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43
치팅데이 143화
30. 백반따라(1)
토요일.
가장 흥분되는 날이다.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
오전 11시 30분 부천 반야식경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시간대가 애매함에도 1만 명 내외의 시청자가 모이는 걸 보면 확실히 반야식경에는 고정 시청자가 많다.
“오늘 할 요리는 볶음밥입니다. 찬용이 볶음밥 좋아하지?”
“너무 좋아해.”
“오늘 먹을 볶음밥은 건강에도 좋으니까 한번 배워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을 거야.”
“근데 두부는 왜 있어?”
“두부 볶음밥이니까.”
“……마파두부 덮밥은 좋아하는데.”
두부로 볶음밥을 한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자, 일단 밑준비부터. 항상 그랬던 것처럼 2인분을 기준으로 합니다. 찬용아 계란 4개 풀어주고 파랑 양파 잘게 썰어줘.”
“예, 쉐프.”
준비된 계란을 잘 풀어주는 와중에 주지승은 두부를 준비했다.
“찬용이가 대파 하나, 양파 한 개 잘게 다지고 있고, 저는 두부 한 모를 볶아줄 거예요.”
주지승이 프라이팬에 두부를 올렸다.
“식용유 안 해?”
“안 하지. 두부에 수분이 많잖아. 기름을 두르면 튀어.”
“아.”
“여러분도 조심하세요. 지금은 두부도 익힐 겸 수분을 날려주는 거예요. 식용유 두르지 않고 두부만 올려서 이렇게 으깨줍니다.”
주지승이 으깬 두부를 빠르게 뒤적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금방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렇게 수분이 다 날아가면 식용유를 둘러주고 파와 양파도 넣어서 함께 볶아줄게요.”
치익치익 소리가 몹시 맛있게 들린다.
“양파가 투명해질 즈음 간장 한 스푼, 굴소스 한 스푼을 넣고 밥 한 공기를 넣습니다. 계속 볶아주세요.”
“이건 맛있어.”
“그래?”
“어. 간장하고 굴소스가 들어갔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어.”
“끄흐흣. 밥과 두부가 잘 섞이면 이제 계란물을 둘러주고 빠르게 볶습니다. 계란이 두부와 밥알을 감싸도록 빠르게 볶아주는 게 포인트예요.”
주지승이 프라이팬을 들었다 내려놓으며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기름지면서도 고소한 향이 풍겨 식욕이 자극된다.
치익치익-
오래 전에나 들을 수 있었던 기차 소리가 프라이팬을 통해서 현재로 넘어왔다.
내 가슴은 여행을 떠나기 전처럼 두근거린다.
“완성이 되면 후추를 뿌려 줍니다. 자, 먹어 봐.”
주지승이 두부 볶음밥을 내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습이 꼭 기차가 내뿜는 증기 같다.
후후 불어 한 입 크게 먹으니 눈 앞에 논이 펼쳐졌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기차 밖 풍경은 익은 계란처럼 노르스름하고, 하얀 구름은 두부처럼 몽실거린다.
구수한 향과 함께 올라오는 쌀알을 음미하는 와중에 기차는 조금씩 속도를 올린다.
내 마음도 바빠져 숟가락을 연거푸 움직이게 된다.
“와. 하핫.”
“맛있지?”
“어. 너무 맛있다. 진짜 별거 안 들어갔는데 너무 맛있어.”
“밥은 딱 한 공기만 들어갔고. 나머지는 두부로 채웠으니 단백질이 풍부하고 포만감도 들 거야. 여기 부족한 건 식이섬유 정도인데.”
주지승이 열무김치를 내놓았다.
“볶음밥에 김치가 빠질 수 없지.”
“너무 좋아.”
살짝 기름진 입안을 시원한 열무김치가 순식간에 잡아준다.
긴 여정을 마치고 기차역을 빠져나왔을 때 느끼는 시원한 바람 같다.
이건 자주 해먹게 될 것 같다.
* * *
방송을 마치자 최미카엘이 차를 내주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집은 구하셨어요?”
“아직이요. 빨리 구하고 싶은데 마음 같지 않네요.”
“어디 알아보고 있는데?”
주지승이 물었다.
“사실 이수역 주변에 마음에 드는 곳이 있긴 한데 너무 비싸서.”
주지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아, 나도 전세 만기라 알아보는 중인데 답답하더라.”
“형도 이사해야 해?”
“어. 3달 남았는데 서울로 들어갈지 부천에 있을지 고민이야.”
“음……. 사실 나도 집 알아보다 보니까 굳이 서울에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하더라고.”
“그치? 너무 비싸니까.”
“응.”
“근데 또 사실 욕심이 나기도 해. 여기저기 많이 다닐 테니 이동이 좀 편한 곳에 있고 싶고.”
“그래서 이수?”
“응. 용산, 이수, 사당 이쪽으로 찾았는데 용산은 손도 못 대겠더라.”
“끄흐흫. 알지.”
“형은?”
“음. 난 서울로 가고 싶은데 와이프는 굳이 무리할 필요 있겠냐고 하더라고.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응.”
“근데 요즘 내가 게스트 모으고 있잖아.”
걸어서 저 하늘까지 이후로 주지승은 유명인들을 한 명씩 초청해 음식을 대접해 주고 있다.
섭외 대상도 구독자 100만 명의 대형 채널에 얼굴을 비출 수 있으니 양쪽 모두 윈윈인데 유튜브 조회 수도 잘 나와서 최근에는 일주일이 1~2명씩은 꼭 합방을 진행 중이다.
“근데 이게 의외로 영향이 좀 있더라고.”
“그래? 몰랐네.”
“음. 그쪽에서 오는 거나, 사실 내가 어디로 가는 거나 같으니까. 사실 나도 너처럼 사당 쪽 알아보고 있었어.”
“사당은 왜?”
“여기저기 다니기 편한데 그나마 가능성이 좀 보이는 곳?”
나와 같은 생각이다.
“우리 동네 이웃 되는 거야?”
“그럼 좋지. 너나 나나 어차피 자주 보니까. 매주 이동하는 시간도 아끼고. 가끔 편하게 밥도 먹고.”
“흐음.”
“근데 찬용아.”
“응.”
“묵 PD가 원래 홍당무에서 하던 일이 계약 관련 일이었어?”
“응. 그런 것도 하고 대외업무도 보고. 왜?”
주지승이 머리를 쓸었다.
“저번에 저당밥솥 광고 계약할 때도 그렇고 WH 계약 딴 것도 그렇고. 이번에 너 출연료도 그렇고. 소문으로 잘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대단하다 싶어서.”
“그치. 우리 은지 씨 대단하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토마토랑 계약기간이 올해까지거든. 근데 토마토랑 하는 것보다 묵 PD하고 일하는 게 낫겠더라고.”
“그럼. 그럼. 난 대기업 안 부러워. 은지 씨만 있으면 돼.”
“그래서 말인데 우리끼리 회사 하나 만드는 거 어때?”
“……엉?”
“묵 PD가 매니지먼트 역할 맡아주면 토마토에 줬던 비율 그대로 줄게. 회사 따로 차리기 뭐 하면 그냥 내가 네 법인이랑 계약해도 되고.”
제안 자체에 놀라기도 했지만.
묵은지가 이렇게나 인정받는다는 사실에 기쁨이 앞섰다.
주지승이 토마토와 나누는 금액을 정확히 알진 못해도 최소 수천만 원일 거다.
토마토와 계약관계를 얻는 이득보다 묵은지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니 나로서는 기쁘기 그지없다.
“일단 나 지금 놀라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
“끄흐흐. 그래.”
주지승도 나도 서로 어렵게 말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다.
주지승도 그렇게 생각하니 고민은 신중히 했을 테고 말은 편하게 꺼냈을 것이다.
“은지 씨랑 얘기해 볼게.”
“그래.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알아봐 줘.”
“응.”
* * *
주지승의 말을 전하니 듣고 있던 묵은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의기양양해진 모습이 귀엽다.
“거절합니다.”
“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서요.”
“능력을 인정받는 일은 항상 기쁩니다.”
“그럼 왜 거절해요?”
“현재 쇼츠 채널을 막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PD로서는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입니다.”
묵은지가 좋아하는 귤차를 따라주었다.
“현재는 반찬가게와 한입만에 필요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다른 일을 끌어들일 여력이 없습니다.”
“내년부터 할 일이잖아요. 그 즈음에는 또 다른 사람 구하면 은지 씨 부담도 줄어들 텐데.”
“예전에 지금 우리가 조심해야 할 일을 얘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사업 확장이요?”
“네. 반찬가게는 지금 급격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성장이 빠르기에 놓치고 그냥 지나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는 반찬가게가 튼튼해지길 바랍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은지 씨 생각은 이해했어요. 너무 고맙고.”
“찬용 씨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는 좋게 보고 있어요.”
묵은지가 나를 바로 본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저 태도가 무척 딱딱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들어주리란 믿음을 준다.
“저랑 지승이 형은 앞으로도 여러 콘텐츠를 함께할 거예요.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도 도움을 받고 있고, 조회 수도 꾸준히 잘 뽑히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반면 반야식경은 대외업무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어요. 미카엘 씨가 기획력은 좋은데 그쪽에는 조금 약하다 보니 전적으로 토마토에 맡기고 있는데 그쪽에서는 큰 건수만 가지고 온다고 해요. 상품의 질이라든가 그런 건 크게 고려하지 않고요.”
“그게 효율적이니까요.”
“그쵸. 토마토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지승이 형 생각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거절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니까 서로 스트레스라고 하더라고요.”
묵은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우리 쪽은 기획력이 아쉬워요. 저랑 은지 씨가 힘내고 있지만 저는 점점 더 연기자로서 활동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은지 씨는 지금 맡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요.”
“할 수 있습니다.”
“아니에요. 지금 기획, 편집, 자막, 대외업무 전부 하고 있잖아요.”
“찬용 씨를 돕는 수준입니다.”
“기획하고 편집은 같이 하지만 대외업무와 회사 운영은 혼자 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쇼츠 채널도 시작했고.”
“…….”
“은지 씨가 이번 일 거절하려는 것도 반찬가게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니까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찬용 씨 말대로입니다.”
“그런데 만약 미카엘 씨가 우리 쪽 기획을 어느 정도 도와주고, 은지 씨가 반야식경 대외업무를 봐준다면 서로 잘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묵은지가 귤차를 한 모금 마시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요. 효율을 따진다면 그쪽이 낫습니다.”
“뭔가 마음에 걸려요?”
“네.”
묵은지가 그런 것처럼 나도 그녀의 말을 무엇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고개를 살짝 끄덕여 부추기니 묵은지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우리 회사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일이 꺼려집니다.”
“……네?”
“주지승 씨의 제안은 분명 메리트가 있습니다. 대강 추측해도 수천만 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아마 다른 사람도 제게 그런 일을 맡기게 될 겁니다. 좁으니까.”
소문이 참 빠른 업계이긴 하다.
“그렇게 되면 찬용 씨랑 지금처럼 알콩달콩 지내기 힘들어집니다. 싫습니다.”
“흐하하하. 아. 음. 오.”
“제가 기획한 프로그램을 찬용 씨가 소화하고 그걸 함께 편집합니다. 자기 전에 겹쳐 누워 댓글을 살피다가 함께 웃고 함께 화내고 서로 칭찬하고 서로 위로하고 싶습니다.”
“좋은데요?”
“좋습니다.”
“음. 좋아요. 이번 일은 거절할게요.”
“기존 업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도움을 청하시면 가급적 해결해 드리는 쪽으로 말씀드리십시오. 그 정도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
손을 잡았다.
“만약에, 아니, 어쩌면 반드시 반찬가게를 키우고 싶을 날이 올 거예요.”
“그래야 합니다.”
“그때는 생각이 달라질 것 같아요?”
“그때가 되면 모든 일을 처리할 만큼 유능해질 테니 문제없습니다.”
“흐흐흐흣. 그러다 몸 상하면 어떡해요.”
“그럴 일 없습니다. 저는 건강도 반찬가게도 찬용 씨도 다 챙길 겁니다.”
“욕심이 과하지 않아요?”
“네. 욕심쟁이가 되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찬용 씨 때문입니다.”
같은 생각이다.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던 내가 지금은 누구보다도 건강해지길 바라고, 지금은 한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다.
“저도 은지 씨 때문에 욕심이 너무 많아졌어요.”
“다 챙길 수 있습니다.”
“응. 우리 그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