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00
치팅데이 100화
22. 으쌰으쌰(1)
가만히 있었는데 뭔가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
└괜찮아?
└그런 새끼 때문에 맘 쓰지 마
└너 하나도 안 뚱뚱해. 듣지 마.
└그래 그만하면 듬직하고 좋지.
└60만 구독자가 죠스로 보이나?
└ㄹㅇ 구독자 60만에 자기 회사 있고 TV에도 나가는 애를 지가 뭐라고 욕함ㅋㅋㅋㅋ
└그 새끼 연봉 반찬용 한 달 수입도 안 될듯ㅋㅋㅋㅋ
└[하늘돼지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울지 마
└PD 누나도 상처받지 마요
└너 진짜 멋있는 사람임. 남 등처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 혼자 자수성가해서 남들도 돕고. 그게 얼마나 힘든데.
└유명해지면 꼭 배 아파 하는 병신들 들러붙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 하면 돼
뭐지?
평소에는 당뇨 아저씨라느니 돼지라느니 빡대가리라느니 날 못 놀려서 안달 난 사람들이 우쭈쭈해대니 적응이 안 된다.
이틀 전.
홍당무 사옥 앞에서 김서진과 묵은지가 실랑이를 벌였던 상황을 누가 영상으로 찍어 업로드하고.
김서진이 업체를 이용해 악플을 달았다는 사실이 크게 알려지면서 나를 모르던 사람들도 내 채널에 찾아와 응원글을 남겼고.
기존 구독자들은 날 걱정해 주는 상황에 이르렀다.
김서진 때문에 화가 나긴 했지만 그 날 하루뿐이었고,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의 홍성일 대표가 직접 직원 관리를 못 한 데에 사과했다.
사실 모든 일을 묵은지가 해결해서 그녀가 동분서주하는 동안 멀쩡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건 당황스러운 거고 맞는 말은 맞는 말이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래. 맨밥만 먹던 애가 이 정도 됐으면 성공했지?”
└ㅇㅇㅇㅇ
└그럼 그럼
└진짜 대단한 거임
“그리고 나 살도 많이 뺐어. 정체기가 좀 길어지긴 하는데 그래도 어제 재보니까 101㎏더라? 37㎏ 뺐으면 대단하지. 그지?”
└거진 6개월 만인가?
└반년 만에 37㎏면 진짜 열심히 한 거지.
└마자마자 대단함
이거 봐라?
억울하게 악플에 시달린 탓인지 평소라면 너보다 성공한 사람 많다, 잘난 척하지 마라, 아직도 100㎏ 넘는다고? 더 빼야겠네 같은 얘기를 할 사람들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생긴 것도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그건 아님.
└선 넘지 마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냐오냐 해주니까 기어오르네
└ㅋㅋㅋㅋㅋㅋ그만해 나쁜놈들앜ㅋㅋㅋ
묵은지가 김서진에게 너 같은 놈보다 훨씬 괜찮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오늘 분위기가 좋아서 혹시나 싶어 던져봤는데 무리였나 보다.
└근데 진짜 마음 쓰지 마.
└ㅇㅇ 범죄자 때문에 기죽을 필요 없음.
└[그냥그냥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금융치료
└[흐잉 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걸로 제로콜라 사먹고 잊어요
└[곰지렁이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남자가 사회생활 하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야. 형이 용돈 줄 테니까 까까 사 먹고 잊어.
“…….”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꾸 돈을 주면서 힘내라고 하니까 힘든 척하고 싶어진다.
“사실 너무 힘들었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막 나쁜 말 하니까.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나 하고. 흐으으윽.”
└?
└근데 왤케 어색하지?
└그러게. 피해자 맞는데.
“흐어엉엉엉억.”
들켰나 싶어서 더욱 서럽게 울었지만 연기가 쉽지 않다.
채팅창에 물음표가 계속 올라오기에 혀를 차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에이. 수금 좀 하려고 했는데 연기가 안 된다.”
└미친놈인갘ㅋㅋㅋㅋㅋㅋㅋㅋ
└뭐얔ㅋㅋㅋ진짜 괜찮은 거야 괜찮은 척하는 거얔ㅋㅋㅋㅋ
└일부러 저러는 거 같은데. 분위기 다운되니까
└우는 척하는 게 티가 좀 많이 나긴 함.
└진짜로 수금하려 했으면 제대로 했겠지ㅋㅋㅋㅋ
“진짜로 수금하려 했던 건데. 돈 좀 줘 봐요.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다.”
솔직하게 말했더니 시청자들이 농담인 줄 알고 키득거린다.
도무지 반응을 예측할 수 없다.
└[김쏭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금융치료. 썰값.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된 거임?
“아이고. 김쏭 님 100,000원 감사합니다. 썰값이요?”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인데 어디까지 말해도 좋은지 확실치 않다.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리기엔 큰 돈이라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어. 우리 PD님이 홍당무 엔터테인먼트 다니실 때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미워했나 봐요. 일을 너무 잘한다. 비교당한다. 그런 자격지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 PD님이 홍당무 나오게 된 것도 결국 그 사람 때문이었고, 계속 괴롭히다 보니 그쪽이 선을 한참 넘었고. PD님도 더는 못 봐줬던 거지. 그게 전부예요.”
└미친놈이네
└PD누나 진짜 고생이다
└그래서 님이 잡아준 거임?
“아니요? 전 그냥 경찰에 신고하려 했는데 PD님이 다 하셨어요. 증거 찾고 사람들 설득하고. 난 우리 PD님이 그런 재주도 있는 줄 몰랐는데 무슨 영화 보는 줄 알았어.”
└대단하네.
└어떻게 함? 진짜 감도 안 온다ㅋㅋㅋㅋㅋ
└그럼 결국 넌 아무것도 안 했다는 거임?
└환불 좀
└내가 쏜 슈퍼챗 PD누나한테 줘
“아이. 환불은 좀 많이 복잡해요. 그거 다 좋은 일에 쓰이니까 이해해 주세요.”
한 시청자가 어떤 좋은 일에 쓰이냐고 물었다.
“메밀국수라든가. 냉면이라든가? 냉우동. 요즘 날씨가 더워서 그쪽으로 쓰이지 않을까?”
└결국 지 배로 들어간다는 거넼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아, 환불 안 돼요
└그래도 잘 해결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처음 악플이 달렸을 땐 도저히 잡아낼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구글 측에서 개인정보를 넘겨주지 않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니까.
묵은지에게 직접 들어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아무튼 오늘은 우리나라 중국집 역사를 살펴볼게요.”
* * *
묵은지가 홍당무 엔터테인먼트 사옥 4층을 방문했다.
비서실 직원이 묵은지를 알아보고 데스크에서 나와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비서실 직원이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묵은지 씨 오셨습니다.”
“어. 들어오게.”
묵은지가 안으로 들어서니 홍성일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지 못하지. 그 난리가 났는데. 앉게.”
사무실 가운데 소파에 자리하니 비서실 직원이 차를 가져다 주었다.
“김서진 씨 일이라면 저희 대표님과 얘기 나누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젊은 사람이 배포가 있더군. 이번 일이 우리 홍당무 쪽에 누가 안 되어 다행이야.”
홍성일 대표가 직접 사과한 만큼 반찬용도 홍당무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선을 그어 주었다.
“그럼 왜 저를 부르셨는지.”
“반찬용 대표에게는 사례를 했으니, 자네에게도 성의 표시는 해야지.”
홍성일 대표가 묵은지를 살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모른 척할 것 없어. 잘못됐으면 우리랑 비오네스 쪽으로 화살이 올 수도 있었네. 자네가 선을 확실히 그어 준 덕에 소란으로 끝난 게지.”
홍성일 대표는 이번 일이 기업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칠지 잘 알고 있었다.
반찬용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묵은지가 김서진의 만행을 안전장치 없이 공개했다면 홍당무로서는 인터넷방송인 사이에서 신뢰할 수 없는 기업이 될 뻔했다.
“……적을 늘릴 필요는 없습니다.”
묵은지가 속내를 드러내자 홍성일이 비로소 웃었다.
“빚도 만들고?”
“그렇습니다.”
묵은지는 순순히 긍정했다.
이번 일을 김서진 개인의 일탈로 규정짓고 처리한 이유는 분명했다.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홍성일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되레 빚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에서 수년 간 근무한 이력은 묵은지에게 큰 자산이었지만, 오형만 팀장 및 팀원들과의 불화로 퇴사했기에 그동안 활용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묵은지는 이번 일을 계기로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의 역량을 빌려 반찬가게 운영에 도움을 주고자 불필요한 일까지 해가며 홍성일에게 빚을 안긴 것이었다.
“좋아. 자네처럼 합리적인 사람하고는 언제든지 거래할 수 있지.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게.”
“감사합니다.”
묵은지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하나 더. 혹시 퇴사 사유가 오형만 팀장 때문인가?”
홍성일 대표의 질문에 묵은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기에 굳이 홍당무 내부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신중하군. 내가 자네 같은 인재를 왜 못 알아봤는지 알 것 같아.”
홍성일 대표가 혀를 찼다.
오형만 팀장은 지난 몇 년간 어리숙한 면은 있지만 유능한 사람이었다.
한데 묵은지가 퇴사한 후로 실적 저조를 보였고 그마저도 모자라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지금껏 묵은지의 공을 모두 오형만 본인의 것으로 포장했단 뜻이었다.
“지금 근무하는 곳 환경은 괜찮은가?”
“만족하고 있습니다.”
홍성일이 묵은지를 노려보았다.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어깨를 핀 정자세였지만 경직되었다든가 긴장한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알아보니 퇴직 전에 과장 진급 대상자였던데. 기획지원팀 팀장 자리는 어떤가?”
이번 일을 겪은 홍성일은 오형만 팀장도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아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는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묵은지라면 예전 기획지원팀이 냈던 성과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니, 오형만과 김서진 같은 인사가 없으니 더 나아질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야 오형만과 김서진에게 주었던 연봉을 그대로 준다 해도 아깝지 않았다.
“사양합니다.”
묵은지가 단호히 답했다.
“허허. 반찬용 대표가 잘 챙겨주는 모양이구만.”
홍성일이 슬쩍 조건을 떠보았다.
어느 정도 수준의 연봉을 바라는지 묻는 내용이었지만 묵은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연봉, 상여금 모두 만족스럽습니다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서 반찬용 대표님 이외에 다른 사람과 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거 궁금하구만. 자네만 한 사람을 데리고 있는 비법이나 알려주게.”
묵은지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디에서도 어울리지 못했고 상처만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 저를 몰아붙이며 살았는데, 반찬용 대표님은 그런 저를 알아주셨습니다.”
“……내가 못 했던 일이로구만.”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하던가.
춘추전국시대 예양이 남긴 말을 떠올린 홍성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 내가 반 대표를 따라갈 수 없겠군. 살펴 가시게.”
“안녕히 계십시오.”
인사하고 돌아 나가는 묵은지를 보며 홍성일은 애석함을 애써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