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02
치팅데이 102화
22. 으쌰으쌰(3)
“맞아. 얘가 데이트할 때 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애긴 해도 이건 맞는 말이야.”
주지승이 헛웃음 지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거야? 네가 말 좀 해봐, 지찬아.”
주지승이 도움을 요청하니 차지찬이 엄지와 검지로 양볼을 쓸었다.
“나도 뭐 틀린 말 같지는 않은데?”
“거 봐.”
차지찬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라는 게 밝혀졌다.
“허.”
주지승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찬용아, 넌 마음에도 없는 사람하고 주말에 밥 먹어?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
“그게 함정이야.”
이제야 주지승이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냥 친구로 지내는 거지. 몇 번 이런 적 있었거든? 근데 다들 그러더라고. 그럴 생각 없었다고. 오해했다면 미안하다고.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하더라.”
차지찬과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래. 질문을 바꿔보자. 넌 묵 PD 어떻게 생각하는데?”
“멋있어. 진짜 대단하고. 나보다 어린데도 존경스럽고.”
“묵 PD가 어떤 사람인지 말고. 너한테 묵 PD가 어떻냐고.”
“고맙지.”
“다시. 같이 있으면 어때?”
“좋아. 훈훈하고. PD님이랑 같이 일하면서 좋은 일만 있었어. 아니다. 힘든 일도 있었는데 같이 잘 해결했지? 요샌 PD님도 적응했는지 자주 웃어서 좋아. 되게.”
“그게 좋아하는 거지.”
“…….”
잘 이해가 안 돼서 차지찬과 백우진을 보니 이 사람들도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가?”
“모르겠다. 난.”
“잘 생각해 봐. 그동안 얘기 많이 나눴다며. 네가 묵 PD를 어떻게 대했는지 돌이켜 보라고.”
잠시 고민하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10분 정도 여유가 있어 묵은지에게 했던 말을 몇 마디 전했다.
“근데 진짜 별 이야기 안 했어.”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상체를 가까이 기울였다.
“PD님한테 일이 좀 생겨서 힘들어했어. 그래서 PD님 안 틀렸다. 되게 괜찮은 사람이다. 그렇게 말했지.”
“그리고?”
“잘 안 믿는 것 같아서 함께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쭉 지켜봤다. 진심이다. 처음은 좀 어색할 테지만 천천히 알아가자고 했지.”
세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뭐?”
“뭘 알아가?”
“말했잖아. 섭식 장애. 같이 건강해지자고.”
“그리고?”
“왜 갑자기 그러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요즘 자주 웃더라. 가까워진 것 같아서 그랬는데 혹시 내 착각이었냐고 물었지. 근데 착각 아니래.”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시선을 교환한 다음 날 향했다.
“또?”
“어……. 요즘 식사를 해서 그런지 얼굴색이 되게 좋아졌더라고? 보기 좋다고 했지. 아! 오해하지 마. 외모 평가 이런 거 아니니까. 진짜로 난 몸 걱정했는데 좋아져서 다행이라는 의미였고 PD님도 기분 나쁜 눈치는 아니었어.”
“또.”
“또?”
“빨리!”
“음. 아, PD님이 곁에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다. 고맙다고 했지.”
“찬용아. 하아.”
“이거 완전 쓰레기네?”
주지승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 차지찬이 있는 대로 인상을 썼다.
“뭐, 뭐야. 왜들 이래?”
“누가 봐도 묵 PD 좋아하네.”
주지승의 말에 깜짝 놀랐다.
“무슨 소리야? 난 그냥 친하게 지내는 거야.”
“누가 들어도 고백이었어, 인마.”
차지찬도 한마디 보탰다.
“에이.”
“가까워진 것 같다며. 천천히 알아가자며. 예쁘다며.”
“그게 어떻게 고백이야.”
“아오. 이 답답한 자식.”
차지찬이 가슴을 치니 눈치 보고 있던 백우진이 나섰다.
“나도 좋아한다고 말한 것 같은데?”
“봐, 쥐뿔도 모르는 얘도 안다.”
차지찬이 백우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오해할 여지가 있나? 난 그냥 진심이었는데.”
“그러니까!”
“그 진심이 호감 아니냐고!”
주지승과 차지찬이 동시에 소리쳤다.
“에휴. 형, 근데 진짜 배려심 없다.”
내가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자 백우진이 나섰다.
“뭐가?”
“은지 씨 마음은 생각도 안 해? 대표한테 고백받으면 회사는 어떻게 다녀. 받아줄 순 없고 거절하자니 어색해지고 불이익당할 것 같으니까 주말에 나오라는 말도 거절 못 하는 거잖아.”
결혼한 주지승과 한 번이라도 연애를 해 본 차지찬이 말하면 그나마 수긍하겠는데 나와 같이 모태솔로인 녀석이 말하니 열받는다.
“알아. 나도 내가 좋아한다는 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는 거 알아! 그래서 PD님한테도 아무 감정 안 가졌다니까? 꼭 그렇게 말해야 속이 시원하냐?”
“그거 아니야. 찬용아.”
“야, 백우진 너 빠져. 너 때문에 자꾸 얘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잖아.”
차지찬이 백우진을 밀어냈다.
“내가 뭘?”
“진짜 한 마디만 더 하면 입 꼬매버릴 줄 알아.”
“으으읍!”
차지찬이 백우진의 입술을 꽉 잡았다.
“시간 없어. 나가야 해.”
“찬용아.”
주지승이 나를 불러세웠다.
급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오늘은 나가서 하던 대로 해. 근데 내일은 장사 끝내고 남아서 형 말 들어. 알겠지?”
“알았어. 나 간다.”
* * *
약속 장소로 가니 묵은지가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죠?”
“아닙니다. 막 도착했습니다.”
묵은지를 태우고 강남으로 향했다.
“어제 일반식 드셨잖아요. 지금도 괜찮아요?”
“네. 문제 없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동안 미음과 죽을 먹었던 보람이 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당뇨 걸리기 전에 진짜 좋아해서 자주 가던 곳이 있거든요. PD님 일반식 드신 기념으로 가려고요.”
음성인식 버튼을 누르고 M식당을 말했다.
“특이한 이름입니다.”
“그렇죠? 한번 검색해 보세요.”
음식점 상호명으로는 특이해서 기억하기 쉽다.
묵은지가 조수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살피더니 고개를 돌렸다.
“디저트바입니까?”
“맞아요. 오마카세 스타일로 나오는데 식사용으로도 좋더라고요.”
“안 됩니다. 대표님 혈당이.”
“괜찮아요. 저 요즘 공복혈당 90 유지하고 있어요. 한 번 정도는 괜찮아요.”
“방심은 금물입니다. 다른 곳이 좋겠습니다.”
“괜찮아요. 정말로요.”
묵은지의 시선을 느껴 잠시 고개를 돌리니 미간을 좁힌 채 잔뜩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실은 저도 너무 오래 참아서 가보고 싶어요. 어차피 우리 먹고 산책할 거잖아요. 걸으면 혈당 조절되니까 걱정 말아요.”
“정말입니까?”
“정말로요.”
묵은지가 잠시 스마트폰을 보더니 또 반대했다.
“비쌀 것 같습니다.”
“인당 3만 원이요.”
“비쌉니다.”
“가격만 놓고 보면 저렴하진 않은데 이 정도 분위기에 음식 퀄리티면 솔직히 전 싸다고 생각해요.”
묵은지가 블로그를 살피더니 걱정스레 말했다.
“이런 곳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일반 식당하고 똑같아요. 그냥 가서 맛있게 먹으면 돼요.”
“그래도.”
“같이 가주시면 안 돼요? 저 여기 같이 다닐 사람 없거든요.”
“……전에 자주 다니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우진이랑요.”
묵은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문득 조금 전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과 나눈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사실 가고 싶지 않은데 대놓고 거절하기 힘드니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돌려 거절하나 싶다.
“많이 불편해요?”
“아닙니다. 왜 그런.”
“혹시 가고 싶지 않은데 제가 억지 부리나 싶어서요. 진짜 가기 싫으시면 다른 데로 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대표님 혈당이 걱정될 뿐입니다.”
“치팅데이잖아요.”
“치팅데이는 마음대로 먹는 날이 아닙니다.”
“어……. 그렇죠?”
“그렇습니다.”
“그래도 여기 예약하기 힘든데. 오늘만 생각했는데.”
운전하는 와중에 묵은지를 슬쩍슬쩍 보니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다.
“그냥 다른 데 갈까요?”
“오늘을 그렇게 기대하셨습니까?”
“그럼요.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묵은지가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셨다면.”
“그쵸?”
“그래도 혈당은 꼭 체크하시길 바랍니다.”
“그럼요. 그럼요.”
* * *
강남역과 양재역 사이 작은 골목에 들어서면 붉은색 타일의 낡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좁은 계단을 오를 때만 해도 과연 이곳에 맛집이 있을까 싶은데, 짙은 녹색 문 너머에는 헨젤과 그레텔이 살고 있다.
“안녕하세요. 반찬용으로 예약했어요.”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작 여섯 자리만 허락된 바 테이블 끝에 자리했다.
묵은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귀여운 매장입니다.”
“그렇죠?”
“메뉴 안내드리겠습니다.”
직원이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전부 처음 보는 이름입니다.”
“저도 그래요. 여긴 시즌 별로 메뉴가 달라져서 꼭 한 번씩은 와야 해요. 그때 안 먹으면 못 먹거든요.”
태블릿을 내리니 추가금액을 내고 먹을 수 있는 게 있었다.
“저희 이것도 추가해 주세요.”
“두 개 드리면 될까요?”
“네.”
“너무 많이 주문하시는 것 아닙니까?”
“괜찮아요. 안 시키면 나중에 무조건 후회하는 곳이에요.”
직원분이 작게 웃으셨다.
이곳의 장점 중 하나는 눈 앞에서 디저트를 만들어 준다는 점인데, 직원 분의 손을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예술 작품이 완성된다.
그것이 내 앞에 놓였을 때의 벅참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피클링한 레플 토마토, 토마토 에스푸마 위에 파마산 치즈 젤리를 올렸습니다. 같이 떠서 한 번에 드시면 좋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너무 예뻐서 사진을 남길 수밖에 없다.
묵은지도 신기한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두리번거리다 확인 차 물었다.
“한 번에 같이 먹으면 됩니까?”
“네. 같이 드시면 돼요.”
수저를 들어 치즈를 사정없이 파냈다. 예쁜 모양이 망가져 아깝긴 하지만 이곳에서는 시키는 대로 먹는 게 무조건 이득이다.
수저를 드니 치즈와 토마토 에스푸마, 레플토마토 피클이 같이 담겼다.1)
한 입에 넣으니 부드러운 토마토 에스푸마 사이로 피클로 담은 레플토마토의 아삭한 식감이 도드라진다.
거기에 쫀득한 치즈까지 더해지니 부드럽고 아삭하고 쫄깃한 식감이 흥을 돋운다.
식감뿐이랴.
산미와 감칠맛, 단맛이 왈츠처럼 울리니 입 안에서 완벽한 무도회장이 펼쳐졌다.
“와. 진짜 맛있다. 그쵸?”
묵은지의 반응이 궁금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지금껏 본 적 없는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수저를 차마 내리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뜬 채 조금씩 턱을 움직일 뿐이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맛있습니다. 무척. 이런 음식은 처음입니다.”
묵은지는 다소 놀란 얼굴로 한 입 더 먹었다.
그 생동감 넘치는 숟가락질과 놀라움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들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