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50
치팅데이 150화
31. 유명인(3)
2023년 9월 16일 토요일.
백반따라 시즌2 첫 촬영을 며칠 앞두고 있어 머리를 자르려 주방가위를 들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 자르고 있는데 묵은지가 비쳤다.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못 볼 것이라도 본 표정이다.
“왜요?”
“뭐 하고 계십니까?”
“머리가 좀 긴 것 같아서 자르고 있어요.”
“이제야 찬용 씨 머리가 왜 항상 쥐 파먹은 것처럼 보였는지 이해했습니다.”
묵은지가 다가와 주방 가위를 잡았다.
“미용실에 가십시오.”
“어…….”
“왜 그러십니까?”
“돈 아깝잖아요. 머리 자르는 데 5천 원이나 내고.”
“5천 원?”
“5천 원 아니에요?”
“대체 언제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잘 기억이 나질 않아 어깨를 으쓱이니 묵은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앞으로는 혼자 하지 마시고 미용실에 다니십시오.”
“전 이게 편한데.”
“보기 안 좋습니다.”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기로 했잖아요.”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것과 지저분한 것은 다릅니다. 다녀오십시오.”
“……쉽지 않아요.”
“무슨 뜻입니까?”
“미용실이요. 그 특유의 인싸 느낌이 쉽지 않아요.”
“예를 들면?”
“무슨 일 하냐, 어디 사냐 같은 질문을 너무 쉽게 하잖아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 좀 그렇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묵은지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냈다.
내게는 링크 하나를 보냈다.
“여기가 어디예요?”
“홍당무에 다닐 때 관리하던 유튜버가 운영하는 미용실입니다.”
“아담 스미스?”
“손이 빨라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위험하지 않아요?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다가 귀라도 자르면 어떡해요.”
“그럴 일 없습니다.”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논리라면 비행기나 버스, 지하철은 어떻게 타십니까?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가야 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근데 전 계속 이렇게 지내면서 아무런 문제도 없었거든요.”
“쥐 파먹은 머리는 항상 문제였습니다. 찬용 씨만 문제로 삼지 않았을 뿐입니다.”
“저만 괜찮으면 되잖아요.”
“이제 찬용 씨 옆에 항상 제가 있으니 제 문제이기도 합니다.”
반박할 수 없다.
“어떻게 해달라고 얘기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얘기해 두었습니다. 말 거는 거 싫어하니 어떤 말도 하지 말라고도 얘기했습니다. 잔말 말고 어서 다녀오십시오. 나가는 김에 피부 관리도 받고 오십시오.”
너무 단호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끌고 소개받은 미용실로 향했다.
주차하고 조심스레 문을 여니 직원이 날 발견했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적잖이 놀라 보인다.
“안녕하세요.”
직원이 고개 숙여 인사하곤 안쪽에다 말했다.
“사장님! 반찬용 님 오셨어요!”
미용실 안에 있던 사람 모두 날 향했다.
요즘 이런 식으로 이목을 끄는 일이 잦아졌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는다.
예전에는 내가 먼저 알아보냐고 물었거늘, 정작 지금은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부담을 느낀다.
미용 유튜버 아담 스미스가 걸어 나와서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안내했다.
어떤 스타일을 바라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고 가위를 놀릴 뿐이다.
잠깐 졸았던 모양.
잠에서 깨니 머리가 얼추 정리되어 있었다.
“…….”
연예인이나 하는 머리 같아 어색한데, 공들여서 만들어 준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기 어렵다.
말하고 싶어도 정확히 어떻게 만져달라고 해야 하는지 몰라서 샴푸를 받았다.
“불편하신 곳은 없으세요?”
아담 스미스가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네. 편해요.”
“아까 직원이 크게 말해서 놀라셨죠?”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다음에 찬용 씨 오실 땐 조심하라 얘기해 둘게요.”
“아, 네. 정말 괜찮아요.”
이목이 끌려 놀라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진 않았다.
“반찬가게 얘기 가끔 하거든요. 아마 찬용 씨 보고 좋아서 그랬을 거예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뭐라 하지 말아 주세요.”
“흐흣. 네.”
그 뒤로는 또 아무 말이 없다.
머리를 세팅해 주니 내가 봐도 괜찮아 보인다. 문제는 집에서는 도무지 따라 할 엄두가 안 난다는 점이다.
결제한 뒤 매장을 나섰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이 정도라면 꼭 필요할 때 들러도 괜찮을 듯싶다.
“찬용 님!”
차에 오르려는데 갑자기 날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핸드폰을 들고 있다.
“네?”
“사진 한 번만 찍어주시면 안 돼요?”
“저요?”
“네!”
“아, 그럼요. 네.”
“인스타 올려도 돼요?”
“네.”
“감사합니다. 진짜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실물로 뵈니까 하나도 안 뚱뚱하세요.”
“진짜요?”
“네! 완전 멋있어요.”
이럴 땐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진짠 줄 알고 좋아한단 말이에요.”
“진짜! 진짜 멋있어요.”
“크흠. 원하는 게 뭐예요.”
“네?”
“돈 많이 못 주는데.”
“프하하핫! 완전 웃겨. 그럼 파이팅.”
고개 숙여 인사하시길래 나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기분이 좋다.
* * *
2023년 9월 24일 일요일 아침.
“아이고. 어머니. 아니라니까요. 네. 정말로요. 은지 씨가 아직 먹는 게 힘들어요. 어머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지. 처음 뵙는데 음식 가리는 모습 보이면 선입견 생기잖아요. 응. 진짜예요.”
예비 며느리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셨던 어머니가 새벽부터 전화를 하셨다.
몇 번을 말씀드려도 안 믿으시더니 이제야 아쉬워하며 사실을 받아들이셨다.
-그래?
“왜 아쉬워하세요?”
어머니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왔다.
-아쉽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나이가 찬 아들이 결혼한다고 하니 손주 생각이 나신 모양이다.
언젠가는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길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나도 묵은지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방송국에 출연하면서 적응할 일이 많고, 묵은지 또한 기획, 편집 등 배우는 입장이니 신경 써야 할 일이 태산이다.
아이는 차차 묵은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계획해 나갈 거다.
“그보다 어제 방송 어땠어요? 보셨어요?”
-응. 엄마도 가봤던 곳이라 반갑더라. 우리 아들 예쁘게 했던데?
“예뻐요?”
-머리 했잖아.
“아. 은지 씨가 미용실 소개해 줬어요.”
-그래. 얼마나 좋아. 쥐 파먹은 것처럼 하고 다니더니.
“…….”
어머니도 묵은지와 똑같은 말을 하신다. 그렇게까지 심했나 싶다.
-근데 그 쓰레기를 다 주웠어?
“그럼요. 요즘은 그런 걸로 거짓말하면 큰일나요. 그보다 병원에서는 뭐래요?”
-응. 괜찮대.
“맨날 괜찮으시대.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괜찮으니 괜찮다고 하지.
어머니께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정말 별문제 없으신 모양이라 기분이 좋다.
“다행이다. 응. 푹 쉬세요.”
전화를 끊고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어머님이십니까?”
“깼어요?”
묵은지가 침실에서 나왔다.
“네. 은지 씨 궁금하셨던 모양이에요.”
“얼핏 들었는데 오해가 풀린 것 같습니다.”
“네. 흐아아암.”
좀 더 자고 싶었는데 전화 받고 일어나 그런지 하품이 나온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다시 자려고 침실로 향하는데 분리수거함이 눈에 띄었다.
이사 온 뒤로 이것저것 사느라 택배 박스가 잔뜩 쌓였다.
생수를 사서 마시는지라 빈 생수통도 플라스틱함을 가득 채우고 있다.
“쓰레기 버리고 올게요.”
“네.”
양손 가득 쓰레기를 쥐고 단지 내 분리수거장을 찾았다.
박스를 내려놓고 캔과 플라스틱을 분류하며 버리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내가 자리를 막고 있나 싶어 뒤로 물러서자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쓰레기를 잔뜩 들고 있다.
“반찬가게 맞죠?”
“예?”
대강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인데 설마 날 알아보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맞네. 같은 아파트 사셨구나.”
“아. 네. 안녕하세요.”
세수도 안 하고 잠옷 차림 그대로 나와서 민망하다.
“실제로 보니 안 뚱뚱하구만. 요새 건강은 어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좋아요.”
“그래. 나도 당뇨인데 운동하고 관리하면 괜찮아요.”
별달리 할 말이 없어 웃어 보이곤 서둘러 쓰레기를 분류했다.
“그건 이쪽인데.”
“아. 감사합니다.”
이 아파트에서는 플라스틱도 구분해서 버리는 모양이다.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플라스틱과 종이, 캔 정도만 분류해서 놓쳤다.
“그럼.”
“그래요. 파이팅해요.”
“감사합니다.”
* * *
찬용 씨가 쓰레기 버리러 간 동안 아침을 준비할 생각으로 전기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찬용 씨는 반숙을 좋아해서 노른자를 살리며 익혀야 하는데, 뒤집다 보면 어느새 엉망이 되고 만다.
현관 비밀번호 눌리는 소리가 났다.
“다녀왔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찬용 씨가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아침상을 다 차린 뒤에도 나오지 않았다.
계란 프라이가 식어간다.
“후우.”
“샤워하셨습니까?”
일요일은 쉬는 날이라 아침부터 샤워하는 일은 드물다. 좋은 일이긴 하다만 갑자기 행동이 변하니 의아스럽다.
가만히 보니 이유를 얘기해 준다.
“분리수거장에서 어떤 아저씨를 만났는데 알아보시더라고요.”
“네.”
“세수도 안 했고 잠옷 차림이라 좀 민망했어요.”
“그랬군요.”
“와. 아침 차린 거예요?”
“취사 버튼을 누르고 계란 프라이만 했을 뿐입니다.”
“그게 어디에요. 이런 거 못 했잖아요.”
“오늘도 반숙에는 실패했습니다.”
“전 튀기듯 익힌 것도 좋아요.”
찬용 씨가 계란 프라이를 먹고는 웃는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나도 한 입 먹었다.
“은지 씨, 우리 정수기 살까요?”
“생수가 더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찬용 씨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한데 쓰레기도 많이 나오고 하니까.”
“저는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응. 그럼 이따 정수기 같이 봐요.”
“네.”
아침을 먹은 뒤에는 식기세척기를 돌려놓고 외출 준비를 한다.
편한 옷을 걸친 뒤 종량제 봉투와 집게, 물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선다.
처음에는 찬용 씨의 취미를 함께할 뿐이었는데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만족하는 일상이 되었다.
평소와 다른 점은 찬용 씨가 모자와 마스크를 썼다.
“…….”
“갈까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