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 Station RAW novel - Chapter 20
에필로그
아현이 아빠 복근 위에 올라가 가슴에다 스케치북을 대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VIP병실인데다 권석이 머무르니 사위가 조용하다 못해 삼엄하기까지 했지만 아이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슥삭슥삭 크레파스가 스케치북 위를 연신 오고 다니는 소리만 병실 안을 채웠다. 하원을 하자마자 아이를 픽업해 온 백겸이 곧장 병원으로 아이를 데려다 날랐다.
맨날 복숭아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새우, 기차 그림을 그리더니 이제 스케치북 안엔 아빠랑 캠핑 가서 놀았던 것들이 가득했다.
“아빠. 집에 언제 가아?”
“아현이가 말 잘 들으면 빨리 가.”
“나 말 잘 들어. 반찬 투정도 안 해.”
“콩 안 먹는 거 아빠 다 알아.”
“…….”
자기가 콩을 안 먹어 아빠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아이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무리 아빠랑 약속을 했대도 못 먹는 반찬을 한 번에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당근이랑 호박은 먹기 시작했지만, 콩은 아직 아빠 몰래 숨기는데 그걸 아빠가 알고 있다니.
권석 역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억지로 못 먹는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하고 싶지도 않아서 모른 척 내버려 뒀었다.
아이가 꼭 쥐고 있던 크레파스를 더욱 바짝 움켜잡는다. 찔리는 게 있다는 행동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도 아이 같고 귀여워 권석은 지긋이 웃으며 뒤통수에 팔을 접어 받쳤다. 한동안 말이 없던 아이가 음음, 하고 망설이더니 큰 결심을 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제 먹을 거니까 가면 안 돼?”
“차아현.”
“으응.”
“엄마 말 잘 듣고 있어?”
“응.”
“확실해? 엄마한테 확인해 봐도 돼?”
정말 자신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이가 권석의 핸드폰을 들고 내밀었다.
“알았어. 엄마 이따 오면 물어볼 거야.”
헤헤, 웃는 뺨이 불그스름하다. 정차언은 아이가 그를 닮았다고 했지만 그가 보기에 아이는 정차언을 똑 닮았다. 하는 짓은 그냥 제 엄마 판박이였다. 정차언 또한 둘째를 꽤 적극적으로 원하면서도 그의 병원복 밑단을 붙잡으며 힐끔 눈치를 봤었다. 그때 차언의 모습과 지금 아현의 모습은 별반 차이가 없다.
둘째까지 태어나면 그가 감당해야 할 사고뭉치가 셋이라는 얘긴데. 그럼에도 갖고 싶다니 어째, 만들어 줘야지.
“아현이 동생 생기면 잘해 줄 수 있어?”
“잘해 주는 거가 어떻게 하는 거야? 친구들한테 하는 것처럼?”
“비슷해.”
“응.”
잘 할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는 또 차언을 닮은 눈으로 말갛게 웃는다. 가끔은 정말 정차언 둘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좋기도 하고. 나른하게 숨을 쉬자 아빠 복근 위에 앉아 있는 아이까지 덩달아 오르락내리락했다.
“한번 안아 줘?”
선심 쓴다는 듯 눈썹 끄트머리를 까딱이며 묻자 아이가 풀썩 다가와 목을 끌어안으며 꺄르르 웃었다. 아이에게선 언뜻 정차언의 살 냄새가 나는 듯도 했고, 그의 향수 냄새가 나는 듯도 했다. 당연했다. 내내 이리 부대끼니 아이에게 엄마아빠 냄새가 안 나는 게 이상할 테지.
“건주 삼촌이랑 뭐 했어.”
“삼초온이 기차 사 줬어.”
뭔지는 모르겠으나 장난감의 종류인 듯 해 보였다.
“또.”
“맛있는 거 많이 먹었어. 새우만두우.”
부녀가 붙어 퍽 살가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퇴근을 한 차언이 빼꼼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차언은 아빠 품에서 내려오려는 아현이한테 얼른 달려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현아, 아빠랑 잘 놀고 있었어?”
차언이 아이를 꼭 안고 쪽쪽거렸다. 권석은 애정 행각을 하느라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제 사랑들을 하염없이 눈에 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도 어쩌지 못한 웃음이 슬며시 스몄다.
그는 습관처럼 담배를 물었다 잇새에서 뺐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도 차언의 시선은 그에게로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