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
01. 정차언 계장
“아…….”
차언은 시트에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끙끙댔다. 숙취로 거의 몸이 무너져 내리다 못해 머릿속까지 풀어 헤쳐져 사방으로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대체 집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데, 중요한 기억들은 전부 뚝뚝 끊겨 있었다.
“엄마.”
차언은 고개를 비틀어 침대 밑에 와 있는 자그마한 발 두 개를 발견했다. 째끄만 한 딸이 숙취로 고생하는 엄마를 기다리다 먼저 일어났다. 늘 아이보다 먼저 일어나 작은 몸을 꼭 안아주고 시작하는 하루의 일과가 처참하게 틀어져 버렸다.
“아현아.”
간신히 허리를 일으킨 차언은 막대사탕을 오물거리고 있는 아이를 끌어올려 꽉 안았다. 그러다 혹시 술 냄새가 날까 봐 말랑거리는 몸을 떼어 냈다.
“엄마 왜 그래?”
“응. 엄마가 어제 주스를 너무 많이 마셔서.”
“주스?”
“응. 근데 오늘 우리 딸 왜 등원을 안 했지?”
“오늘 토요일인데.”
“아. 그랬지 참.”
싱거운 답에도 아이가 헤헤 웃는다. 양 볼에 쪽쪽 입을 맞추곤 아이 손을 잡고 거실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남편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욕실도 잠잠하고, 거실도 텅 비어 있다.
“아현아, 아빠 어디 있는지 알아?”
“삼촌이 와서 아빠 데려갔어.”
“삼촌? 어느 삼촌?”
“건주우 삼촌.”
고사리 손으로 차언이 챙겨 준 빵을 야무지게 쥐고 뜯어먹는 아현이 뺨을 빵빵하게 부풀리곤 답했다. 이렇게 이렇게 했다며 자그마한 손목을 내밀어 보는 시늉을 했다.
늦어서 손목시계를 봤고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갔구나. 아이의 답에도 많은 것을 알아낸 차언은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주방으로 향했다. 미지근한 물을 마시며 썩어가는 속을 풀고 있는데 어느새 주방까지 따라 들어온 아현이 옆에 서 있었다.
입고 있는 내복에 복숭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맘때쯤 애들은 공룡이나 요정에 미쳐 있다던데 우리 애는 복숭아를 택했다. 그 외에도 아이의 관심사에는 새우와 기차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남다른 아이였다. 물론 엄마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특별해,’ 렌즈가 낀 건 변명할 생각이 없었다. 지난번 유치원에서 체험학습으로 복숭아 농장을 다녀와 제 머리통만 한 복숭아를 한번 보고 나선 눈을 반짝이며 가져온 복숭아를 삼 일 밤낮을 보고 베어 물곤 했었다. 딱딱한 복숭아는 집안을 활보하며 이로 깨물어 먹고, 말랑한 복숭아는 즙 잔뜩 묻히며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 먹었다.
“아빠가 엄마보고 이렇게 이렇게 했어.”
그러더니 아이가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푸는 손짓을 한다. 아, 어젯밤의 일을 얘기하는 듯했다.
그래, 다시 기억을 더듬어 어제로 돌아가 보자.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해 자신이 뭐라 뭐라 기억도 없는 소릴 지껄이고, 김은찬 행원이 ‘계장님 정신 차려 보세요.’ 하고 자신을 흔들었던 것도 기억이 나고, 왜 그다음 기억이 차권석이 운전하는 걸 바라보고 있는 자신일까. 그러다 업혀서 집엘 들어오고, 침대에 눕고, 블랙아웃.
“아빠 화났어.”
망할.
쐐기를 박는 아현의 말에 차언은 다시 고개를 처박을 곳을 찾아 머리를 움직였다. 결국 쥐구멍 대신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
“응, 우리 딸.”
“나 배고파.”
“아, 엄마가 미안해. 우리 얼른 밥 먹자.”
술에 꼴아 집에 들어온 건 그렇다 치지만 숙취로 아이가 쫄쫄 굶고 있었다는 건 완벽히 제 잘못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어묵 반찬과 멸치 반찬을 콕콕 찍어 먹으며 허공에서 달랑거리는 발을 까딱거렸다. 차언은 대충 씻고 나와 후추가 뿌려진 달걀 국만 퍼먹었다. 해장거리를 만들 기력도 없어 차린 게 노란 육수에 달걀 한 알 푼 흔적만 남은 국이 다였다.
밥도 없이 국만 퍼먹고 있으니 멸치 양념이 묻은 건지 손가락을 쪽쪽 빠는 아이가 제 밥그릇을 자신 쪽으로 내민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무겁게 눌어붙은 눈꺼풀만 깜빡거렸다.
“내 밥 먹어, 엄마.”
“아, 괜찮아 아현아. 엄마도 밥 있어.”
엄마도 먹을 밥이 있다는 말에 그제야 째깐한 숟가락으로 하얀 밥을 푹 퍼먹으며 아이가 다시 발을 까딱거렸다.
“우리 이거 먹고 놀러 갈까?”
“어디?”
“마트?”
아이는 이상하게도 요맘때 애들이 좋아하는 키즈 카페도 아니고, 장난감이 잔뜩 있는 백화점 장난감 코너도 아니고 식료품이 잔뜩 있는 마트 구경을 좋아했다.
마트에 가서 딱히 이거 먹고 싶다, 저거 먹고 싶다, 사 달라 떼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눈으로 보는 윈도 쇼핑을 즐기는 듯해 보였다. 물론 아이의 시선이 오래 머물러 있는 식료품은 차언의 손으로 전부 카트에 담았다. 뭐든 아이가 먹기 좋게 만드는 건 자신 있었다.
마트에 가자는 말에 아이는 밥을 다 먹자마자 방으로 포르르 들어가 입을 옷을 챙겼다. 바지를 야무지게 생겨 입고 나타난 아이가 입혀달라고 윗옷을 내밀었다. 아이 옷까지 꼼꼼하게 입힌 차언은 지갑을 챙기고 대충 모자를 푹 눌러써 외출 준비를 했다.
집을 나서려다 문득 생각이 나 다시 침실로 간 차언은 시트 아래 처참하게 깔려 있는 가방을 열어 핸드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핸드폰 액정 화면에 톡이 왔다는 알람이 떠 있었다. 두 시간 전쯤에 온 톡이었다.
[주정뱅이. 일어나면 세탁물 올 거니까 받아. 네 기억엔 없겠지만 그쪽이 어젯밤에 토를 하셔서요.]그의 옷을 전부 적셔 놨다는 어젯밤 만행에 차언은 다시 대가리를 파묻을 곳을 찾아 헤맸다. 그나마도 어제 안주빨은 세우지 않고 술만 퍼마셨다는 게 다행인 건가.
다행은 무슨 다행이야. 차언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발신인, 화가 났다는 아현의 친부였다.
“엄마, 복숭아는 왜 털이 송송해?”
책 코너에서 아이가 뾰족하게 선 복숭아 그림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가 처음 ‘털이 송송’이라는 표현을 배우고 나서부터, 그 표현이 재미있는지 여기저기 써먹었었다. 역시 우리 아이는 응용력이 남다르다고 차언은 남몰래 감탄하곤 했었다.
“글쎄. 사람들이 만지지 말라고 그런 건가? 방어 털?”
“그럼 여우도 털이 송송한데 그건 몸이 따뜻하려고 그런 거잖아. 복숭아도 따뜻하려고 그래?”
아이가 옆에 놓인 동물 그림책을 가리키며 의아해했다.
“음, 이따 아빠 오면 같이 물어볼까?”
카트에 타 두 손으로 그림책을 꼼지락거리는 아이는 시원치 않은 차언의 대답에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답이 궁색할 땐 아빠한테 물어보라고 하는 게 최고였다. 그럼 또 권석은 어떻게 아는지 척척 잘 대답해 주었다. 차언은 아이의 흑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생선 코너 앞에서 멈춰 섰다.
조기를 사서 구워 먹을까? 아이가 조깃살을 좋아하는데. 짧은 고민에 잠겨 있는데 아현이 엄마, 하고 부른다.
“응?”
“유안이.”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돌리니 장을 보러 나왔는지 송아와 유안이 채소 코너 앞에 있는 게 보였다. 김종섭의 어린 와이프. 어리다고 해 봐야 저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데 또래보다 성숙한 분위기와 차분한 성격을 가진 여자. 늘 그 분위기에 끌려 문성 모임이 있으면 몰래몰래 보곤 했었다.
그 성격 지랄 난 김종섭과 함께 살면서도 저런 침착함을 유지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남자의 개지랄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넘기는 걸 보면 하여튼 보통 여자는 아니었다. 물론 칭찬이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이쪽을 바라보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차언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여 여자와 인사했다. 카트에 앉은 아현이가 아직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어린 유안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귀여운 유안이는 엄마와 아빠를 절묘하게 닮아 남자아이임에도 눈에 띄게 미남이었다. 그래서 제가 참 예뻐라 했었다.
손질된 조기를 담은 차언은 카트를 끌고 송아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장 보러 오셨나 봐요.”
“네. 애기 이유식 만들어 주려고요.”
최근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더니 새삼 반가웠다.
“유안이도 안녕?”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 뺨이 빵빵한 애기가 방싯방싯 웃는다.
“참, 다음 주 주말에 저녁 식사 같이 하자고 하던데 시간 되세요?”
보나 마나 문성 남자들 틈에 섞여 함께 식사하는 자리겠지. 꼭 본인들끼리 하면 되는 걸 여자들까지 불러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같이 가자는 말에 거절하긴 그래 늘 동참했었다.
성 회장은 꼭 그렇게 식사 자리에 여자들까지 불렀고, 각자 짝과 함께 온 모습에 흡족해했다. 가정을 꾸린 조직원들을 보며 뭔가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르겠어요. 그래도 웬만하면 참석해야죠.”
지난번 윤송아가 일 때문에 바빠 자리에 부재했을 때 김종섭이 어떻게 했더라. 혼자 앉아 있던 김종섭은 유난히 심술이 나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와인만 마셔 댔다. 유난 떨지 말고 얌전히 밥이나 처먹으라고 괜히 여기저기 시비나 걸면서. 안 봐도 같이 가자고 윤송아를 괴롭힐 김종섭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웬만하면 참석하겠다는 그녀에게서 어렵지 않게 속사정을 읽었다.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네, 가세요. 아현이도 잘 가.”
꾸벅 고개를 숙이는 아현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차언은 식료품 코너를 돌아 나왔다.
“엄마, 초코.”
“그래. 우리 아현이 좋아하는 초코바 사서 이제 집에 가자. 보라색 초코바였나?”
좋아하는 초코바를 먹을 생각에 눈을 반짝이는 아현이를 데리고 차언은 과자 코너로 향했다.
마트에 갔다, 돌아와서 사 온 간식까지 잔뜩 먹고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이던 아이가 잠이 들었다.
어질러 놓은 장난감들을 정리하고 그러모은 차언은 아까 받은 세탁물을 확인했다. 역시, 어제 권석이 입었을 걸로 추정되는 남자 셔츠와 슈트 재킷, 팬츠까지 모조리 제가 더럽혀 놓았다.
“이거 놔라아. 차권석 이 나쁜 색퀴, 나는 더 마실 거야아.”
“대가리 그만 쥐어뜯어라.”
그의 등에 업혀 아현이처럼 발을 까딱거리며 개지랄을 했던 어제의 제가 서서히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으면서도 놓으라고 그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던 자신이…….
“쥐어뜯었다. 쉬바. 어쩔 건데. 어쩔 거야.”
터지는 그의 헛웃음이 꿈결처럼 들린다.
“아오, 이걸 그냥. 야, 정신 안 차려?”
“히잉, 우리 아현이 쭈쭈바 사줘야 하는데.”
앞도 뒤도 맥락도 없는 문장들을 지리멸렬하게 내뱉으며 훌쩍거리던 자신도.
“아현이 쭈쭈바 사 줘야 하는 분께서 술 쳐 잡숫고 길거리에서 뭐하세요.”
술을 마셔 중심을 잡지 못한 몸은 자꾸만 줄줄 흘러내리고 그가 엉덩이를 받친 팔을 추켜올리던 것도. ‘에휴, 애를 둘이나 키우네’, 한숨을 곁들이던 그의 목소리도. 모든 게 선명하게 떠올랐다.
“형님, 사모님 제가 업겠습니다.”
“뭐?”
“아, 아닙니다.”
이런 대화가 있었던 것도 언뜻 기억이 났다.
“됐으니까 그만 들어가 보라고. 거기 서서 뭣들 해.”
“하지만…….”
“걸리적거리니까 좀 비켜.”
“예.”
사방으로 그를 둘러싸고 있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위를 지키고 있던 수행원들.
“빨리빨리 걸어.”
가는 말에 채찍질이라도 하듯 허리에 감아 놓은 다리로 찰싹찰싹 그의 옆구리를 쳐 댔다.
“야야, 가만히 있어, 떨어져. 확 그냥 여기다 두고 가 버릴까.”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던 목소리 같았는데.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인파를 파헤쳐 나와 차에 탔던 건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 어떻게 했더라.
조수석에 앉은 자신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 좌석을 뒤로 젖혀준 그가 재킷을 덮어 주었었다. 재킷을 끌어안아 올려 목을 덮고 한참 동안 잤던 거 같았다. 결국 기억이 없단 소리였다. 그러다가 무거운 눈꺼풀을 열어 운전 중인 그를 멍하니 보았고.
관자놀이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닐 텐데 자신이 깨어났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말없이 콘솔박스를 열어 스틱으로 된 숙취해소제를 제게로 툭 던지듯 건넸었다. 처음엔 그게 숙취해소제인지도 몰랐었다.
“뭔데?”
“아현이 앞에서 네발로 기고 싶은 거 아니면 먹어.”
자신이 좌석 등받이를 조금 올렸고, 아현이가 공갈 젖꼭지라도 빨듯 스틱을 쭉쭉 빨며 자유로운 그의 오른손을 잡았던 거 같은데. 여태 정면만 응시하던 그의 시선이 돌아왔었고.
“손잡고 가고 싶어.”
헛헛한 웃음을 터트리던 그의 표정도 생각났다. 취한 주제에 아주 가지가지, 하고 싶은 건 다 한다던 그 속뜻도 이제야 알겠다.
“술이나 깨고 잡으세요. 또 다 잡아 뜯으려고.”
지난번 술에 취해 그의 손가락을 아드득 깨물어 상처를 남긴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 소리였다. 제가 깨무는 시늉을 하려 입안으로 확 들고 간 손가락이 혀에 닿는 순간 등골이 오싹한 기분에 휩싸였었다. 동시에 눈이 마주쳤고. 그가 손가락으로 톡, 톡 혀를 건드리고, 자신은 술에 꼴아 뜨거운 혀로 그의 검지와 중지를 할짝거리다 끝내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그의 자지를 빨 듯 손가락을 빨고 침을 덧대어 바르고 난리를 쳤었…….
그래, 그랬었다. 그가 철컥거리며 벨트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떡을 치기 위해 그가 준비하는 소리였다. 그러다 갑자기 울렁거리는 속에 제가 그의 손가락을 내던지듯 버리고 입을 틀어막았다.
“뭐, 토? 야 잠깐만. 잠깐!”
더이상은 기억을 떠올리지 않겠다.
차언은 깊이 시름했다.
도어 록 패스워드가 해지되는 소리가 들렸다. 권석이 퇴근을 한 것이다.
차언은 아이 장난감을 옆으로 밀어두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기억 안 난 척할까. 하지만 어제 자신이 저지른 만행의 증거물을 들고서 하는 소리치곤 설득력이 없을 게 뻔했다. 아니지, 그래도 기억이 안 날 수 있지. 은폐하자. 기억이 안 나는 척, 어제의 일은 기억에 없는 거야.
고개를 들었을 땐 그가 멍청히 서서 고개를 젓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술 아직도 안 깼어?”
“…깼어요.”
“정차언이 요즘 왜 이렇게 술이 잦지?”
그가 넥타이를 끄르며 자신의 헛짓거리를 지적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직장 생활이 다 그렇지 뭐, 라고 받아치기엔 그 변명은 이미 여러 번 써먹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회식보다도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잦았던지라. 스트레스 풀 겸 갔다는 소리도 너무 많이 했다.
“제가 어제 조금 취해서…….”
“조금?”
그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눈썹 한쪽이 삐죽 치켜 올라간다. 차언은 남자의 노여움을 흐린 눈으로 피했다.
“그, 조금 많이…….”
“아 김은찬 행원이랑 조금 많이?”
김은찬?
“당신이 은찬 씨를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긴, 내가 어제 김은찬 씨한테서 널 넘겨받아 업었으니까 알겠지.”
“아…….”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였다. 어젯밤에 자신이 기억해 낸 게 일부에 불과했었다니. 아연해져 말문이 턱 막혔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시선 역시 결코 말랑하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위험했다. 그의 심기를 감지하는 사이렌이 울렸다.
“그, 저녁 식사 아직이죠? 아, 셔츠 주세요.”
차언은 모른 척 입을 딱 다물고 손을 내밀었다.
“너 뭐하세요.”
“셔츠 드라이…….”
느물느물 빠져나가려는 제 꼼수를 보며 웃는 건지 화가 난 건지 묘한 미소를 흘리는 그가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끄른다.
“왜, 김은찬 그 새끼 셔츠나 드라이해 줘.”
이젠 명백히 화가 난 그가 반지가 끼워진 손을 뻗어 히스테릭하게 손목시계를 풀었다.
“제가 왜요. 김은찬 씨는 챙겨주는 사람이 따로 있겠죠.”
뻔뻔하게 미소를 머금었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에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들어나 보자. 어제는 왜 마셨는데. 회식은 아닌 거 같고.”
김은찬 행원과 윤하나 주임이랑 셋이 마셨으니 엄밀히 말하면 정식적으로 가진 회식 자리는 아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김은찬 행원이 잘 적응하도록 격려도 할 겸, 윤하나 주임이 고민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고 겸사겸사했다. 술 마신다고 하길래 좋다고 낀 건 함구하고 힐끔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은찬 씨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우리 금융기획부 단합 차원에서…….”
“아, 그래서 김은찬 씨한테 안겨 있었다?”
“어, 어, 어, 어떻게,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아, 안겨 있었어.”
“예, 예? 아니 그게 아니라…….”
저 낚으려 떡밥을 뿌리던 차권석이 제가 미끼를 물자마자 가면을 벗어 던지듯 눈동자를 달리했다. 신경질적으로 쥐고 있던 손목시계를 소파로 던지고 머리카락을 길게 헤집으며 쓸어 넘긴다.
“제가 취해서 비틀거려 가지고 잠시 기대 있던 건데.”
말을 하면 할수록 무덤을 파는 기분이란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왜 잠시 기댄 김에 모텔까지 잡아 가시지.”
“노, 농담이 너무 심해요. 제가 김은찬 씨랑 모텔을 왜 가요.”
“술 꼴아서 지 엎고 가는 게 누군지도 몰랐던 게 말은 잘한다.”
“…그, 샤워하고 나오세요. 저녁 준비해 둘게요.”
“샤워하고 올 테니까 너는 침대에서 기다리시구요.”
창백해져 가는 제 얼굴을 보면서도 그는 화를 눌러 참아 느긋해진 그 특유의 목소리로 뇌까렸다.
“뭐해, 들어가서 보지 벌리고 기다려.”
차언은 자신도 모르게 바지춤을 꾹 붙잡아 당겼다.
“그건 왜 잡아 올려. 너는 자지 먹을 때 바지 입고 먹어?”
들고 있던 세탁물이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대로 벌렸으면 좋겠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네 구멍에서 애새끼도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벌리라고.”
“그, 그럼 찌, 찢어져요.”
진심으로 두려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울먹거리자 별소릴 다한다는 듯 그가 웃는다.
“내가 찢어지게 두겠니.”
묘하게 올라간 입술, 가늘게 늘어진 눈매, 그의 웃음이 의미하는 바를 다 파악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모로 누워 양손으로 구멍을 펼쳐 보이며 코를 훌쩍였다. 손이 연거푸 미끄러져 계속해서 안을 드나드는 통에 자위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등줄기를 타고 맺히는 땀이 채 다 고이기도 전에 시트로 떨어진다.
“이제 대가리 안 쥐어뜯어?”
“대, 대가리요? 흐읏.”
“술 마시게 두라고 쥐어뜯고 지랄염병을 했었잖아.”
“아, 그게, 아흐, 아!”
그가 핫젤을 더욱 듬뿍 짜 구멍 주변을 꼼꼼하게 바른다. 속살을 향해 쏟아지듯 떨어지는 점성 높은 액체에 아랫배를 들썩거렸다. 얼마 전 김종섭이 산 성인용품에 딸려온 러브젤이었는데 온열감이 죽여줘서 인기 있는 제품이라는 알고 싶지 않은 투 머치 인포까지 뿌리고 갔다.
피부에 닿자마자 화끈거리는 액체는 쿨쩍쿨쩍 민망한 소리를 기괴할 정도로 내며 안팎을 율동적으로 드나들었다.
보짓물이끼가 뜨겁게 미끄덩거리는 인입구는 벌써 한참 전부터 배수구가 열려 물이 쫄쫄 샜다. 구멍을 덧그리던 손가락 두 개가 불쑥 침입해 들어왔다.
아현이 낳을 때 애 좀 먹었다고 늘 빨아 주고 핥아 주고 틈만 나면 침으로 연고를 발라 주던 그였다. 아이를 낳으며 평생 할 혼절을 다 할 정도로 유독 고통스러워했던 자신을 옆에서 지켜봐 더 그랬다. 오죽했으면 다른 병실에 있던 산모들도 다 죽어가는 자신에게 힘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한 시도 떨어지면 갈증이나 죽는 사람처럼 보짓구멍에 혀를 붙이고 살다시피 하면서도 이렇게 은은하게 빡쳐 있거나, 저를 벌 줄 때는 엄하게 굴었다. 눈물 콧물 쏙 빼며 빌고 빌어야 아득한 구멍질이 끝이 났다.
보지가 벌렁거릴 때마다 거의 밑 빠진 독에 물이 줄줄 새는 것처럼 정액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벌을 줄 만큼 줘 개운해진 심기를 대변하듯 그가 남긴 노여움의 잔여물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남았다. 늘 그랬다.
샤워를 하고 곧장 자신을 찾을 줄 알았던 그는 대뜸 주방에서 와인 한 병을 가져왔다. 그렇게 좋아하는 술 마음껏 마셔라, 이거였다. 오늘은 괜찮다고 손사래를 쳐도 안 마시면 이미 마개까지 딴 거 다 버린다기에 아까워 허겁지겁 마셨다.
영림 언니가 그랬다. 밥은 남겨도 술은 남기는 거 아니라고. 도수가 높은 와인이란 걸 한 병 가까이를 다 마시고 나서야 알았다. 마실 때는 몰랐는데 한 병 다 비워갈 때쯤 되니까 취기가 확 올라왔다.
그렇지 않아도 밑구멍이 불구덩이처럼 들끓는 열감에 자꾸 입이 풀리고 신음이 앙앙 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에게 쫓겨 마신 술까지 들어가 몸이 빙글빙글 돈다. 손가락이 펌프질을 하면 펌프 진동으로 살벽이 떨리고 웅덩이처럼 고인 핫젤이 음외한 소리를 내며 구멍 밖으로 밀려났다.
밑구멍이 뜨겁다. 후벼 파는 손가락에도 열상을 입는다.
“아흐읏, 흐으응!”
“왜, 어제 하던 거 계속해 봐. 너무 귀여워서 한 대 때려 주고 싶더라.”
“흐응, 으응, 아, 앙!”
“김은찬인지 김금찬인지 앞에서 했던 거 해 봐. 더 보고 싶은데. 하도 가관이라.”
휘발될 생각을 않는 취기에 머리가 거꾸로 돌고, 심장이 고꾸라져 뛰는 거 같다. 두툼하게 입구를 막고 있는 소음순 여닫이문을 연신 여닫으며 살벽을 벌리고 입성과 퇴출을 반복하는 손가락은 개수를 더해 갔다.
결국 직접 구멍을 붙들고 활딱 개방해 주던 제 손이 떨어져 나갔다. 모로 누워 있던 차언은 무게중심을 잡지 못해 털썩 시트 위로 누워 버렸다.
“그 새끼한테 뭐라고 그랬어.”
“아앙! 아, 흐, 아으응!”
“아앙? 아, 그 새끼 앞에서도 앙앙거리고 우셨어.”
트집을 잡으려 혈안이 된 사람 같이 구는 그가 신랄하게 비꼰다.
“아니이, 흣, 흐, 앙아!”
“술 꼴아서 보지 만져 달라고 울었다며.”
“내, 내가 언제에, 아, 하지, 아흐!”
“둘째 낳으면 그 새끼 애새끼일 수도 있는 건가, 차언아.”
말도 안 되는 소리도 이 정도 하면 재능이다. 이 구멍에 차권석 말고는 출입해 본 좆이 없는데 대체 뭔 개소리를 이렇게 치밀하게 하는지.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 정차언 입에서 술김으로 나올 실수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사냥을 첫 개시한 수사자 같았다. 이건 취중진담도 못 됐다.
“그 새끼한테 보지 벌리면서 뭐라고 했는데.”
“아흐응, 이 씨이… 아앙!”
“아, 씹질 해 달라고?”
“아니이… 으흐, 아앙! 아니야아. 잠깐 자지… 앙!”
“아, 씹질은 아니고 좆질 해 달라고 그랬어?”
그는 맥락도 없이 제가 툭툭 내뱉는 음절만 가지고 소설 한 편을 뚝딱 만들었다. 마치 끝말잇기가 문장으로 이어지는 기분이다.
첨습한 사잇길을 드나드는 손가락 갈고리가 두두룩하게 솟아 볼륨감 있게 들썩이는 경사로 주름을 파바박 찔렀을 때였다. 배꼽노리가 붙잡혀 들리듯 위로 솟고 엉거주춤 벌리고 있는 두 다리가 처량 맞게 떨렸다.
고온의 액체가 안을 벌기고 주름 사이사이를 헤적인다. 그의 씹질만으로 만족하기엔 이미 이 대물 자지가 주는 포만감을 익히 알고 있는 몸뚱이는 갈증으로 허덕거렸다.
제발, 차언은 하염없이 들끓으면서도 넘치지 않고 딱 사람 죽지 않을 정도까지만 몰아치는 절정감에 보지를 들썩거렸다.
이 갈급증이 무엇 때문인지 안다. 해소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남편의 거대 자지를 이 좁은 보지 속에 넣고 육질이 연해질 때까지 자지 매타작을 당하는 것.
“제바알, 흐, 넣어, 흐응.”
“뭐?”
“이제 넣어, 흣, 으응, 자지 넣어, 아!”
더이상은 참지 못하고 핫젤이 듬뿍 든 이 음탕한 구멍으로 그의 자지를 가득 넣어 달라 엉덩이를 흔들었다. 젖까지 들썩이며 제발 이 차권석 전용 보지를 네 자지로 쑤셔 박아 혼내 달라고 애원했다. 분화구라도 된 양 지글거리는 이 구멍 안까지 정액 기름 좀 주유해 달라고.
“너 진짜 이렇게 울었니? 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는 그악스럽도록 집요했다. 그가 던지는 물음표에 맞아 죽을 것만 같았다.
“차아현 어머니. 아가리가 있으면 말을 좀 해 보세요.”
지나치게 투실투실한 귀두가 입구를 비질하더니 이내 좁은 구멍을 터트릴 것처럼 들어서기 시작했다.
고리 조임근을 통과한 자지가 육기둥 가득 들어찬 알심을 들썩이며 자궁을 밀어 올리고 질궁까지 한달음에 직행한다. 좁은 불더미 속으로 뛰어든 귀두 불머리는 어느새 범로를 마구 침범하며 종횡무진 출산길을 쏘다니기 시작했다.
귀두 봉이 자유자재로 롤링하며 지스폿에 접착되는 그 밀착감에 차언은 울부짖었다. 굵고 크다. 그것도 엄청나게. 퍽, 퍽, 쑤셔질 때마다 젖은 자지로 보지 플러그를 후벼 파는 거 같다. 감전사 당할 것처럼 팔다리를 떨어 댔다.
맘마통이 헤드뱅잉이라도 하듯 길길이 널뛰며 흔들린다. 차언은 양 사방으로 가슴을 흔들어 대며 쾌감을 흡수하느라 바빴다.
“정차언 계장님, 아가리가 있으면 말씀 좀 해 보시라고. 어? 네 아가리는 앙앙거릴 때만 쓰라고 처뚫어 놨어?”
“아앙! 앙! 앙! 아! 아, 안, 흐!”
아현이 머리가 나온 산로를 내처 들어가는 육기둥이 또다시 번식 운동을 하기 위해 자지 매질에 한창이다. 씨를 전력투구하기 위해 자지 총부리를 미친놈처럼 휘둘러 대는 그가 무섭게 장전한다. 필요로 한 순간에 정액 총알을 발사해 버리겠다는 의지였다.
이음매에 치덕하게 뿌려 놓은 핫젤로 평소보다 배로 뜨거운 보지가 연거푸 물을 발포하며 그의 복근에 따발총질을 해 댔다. 그와 달리 자신은 의지로 어찌해 볼 수 없는 탄사였다.
칙칙, 소리까지 내며 오줌 발사에 한창인 요도구를 벌름거리면서도 차언은 엉덩이를 흔들어 좆물통을 잡아먹었다. 게걸스럽게 보지액을 흘리며 알배기 좆을 삼킬 듯 빨고, 그 쾌감에 부응하듯 요도구를 열어 싸개질을 해 댔다.
“으응, 맛있, 아흐, 아앙!”
“잘한다. 애 엄마가 딴 놈이랑 붙어먹다 걸려서 남편한테 따먹히기나 하고.”
비약이 심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입만 열면 쏟아지는 신음이 목구멍을 턱턱 가로막는다.
온몸을 뒤척이다시피 파르르 거리자 그가 등허리 밑으로 손을 넣어 척추를 일으켜 준다.
차언은 이때다 싶어 그의 목에 매달려 보지 각을 제대로 세우고 생고추를 퍽, 퍽 안으로 박아 넣었다. 씹털이 물에 젖어 잔뜩 엉킨 게 보였다. 그 더러운 광경도 꼴려, 생구멍 속으로 자지를 통으로 절구질하듯 찧고 쿵짝쿵짝 맛있게 받아먹었다. 직경이 좁은 구멍도 오늘은 핫젤 덕분인지 미끄러지는 좆물통을 유연하게 꿀꺽여댔다. 윗입으로는 침을 질질 흘려 대고 아랫입으로는 씹물을 칙칙 쏘아 대고, 물이란 물은 다 싸지르면서도 좋다고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면 정말 둘째를 바로 가질 것만 같았다.
제가 복용하고 있는 피임약도 무용할 거 같은 기분. 전멸하는 사위가, 온통 끊기는 호흡 속에서 번지는 그의 숨결이, 모든 게 그랬다.
“두, 둘째, 아앙! 아! 앙!”
“둘째 갖자고?”
제가 무슨 소릴 지껄이는지도 모르고 울어 젖혔다. 둘째가 들어설 것만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질강을 치받아 대며 몽둥이질하던 귀두 헤드가 질벽 안쪽을 퍽, 갖다 박았을 때였다. 살벽이 요동치고 천장이 무너지는 진동이 일었다. 이건 살을 뒤흔들고 몸은 조각내고 정신까지 박살 낼, 엄청난 강진이었다. 뒤따를 여진까지 심각하게 걱정이 되는.
아현이가 짜 먹는 요구르트를 가장 아래쪽에서 입구까지 쫙쫙 짜 올려 먹듯, 심지부터 꿀렁거리는 자지가 정액을 짜고, 허여멀건 정자 요구르트가 발포되듯 쏟아져 들어왔다.
왜였을까. 진심으로 피임약을 먹으면서도 오늘은 임신이 걱정됐다.
“한 번 더 술 꼴아서 다른 새끼한테 안겨 있었단 봐.”
침대 옆으로 손을 뻗는 그가 콘솔 위에 놓인 생수통을 열어 물을 마시면서도 잊지 않고 이 사달이 벌어지게 된 이유를 읊었다.
“대답은 내년에 할 거니.”
“아아앙!”
“하여튼 꼭 혼을 내야 말을 듣지.”
차언은 그의 자지가 뽁 뽑혀 나감과 동시에 쪼륵, 마지막 오줌을 발사하며 멍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누런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제 대답에 집착하고 있었다.
“엉덩이 딱 대, 너.”
찰싹, 찰싹, 맛있게 싸라고 그가 엉덩이를 때린다. 혼을 내는 건지, 쾌감을 북돋아 주는 건지 헷갈리는 찰싹임에 절정은 고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내도록 그녀의 목을 쥐고 흔들었다.
“우리 주정뱅이를 어쩌면 좋지.”
중얼거리며 한탄하는 그의 목소리는 집요했다. 사실 그가 뭐라고 하는지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이미 정신은 그녀의 육신을 탈주한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