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177
제신입사원 강 회장 177화화
End of Era(5)
“응? 자네가?”
“네.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그런데 자넨 ST의 사위 아닌가? 구도가 좀 이상한데?”
“전 최성 사람입니다.”
강 회장은 이제 좀 더 명확한 정체성을 밝히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전 이상재 전무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상재 회장을 만들기 위해서 고려은행이 이 전무의 손을 들어 주시기를 바라고, 나머지 지분의 매입을 원하는 겁니다.”
“그럼 ST는? 이번 일과 관계없나?”
“도와주시기는 합니다. 제가 최성의 이인자가 되기를 원하시죠.”
“최성의 이인자라…….”
은행장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이제 최성은 혈연의 승계가 없다. 아직 젊은 이인자가 이상재의 뒤를 이어 최성의 일인자가 되기에는 충분한 여유가 있다.
“이거야 원…… 이번 최성 그룹 사태는 아무것도 아니구만. 앞으로 더 큰 회오리가 일겠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은행장은 강 회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일세, 난 지금 아쉬운 게 없는데 어떡하나? 아…… 오해는 말게. 주총에서 난 확실하게 이상재 전무의 손을 들어 줄 거야. 그게 우리 은행 자산 늘려 주는 확실한 선택이니까. 하지만 주식은 팔아야 할 이유가 없어. 나중에 꼭 필요할 때 팔 생각이네만.”
“나중에 꼭 필요할 때 살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울며불며 매달려야지. 장사하는데 가릴 게 있겠는가?”
은행장이 능청을 떨었다.
회장일 때는 몰랐다. 누굴 만나더라도 모두 점잔을 떨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만나 아쉬운 소리를 하니 점잔 떨던 은행장도 본모습을 보인다.
갑질은 아니다. 자신도 어려울 때는 매달린다는 솔직한 말까지 하지 않는가? 어쨌든 공짜는 없다.
“재단으로 들어온 고인의 자산은 주식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금도 있고, 부동산도 있고, 채권도 있습니다. 고인의 전 재산이 다 들어왔으니까요.”
은행장이 슬쩍 웃었다.
“눈치가 빠르구만.”
“예금 전부를 고려은행으로 옮기겠습니다.”
“얼마나 되나?”
“6천억이 조금 넘습니다.”
은행장이 또 놀랐다.
“강 회장님 쌈짓돈이 보통 아니구만.”
“부족하다는 말씀은 아니죠?”
“부족하다면 더 줄 텐가?”
“말씀드렸듯이 전부입니다.”
“설마 넣다 빼는 건 아니겠지?”
“소송 진행 중입니다. 대법원까지 가려면 못해도 3년은 걸리죠. 한 푼도 쓰지 않고 넣어 두겠습니다. 그리고 재단의 주거래 은행이 될 겁니다. 자산이 많으니 매년 수십억이 불어날 텐데, 어떠십니까?”
“더 욕심부리면 은행이 아니라 사채업자지. 좋네. 그렇게 하세나.”
강 회장은 이럴 때 해야 할 행동을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행장님.”
깊숙이 머리를 숙이자 은행장은 아주 만족한 표정이었다.
* * *
“바쁘신 중에 조문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다른 일 좀 보느라 뵙지도 못하고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이상재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별말씀을요. 아닙니다. 요즘 뉴스 보니까 바쁘실 만하더군요.”
대현중공업 주광식 사장은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그 유언장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정말 사회 환원입니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해석하기에 따라 사실과 다릅니다.”
“혹시 어렵지 않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너무 궁금해서 말이죠. 한국 대기업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아닙니까? 총수 지분 전부를 재단에 넘긴다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여차하면 경영권 방어가 안 되는데…… 외국 자본이 그룹을 차지할 수도 있어요.”
“오늘 뵙자고 한 건 지난번에 했던 약속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인데, 그 전에 사장님께서 궁금해하시는 거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연관 있으니까요.”
“제 약속? 아, 그 지분 의결권 말씀이시군요.”
여기까지 말하던 주광식 사장은 눈이 커졌다.
“혹시 그때 이미 유언장 내용을 알고 계셨던…….”
“네, 맞습니다. 유언장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모든 재산을 예전에 당신이 설립한 학술 재단에 기부한다.”
“그럼 사회 환원이 맞는군요.”
“그다음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다음 내용은 유언장은 아니고 학술 재단 정관입니다.”
“재단 정관이요?”
“네. 설립자의 사망 후 재단 이사장은 이상재로 한다.”
“아……! 그럼 전무님께서?”
“그렇습니다. 회장님께서 지명한 전문 경영인이 바로 접니다.”
“그렇군요. 사회 환원이라기보다는 전문 경영인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그런 거군요.”
“일부는 환원합니다. 그게 재단의 의무니까요.”
“그야 뭐…… 어쩔 수 없는 출혈이죠.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최성 그룹의 차기 수장이 되셨습니다.”
이상재는 그의 축하를 가볍게 받았다.
“그리고 정관에는 또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이사장의 친인척은 절대 최성 그룹의 임직원이 될 수 없다. 또한 이사장은 친인척에게 이사장직을 물려주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전 최성 그룹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정말 스쳐 지나가는 경영자일 뿐입니다.”
정말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재벌 2세가 그룹을 타인에게 맡겨 버리다니?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최성은 해 버렸다.
“그래, 지분 확보는 다 하셨습니까? 유언에 따른다 해도 지분이 모자라면 유언과 무관한 일이 돼 버리지 않습니까?”
이상재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미 끝냈습니다. 개미 주주 전부가 한마음으로 절 거부한다면 모를까…….”
“개미 주주들이야 뭐…… 자식들보다는 이 전무님을 더 믿겠죠. 이거 제 축하가 성급한 건 아니었습니다그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죠. 그래서 사장님께서 보유한 최성 지분 의결권. 그걸 써 주십사 하는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우린 서로 인질을 잡고 있는 형국 아닙니까? 하하.”
무려 5천억에 달하는 지분이다. 이로써 다음 임시 주총에서 이변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주총 끝나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상재가 일어서자 주광식도 일어섰다.
“아무튼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이상재 회장님. 제가 첫 번째로 회장님께 축하드리는 거 맞죠?”
“그렇습니다. 하하.”
이상재는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회장이라는 호칭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대하는 주광식 사장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재벌가는 정말 징글징글한 놈들이다. 이렇게 계급에 따라 대하는 게 차이가 나니 말이다.
그의 웃음에는 경멸이 섞여 있었다.
* * *
최성 그룹 주주 총회에서 기자들이 이만큼 모인 건 처음이었다.
오늘 결과에 따라 최성 그룹 주인이 강 씨에서 다른 성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바뀌는 건 확실한데, 그 다른 성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강 회장 가족은 주총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최성 그룹 회장실에서 단 하나의 사실을 두고 변호사를 닦달하는 중이었다.
“그 빌어먹을 재단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소송 끝날 때까지 묶인 거 아냐?”
“집을 저당 잡혔다고 해서 그 집에서 살 수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매매는 못 하더라도 주주의 권리는 똑같습니다. 배당도 받아야 합니다. 다만 배당금을 쓰지 못하는 것뿐이죠.”
“그럼 그 재단이 그룹 지분 19퍼센트로 회장 자리에 앉는다는 거야?”
“19퍼센트로 되겠습니까? 어쩌면 오늘은 아무런 결론도 나지 못한 채 끝날 수 있습니다.”
강동성은 비서진을 향해 소리쳤다.
“대주주들은? 특히 은행, 그중에 고려은행은?”
“은행들은 대답을 미뤘습니다. 오늘 주총에서 결정한다고…… 고려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14퍼센트 지분의 국민연금공단은 기권입니다.”
“야, 이 새끼야! 그게 다행이냐? 우리 손을 들어 줘야 다행이지! 기권이면 우리가 더 불리하다는 거 몰라?”
강동성이 씩씩대며 소리 지를 때 강동훈이 들어오며 소리쳤다.
“조용히 좀 하고, 총회장 모니터 봐 봐.”
사옥 강당에서 준비 중인 주총을 볼 수 있는 모니터로 단상로 걸어 들어오는 이상재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저 인간이 왜?”
가족 세 사람은 하던 일을 멈추고 모니터에 집중했다.
이상재는 단상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주주 여러분. 최성 그룹 미래전략본부 본부장이었던 이상재입니다.]이상재는 주주들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임시 주주 총회에 앞서 주주님들께 돌아가신 고 강용호 회장님의 마지막 유훈을 들려드리려 이 자리에 섰습니다.]강 회장의 유훈이라는 말에 조선희가 소리쳤다.
“저놈 저거…… 지금 뭐라는 거냐?”
“조용! 일단 다 들어 보자고요.”
장남은 어머니의 입을 막고 이상재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모니터 속의 이상재는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창업주인 선친은 척박한 땅에 최성이라는 묘목 몇 그루를 심었고 난 그 묘목이 울창한 숲으로 자라도록 평생을 바쳤다. 하지만 난 최성이라는 울창한 숲을 이루지 못했다. 고작 몇 그루의 묘목을 더 늘렸고 묘목이 겨우 햇빛이나 가릴 정도의 나무로 키우는 게 고작이었다.
이것은 내 능력과 그릇이 딱 그 정도였지, 함께 고난을 겪었던 임직원의 능력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최성은 선친으로 시작했지만, 나 강용호의 것도 아니며 강용호 가족의 것도 아니다. 이만큼 키우는 데 인생을 바친 모든 임직원의 것이며 앞으로 인생을 바칠 미래의 임직원 또한 제 몫이 있다.」
「나이 칠순인 내게 남은 건 능력과 역량이 충분한 사람을 찾아내 최성을 풍요롭고 울창한 숲으로 만들도록 부탁하는 것뿐이다.
처음에는 내 혈육도 생각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혈육은 나무 그늘에서 따가운 햇빛을 피하고 그 과실을 따 먹는 데 만족할 뿐 나무를 돌보며 키울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상재가 여기까지 읽었을 때 모니터에 집중하던 두 아들은 이를 악물었다.
「최성이라는 나무는 따가운 햇볕에 얼굴이 시커멓게 타고, 물 대느라 십 리 떨어진 강에서 물을 지고 올 사람이 돌봐야 한다. 내 자리에는 그런 사람이 앉아야 한다.
그 사람은 바로 내 모든 것을 기부한 SDS 재단의 이사장이 될 것이다.
사람에게 물려주지 않고 재단에 물려준 이유는 내 후임도 나와 같은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내 후임도 나처럼 최성이라는 나무를 잘 가꿀 사람을 선택하여 재단 이사장에 선임하고 회장 자리를 물려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까지 읽은 이상재는 종이를 다시 품속에 넣었다.
“SDS 재단의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이었던 회장님은 차기 이사장으로 부족한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강 회장의 뜻은 이상재가 바로 후계자라는 것이다. 주주 총회장은 단번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단 정관에는 이사장을 역임한 사람의 친인척은 재단에서 그 어떤 자리도 차지할 수 없다. 또한 이사장의 친인척이 최성 그룹에 입사한다면 그 즉시 이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렇게 못 박혀 있습니다.”
이상재는 주주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로써 최성 그룹은 전문 경영인 체제가 완전히 이뤄졌습니다. 이제 최성 그룹은 온전히 주주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회장님의 뜻에 따라 최성 그룹을 울창한 숲으로 만드는 데 전념하겠습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주주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상재가 다시 허리를 숙이자 총회장에서는 엄청난 파도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