 좁은 방 안에 늘어선 남자들 가운데 혼자 단정한 매무새였다.
단정하게 채워진 커프스단추, 소매 한 자락 흐트러지지 않은 셔츠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 네 애인이라도 돼?”
남자가 쓰러져 있는 석진을 향해 턱짓하며 물었다.
“…….”
입까지 굳어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랬는진 알 수 없었지만 저도 모르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무감한 눈동자는 감정의 동요 따위 없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뚫리겠네. 나만 보고 있으면 답이 나와?”
무서웠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무서워 멍청하게 몸을 떠는 걸로도 모자라 딸꾹질까지 나왔다.
입을 틀어막고 딸꾹질을 하는 차언을 가만히 쳐다보던 남자는 말없이 담배 필터를 빨아들이기만 했다.
침착해. 이보다 더한 것도 보고 겪었잖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비참한 시간들도 견뎠잖아. 차언은 아까보다 침착해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그런대로 참아 볼 만했다.
“너랑 몸 섞고 사는 놈?”
“동네 오빠예요. 그냥 아는 남자.”
“그러니까.”
김석진과 애인 사이냐고 재차 묻는 남자가 담배를 장판으로 툭 내다 버리듯 떨구곤 구둣발로 짓이긴다. 그러고는 옆에 놓인 천을 집어 건성으로 손을 닦는다. 책상에 놓아두었던 제 손수건이었다.
마치 연이어진 그림처럼 그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남의 집에 쳐들어와 불손한 행동을 일삼는 게 밥 먹는 일보다 더 아무렇지 않은 사람 같았다.
석진을 막아서고 있는 남자가 석진의 목덜미를 붙잡아 끌어 올렸다.
“차, 언아. 살려줘. 차언, 아.”
다시 안면을 가격당한 석진의 입에 청 테이프가 붙었다. 그러고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배트로 맞기 시작했다. 이미 깊은 자상으로 피가 흥건한 옆구리가 더 붉게 물들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구타당하는 소리와 석진의 신음 소리만 조용히 울릴 뿐, 숨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내 의식 없이 고꾸라진 석진이 피로 떡이 된 머리를 늘어뜨린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함.
“두 번 묻게 만든다, 너.”
묘하게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낮고,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음성이었다. 감정이라곤 한 줌 느껴지지 않는, 그런 목소리.
차언은 뒤늦게야 그것이 자신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뭐라고 물었더라?
김석진과 연인사이냐고? 미치지 않고서야. 하지만 자신은 죽어 가고 있는 석진을 마주한 상태에서 그에게 미쳤냐고 물을 용기도 기백도 없었다.
이 와중에도 구질구질하게 생을 이어 가고 싶었던 건지 그도 아니면 적어도 이렇게 비참하게 죽고 싶진 않았던 건지,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남자는 그런 차언의 눈을 가만히 볼 뿐이었다. 여자를 응시하는 까만 눈동자에는 어딘가 음습한 기운이 돌았다.
누군가를 죽고, 죽이고, 그런 것들을 업으로 삼고 사는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 적어도 저 손에 죽어 나간 사람이 한둘은 아닐 거라는 걸 직감했다.
“뭘 그렇게 봐, 보기는.”
“…….”
“귓구멍이 처막혔어?”
남자가 조소하듯 웃는다. 치아 하나 드러내지 않은, 기묘한 웃음이었다. 내내 눈만 뚫어져라 보더니 자신의 기분을 파악하고 있었던 거 같았다.
“아, 네 집이다 이거야? 미안, 미안.”
그녀의 살점을 도려내기라도 할 듯 쳐다보는 그의 입에선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진심이 아닌 게 분명한 조롱과 같은 사과, 그 기묘하고 거북하기까지 한 간극에 차언은 눈살을 찌푸렸다.
남자의 뒤로 눈을 감고 있는 석진이 보인다. 용서를 구할 상대는 따로 있는 거 같은데.
미안하다는 말을 꺼낸 남자가 바지 뒤춤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남자는 잠깐 전화를 받으면서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지, 자신에게 집중을 하는 건지 모를 모호한 눈동자다.
그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흔한 대답 한번을 하지 않았다. 이상했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딸꾹질이 멎지 않아 속이 아팠다.
석진은 어떻게 되는 거지, 힐끔 탁자가 있는 쪽으로 눈길을 주자 이런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남자가 전화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훅 피부를 감싸듯 풍기는 향수 냄새가 짙다. 처음 방 안으로 발을 디뎠을 때 나던 냄새였다.
“이쯤 하자. 애 놀라서 떤다.”
“형님, 그럼 이 새끼는 어쩝니까.”
“어쩌긴 뭘 어째. 주워 담아.”
고저 없이 담담한 목소리는 서늘하기까지 했다. 몸이 축 늘어진 석진이 짐짝처럼 들려 나갔다.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석진이 끌려가는데 자신은 그 어떤 행동도 선뜻 취할 수 없었다.
석진의 손에 끌려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 앞에 던져졌을 땐 그 자리에서 저 목을 조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일일 뿐, 이렇게 살인을 방조하는 데 가담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루지 못할 염원에 그쳤고, 자신은 그걸 실행에 옮길 만큼 배짱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참, 좀 썼다.”
남자가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미처 받지 못한 손수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피가 얼룩덜룩 묻은 싸구려 손수건을 버리고 무심히 지나치는 남자의 셔츠 자락을 저도 모르게 붙잡았다. 대번 자신에게 옮겨 붙는 남자의 시선에도 차언은 놓을 생각을 못 하고 잡아당기기만 했다.
“저 남자, 죽은… 거예요?”
“왜, 확인이라도 해 볼래?”
아무런 말도 않고 있자 가만히 차언의 눈을 응시하기만 하던 남자가 조그마한 한숨처럼 뒤쪽을 향해 말했다. 미간을 긁적이는 손엔 귀찮은 기색이 가득이었다.
“시백아. 포장 뜯어서 다시 가져와 봐라.”
“아, 아니…….”
“궁금하시단다. 보여 드려.”
남자의 친절은 명백한 조롱이었다.
“아니에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상했다. 수지가 죽은 후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냈던 석진이 싫었다. 혼자 된 자신을 더욱 쉽게 보는 석진이 싫었다.
자신의 이 구질구질한 처지도 싫었고, 같은 처지라며 제게 만족하라는 석진도 싫었다. 날 왜 사랑하지 않느냐며 뺨을 때리는 것이 싫었고, 자신과 결혼하지 않을 바에야 몸을 팔라며 제 팔을 끌고 갔던 것도 싫었다.
싫었다. 근데도 석진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은 그를 잊을 만큼 충격적인 잔상으로 남았다.
“그런데 왜 김석진을 이렇게 한 거예요?”
“알아 뭐 하게.”
“…제 집에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어차피 따져 물어 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어? 목숨을 내놓은 용기였다.
“알면, 감당이나 해? 저 새끼 관짝이라도 짜 줄래?”
남자가 그의 옷자락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등으로 눈짓한다. 놓으라는 말을 재깍 알아들은 차언은 옷을 놓자마자 입을 틀어막았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밀려드는 비릿한 피 냄새에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감당도 못하면서 뭘 그렇게 알려 들어.”
“저기요, 저…….”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한 마디 입을 떼는 것도 고역이었다.
“근데 말이야.”
아까부터 묻고 싶었다는 듯 운을 띄운 남자의 미간이 설핏 좁아졌다.
“컬러가 좀, 촌스럽지 않나.”
남자가 그녀의 싸구려 취향을 지적했다.
처음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너무도 진지해 보이는 이목구비에 설마 저딴 농담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남자의 눈을 보고 있자면 농담도 아닌 것 같지만.
“예?”
냉소적인 두 눈이 치맛자락을 향해 있다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상한 남자였다.
“아니면 좆 달린 새끼들한테 잘 보이기 위한 일종의 위장인가? 아, 치장?”
삐딱하게 선 남자의 미간이 구겨진다 싶더니 주머니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중지를 닦는다. 차언은 바닥에 떨어져 구겨진 제 싸구려 손수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닦은 그가 마치 화대라도 쥐여 주듯 차언의 블라우스 포켓 안으로 그의 손수건을 밀어 넣는다. 대강 쑤셔 넣어 삐져나온 손수건이 행커치프처럼 덜렁거렸다. 네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쯤 되어 보였다.
“…난 그런 일 하는 사람 아니에요.”
오만해 보이는 남자의 면전에 대고 할 말은 아니었는데. 자칫 저들의 칼날이 자신을 향해 내리꽂힐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 말이 튀어 나갔는지 모르겠다.
남자가 소리 없이 웃는다.
“예, 잘 알겠습니다. 참고하죠.”
당돌한 제 답에 그가 맞춰 주듯 지껄였다. 그래 봤자 냉조였다. 비웃음.
“실례가 많았습니다.”
무서워서 벌벌 떠는 주제에 되바라지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자신이 같잖다는 듯 한 번 픽 웃은 남자가 돌아서서 가 버린다.
동시에 눈앞이 희뿌예졌다. 아직 가시지 않은 긴장에 책장을 붙잡는데 또 다른 얼굴 하나가 시야에 불쑥 들어왔다. 언뜻 보이는 손등, 손가락 마디까지 촘촘하게 이어진 문신. 분명 아까 석진과 마주 보며 칼을 들고 서 있던 남자들 중 하나였다.
“웬만하면 그 입 닫는 게 좋을 거야. 학자금대출에 쪼들릴 텐데 이 집이라도 지켜야지.”
이 집 하나 벌집 만드는 건 너 하기에 달렸다고 남자가 친절히 경고한다. 달칵, 라이터를 연 남자가 장난처럼 불을 켰다 껐지만 무슨 말인지 모를 리 없는 협박이었다.
뱀 같은 눈이 자신을 한번 훑는 것으로 모든 경고가 끝났다. 더 긴 말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서웠다.
방이 비자 그제야 들이마신 피 냄새가 식도를 넘어온다. 차언은 입을 틀어막은 채 그대로 변기로 달렸다.
먹은 것도 없는데 위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맛보며 게워 냈다. 속을 달랠 여유도 없이 걸레를 쥐고 핏물이 떨어진 바닥을 닦았다. 핏자국이 사라진 걸 보면서도 손바닥이 물집이 잡힐 때까지 방바닥을 문질렀다.
머리카락이 피로 푹 젖은 채 늘어져 있던 석진이 카메라 렌즈에 고정된 피사체처럼 선명하다.
석진은 왜 죽은 걸까? 죽음의 이유조차 모른 채 자신은 범행의 공모자가 됐다.
차언은 담배 그을음 자국이 그대로 남은 장판을 내려다보며 걸레를 휴지통 안으로 처박아 넣었다. 그러곤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제 싸구려 손수건을 집어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 넣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죄다 치우고 난 후에야 간신히 숨을 돌렸다.
그렇게 방을 닦았는데도 피 냄새가 났다.
피비린내, 처음 맡는 것도 아니었다. 빚쟁이들을 피해 몰래 이 동네 모텔방으로 숨어든 남자들이 피멍 가득한 몸으로 끌려가는 걸 목격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개중엔 다시 돌아오지 않은 남자들도 숱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폭력은 제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렇게 자랐고, 그렇게 커 왔다.
그런데도, 이 방에서 본 풍경과 가득 스민 냄새는 머리통이 지끈거릴 만큼 섬뜩했다.
상대가 아는 사람이라서? 아니면…….
방바닥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던 차언은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속에서 아직 담배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어깨를 끌어안았다.
“하아, 하.”
호흡이 가빠지려 한다. 자꾸 잊고 있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다. 스르륵 쓰러지듯 몸이 바닥으로 넘어갔다.
생각지 말아. 차언은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마음을 다잡으려 몇 번이나 심호흡했다.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틀어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
애란이 들어오는지 대문 밖이 소란스러웠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정적이 흘렀다. 창문을 여는지 방음이 잘 되지 않는 벽을 타고 드르륵,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혹여 타이밍이 뭐 같아 자칫 애란과 마주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등줄기가 시큰거렸다.
죄는 남자가 지었는데 죄책감은 저에게만 고스란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