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20
제신입사원 강 회장 20화화
아들이 친 사고는 아버지가 수습하고(2)
“이상재라…….”
최 사장은 다시 오 과장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넌 왜 이걸 쥐려고 해? 손 털기 딱 좋은데? 정치권으로 넘어가서 인천이네, 동해시네 하며 싸우든 말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야?”
“사업 아닙니까? 동해로 넘어가면 6천억이 넘을 사업입니다. 우리 역할만 확실하다면 100억은 벌어들일 사업입니다. 운영권까지 포함한다면 더 되고요.”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 나오자 오히려 최 사장이 말문이 막혔다.
“물론 저도 건설에 끌려다니면서까지 이 사업을 진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거절하고 싶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깃발 들 수 있습니다.”
드디어 최 사장도 할 말이 생겼다.
“지금 너나 나나 되게 이상한 거 알지?”
“네?”
“냉정하게 팩트만 보면 신입사원이 하루 땡땡이치고 와서 떠드는 소리에 넌 흥분하고 난 걱정하는 꼴이라고. 쪽팔리지만 이게 전부야. 어떻게 생각해?”
이번엔 오 과장의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내심 신입의 말이 마냥 엉터리 같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입의 여유 넘치는 모습은 항상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불러 봐.”
“네?”
“그놈 데리고 오라고.”
“아, 네.”
* * *
오 과장의 손에 끌려 들어온 신입은 긴장한 티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슬며시 웃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앉아.”
신입은 소파에 털썩 앉더니 사장실을 휘휘 둘러보는 여유까지 부렸다. 이놈 봐라?
강 회장은 물산 사장실이 좋았다.
다른 사장 놈들과 다르게 최 사장은 물욕이 별로 없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몸 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월급과 인센티브 외에는 회삿돈을 사적으로 쓰지도 않았고, 지금의 사장실 집기도 전임 사장이 쓰던 것이다.
가늘고 길게 가는 직장인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갑자기 강원도로 달려간 이유가 뭐야?”
“네? 아…… 오 과장이 두 버전의 보고서를 원했습니다. 물산이 빠져야 할 이유가 담긴 보고서. 참여해야 할 이유가 있는 보고서.”
“그래서?”
“확실하게 돌다리도 두들겨 가며 해도 불안한 게 사업이니 이렇게 계륵 같은 사업은 굳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빠져야 할 명분을 생각하다 보니 외부 요인으로 사업이 무산되는 게 가장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강원도로 달려가 도지사를 만나? 그게 보통의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야?”
“제가 보통이 아닌가 보죠.”
“뭐?”
저런 말을 사장 앞에서 뻔뻔스럽게 뱉는 신입사원이라니.
최 사장은 물론이고 오 과장까지 입을 떡 벌렸다.
“곧 지방선거 아닙니까? 그리고 석탄 하면 떠오르는 곳은 인천이 아니라 강원도고요. 이 건을 강원도로 넘기면 정치 공방으로 이어질 테고, 어쩌면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도지사가 만나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어?”
“무려 최성물산 비서실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 회사원 명함과는 무게가 다르죠.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바로 사장님 생각이라고 믿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날 판 셈인가?”
“최성물산을 판 셈이죠. 이 사업, 주도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하실 것 아닙니까?”
“아직 결정 안 했는데?”
강 회장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최 사장의 눈빛을 담담히 받았다.
어쩌라고?
어차피 아들내미가 들러리 서는 일만 막으면 됐다.
만약 인천이 무산되고 강원도로 넘어간다면 ST에 한 방 먹인 것이니 더 바랄 것도 없다.
회장이야 몇천억짜리 사업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월급쟁이 계열사 사장은 그런 여유를 보일 만한 짬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꼭 해야 한다.
최 사장은 말없이 쳐다보는 신입이 부담스러워지기는 처음이었다.
이놈은 혀 대신 눈으로 말한다.
어차피 할 거 아냐?
이런 이상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최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신입이 아니라 오 과장에게.
“오 과장.”
“네.”
“혹시라도 도지사 측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사업 재검토해. 자원부 애들이랑 TFT도 꾸리고.”
“알겠습니다.”
“됐어. 나가 봐.”
두 사람이 나가자 최 사장은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저놈 저거…… 영 찝찝한 놈인데…….”
* * *
사장실에서 나온 강 회장은 오 과장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선수를 쳤다.
“아까 사장님이 말한 TFT 말입니다.”
“응? 아, 그거…… 왜,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어?”
있을 턱이 있나?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TFT야말로 실무 아닌가?
“그게 아니라 거기에 나 넣지 말라고요. 나 넣어 봤자 도움도 안 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까요. 미리 말하는 겁니다.”
“야! 이거 니가 시작한 거야. 그런데 마음대로 빠진다고?”
“시작은 자원부에서 했죠. 난 그냥 복잡하게 꼬여 있는 걸 싹 잘랐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매듭 꼬는 건데, 한번 해 본 놈들이 낫겠죠. 아무튼 난 빠집니다.”
오 과장은 신입이 제멋대로인 놈인 줄 알아서 화도 나지 않았다. 여전히 기가 찰 뿐이다. 그리고 아직 강원도에서 연락도 안 왔다.
TFT든 뭐든 강원도가 하겠다고 해야 시작한다.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라. 강원도지사가 할지, 말지 결정하…….”
“쉿.”
강 회장은 울리기 시작하는 핸드폰을 흔들었다.
“선거 앞둔 정치인은 조급하기 마련입니다. 고민하는 건 하룻밤이면 충분하죠.”
강 회장은 웃으며 통화를 시작했다.
“여보세요?”
-황준현 씨죠. 전 어제 만났던…….
“네. 목소리 기억합니다. 지사님 참모분.”
-그렇습니다. 어제 지사님과 충분히 논의했고, 동해시장님과도 뜻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석탄 부두 동해시 유치를 시작할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우리 최성물산도 준비하겠습니다.”
통화 내용을 듣던 오 과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수천억짜리 사업을 물산이 깃발 들고 진행한다. 참 오랜만에 직접 손대는 사업이다.
-그래서 말인데, 최대한 빨리 사업 계획서 좀 만들어서 보내 주십시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밝게 통화하던 강 회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사업 계획서를 왜 우리 최성물산이 만듭니까?”
-네?
“동해시 석탄 부두 유치 사업, 그거 주체가 누군데? 강원도 아닙니까? 우리가 선거에 써먹을 기막힌 아이디어를 줬으면 감사합니다, 인사부터 하는 게 순서 같은데? 그리고 사업 계획서 만들어서 선거에 써먹고.”
-아니, 갑자기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 사업 하겠다고 먼저 제안한 쪽은 바로 최성물산입니다.
“그러니까 고맙다는 말부터 하라고. 사업 계획서? 그걸 우리가 왜 만드나?”
-뭐야,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참모의 큰소리는 핸드폰을 지나 오 과장의 귀에도 들렸다.
“이봐요, 참모 양반. 내가 당신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몰라. 전화번호도 모르지. 그런데도 아이디어 줬어. 도지사님 참모라고 믿고 말이야. 그런데 지금 말하는 것 보니 참모가 아닌 거 같어. 일의 순서도 모르는 맹탕인데 어떻게 지사님을 보좌하지?”
강 회장은 길게 숨을 한번 내쉬었다.
“잘 들어요. 사업 계획서 만들어서 보내. 그럼 우리가 검토해서 보완할 부분 다 챙겨 줄 테니까. 그게 올바른 순서라고. 그리고 우리 제끼고 딴 곳이랑 입 맞출 생각 하지 마. 우리가 파투 내려고 마음먹으면 그거 강원도가 못 가져가. 인천에 못 박아 버릴 테니까. 거…… 바쁜데 일 좀 똑바로 합시다. 정신 차리고 앞뒤 분간도 좀 하고. 알겠소?”
전화를 끊은 강 회장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이런 병신을 데리고도 선거에서 이기다니. 강원도지사도 운 좋구만.”
말 끝나기가 무섭게 오 과장이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방금 강원도 전화 아냐?”
“맞습니다.”
“그런데 왜 니가 시작해 놓고 니가 판을 깨? 제정신이냐?”
“판을 깨긴 누가 깼다고…… 이제 시작인데…….”
“그게 판 깨자고 하는 소리지. 도지사 참모라면서? 그런 사람에게 왜 지랄이야, 지랄이?”
사소한 태도 하나 때문에, 별 뜻 없이 던진 말 한 마디에 사업이 무산되는 일은 없다. 다만 담당자는 실패의 이유를 거기서 찾는다.
사업은 절박하지 않은 쪽이 끝내기로 마음먹었기에 무산되는 거다. 어떻게 보면 연애와 비슷하다.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먹은 쪽이 사소한 언행 하나를 트집 잡아 긴 연애를 끝내는 것과 똑같다.
지금 절박한 쪽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고, 절박하지 않은 쪽은 발 빼고 싶어 하는 최 사장의 물산이다.
“기업이 왜 정치인 눈치를 봅니까? 그것도 보좌관에 불과한 놈을.”
“뭐?”
“기업과 정치인의 상하 관계는 이미 돈 쥔 기업이 상전 된 지 오래됐습니다. 그리고 아쉽고 급한 건 저쪽이라고요. 그냥 기다리면 됩니다. 내가 장담하는데, 오늘 안으로 도지사가 직접 사장님 찾는 전화가 올 겁니다. 그리고 이 사업 진행 카드는 아직 사장님이 쥐고 있어요. 최종 승인권자의 최종 가부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지금 할 일입니다.”
강 회장은 입만 떡 벌린 오 과장을 모른 체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마지막 카드는 최 사장이 쥐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가 이 사업에서 빠지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강 회장은 아들이 바보 되는 거 막은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이젠 제대로 된 일을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는 다름 아닌 회장실 비밀 창고에 들어 있는 돈을 좀 가져오는 일이다. 지난번처럼 작은 백팩에 돈을 쑤셔 넣고 오는 정도로는 안 된다. 박스째 가져와야 하는데, 보안요원에게 엘리베이터에서 정신 잃었다는 변명을 두 번은 할 수 없다.
어떻게 한다……?
강 회장은 파티션 너머 숨죽이고 있는 두 여인을 향해 말했다.
“지난번에 준 스타벅스 카드, 아직 잔액 남아 있을까?”
* * *
회사에서 여자와 남자의 가장 큰 차이는 경쟁과 협업이다.
남자들은 모두 경쟁 상대로 보지만 여자들은 다르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나선다. 모두가 문제라고 말하는 유리 천장 때문이다.
위가 막힌 천장 때문에 경쟁이 무의미해졌으니 그 천장 아래서 화목하고 편하게 지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몇몇은 그 천장을 깨고 올라간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 화목한 길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른다.
지금 강 회장 앞에 앉은 두 여인은 화목한 조직의 일원이다. 이 빌딩에 비서라는 타이틀을 단 여인들은 절대 유리 천장을 뚫고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 앉아 이름도 복잡한 음료를 마시며 떠들어 대는 두 여인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대충 칭찬같이 들리긴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게 있어서…… 뭐 좀 물어봐도 돼?”
두 여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36층 직원들과 친해? 회장님 비서들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