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196
제신입사원 강 회장 196화화
마지막 퍼즐(1)
“회장 간판 달고 어디 돌아다니는 게 영…… 그래서 말인데…….”
이상재는 강 회장의 얼굴을 힐끔 보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 이제부터 아플 계획인데…… 어떠냐?”
아프면 아픈 거지, 계획은 또 무슨 말인가?
하지만 곧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혹시 힘드십니까?”
“내가 힘들다고 포기하는 거 봤냐? 힘이 안 나니까 그런 거지.”
“아니, 회장 자리 앉으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매너리즘에 빠지신 겁니까?”
이상재는 손을 내저었다.
“나 설득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아프다고 드러누웠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생각해.”
은퇴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너무 이르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이렇게 느닷없이…….”
“넌 갑자기겠지만 난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거다. 갑자기 사퇴하면 혼란만 커지니까 서서히 퇴장하는 방법을 쓰는 게 낫겠다 싶어.”
강 회장은 말없이 이상재를 바라봤다.
언젠가는 맞닥뜨릴 문제지만 그날이 너무 빨리 왔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이미 결심했다는 뜻이고, 이상재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다.
“아픈 척하시고 뭐 하시려고요?”
“뭐 하긴 푹 쉬는 거지. 설마 일일이 결재해 달라고 쪼르르 달려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마는…… 쉬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는 걸 잘 아시는 분이 그러니까 믿기지 않아서요.”
가장 아픈 곳을 찔렀는지 이상재도 조금은 시무룩한 얼굴이다.
“내가 헛살았다는 증거야. 쉬는 법도 모르고 노는 법도 모르니까. 뭘 해도 재미가 없어.”
최성 그룹 회장 자리를 빨리 넘겨주려는 뜻도 알고, 그룹 임원들의 반발도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안다.
하지만 지금 모든 일에서 손을 놓아 버리면 이상재는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살아갈지도 모른다.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니 말이다.
이상재에게 남은 시간은 아직 많다.
그 많은 시간을 무료하게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강 회장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뭘?”
“SC인터내셔널은 해외 투자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자원은 물론이고 해외 기업에도 투자할 생각이죠.”
이상재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미 무슨 뜻인지 짐작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외국 돌아다니라고?”
“수행원 붙여 드리겠습니다. 각 지역마다 해당 법인이 있으니 불편하시지도 않을 거고요. 보고받은 거 검토하셔도 좋고, 아이템을 직접 개발하셔도 좋고.”
“해외 출장 다니며 쉬라는 거냐? 그건 또 일이잖아.”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이상재의 얼굴이 점점 더 밝아졌다. 마치 한창 일할 때인 30대 같지 않은가?
“일 절반, 휴식 절반. 이렇게 해야 제가 나쁜 놈이 안 되죠. 그래서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네. 혼자는 안 되고 사모님과 함께 다니십시오. 그리고 한 지역에서 한 달 이상 머물러야 합니다. 과거 한창때처럼 일주일에 4개국, 열흘에 7개국 출장 같은 건 절대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필요하면 전세기도 가능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집사람이랑?”
“평생 집을 잠자는 곳으로만 쓰시지 않았습니까? 더 나이 들기 전에 사모님께 점수 왕창 따 놔야 노년에 구박받는 거 면합니다. 회장님이야 장기 출장이겠지만 사모님에게는 세계 여행 아닙니까? 이런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슬쩍 말씀드려 보십시오. 정말 좋아하실 겁니다.”
세계를 여행하며 적당히 일한다.
그렇게 쉬는 법을 배우고 일을 줄여 나간다면 무기력한 은퇴 생활은 없을 것이다.
인생의 계획 중에 가장 중요한 노년 설계를 받은 이상재는 곰곰이 생각하다 머리를 끄덕였다.
“대신 방법을 좀 바꾸자.”
“네?”
“내가 명색이 최성 그룹 회장인데 SC인터내셔널 업무만 본다는 게 좀 이상하지? 그러니 처음 말한 대로 아픈 걸로 하자.”
“그럼 일이 좀 복잡해지는데요?”
“복잡할 거 없다. 오태호가 거기 맡아서 하고 있지? 그 친구에게만 말해. 그리고 업무 잘 아는 애 두어 명 내 보좌로 붙이고. 해외 법인은 모르게 하면 되잖아. 괜히 의전한다고 번거롭기만 하다.”
“그럼 편찮으신 건요? 그룹 임원들이 병문안이라도 가겠다고 할 건데요?”
“미국에 치료받으러 가는 걸로 하자.”
강 회장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요즘 누가 치료받으러 미국 갑니까?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시대라고요. 해외 진출한 스포츠 스타들도 한국에서 치료받는데.”
“아저씨들은 그런 거 모른다. 여전히 미국이 최고인 줄 알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방향을 정하는 사람과 디테일을 만드는 사람. 역할은 항상 그렇게 정해졌다.
이상재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
* * *
“그래서 전 당분간 좀 쉬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에서 완전히 손 떼는 건 아닙니다. 늘 보고받을 거고 현황 팔로우 업은 계속합니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회의실을 가득 메운 계열사 사장단은 잠시 웅성거렸다.
“얼마나 심각하시길래 미국행을……? 정말 괜찮으십니까?”
걱정 어린 말에 이상재는 호탕하게 웃었다.
“거참, 큰일 아니라니까요. 이참에 좀 쉬려고 합니다. 마이애미같이 따뜻한 곳에서 말이죠. 쉬면서 컨디션 회복하는 겁니다. 아니…… 안식년 같은 거라고 해 두죠. 그래서 제 집사람도 함께 갑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이상재는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우리 최성 그룹은 늘 그랬듯이 회장 부재중에는 미래전략본부가 대리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준현 본부장이 절 대리할 겁니다. 그러니 각 계열사 현황 보고는 황 본부장에게 하십시오. 황 본부장은 현황을 취합해서 제게 보고할 겁니다.”
보고라는 말이 사장들에게는 영 귀에 거슬리나 보다. 모두 불편한 표정이다.
과거 이상재가 본부장일 때야 회장님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고 능력도 좋다는 걸 인정했기에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본부장은 실력이 출중하다 해도 영 미덥지 못하다. 그냥 처가가 ST 그룹이라 후광 효과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이상재는 불만의 싹을 밟아 버렸다.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회장 대리라고 하면 그냥 중간에서 말이나 전달하는 메신저가 아닙니다. 회장의 권한을 고스란히 다 가진 겁니다. 그러니까 임직원들의 인사권은 물론이고 대표이사 인사권까지 가졌다는 말입니다.”
인사권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모두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대표이사를 승진시킬 것도 아니니 여기서 말한 인사는 해임 하나뿐이다.
“제가 굳이 이런 말까지 하는 건 말입니다. 우리 황 본부장이 좀 어리고 직급이 낮으니 사장님들께서 은근슬쩍 뭉개고 무시할까 봐 염려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상재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사장들을 쓱 둘러보며 말했다.
“저는 물론이고 돌아가신 강 회장님보다 더 냉혹하고 칼바람 부는 사람이 바로 황 본부장입니다. 실수하거나 선을 넘는 행동을 하신다면 바로 그날, 대표이사 해임이라는 인사 발령 내리는 걸 조금도 주저할 인간이 아니라서…… 조심하라는 경고입니다.”
가장 의미심장한 말이 뒤를 이었다.
“황 본부장은 어쩌면 돌아가신 강 회장님과 가장 닮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게 가장 이해하기 쉽겠지요.”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강 회장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었다.
“저 그렇게 나쁜 놈 아닙니다.”
하지만 쏠린 시선은 이미 냉혹한 놈으로 보는 듯했다. 경계가 가득한 눈빛이다.
* * *
“조카 둘을 최성 그룹에 취직시켰다고?”
“네. 혹시 무슨 소리라도 들으셨습니까?”
장인이 웃으며 말했다.
“남동생은 왜 쓸데없는 짓 하냐며 뭐라 그러고, 여동생은 고맙다며 잘 좀 챙겨 달라고 부탁하더라.”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싫으면 언제든 애 데려가라고 했지. 다만 조카도 다 큰 성인인데 그 선택도 좀 존중해 주는 게 어떻겠냐고 잔소리했지, 뭐.”
아직 어떤 보고도 올라오지 않은 걸 보면 계속 다니기로 했나 보다.
“그래, 무슨 일 있나?”
“아…… 네. 이상재 회장께서 은퇴하셨습니다.”
“뭐?”
최진혁은 너무 놀라 의자가 뒤로 넘어갈 뻔했다.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니 저리 놀랄 수밖에.
“갑자기 왜?”
“저도 그렇게 물었는데…… 갑자기는 아니고 오래전부터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자네가 받고?”
“네. 다만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완충 시간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이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에서 휴식 겸 치료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안식년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래서 제가 회장 대리를 맡았습니다.”
최진혁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참…… 대단한 사람이야. 살면서 그 정도로 확실하게 선 지키는 사람은 처음이야. 이건 뭐…… 권력욕도 없고 돈 욕심도 없다는 거잖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장인어른께서도 그런 욕심 보이지는 않으셨습니다만…….”
“나야 욕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욕심을 충족시킬 것 같지 않아 포기했던 거지. 그러다 자네가 우리 식구가 되고 나서 가능성이 보였으니 숨겼던 욕심이 막 드러나지 않았는가? 내가 동생들 내친 거 보면 욕심 없었다고 말하지 못해.”
“그건 좀 다른 비유 같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원래 당신의 것이었던 걸 차지하신 것뿐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욕심은 있죠. 그게 과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최진혁이 피식 웃었다.
“뭘 그리 좋게 포장하나? 그냥 평범한 욕심이야. 그건 그렇고, 이 회장은 그럼……? 정말 미국에서 쉬는 건가?”
“아닙니다. 이 회장이 다른 건 몰라도 일 욕심은 누구보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일은 계속하실 겁니다.”
강 회장이 앞으로 이상재가 어떤 일을 할지 설명하자 최진혁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일 욕심이 아니라 일중독이지. 그리고 그런 건 본부장급에서 할 일인데…… 정말 실무 타입인가?”
“가장 잘하는 일이죠. 그리고 가장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대신 너무 과하지는 않을 겁니다. 부인이랑 함께 다니니까요.”
“뭐, 부인도 함께? 그거 참…… 하하. 부인은 세계 여행이 확실한데…… 이 회장은 휴식이 아니겠는걸?”
“그동안 잃은 점수 만회하겠답니다.”
웃음을 그친 최진혁이 물었다.
“그래, 회장 대리로서 가장 먼저 뭐 할 건가? 그냥 관리만 할 건가?”
“아닙니다. 사실 생각하고 있던 건데 시기를 좀 앞당기면 어떨까 해서 장인어른께 상의를 드리려고요.”
“뭔데? 혹시 상의가 아니라 통보 아냐?”
“아닙니다. 꽤 큰 건이라서요. 중공업을 상사처럼 구조 조정하고 싶습니다.”
“합병?”
“네.”
“흠…….”
두 그룹의 중공업 부문이 하나가 되면 국내 1위 자리는 물론 단일 기업으로 재계 서열 상위권에 오를 정도다.
“최성중공업은 화학보다 더 그룹의 중심입니다. 다루는 분야도 많고요. 그래서 통상의 합병이 아닌 물적 분할로 지주 회사를 설립하고 그 아래에 전 부분을 계열화할 생각입니다.”
“지주 회사를 세운다면 지분 문제도 포함인가?”
“네. 규모가 자꾸 커지니 이대로 두면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물적 분할, 그거 문제 있는 거 아냐? 주총에서 통과하겠어?”
“그 문제를 뛰어넘어야 경영권을 유지합니다. 우리가 달리 재벌이겠습니까?”
씩 웃는 사위를 보자 할 말이 없었다. 마치 세상을 뜬 아버지를 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