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52
제신입사원 강 회장 52화화
부자는 꼼꼼하다(2)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는 기사들이 넘쳐 났다.
방송사는 뉴스 할애는 물론 특별 편성까지 해서 이번 정부의 발표로 청정 코리아가 될 것 같은 예측을 쏟아붓는 전문가를 대거 등장시켰다.
마치 당장 내일이라도 모든 도로에는 가솔린차가 사라지고 수소차가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다.
연일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ST에너지는 물론 한국 정유사의 주가는 끝없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강 회장은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최기석의 대범함에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얼마나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걸까?
지금 언론에서 떠드는 것 전부 최기석 그 영감 짓이다. 정부 발표 한 번으로 주가가 떨어지는 건 한계가 있으니 기름을 부으며 폭락을 조장한다.
들어갈 타이밍을 찾던 강 회장이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할 때쯤 최진혁 사장의 연락을 받았다. 저녁 한번 먹자는 소리에 강 회장은 망설임 없이 달려 나갔다.
* * *
“중식 좋아하나?”
이런 건 장소 정하기 전에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중식당에 불러 놓고 중국 요리 좋아하냐고 묻다니?
“난 가끔 짜장면이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가 있어. 그런데 웬만한 건 집에서 다 먹을 수 있는데 짜장면은 안 되더라고. 그 이유가 뭔지 아나?”
대답을 들으려 던진 질문이 아니다.
“춘장이 문제더구만. 춘장은 그냥 몇 킬로짜리 깡통에 담아서 팔아. 그러니까 가정용은 없는 거지. 전부 업소용이야.”
“소스가 없군요.”
“그렇지. 면 요리의 주재료는 면인데 소스가 맛을 정해.”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는 바람에 그의 말이 끊겼다.
“난 짜장면으로. 자네는?”
“저도 짜장면으로 하죠. 아, 곱빼기로요.”
식당 종업원이 물러갔지만, 최진혁은 말을 잇지 않았다. 필요한 밀은 끝냈다. 주재료는 면이지만 소스가 맛을 정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질문으로 남겨 뒀다.
곧 짜장면이 나왔고 두 사람은 말없이 짜장면만 먹었다.
다시 입을 연 건 티슈로 입을 닦은 최진혁이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자네가 내 딸과 결혼한다면 난 반대하지는 않겠네.”
“너무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일단은 감사하다는 말은 하겠습니다.”
감사한 기색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잘도 저런 말을 지껄인다.
도대체 뭘 믿고 저리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며 심지어 건방지기까지 한지…… 최진혁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놈이라는 생각만 더 들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어. 나나 우리 집안 사람 전부 불편한 관계는 되도록 피해. 그게 사돈댁이라도 말이지.”
최진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강 회장도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혼 당사자의 애정이 아닌 필요에 의해 맺어진 사돈 관계다. 그러니 필요할 때만 사돈을 찾는다.
강 회장이 유성 그룹의 딸과 결혼했지만 아내의 오빠나 동생을 만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자식들 역시 마찬가지. 누군가가 부탁하면 그 부탁을 들어주고, 대가를 치를 때만 만나는 완벽한 비즈니스 관계.
“그러니까 만약 내 딸과 결혼하더라도 우리 집안 사람들이 자네 부친을 만나는 건 결혼식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이야. 당연히 내 딸을 불러 며느리 효도 받아보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할 거다.”
잘 안다.
한참 처지는 집안이면 손주가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하며, 시댁은 사위 혼자 손주를 데리고 가야 한다. 정말 인심 좀 쓴다면 제사 때 참석하는 게 전부다.
명절? 그때는 왕 회장 할아버지 뵈러 가야지, 고작 지방 편의점 사장인 시댁에 갈 리가 없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강 회장의 짧은 대답에 최진혁의 눈이 커졌다.
이해한다고? 어떻게 저런 대답이 나올까?
잘 알겠습니다, 혹은 각오하겠습니다. 아니면 화를 내야 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
충분히 이해한다고?
이해라는 건 상대방을 배려하는 상대의 관점에서만 나올 수 있는 대답이다.
“이해한다? 그건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야. 이해는 하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도 많아. 안 그래?”
“서로 다른 종과 교류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른 종? 우리가?”
“두 집안 다 그렇다는 겁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지만 자라 온 환경과 사고가 다르면 전혀 다른 종이나 다름없다는 것 압니다. 같은 인간이라고 해도 대화가 안 된다면 다른 종과 다를 바 있겠습니까?”
“그럼 자네는?”
이 질문에 강 회장은 대답할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같은 종인데 지금은 다른 종의 탈을 쓰고 있다.
강 회장은 어디에서나 통할 만한 쉬운 대답을 던졌다.
“모르겠습니다. 제 정체성은 대기업에 입사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최진혁은 모르겠다는 어린놈을 붙들고 꼬치꼬치 따지기도 뭣하고, 아직 결혼은 먼 미래의 일이라 다짐을 받는 정도로 끝냈다.
“내가 자네한테 사적으로 해야 할 말은 다 했어. 앞으로는 일 이야기 외에는 자네를 이렇게 따로 만날 일은 없을 거야. 혹시 내게 할 말 있나?”
“그럼 저도 사적인 질문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까?”
최진혁은 머리를 끄덕였다.
“해. 성의껏 대답하지.”
“혹시 제가 짜장면 소스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소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진혁은 눈을 크게 떴다가 피식 실소를 보였다.
“눈치가 빨라 말귀도 잘 알아듣는구먼.”
물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는 동안 대답할 말을 생각한 최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소스가 맛없을 수도 있잖아? 소스가 맛없으면 그냥 버리면 되는데, 사람 버리는 건, 특히 법적으로 얽힌 사람을 버리는 건 귀찮은 일이거든. 그래서 신중한 거다.”
최진혁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
“사실 자네가 맛 좋은 소스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긴 한데, 들어 볼 텐가?”
“말씀하십시오.”
“최성물산 사장 비서실 나와서 ST에너지 사장 비서실로 오면 돼. 한 이삼 년 내 밑에서 일해. 그동안 우리 석경이랑 알콩달콩 연애도 하고. 자네가 품질 좋은 소스라고 증명하면 내가 나서서 자네와 우리 석경이 결혼을 추진하지. 어떤가?”
이번엔 강 회장이 피식 실소를 보였다.
“아무리 좋은 짜장 소스라고 해도 면이 다 불고 쫄깃한 맛이 없으면 짜장면이 맛없습니다. 면발이 탱탱하고 좋아야죠. 짜장면 맛의 첫 번째는 면입니다. 그래서 짜장면 맛집은 대부분 수타면 아닙니까? 이 집처럼요.”
강 회장은 앞에 놓인 빈 그릇을 툭 쳤다.
강 회장은 지금 최진혁에게 정말 ST 그룹 전부를 차지하려는 욕심이 있냐는 걸 묻는 거다.
최진혁은 남동생이 둘이나 있다. 필요하다면 그들을 알거지로 만들 각오로 후계 싸움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아무리 똘똘한 사위를 들인들, 딸 최석경이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한들 차기 회장은 절대 될 수 없다.
왕좌는 차지하려는 놈이 먹게 되어 있다.
최진혁은 여유 넘치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사위를 고르려는 당신은 자격이 있느냐고 되묻는 젊은 놈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다시 침묵이 내려앉자 강 회장은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자리를 끝내는 건 어른의 몫이다.
답답함이 치밀어 오를 때 최진혁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식사 잘했어. 그만 일어날까?”
“네, 사장님.”
두 사람이 일어났을 때 최진혁이 말했다.
“아 참, 진짜 용건을 말 안 했네.”
아직 남았나?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정부에서 발표할 거야. 소형 원전과 수소 생산을 묶고, 우리 ST에너지와 수소 연료 경제성 현실화 방안을 공동 연구한다고. 당연히 수소 충전소 지원책도 함께 나올 거다. 그러니 기회는 내일, 모레 이틀뿐이야.”
강 회장은 시치미 떼며 말했다.
“무슨 기회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비싼 돈 주고 산 그 찻잔값을 벌 기회 말이야. 설마 진짜 모르는 건 아니겠지? 폭락했던 우리 ST에너지 주가가 다음 주 월요일에 폭등한다는 말씀이지.”
강 회장은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다음엔 더 좋은 다기 세트로 준비하겠습니다.”
* * *
최진혁이 알려 준 대로 월요일 ST에너지의 주가는 상한가를 쳤고, 그 한 주 동안 상승 추세는 계속 이어졌다. 폭락 이전의 주가 회복은 순식간이었고 주가는 계속 올랐다.
바닥에서 사서 세 배 이상 올랐기에 강 회장은 미련 없이 정리했다. 도토리는 열 번 스무 번 굴러야 하지만 호박은 세 번만 굴러도 결과가 다르다.
강 회장은 수백억이 든 증권 계좌를 이상재 전무 앞에 내놓았다.
평상시였다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리튬 염호 때문에 너무 많은 돈을 썼다. 얼마라도 복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쪼잔한 일을 벌인 것이다.
“ST에너지 주식으로 번 돈입니다. 제 명의로 되어 있으니 자금 출처 조사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이상재는 증권 계좌에 찍힌 숫자를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너도 참 부지런하다. 이런 것도 해?”
“전무님은 안 하셨습니까? ST에너지 주가 뛸 거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괜히 쓸데없는 짓 하다가 나중에 꼬투리 잡히면?”
“꼬투리 잡힐 게 뭐 있다고요? 회사가 다르니 내부자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꼬투리가 아니다. 누군가의 참모, 쉽게 말해 오른팔로 지내려면 돈 욕심 없어야 한다. 오른팔이 배고프다고 밥 먹는 것 봤어? 밥은 입으로 먹고, 입은 머리에 달린 거다. 오른팔이 돈 욕심 내면 오른팔이 아닌 거지. 물론 회장님 차명 계좌로는 ST에너지 주식 사 놨다.”
이상재는 일장 훈계를 하며 씩 웃었다.
“너도 회장님 오른팔이 맞긴 한가 보다. 그냥 네가 쓱 먹어도 괜찮았을 텐데, 이렇게 가지고 온 것 보면.”
“회장님 비밀방이 많이 비지 않았습니까? 조금이라도 채워 놔야 급할 때 또 쓰죠.”
이상재는 증권 계좌를 서랍에 넣으며 말했다.
“그 마음 변하지 마라. 이런 것 때문에 내가 널 믿으니까. 난 돈 챙기는 놈은 절대 곁에 두지 않아.”
어차피 내 돈인데 변할 마음이 어디 있다고?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상의 좀 드리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여자? 연애?”
“어떻게 아셨습니까?”
강 회장의 표정을 보더니 이상재가 다시 웃었다.
“네가 사적인 게 있어? 모든 게 다 공적이지. 넌 지금 네 연애를 사적인 걸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일 아냐?”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강 회장의 마음을 강 회장보다 더 잘 아는 사람.
“지난주에 최진혁 사장 만났습니다.”
“널 사위로 인정하겠다고 해?”
“그런 뉘앙스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장인으로 받아들이기엔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뭐?”
“최기석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회장 자리에 앉겠다는 욕심이 없다면 사위 할 생각 없다는 뉘앙스로 말했죠.”
이상재는 어이가 없는지 혀 차는 소리만 냈다.
“거참, 이상한 놈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이상할 줄은 몰랐다. 미친 거 아냐?”
“그럼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왜 여자 아버지랑 결혼 이야기를 해? 넌 그 집 딸이랑 연애하잖아? 그 애 사랑해?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고, 아니면 회사 일만 남는 거지. 사랑 없는 결혼, 그거 힘든 거다. 네가 재벌이냐? 결혼까지 비즈니스로 하게?”
이상재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강 회장은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