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153
제신입사원 강 회장 153화화
이번엔 내 차례(1)
“우리 언니 어때?”
“좋아 보이던데? 시원시원한 성격 아냐?”
“오랫동안 못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알던 언니가 아닌 것 같아.”
최은경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예전엔 뭐랄까…… 마냥 행복한 소녀 같았거든? 그냥 하고 싶은 건 꼭 하고, 깊은 고민 없이 이것저것 손대다가 아니다 싶으면 쉽게 포기해 버리고. 그러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던…… 어떨 때 보면 내가 꼭 언니 같은 느낌?”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데?”
“당당하잖아. 자기도 봤으면서.”
“소녀 같은 거랑 당당하다는 건 반대가 아니잖아. 당당한 소녀, 이게 이상해?”
“아니, 그런 당당함이 아니라…… 사회인으로 당당해진 느낌? 아빠에게 말하는 거 못 들었어? 자기를 그냥 대표이사 자리에 앉히라고 따졌잖아.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고.”
최석경의 과거 모습을 모르는 차종만은 아내가 말한 변화가 뭔지 알았다.
아내는 결혼까지 했지만 이제 갓 학업을 마친 어린애다. 그런 그녀가 언니가 변했다고 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다.
최석경은 어른이다.
어른이 된 언니의 모습을 오늘 처음 봤으니 그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거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어른이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많은 사람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 간다.
어른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책임감이다. 최석경은 그녀의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책임과 임무를 겪었기에 어른이 됐다.
하지만 최은경은 아직 그런 일을 겪어 보지 못했다. 그런 일을 겪고 그걸 받아들여야 어른이 되는데…….
차종만은 아내를 물끄러미 보며 웃었다.
과연 이 철부지는 그런 책임을 온전히 지고 이겨 낼 수 있을까? 무겁다고 내팽개쳐 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어른이 돼 버린 언니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 채 철부지로 살 것이다.
돈이 넘쳐 나는 부자의 딸들이 그렇듯.
“회사 짬밥 좀 먹었으니 그런 거지. 당신도 일하면서 이런저런 일 겪다 보면 언니처럼 거칠 것이 없어질 거야. 무서운 게 없어지니까.”
“그래? 그럼 난 어디서 일하는 게 좋을까? 아무래도 그룹 핵심인 에너지가 낫겠지?”
차종만은 머리를 저었다.
“거긴 언니가 있잖아.”
“언니 있으면 왜? 에너지가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언니가 재무부로 들어가니까 난 딴 부서로 가면 되지.”
“아니,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 장인께서는 에너지는 분명 장녀 몫이라고 생각할 거야. 거기서 아등바등해 봤자 그걸 당신에게 주지는 않아.”
“그럼 어디?”
“난 화학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
“화학?”
“2차 전지를 필두로 한 차세대 사업이 주류니까. 그룹 내 주가가 가장 높은 곳이잖아. 게다가…….”
최은경이 알아들었다는 듯 방긋 웃었다.
“거긴 아무도 없지?”
“그래. 중요 계열사 중에 오너 가족 없는 곳은 화학뿐이니까. 거기에 뿌리내리면 어떨까 싶어.”
자연스럽다는 건 아주 중요한 요소다. 최은경이 화학의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여러 부서를 거치고 언젠가는 최소 상무 타이틀을 단다.
그 과정에서 임직원은 최은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결국에는 누구나 화학은 둘째 딸이 맡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승계 방식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거기서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해. 아버님께서 당신 담당 부장이나 임원에게 넌지시 물어보실 건 분명한데, 그때 좋은 말이 나와야 한다고.”
“설마 아빠 앞에서 내 욕 하겠어?”
“욕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할걸? 아직 어리니까요. 점차 나아지겠죠. 어때?”
최은경은 소름이 돋았다.
무능하다는 것보다 더한 욕이다. 철부지라는 말이니까.
“이런 말이 나와야 해. 어린 줄 알았는데 다 컸더라. 이게 어른으로서 인정하는 평가니까.”
머리로는 알아듣겠지만 실행은 쉽지 않다. 그의 아내는 이제 갓 학업을 마친 어린애이니까 말이다.
차종만은 새삼 최석경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ST 그룹과 관계없는 곳에서 어린애 취급 받으며 일을 배웠다. 그리고 어린애 흔적을 말끔히 지운 뒤 그룹에 합류했다.
단지 오너 가문의 딸 정도로 선입견을 가졌던 그룹 임직원들은 그녀의 직장인 모습에 감탄했을 테고 후한 평가를 줬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룹에 스며드는 것을 아주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노력해 볼게. 그런데 오늘 형부는 거의 말이 없었지?”
“그러게. 조용하던데?”
“기분 안 좋은 표정은 아니었는데…… 우리 관찰하느라 말 없었나?”
차종만은 최은경이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우린 우리 일만 생각하자. 형님이 아무리 인정받는 기대주라고 해도 삐끗하면 쓰러지는 게 사람 일이야. 쌓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쓰러지는 건 한순간이야. 그게 사람 감정이니까. 그러니까 우린 가만히 지켜보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야.”
최은경이 마침내 편하게 웃었다.
남편이 꽤 듬직해 보였다.
* * *
“와이프 귀국했지?”
“네. 이젠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장인께서 본사에 자리 만들었습니다.”
“중공업은 어때? 자리 잡을 것 같아?”
“그건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ST에서 알아서 할 일이죠.”
이상재는 여전히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삼일의 지분이 적다고는 하지만 그거 둘째 손에 들어가는 거 아냐? 적어도 권리를 주장할 명분은 있잖아.”
“그러려고 시작한 일입니다. 나중에 둘째 몫으로 중공업 하나쯤은 줘야죠.”
“그냥 주기에는 너무 크잖아. 합병으로 국내 탑 3에 들어가. 그걸 쌩으로 넘겨줘?”
이상재 전무는 이미 ST 그룹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걱정한다. 든든하다고 해야 할지, 오지랖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도 그 큰 덩어리를 다 줄 생각은 없습니다. 원래의 몫만큼만 떼 줘야죠. 중장비 기계 부문 말입니다.”
“가능하겠어? 자네 동서도 ST에서 자리 잡을 텐데?”
“그런 목소리가 안 나오도록 해야죠. 어차피 최성과 합병할 테니까요. 그리고 우리 최성의 덩치도 더 키울 생각입니다.”
“우리? 어떻게?”
“동양중공업을 우리가 인수하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사실 중앙중공업부터 시작한 이 모든 일의 종착지는 동양중공업 인수였습니다.”
“그거 국영 기업이다. 적자라고는 하지만 공기업 특성상 어쩔 수 없어. 요즘 민영화라는 말 꺼내면 돌 맞아.”
동양중공업은 발전 설비, 산업 설비, 선박용 엔진 제작이 주 업종이다. 특히 발전 설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발전소를 건설할 때 항상 파트너처럼 따라붙는 곳이 바로 동양중공업이다.
“그렇긴 한데 동양중공업은 공기업이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공기업인 한전의 거래처일 뿐이죠. 게다가 시장 독점도 아니니까요.”
이상재는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너 그거 ST 그룹과 연계해서 생각한 거지?”
역시 빠르다.
“네. 신재생 에너지 기업으로 커 가는데 발전 설비까지 갖추면 금상첨화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국내 에너지 생산 최대 기업이 되겠는데? 원자력만 빼면?”
“세계 10위권 경제력 국가의 에너지를 담당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전체 시장 절반만 먹어도 한전과 비슷한 힘을 가지게 될 겁니다.”
전기의 배급은 한전 독점이다. 즉 국가가 통제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생산은 다른 이야기다. 한전의 자회사로 둔 여러 발전소가 있지만 신에너지 분야는 아직 한전의 영향력이 없다.
고만고만한 중소 에너지 회사들도 꽤 있지만 어쨌든 ST에너지가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치고. 그런데 그게 왜 삼일이나 중앙과 관계가 있지? 전혀 다른 별개의 사업 아냐?”
“민영화할 때 재계 10대 그룹은 발을 못 담그게 해야죠. 이번에 ST가 결국 두 중공업을 인수한 꼴이 되지 않았습니까? 대기업 쏠림 현상을 떠들어서 여론을 형성할 생각입니다.”
이상재는 기가 차는지 입을 떡 벌렸다.
“그럼 넌 장인도 이용해 먹은 거냐?”
“아니죠. 손해 봐야 이용당한 거죠. 이용한 게 아니라 결과만 보는 겁니다. ST가 삼일과 중앙을 먹었어요. 장인은 제 덕분에 엄청난 이득은 본 사람입니다.”
상위권 거대 재벌의 시장 독점을 막는다는 명분. 이 독점의 사례로 ST가 거론될 뿐이다.
“그럼 우리가 동양중공업을 인수한다고 치자. 거기 적자야. 적자 기업 끌어안아서 뭐하게?”
“흑자로 전환해야죠. 적자를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자꾸 더 나빠지는 겁니다. 발전 설비 분야 1위 기업이 적자라는 건 방만한 경영의 증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한전의 적자를 나눠 가지는 것도 한몫합니다. 우리가 인수하면 한전의 적자를 나눠야 할 필요가 없죠. 내부 정리하고 한전과 계산 정확히 하면 바로 흑자 전환입니다.”
“시나리오는 그럴듯하다만……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어.”
“자금 말이지요?”
“그래. 못해도 1조 5천억. 아니, 2조는 생각해야 할 거다. 지금 우리 그룹에서 그만한 자금을 동원할 수는 없다.”
“빌리면 됩니다.”
“야!”
이상재가 소리를 빽 질렀다.
“중앙중공업 꼴 나는 거 보고 싶냐? 단기 차입금이라도 끌어다 쓸래?”
“아뇨. 제가 빌려드리겠습니다. 은행 이자 수준으로 말이죠.”
이상재는 또 하나의 시나리오가 수면 아래에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담보는 주식으로 받겠구나.”
“그렇습니다. 계열사가 가진 자사주를 담보로 돈 빌리면 됩니다. 이 일은 이사장님도 단번에 승인할걸요?”
이상재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덩치 큰 기업 하나를 계열사로 넣는 호재를 조선희가 거부할 리 없다.
이런 일이 쌓일수록 그룹 회장으로서의 경영 능력을 재계에 증명한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내부 합의와 자금은 있는데…… 과연 정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이럴 때를 위해 전방위 로비를 해 오지 않았습니까? 산자부와 청와대만 설득하면 됩니다. 반대의 목소리는 동양중공업 내부에서만 나오도록 해야죠. 그쪽 노조가 분명 시끄럽게 할 겁니다.”
“그렇겠지. 철밥통이 날아가는 건데…….”
“어떻습니까? 진행하시죠.”
이상재는 한동안 강 회장을 물끄러미 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돈 빌려준다는 전주가 있는데 그걸 마다한다면 사업 때려치우고 낚시나 다녀야지. 그런데 너…….”
이상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돈 많다? 재벌이 내 밑에서 가방모찌하고 있었네?”
* * *
“동양중공업 인수?”
“네. 일단 거의 독과점 사업이고, 각 파트별 기술 경쟁력도 발군입니다. 다만 공기업이라 그런 장점이 경영 성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조선희는 갑자기 인수 건을 들고 온 이상재를 보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왜 갑자기 이런 제안을 꺼낼까? 회장 대행 체제에서는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왜 마음이 변했을까?
“좀 당혹스럽네요. 갑자기 공기업 인수라니…….”
왜 변했는지 묻는 말이다.
“공기업이 아니라 중공업 인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ST중공업을 보다 보니 지금이 딱 적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ST라면 이번에 삼일과 중앙을 전부 합병한 그 일?”
“네. 정말 거대 중공업이 탄생했죠.”
“그게 왜 이유가 됐을까?”
“경쟁자 전부를 제거할 방법이 나왔으니까요. 재계 10대 그룹은 인수전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하는 좋은 명분입니다. ST가 사돈이 될 삼일을 앞세워 편법으로 중앙중공업을 인수했다는 평가가 자자합니다.”
“상위 재벌이 블랙홀처럼 모든 걸 다 빨아들이는 위험 말이죠?”
“그렇습니다.”
조선희가 점점 더 흥미를 보였다. 더 나은 경쟁자가 없다는 건 인수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뜻이니 가능성이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