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46
치팅데이 146화
30. 백반따라(4)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원하시는 주제로 문제를 낼게요. 대신 한 분씩 순서대로 맞히는 거예요.”
“오케이.”
“먼저 지승 씨부터.”
“파이팅!”
“할 수 있어!”
박상철 PD가 주지승과 대본을 번갈아 보다가 주제를 던졌다.
“음식, 건강, 과학, 상식, 넌센스 준비되어 있습니다. 원하시는 주제 고르시면 돼요.”
“음식.”
박상철 PD가 우리를 너무 얕본 듯싶다.
음식은 주지승의 전문분야고 차지찬 또한 건강 관련 지식이 상당하다. 과학과 상식은 걸어다니는 나무위키 백우진에게 아무 위협이 안 된다.
주지승은 고민도 하지 않고 음식을 선택했다.
“음식 선택하셨고 바로 문제 드립니다.”
박상철 PD가 문제를 읽기 전에 씩 웃는다.
“1925년 소설가 김동인이 조선문단에 발표한 이 소설은 한 인간이 환경에 의하여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복녀가 왕서방의 밭에서 훔친 것은 무엇일까요?”
“잠깐. 잠깐.”
내가 나섰다.
“이게 어떻게 음식 문제예요? 문학이지.”
“맞아! 사기 치지 마!”
백우진이 덩달아 항의했다.
“10초 드리겠습니다. 10, 9.”
박상철 PD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를 세기 시작했고 우리는 주지승이 정답을 알고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주지승이 입을 열었다.
“고구마?”
“땡! 정답은 감자입니다!”
오답을 외친 박상철 PD의 목소리가 왠지 경쾌하다.
“이걸 어떻게 아냐고!”
“왜 땡이야! 고구마 맞아!”
“1925년에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은 감자입니다. 주인공은 작중 감자밭에서 감자를 훔치다가 잡히게 되죠.”
“아니야! 고구마 맞아!”
백우진이 나섰다.
“옛날에 감자를 저라고 불렀는데 고구마는 달달한 저라는 뜻으로 감저라고 했어. 지역에 따라서 감자라 부르기도 했고. 내가 알아!”
“맞아요. 고구마.”
주지승도 확신을 가지고 얘기하니 박상철 PD가 당황해서 작가들과 머리를 맞대었다.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쉰다.
“……고구마 맞습니다.”
“와아아아아!”
교활한 박상철 PD에게 한 방 먹여준 기쁨으로 환호하는 와중, 박상철 PD가 작가들에게 확인 안 했냐고 물어보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 반찬용 씨 차례입니다. 음식, 건강, 과학, 상식, 넌센스 중에 선택하시면 돼요.”
“뭘 선택하든 이상한 거 물어보실 거잖아요. 넌센스.”
박상철 PD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비가 오는 날에 먹는 파스타는?”
“스파게티.”
바로 정답을 말하니 박상철 PD가 당황한다.
“왜죠?”
“뭐야? 정답이야?”
“왜?”
“습하잖아. 습하게띠.”
차지찬과 주지승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박상철 PD를 압박했다.
“……정답입니다.”
“찬용아!”
“반찬 뭐야! 너!”
박상철 PD가 작가들과 또 머리를 맞댔다.
“어렵다며. 어떻게 된 거야?”
* * *
시즌1 촬영 때 타던 빨간색 캐스퍼를 타고 강원도 강릉으로 향했다.
길을 아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는데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아니 지찬이 형은 어떻게 맞힌 거야?”
“예전에 봤던 문제야. 과외해 줄 때 풀어봤어.”
“그게 기억이 나?”
“워낙 어려운 문제라 그때도 유명했어.”
“형 수학 잘했나 보다. 이과 수리까지 과외할 정도면.”
“그 정도야 뭐.”
“잠깐.”
“형, 나한테 문과 나와서 숫자 못 센다고 하지 않았어?”
“……야, 야. 앞에 봐. 전방 주시 몰라?”
“와 차지찬.”
“끄흐흐흣. PD님 표정 봤어? 우리 문제 다 맞히니까 너무 당황하시던데.”
“그니까. 우릴 너무 쉽게 봤어.”
결국 준비된 문제 10개를 모두 맞혀서 10만 원을 획득했다.
“차 타기 전에 그러더라. 웃기게 좀 틀려도 된다고.”
“아는 걸 어떡해. 난 못 해.”
“나도 못 해.”
내가 백반따라 시즌2를 편집한다면 조금 전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거다.
기존 예능과는 다른 전개라 신선하고 제작진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모습은 몇 년 전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소재였다.
“근데 우리 뭐 먹어?”
“바닷가 가니까 해산물 먹어야지.”
“오징어?”
“오징어 안 잡혀. 문어 먹자.”
“문어?”
“어. 예전에 한번 갔던 곳 있는데 괜찮더라.”
“그래~ 강원도는 찬용이한테 맡기지 뭐.”
강릉시와 동해시 사이는 해안 경치가 좋다. 정동진, 옥계, 어달리로 이어지는 해안 도로에 이르자 세 사람 모두 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금진항 앞에 있는 허름한 간이 건물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와. 사람 많다.”
“유명한 데야. 대기자 적어야 할걸?”
“내가 적을게.”
차에서 내리니 이목이 집중되었다.
“어? 반찬가게.”
“당뇨 아저씨다.”
“안녕하세요.”
“사진 찍어주시면 안 돼요?”
“당연히 되죠.”
“저도요.”
정신없이 인사하고 사진을 찍고 일행에 합류하니 주지승이 껄껄 웃었다.
“야, 찬용이 인기 많네.”
“내가 더 귀여운데.”
“넌 창피하지도 않냐? 그 나이 먹고 귀엽다 어쩌다.”
“사실을 말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용기야.”
잠들어 있던 차지찬이 뒤늦게 내려서는 기지개를 켰다.
“벌써 도착했어?”
“아까 도착했어.”
“어우. 자도 자도 피곤하네.”
“다이어트한다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주지승이 걱정스레 물었다.
걸어서 저 하늘까지 이후 폭식하던 차지찬은 1달 만에 체지방량을 5%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덕분에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고 피로를 자주 느끼는 등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그렇게 다이어트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내가 물으니 차지찬이 피식 웃는다.
“당연히 안 좋지. 근데 정상적인 몸으로는 입상 못 하니까.”
쉽게 납득할 수 없지만.
차지찬이 약에 손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근데 괜찮아? 이런 거 먹어도?”
백우진이 물었다.
“대회 다음 주니까. 이거 먹고 또 열심히 빼야지.”
다들 걱정스레 보니 차지찬이 고개를 젓는다.
“마지막이야. 이번 대회 끝나면 나도 편하게 먹고 살란다. 저번에 도넛 먹고 다니니까 세상이 다 예쁘더라.”
“끄흐흣.”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보디빌더의 몸이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경이롭긴 하지만 건강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형적인 상태다.
체지방이 너무 많아도 문제지만 3~4% 정도만 남긴다면 신체 대사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프로 보디빌더도 대회 시즌에만 잠깐 유지하고 평소에는 그보다 유하게 관리하는데.
차지찬도 20년 가까이 되는 그 생활을 이제 내려놓으려는 모양이다.
“6번 손님.”
“네.”
우리 차례가 되어 자리에 앉았다.
대강 얼기설기 엮은 간이 건물 천장에는 식물이 철골을 따라 아무렇게나 자라나 있다.
노포 느낌이 물씬 풍긴다.
“뭔가 정겹다.”
“그지.”
“뭐가 맛있어?”
“문어무침 하나랑 칼국수 하나씩 먹자.”
“홍게장칼국수는 뭐고 홍게맑은칼국수는 뭐야?”
“둘 다 홍게 넣은 건데 장칼국수는 장 풀어서 칼칼하게 먹는 거야.”
“그럼 난 맑은 거.”
“난 장칼.”
“강원도 왔으면 장칼국수 먹어야지.”
“사장님.”
사장님을 불렀는데 바쁘신지 대답이 없다. 몇 번 더 부르고 나서야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저번에 왔을 때도 느꼈지만 시골항 근처라 서비스적인 측면에서의 친절한 느낌은 없는데, 넉넉한 음식 양으로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문어무침(시가 판매)
“와.”
“쌓인 거 봐.”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으로 슥슥 무쳐낸 문어와 야채, 그 위에 넉넉히 뿌린 콩가루까지 이 집 최고의 메뉴가 나왔다.
“대박.”
한 젓가락 집어 먹은 백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맛있어.”
주지승은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살피고는 맛을 보았고, 차지찬은 거의 눈을 뒤집고 있다.
극단적인 식단을 하다가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니 얼마나 맛있을지 대강 예상된다.
나도 크게 한 입 먹었다.
싱싱한 야채는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고 막 잡아서 삶은 문어는 쫄깃하면서도 탱탱하다.
그것들을 한 데 모아주는 달콤새콤한 양념장이 감칠맛을 돋우고.
콩가루가 고소한 풍미를 더하니 흰 밥 생각이 절로 난다.
“비벼 먹을래?”
“찬성.”
“좋지.”
차지찬이 대답이 없어 고개를 드니 괴로워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럼 3개만 시킨다?”
“아!”
“…….”
“사장님! 밥 4개요!”
차지찬이 결국 못 참고 밥을 시켰다.
밥을 주문하면 대접에 김가루와 깨를 잔뜩 뿌려 주는데, 여기에 무침을 덜어서 비벼 먹으면 그렇게 꿀맛이다.
“이거지.”
“여기 김치도 맛있어.”
“그러게. 솜씨도 좋으신데 재료도 신선한 거 쓰니 맛이 없을 수 있나.”
“그니까.”
“칼국수요.”
비빔밥을 먹다 보니 칼국수가 나왔다.
넘칠 듯이 가득 담긴 홍게칼국수를 조심스레 들어 국물을 마시니 시원하고 깊은 국물이 위장에 스며든다.
바다를 내 안에 담는 기분이다.
“여기 인심 장난 아니다.”
“그지?”
“야, 칼국수가 이렇게 많이 나올 거면 얘기를 해줘야지.”
차지찬이 불평한다.
“그래서 안 먹을 거야?”
“먹지. 먹어야지.”
“와. 나 진짜 술 잘 안 마시는데 이건 못 참겠다.”
“그지? 소주 한잔하고 싶은데.”
주지승이 입맛을 다신다.
“PD님 우리 술 해도 돼요?”
“안 돼. 누가 운전하라고.”
“술 안 돼요.”
박상철 PD도 주지승을 말렸다.
“바다 앞에서 이렇게 먹으니까 운치 있지 않아?”
내가 물으니 고개를 처박고 칼국수를 먹던 백우진이 건너편 바다를 보았다.
“이거 저기서 잡은 거야?”
“응.”
“으음.”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먹는다.
부산 다녀오고 나서 이 녀석 먹성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지만, 꼭 예전의 날 보는 느낌이라 조금 걱정된다.
“이건 그냥 소주로는 안 되겠다. 좋은 소주 가져와서 마셔야겠는데?”
주지승은 계속 술타령이고.
차지찬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백우진과 함께 멘트 없는 먹방을 찍고 있다.
나도 질 수 없지.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문어무침을 먹고 있자니 박상철 PD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여러분, 말 좀…….”
“으음! 으음!”
방해하지 말라고 하니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