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42
치팅데이 142화
29. 제로(5)
금요일.
박상철 PD와 미팅이 있어서 묵은지를 사무실에 데려다주었다.
묵은지가 차 문을 반쯤 열었다가 고개를 돌렸다.
“출연료는 확실히 인상 받으셔야 합니다.”
“네. 어제 배운 거 잘 기억하고 있어요.”
백반따라 시즌1을 계약할 때는 구독자 수가 많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반드시 출연료를 인상받아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5시 전까진 올게요.”
인사를 하곤 곧장 WTV 사옥으로 향했다.
안내를 받아 미팅실로 들어서니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걸어서 저 하늘까지 이후로 넷이 모두 모인 적은 처음이지만 매주 같이 방송하는지라 특별히 반갑진 않다.
“형 쇼츠 판다며. 언제 해?”
백우진이 물었다.
“만들었어.”
“진짜? 언제?”
“어제. 아직 업로드는 안 했는데 내일부터 하나씩 올릴 거야.”
“이름이 뭔데?”
주지승이 물었다.
“하. 일단 들어봐. 원래 후보 많았거든? 한입만, 한입거리, 반의반찬, 구멍가게, 배달반찬 등등?”
“근데?”
“은지 씨는 한입만 어감이 좋다고 한입만으로 하자고 했고. 난 세상에서 한 입만 달라는 소리가 제일 싫다고 반대했거든.”
“그래서?”
“그래서 한입만으로 지었어.”
세 사람이 눈을 가늘게 떴다.
“결과가 이상하지 않냐?”
“쇼츠 수익은 은지 씨랑 편집자가 50% 가져가거든. 운영도 독립해서 하기로 했고. 그래서 뭐, 책임자 의견대로 갔지.”
“하긴. 너도 이제 다른 데 신경 쓸 시간 없지.”
차지찬이 하품하며 말했다.
체지방을 뺀다고 요즘 무리하는 모양이다.
“형도 그렇게 하잖아.”
“엉. 근데 최종본은 확인하지. 나중에 뭔 문제 생겼다가 난리나면 억울하잖아. 들여다보기라도 해야 덜 억울하지.”
옳은 말이다.
영상에 이미지가 잘못되었다든가, 정보가 잘못되었다든가 아니면 뭔가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부분이 있으면 그 여파는 오로지 유튜버에게 쏠린다.
나중에 편집자가 잘못했니 뭐니 해봤자 책임은 유튜버가 진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나 차지찬뿐만 아니라 주지승, 백우진도 모두 업로드 전에 자체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MSG도 제로 식품에 관한 내용도 모두 처음 봤던 내용이 잘못되었기에 오해하는 사람이 생겨난 거니까.
그런 오해가 생겨나지 않도록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반갑습니다.”
박상철 PD와 작가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서로 통성명을 나누고 바로 오늘 미팅 안건을 공유했다.
“백반따라 시즌2 콘셉트는 가성비예요. 요즘 물가가 높다 보니까 외식비가 부담스럽다는 여론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각 지역에 맛있으면서도 저렴한 식당을 방문하려 합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방식은 전과 동일하게 가져가려 해요. 정해진 금액에 맞춰서 자유롭게 여행과 식도락을 즐기시면 되죠.”
“그 돈으로는 못 즐기는데.”
백우진이 궁시렁댔다.
사실 시즌1을 진행하면서 항상 자금 문제를 겪었는데, 제작진에서 용돈을 너무 빡빡하게 책정한 탓이다.
“그래서 준비했죠. 이동 중에 게임을 할 거예요.”
“게임?”
“성공하시면 추가 용돈을 드리는 거죠.”
“실패하면요?”
“간짜장 먹을 거 짜장면 먹는 정도?”
“짜장면이 아니라 짜장범벅 먹게 되는 거 아니고?”
백우진이 물었다.
“우진아, 형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자꾸 그렇게 말하면 지승 씨 오해하시잖아.”
“오해 아니야. 진짜야. 이 형 엄청 못됐어.”
백우진이 다 들으라는 듯 말했다.
우리도 작가들도 웃으니 박상철 PD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어찌되었든 최소 금액은 준다는 거 아니야?”
내가 나서자 작가 중 한 사람이 아 하고 소리냈다.
“그게 PD님이 이번에는 예능적 요소를 좀 더 넣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백승용차가 워낙 좋은 모습 보이셨으니까.”
분명 칭찬인데 불안하다.
“그래서 시작은 0원으로 해서 게임 하나씩 하면 쌓아가는.”
“아이.”
“말도 안 돼.”
“이거 봐! 완전 악마라니까? 제작비 받아서 어따 썼어?”
“이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각자 한 마디씩 하니 박상철 PD가 수습에 나섰다.
“아니. 아니.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예를 들어 인물 맞추기.”
박상철 PD가 신호를 주니 작가 중 한 사람이 핸드폰으로 사람 얼굴을 보여주었다.
“…….”
정적이 흐른다.
누군지 감도 안 잡힌다.
“모르세요? 지금 완전 잘 나가는 아이돌.”
“에이. 우리가 아이돌을 어떻게 알아요.”
“나 알았다! 우리 묻으려고 아주 작정한 거야. 유명한 아이돌 데려다 놓고 못 알아보면 어? 그 뒷감당 어떡할 건데?”
여기저기서 얻어터진 백우진이 발작하듯 반응했지만, 나도 크게 다르진 않다.
“이러면 어려운 질문이고. 이런 건 어때요?”
박상철 PD가 전직 대통령 얼굴을 보여주었다.
“아니.”
어이가 없어 다들 말문이 막혔다.
나라도 한마디 제대로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형, 이거 지금 우리 괴롭힐려고 하는 거야?”
“왜? 누구나 알잖아.”
“알지! 아는데 그러면 안 되잖아! 우리뿐만이 아니라 형도 나락 갈 수 있어! 애초에 정치인을 왜 끼어넣는데!”
“왜. 여러분 방송에서 정치드립 가끔 하시잖아요.”
“아, 이 형 못 믿겠어. 나 안 해.”
백우진이 일어났다.
“농담이야. 앉아. 앉아. 설마 내가 이런 걸 방송에 내보내겠어?”
“진짜지?”
“그럼.”
백우진이 박상철 PD를 노려보면서 떨떠름하게 앉았다.
이상하다 싶긴 했다.
박상철처럼 방송계에서 잔뼈 굵은 사람이 정치인 사진 두고 이름 맞추라는, 맞혀도 욕먹고 틀려도 욕먹는 게임을 낼 리가 없다.
“……잠깐.”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0원 스타트 무마하려고 말 같지도 않은 거 가져온 거 아니야?”
박상철 PD가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맞네. 웃는 거 보니 맞아.”
“그거 얼마나 한다고 아끼려는 건데! 우리한테 돈 쓰는 게 그렇게 아까워? 아예 출연료를 깎자고 하지?”
이쯤 되면 백우진의 발작이 속 시원하게 느껴진다.
“설마 돈이 아까워서 그러겠어? 그게 방송적으로 재밌을 것 같으니까 그렇지.”
“좋아. 일단 형 말대로 한다고 쳐. 근데 우리가 게임에서 다 졌어. 그래서 0원이야. 그럼 촬영은 어떡해? 뭔가 해야 할 거 아니야.”
차지찬의 질문에 박상철이 잠시 고민하다가 씩 웃었다.
“그 징그러운 얼굴은 뭐야? 설마 사비로 하라는 말은 아니지?”
“그럴 리가.”
“그럼?”
“게임은 졌는데 사비를 쓸 순 없어. 그럼 몸으로 떼우면 되지.”
“아이.”
“나 이 형 연예인들 배 태우는 거 봤어! 생선 잡게 하는 거 봤어!”
“자, 자, 여러분 진정하시고. 요즘 그런 거 하면 가학적이라고 해서 욕먹어요.”
박상철 PD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안 믿는다.
“여러분이 그동안 도시락, 기부 하는 거 보면서 하나쯤은 그런 프로그램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예전에는 선행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요샌 없잖아요.”
“…….”
“무료 급식 나가서 배식도 하고 조리도 하고. 쓰레기도 줍고. 가을에는 연탄도 나르고. 어때요?”
그런 일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걸 어떻게 거절해요. 오히려 정답 맞추면 욕 먹겠구만.”
“그쵸. 그래서 누가 봐도 어려운 문제만 낼 거예요. 절대 못 맞추는.”
“오히려 그러면 어이가 없어서 웃겠는데.”
“그런 반응도 기대해 보는 거지.”
“그러니까 결국 식도락 여행이 아니라 걸어서 저 하늘까지처럼 지역 사회를 직접 대면하는 프로그램이네?”
“정답.”
사실 맛집 찾아 다니는 프로그램은 워낙 많다 보니, 백반따라 시즌1만의 차별화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라면 원래 우리가 활동하던 방향과 부합되기도 하고 오히려 반길 일이다.
“그럼 뭐야. 결국 용돈 안 준다는 말이잖아.”
백우진이 끼어들었다.
“그치?”
다들 생각을 정리하는 듯 말이 없어졌다.
“난 괜찮아. 좋은 일 하고 밥 얻어먹는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지.”
“나도.”
내 생각을 밝히니 주지승도 동조했다. 차지찬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고 백우진만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모두 바라보니 녀석이 심퉁 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어디 덧나? 꼭 그렇게 맛집 여행처럼 얘기하다가 돌려야 해? 내가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할 사람처럼 보였어?”
“그러게. 사실 좀 미안해가지고. 거절당하면 어쩌나 싶어 좀 돌려 얘기했어.”
“……알았어. 근데 출연료는 딴 얘기야.”
“그럼. 그럼.”
결국 백우진마저 수락했다.
박상철 PD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 * *
출연료는 민감한 사항이라 한 사람씩 따로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우리 사이에 숨길 이유가 없었다.
WTV를 나오자마자 출연료 얘기부터 나왔다.
“지찬이 형 얼마 받아?”
“300. 넌?”
“200.”
“나도 200.”
차지찬이 회당 300만 원, 백우진 200만 원, 주지승도 200만 원으로 각자 출연료를 밝히고 날 본다.
“……300.”
“어?”
백우진이 크게 되물었다.
“지찬이랑 같이 평가받은 거야?”
“이야. 반찬, 많이 컸네?”
나도 깜짝 놀랐다.
차지찬은 28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해서 우리 중 가장 많이 받을 거라 예측했지만.
주지승, 백우진, 나는 각각 108만, 170만, 100만 명을 확보했다.
주지승과 내가 비슷하게 책정 받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출연료 정보를 공유하고 보니 차지찬과 같은 금액을 받도록 계약이 이루어졌다.
묵은지가 알려준 협상 전략 덕분인 듯싶다.
“진짜 잘됐다.”
차지찬과 주지승이 축하하는데 백우진이 배를 부여잡고 신음한다.
“으으윽.”
“뭐야. 어디 아파?”
“배 아파! 으으으. 배 아파!”
“인마, 형이 성공했으면 축하해야지.”
“부럽단 말이야!”
이 정도까지 솔직하게 나오면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
“부럽지? 그니까 협상을 잘해야지.”
“뭐야? 비결 좀 알려줘 봐.”
주지승이 물었다.
“시즌1 출연할 때 출연료 거의 못 받았거든. 대신 유튜브 영상 따왔고.”
“그런데?”
“이번에도 출연료 많이 못 주면 내 채널에 영상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그건 안 된대.”
“당연하지. 지금 네 채널에 올라가면 조회 수 다 빨아먹을 테니까. 아.”
“아.”
백우진이 뭔가 알아차린 듯했다.
“200 준다고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시더라? 근데 눈 딱 감고 부족하다고 하니까 좀 망설이시다가 250으로 올려 주시더라?”
“와. 얘 배짱 봐라?”
“300이라며. 거기서 또 올렸어?”
“가만있어 봐. 찬용이 얘기 좀 듣자.”
“은지 씨가 어차피 나랑 우진이 없으면 기획부터 다시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니 배짱 좀 부려도 된다고 했거든.”
“명분이 있어야 하잖아.”
“다음 프로그램 할 땐 출연료 고정한다고 했어.”
세 명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야?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
“은지 씨가 그러더라. 출연자는 언제 상황이 안 좋아질지 모르니까 다음 프로그램 출연이 약속되면 좋은데 제작진 입장은 다르대. 출연자들 출연료가 자꾸 오르니까 스트레스 받는다고.”
“다음에 더 잘될지 어떻게 알고?”
“맞아. 누가 확실하지도 않는데 돈을 더 주려고 해?”
주지승과 백우진이 물었다.
“이것도 은지 씨 얘긴데 더 잘될 것 같은 사람이니까 섭외하는 거래. 그러니까 제작진 입장에선 다음에 볼 때 400 줄 바에야 이번에 300 주고 다음에도 300 주는 게 낫다는 거지.”
“……그래?”
“똑같으면?”
백우진이 물었다.
“똑같으면 난 다음에도 섭외될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나쁠 거 없지. 어쨌든 지금 출연료도 높였으니까.”
“……그러네? 근데 형 여론이 안 좋아질 수도 있잖아.”
“애초에 물의 일으킬 가능성 있는 사람은 잘 섭외 안 한대. 프로그램 자체가 문 닫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다음 프로그램 들어가기 전에 문제가 생기면 그 돈 주고 다른 사람 구하면 될 일이라고 하더라. 제작진 입장은 다음 프로그램 출연을 계약한 것도 아니니까.”
“맞네?”
출연료는 어느 정도 등급이 정해져 있지만 협상 여지는 제작진 측에서도 고려한다.
현재 필요한 인원을 섭외하기 위해서 출연료를 다소 높이는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생각엔 쟤만 가능한 일일걸?”
듣고 있던 차지찬이 말을 꺼냈다.
“올해 유튜브 채널 쟤보다 많이 성장한 사람 누구 있냐?”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반찬, 다른 때가 아니고 지금 요구하는 거니 방송국에서도 수용할 수 있는 거지.”
그 또한 묵은지가 얘기했다.
현재 인지도가 가파르게 성장 중이니 출연료 인상에 줄곧 스트레스를 받았던 제작진 입장에선 관심을 가질 거라 말이다.
“그럼 난?”
“너도 쟤처럼 얘기했어야지. 제작진은 뭐 땅 파서 장사하냐? 처음부터 턱턱 만족할 만큼 주게?”
“그건 그래.”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할 만큼 정보를 얻으면 수긍이 빠른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