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47
치팅데이 147화
30. 백반따라(5)
“수고하셨습니다.”
무사히 첫 촬영을 마쳤다.
다들 긴장할 법도 한데 오래 호흡을 맞춘 덕인지 평소처럼 자연스레 멘트가 나왔다.
박상철 PD도 만족했는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님.”
“네.”
“종량제 어디 있어요? 집게랑.”
“네?”
“돌아가기 전에 하나씩 채우려고요.”
“안 하셔도 되는데.”
“에이. 좋은 일 하자면서요.”
작가가 카메라 감독 눈치를 보았다.
“촬영 안 해도 돼요. 그냥 저희끼리 하고 올라갈게요. 차는 방송국 주차장에 둘게요.”
“어…….”
“여기 있다!”
작가가 망설이는 동안 백우진이 소품차에서 집게를 찾았다.
“우진아, 안 해도 돼. 우리 올라갈 거야.”
박상철 PD가 백우진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하기로 했어.”
“그럼 맞히질 말지.”
“그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처럼 보이잖아. 나 이미지 관리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올라가.”
“카메라도 없는데 무슨 이미지 관리.”
“여기 보는 사람 있잖아.”
백우진이 주변을 둘러봤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라 제작진에게는 먼저 돌아가라고 종용했다.
박상철 PD는 피식 웃더니 다른 직원을 모두 보내고 작은 카메라 하나를 들었다.
“형은?”
“너희 찍어야지.”
“아니. 어떻게 올라가려고?”
“저 차에 타면 되지?”
“아, 좁아터졌는데 형까지 있으면 어떡해. 빨리 돌아가.”
“낑겨 타면 되지. 신경 쓰지 말고 할 거 해.”
빨간색 캐스퍼가 불쌍해지려 한다.
아무튼 종량제 봉투를 들고 금진항부터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쓰레기를 주웠다.
“반찬, 그거 뭐냐?”
차지찬이 물었다.
“햇빛가리개.”
늦은 오후긴 하지만 햇빛 아래서 장시간 노출되면 피부에 안 좋다.
국토대장정 하면서 선크림을 꼬박꼬박 바르긴 했지만 피부가 꽤 상했기에 농사짓는 분들이 애용한다는 햇빛가리개 모자를 썼다.
얼굴은 물론이고 목과 어깨도 넉넉히 가려준다.
“나도 다음에 챙겨와야겠다.”
백우진이 쓰레기를 주우며 말했다.
“별걸 다 신경 쓴다.”
“신경 써야지. 우리 나이 되면 피부 관리해 줘야 해.”
어머니께서 TV 나오는데 피부 좀 신경 쓰라고 하셔서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피부관리샵을 다니고 있다.
귀찮아서 로션도 안 발랐는데.
이젠 매일 밤 세안제로 세수하고 스킨, 에센스, 앰플, 로션, 크림까지 바른다.
처음에는 번거로웠지만 한 달 정도 하고 나니 주변에서 피부 좋아졌다는 얘기를 해주어서 신경 쓰고 있다.
“맞아. 늦기 전에 해야지. 찬용이도 살 빠지고 관리하니까 인물 살잖아.”
주지승의 말에 차지찬이 고개를 젓더니 런지를 하며 쓰레기를 주웠다. 성큼성큼 나아가는 바람에 못 줍는 쓰레기가 많다.
“그래? 나 괜찮아?”
“끄흐흣. 그래.”
“자꾸 받아주지 마. 형이 그러니까 진짜 잘생겨진 줄 알잖아.”
백우진이 딴지를 걸었다.
“찬용이 잘생겼잖아.”
“잠깐.”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가지고 있는 현금이 2만 원이라 전부 꺼내 주지승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고마워서. 다음에도 부탁해.”
“흐하하하하하!”
주지승이 호탕하게 웃는다.
돈을 다시 집어넣으니 백우진이 뒤돌아 박상철 PD에게 말을 붙였다.
“형, 퀴즈 계속할 거면 넌센스 빼는 게 좋을걸?”
“왜?”
“이 형한테 말장난으로 못 이겨. 백반토론 봤잖아.”
뿌듯하다.
“원래 그런 거 많이 생각해? 아니면 많이 봤나?”
박상철 PD가 물었다.
“예전에 사람들하고 잘 못 지낼 때 공부했어.”
“뭔 말이야?”
“사람들하고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웃긴 이야기 같은 거 찾아보니 재밌더라.”
한 입 먹은 사과는 파인애플.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돈은 할머니.
집에 돌아가기 싫은 왕이 하는 말은 궁시렁 궁시렁 같은 걸 기억해 두었다가 써먹으려 했다.
“하나 얘기해 봐.”
“우리 다음 주 백반토론 주제가 서브웨이 대 퀴즈노스잖아.”
“응.”
내가 서브웨이, 백우진이 퀴즈노스 입장에서 토론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적당히 받아주다가 이런 식으로 공격하려 했어. 퀴즈 하나 내죠. 퀴즈노스가 어디에 있는 음식점인지 아십니까?”
“여기저기 다 있지.”
“아니죠. 퀴즈노스. 노스. North. 북쪽에 있다는 뜻입니다. 설마 이번에도 북쪽을 지지하신다고 말씀하진 않으시겠죠?”
백우진이 입을 쩍 벌렸다.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박상철 PD와 주지승에게 호소했다.
“이거 봐.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퀴즈노스에서 고소할라.”
주지승도 고개를 젓는다.
“너무했나?”
“하지 마. 하지 마. 너 유명해졌어. 발언 하나하나가 꼬투리 잡힐 수 있다고.”
“에이. 농담인 거 다들 아는데 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겠다.
* * *
{지금 출발했어요}오후 3:17
{3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집에서 봐요}오후 3:18
오후 3:19{알겠습니다}
찬용 씨가 출발했단 메시지를 받았다. 일이 일찍 마무리되어 시간이 남으니 오늘은 집에서 짐 정리를 마저 해야겠다.
“…….”
도착 예정 시간이 딱 저녁 식사 시간이다.
하루 세끼 꼬박 챙겨 먹는 사람이니 바로 먹을 수 있게 저녁을 준비해야 할 텐데 며칠째 샐러드만 먹은 게 마음에 걸린다.
종종 아침저녁을 직접 차려주는 찬용 씨에게 나도 뭔가 해주고 싶다.
“…….”
요리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밑반찬은 찬용 씨가 만들어 두었으니 메인 메뉴만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평소 찬용 씨가 자주 먹는 음식을 떠올리니 간단히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검색창에 수육 만드는 법을 검색해 캡처하고 집 근처 마트로 향했다.
육류 코너로 가 수육용 삼겹살을 챙겼다.
찬용 씨가 보통 한 끼에 300g 정도를 먹고 내가 그 4분의 1 정도를 먹으니 내일 아침까지 준비하려면 750g인데 조금 넉넉히 한다고 생각해서 2근을 사려다가 혹시 실패할지 모르니 만약을 위해 2근을 추가했다.
남은 재료는 마늘, 양파, 대파, 월계수잎, 후추, 된장이다.
집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파악하지 않아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없다.
찬용 씨가 자주 해 먹으니 대강 준비되어 있을 텐데, 정확히 알 수 없으니 고민된다.
이럴 때는 필요한 재료를 모두 사는 게 낫다. 넘치는 재료는 나중에 쓰면 되지만 부족하면 요리를 할 수 없다.
“대파…….”
대파를 찾아보니 흙대파 열 단이 37,000원이고 깐대파 한 단이 17,600원이다.
한눈에 봐도 흙대파 열 단을 사는 쪽이 경제적이다.
카트에 흙대파 열 단을 담았다.
“양파.”
근처를 둘러보니 망에 담긴 양파가 있다.
손질된 양파는 380g 한 팩에 2,480원으로 100g당 653원이다.
반면 껍질이 있는 양파는 2.5㎏에 5,250원으로 100g당 210원이다.
껍질 무게를 아무리 높게 쳐도 양이 6배 이상 차이 나는데, 가격은 3분의 1 수준이니 손질되지 않은 것을 사는 게 이득이다.
양파 2.5㎏ 한 망을 카트에 담았다.
“마늘.”
마늘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장보기는 처음이지만 의외로 쉽다.
손질된 재료는 인건비 때문에 비싸고, 소포장 제품보다 대용량 제품이 무게당 단가가 저렴하다.
손질되지 않은 마늘 중 부피가 가장 큰 제품을 찾아 다른 상품과 비교하니 역시 내 추측이 옳았다.
마늘 반 접을 카트에 담았다.
“월계수잎.”
월계수잎은 조금 헤맸다.
10g당 단가가 가장 저렴한 물건을 찾으니 플라스틱 통에 담긴 230g 제품이 눈에 띄어 카트에 담았다.
“된장.”
된장은 어제 찬용 씨가 아침에 된장국을 끓여 준 기억이 난다.
후추도 샐러드를 먹을 때 드레싱 대신 뿌렸기에 다른 물품은 필요 없을 듯싶다.
어색했지만 이만하면 경제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쇼핑이었다.
“……응?”
계산하고 카트에서 짐을 내리려는데 생각 외로 무겁다. 무게도 무게고 부피가 커서 제대로 들기 쉽지 않다.
안간힘을 써 겨우 택시에 올라탔더니 진이 빠졌다. 장보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후.”
짐을 내려놓고 유튜브를 켜 수육 레시피를 검색했다.
상단에 반야식경 채널 영상이 올라와 있어 누르니 주지승 씨가 냄비에 콜라를 쏟아부었다.
“……콜라는 없었는데.”
장을 보기 전 검색했던 재료 목록에는 콜라가 없었다.
제로 콜라도 괜찮을까 싶어 냉장고를 연 순간 제로 콜라를 전부 처분한 기억이 떠올랐다.
찬용 씨가 제로 콜라를 남용해서 배탈이 자주 났기에 집과 사무실에 있는 콜라 모두 당근마켓에 올렸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레시피를 찾던 중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을 확인하니 어떤 아주머니가 현관 앞에 서 계셨다.
“누구세요?”
-어? 아, 죄송합니다. 잘못 찾아왔나 보네요.
“네.”
부엌으로 돌아와 다른 영상을 시청하는데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을 받아 보니 조금 전 그분이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저기. 여기가 1303호 아니에요?
“맞습니다.”
-여기 우리 아들 집인데? 아가씨 누구예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찬용 씨에게는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설마 어머님께서 찾아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고민할 여유 따윈 없어 서둘러 현관을 열었다.
어머님께선 양손 가득 짐을 든 채 몹시 경계하는 시선으로 날 살피셨다.
“처음 뵙겠습니다. 묵은지라고 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드리니 어머님께서 금방 웃으셨다.
“아. PD님이셨구나. 찬용이한테 말 많이 들었어요.”
짐을 받아서 안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찬용이는요?”
“대표님은 오늘 강릉 촬영 가셨습니다. 1시간 내로 돌아오실 겁니다.”
“그래요? 근데 왜 PD님이.”
“그게…….”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사이 어머님이 부엌을 살피셨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대표님이 수육을 좋아하셔서. 준비 중이었습니다.”
어머님이 미간을 좁히시더니 역정을 내셨다.
“찬용이가 PD님한테 밥도 시켜요?”
“그런 게 아니라. 네. 제가 좋아서 했습니다.”
“세상에. 밥을 얼마나 먹길래. 살 뺀다더니 이렇게 많이 먹어요?”
“아닙니다. 대표님 식단 철저히 지키고 계십니다. 저렴하게 구입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걸 PD님 혼자 사 왔어요? 내 이놈을 그냥.”
“아닙니다.”
어머님께서 또 한 번 미간을 좁히셨다.
“맞는데. 아닙니다. 혼자 사 오긴 했지만 아닙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우선 상황부터 정리해야 하는데 도저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세상에. 이걸 언제 다 먹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님 눈에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다.
“어, 어머님.”
“네?”
“제가 장을 처음 봐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착실히 배워나가겠습니다.”
“그…… 그래요. 힘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