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34
치팅데이 134화
27. 나란히(6)
-백승용차.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유튜버 크루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주지승, 차지찬, 반찬용, 백우진 이 네 사람은 이달 1일 서울역을 출발하여 성남, 동탄, 안성, 진천, 음성, 충주, 문경, 상주, 김천, 대구, 청도, 밀양, 김해, 부산에 이르는 국토대장정에 나섰습니다.
-하나의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대기업의 후원금이 누적되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대구에서는 경찰 추산 1,000여 명이 거리에 나서 청년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대구 달서구 주민] 고맙죠. 연고도 없는 곳에 와서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얼마나 고마워요.
-[대구 수성구 주민] 기특해요. 젊은 사람들이 도시락이랑 반찬이랑 해서 노인들 돕는다니까.
-[대구 중구 주민] 처음엔 별로 관심 없었는데 우리 지역 온다고 하니까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나가 보니 많이 지쳐 보이던데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
-[대구 수성구 주민] 요즘 같이 어려운 세상에 누가 남을 도와요. 쉽지 않지. 백승용차 파이팅.
-대구뿐만이 아닙니다. 백승용차 네 사람의 개인방송은 합계 17만 명의 동시시청자를 기록하며 전국에서 후원금이 모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방송 중에 모인 후원금을 모두 지역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비추었습니다.
-[인플루언서 차지찬] 돌려드려야죠. 저희 보고 주신 돈이 아니라 좋은 데 쓰라고 보내신 거니까요.
WTV 메인 뉴스에 보도된 백승용차의 선행 소식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회 각계에서 ‘걸어서 저 하늘까지’가 언급되었고 그로 인해 백승용차를 향한 관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미쳤다 오늘 슈퍼챗, 도네만 2,000만 원이 넘었네
└오늘만 따지면 전 세계 1위임ㅋㅋㅋㅋㅋㅋ
└내 기분이 다 좋네
└솔직히 살기 팍팍하잖아. 날씨는 자꾸만 이상해지고 버는 돈은 주는데 물가는 미쳤고 나라 안팎에서 염병하는데 백승용차처럼 성공한 애들이 좋은 일 하니까 응원하고 싶어지더라
└ㄹㅇ 쟤들이 뭐가 아쉬워서 저런 일 하겠음.
└관심 받고 사는 애들임. 저렇게 해도 본인들한테 떨어지는 게 있으니까 하는 거지
└그게 쉽냐?
└후원 받은 돈 다 기부하고 있잖아. 본인들 사비까지 쓰면서 기부하는데?
└어그로임. 관심 주지 마셈.
└좀 감동인 게 사람 모을 때만 해도 역대급 규모였는데 날씨 때문에 다 취소되고 네 명만 출발했잖아. 근데 지금은 시민들이 나서서 자리 채워주니까 뭔가 뭔가 감동이더라
└대구 진짜 난리도 아니었음ㅋㅋㅋㅋㅋ
└나도 나가볼까
└아닠ㅋㅋㅋㅋ 백우진 개웃김ㅋㅋㅋㅋ 지금도 방송 중인데 나오지 말라고 소리침ㅋㅋㅋㅋㅋ
└ㅋㅋㅋㅋ왜?
└포기하고 싶은데 자꾸 응원 나오니까 못 하겠다곸ㅋㅋㅋㅋ 제발 관심 좀 끊어달랰ㅋㅋㅋ
└미친ㅋㅋㅋㅋㅋㅋ
└헐 지금도 걷고 있음?
└ㅇㅇ
└궁금해서 들어갔는데 시청자 미쳤다. 각 방에 10만 명 가까이 있네
└뉴스 때문인 듯?
└뉴스도 타고 유튜버들도 계속 응원하더라. 자기 방송 중에 꼭 한 번씩 언급하더라고.
└복분자는 아예 자기 영상에 링크 달아두더라.
└근데 진짜 이번에 WH 대박이네
└ㅇㅇ 완전 다시 봤음
백승용차의 걸어서 저 하늘까지는 사회현상으로 분류하는 사람이 생겨날 만큼 이목을 끌고 있었다.
이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WH 내부에서도 김기태 실장의 판단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유장혁 회장으로부터 직접 치하받은 김기태 실장은 본인 사무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하핫.”
걸어서 저 하늘까지 대책회의장에서는 마음을 한 번 접었었다.
설마 했거늘 아무도 찾지 않는 텅 빈 행사장을 보고선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반찬용이 들어서고 주지승, 백우진이 뒤따라 올 때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안상규 PD의 열정과 묵은지 PD의 논리적인 설득에 모험을 걸게 되었다.
‘젊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도전하는 젊은이를 감싸주는 울타리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묵은지가 한 달 전에 얘기했던 대로 WH의 이미지는 그 어떤 브랜딩보다 효과적으로 개선되었다.
모두가 떠났을 때 백승용차가 상징하는 젊은이를 보호하고 응원해 주는 기업.
WH와 연관된 키워드는 모든 SNS와 커뮤니티에서 매우 긍정적인 검색 결과를 도출했다.
김기태 실장이 뉴스 기사를 훑었다.
백승용차와 나란히 걷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은 이 행사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대단한 사람들이야.”
김기태 실장이 달력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일 날짜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백승용차가 부산역에 도착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그들을 마중하러 나가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일찍 잠을 이뤄야 할 것 같았다.
* * *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문경에서 조짐을 보이더니 대구에 이를 때는 일일이 인사를 나누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 길을 나섰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일행 모두 당황했고 경찰까지 급하게 나서서 인원을 통제했다.
규모는 줄었지만 청도와 밀양에서도 우리를 배웅해 주시는 분들이 줄을 이루었고.
김해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불암역을 사이에 두고 길 양옆에 시민들이 모여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 왔다!”
“다리만 건너면 부산이야!”
“파이팅!”
다리를 건너 부산에 접어들어도 시민들의 응원은 끊이지 않았다.
방송을 보고 우리 위치를 파악하여 나와주신 분들이 평강역, 강서체육공원, 모라역, 동원 아파트, 주강초등학교, 개금역 등 곳곳에서 인사를 건네 주셨다.
이미 오래 전에 체력적 한계를 맞이해 손 흔들 힘이나 인사할 여유도 없는 우리를 위해 힘찬 목소리로 힘을 북돋아주셨다.
“이젠 그만둘 수도 없어. 다 왔잖아. 근데 너무 피곤해. 힘들어. 당장 눕고 싶어.”
백우진이 칭얼거린다.
“부산이잖아. 도착했잖아. 근데 왜 계속 걷고 있어?”
방언이라도 터졌는지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쉴 새 없이 투덜댄다.
“부산역까지잖아.”
“대체 왜? 그건 누가 정했는데?”
“지찬이 형.”
“저 망할 놈의 새끼.”
“크흐흐흣흫흐.”
주지승과 함께 웃었다.
차지찬도 어이가 없는지 웃는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부산역 왜 이렇게 머냐.”
“시청으로 했으면 됐잖아! 왜 굳이 30분이나 더 걸리는 곳으로 잡았는데!”
“서울역에서 출발했으니까.”
“뭐?”
“출발을 역에서 했으니 도착도 역이 좋지 않을까 싶었지.”
내가 들어도 어이 없는 논리다.
“내가 진짜 서울 돌아가면 저 인간 다시는 보나 봐. 어? 1년 12달 중에 하필이면 비 제일 많이 오는 달에 잡질 않나 최단거리로 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여기저기 빙빙 돌아오질 않나. 도착 지점마저 먼 데로 잡질 않나!”
“우진이다.”
“안녕하세요.”
한참 차지찬을 갈구던 백우진이 부산 시민의 부름에 미소를 지었다.
“근데 지치긴 하다.”
그동안 우리를 다독이던 주지승도 부산에 도착하니 속내를 밝힌다.
“거의 다 왔어.”
“그 말 이번 달에 3천 번은 들은 것 같아.”
“니가 3천 번 물었으니 그렇지.”
“어. 어. 지금 나한테 화 내는 거야? 형 아무도 안 왔을 때 누가 제일 먼저 찾았어. 나잖아.”
“…….”
“이 생고생을 어? 의리만으로 같이 했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미안하다.”
“거 봐. 찬용이 형도 똑같잖아. 지승이 형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형 엄청 때리고 싶을걸? 그지?”
“어. 한 대만 때려도 되냐?”
주지승이 백우진의 말을 받았다.
어지간해서 저러는 형이 아닌데 정말 쌓인 게 많나 보다.
“내가 진짜 부산 풀코스로 때려줄 테니까 걱정 마.”
“웃기지 마. 부산 사람도 아니면서.”
“근데 부산 풀코스가 뭐야 도대체?”
“아침에 돼지국밥 먹고 점심에 밀면 먹고 저녁에 낙곱새 먹고 밤에 곰장어에 소주 한 잔 걸치면 그게 풀코스지.”
“그게 뭐야.”
백우진이 인상을 썼다.
“난 괜찮은데?”
아침으로 국밥은 항상 옳다.
차가운 밀면 한 그릇 먹으면 소원이 없겠고 낙곱새는 너무 맵지만 않다면 환영이다.
곰장어는 먹어보지 않았지만 음식은 뭐든 먹어보는 게 좋다.
“어.”
그렇게 농담을 나누며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니 부산역사가 눈앞에 있었다.
역 앞에서 우리를 기다려주신 분들과 직원들, WH 김기태 실장 등이 현수막을 흔들며 환영해 주었지만 감격스럽다거나 가슴이 벅차오르진 않았다.
환호할 힘도 없었다.
그저 이제 쉴 수 있겠구나. 약속한 후원금을 모두 확보했구나.
그런 안도감에 길에 풀썩 주저앉았다.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도 같은 심정인지 체면이고 뭐고 엉덩이를 대고 앉았고 우리는 서로를 보고 부산역사에 시선을 한 번 주었다가 그대로 누워버렸다.
“……왔다.”
“왔네.”
“진짜 했어.”
“해냈다아!”
일어날 힘이 없어 누운 채로 작게 웃기 시작했는데 언제 내려왔는지 형수님이 최미카엘과 함께 다가와 남편을 말없이 안아주었다.
“울지 마. 왜 울어.”
“고생했어.”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울컥한다.
차지찬은 짐꾼 직원 전원이 달려들었다.
“이것들이 사무실 비워 놓고 왜 다들 내려왔어? 일은 누가 하고? 어? 어?”
“만세!”
“사장님 만세!”
운동에 미친 짐꾼 직원들이 차지찬을 들어다 헹가래를 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껏 던졌는지 차지찬이 겁을 먹고 허우적댔다.
“용케 해냈네?”
우지니어스의 이지혜 PD가 백우진에게 다가갔다.
“거 봐. 한다면 한다니까.”
이지혜 PD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온 음료수를 꺼내 뚜껑을 따주었다.
누운 채 그들을 지켜보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니 묵은지가 손수건을 들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녀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었다. 물에 적셔서 냉동고에 넣어두었는지 몹시 차가워서 기분이 좋다.
“너무 힘들었어요.”
묵은지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드립니다.”
WH의 김기태 실장이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일어날 힘이 없어 상체만 일으켜 앉아 있으니 김기태 실장도 바닥에 앉았다.
“쉽지 않은 일인데 끝까지 웃음 잃지 않으시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최근 3~4일은 웃을 힘도 없었다.
“회장님께서 감사 인사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오늘은 저희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오늘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