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61
치팅데이 161화
33. 한식예찬(4)
참가번호 6번 육혜린의 해물잡채는 건강한 음식을 최대한 맛있게 먹으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요리였다.
“솔직히 이 잡채에 들어간 재료 대부분 맛없잖아요. 그런데 양념이나 조리 방식으로 이렇게 맛있게 만들었다는 게 너무 대단해요.”
왼쪽에 앉은 오미경 맛칼럼리스트가 고개를 끄덕인다.
“게다가 모든 재료가 식감이 살아 있었어요. 조리 과정이 되게 번거로워 보이던데 정말 잘 먹었습니다.”
9점을 들어 보이니 함석호 심사위원이 입을 열었다.
“반찬용 씨 말대로 육혜린 씨는 각 재료를 함께 볶을 때를 고려해서 하나하나 따로 조리했습니다. 각 재료를 어떻게 손질하고 얼마나 익혀야 식감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지요. 먹는 사람을 배려한 훌륭한 잡채였습니다.”
함석호 심사위원이 8점을 주었다.
이어서 오미경 심사위원이 같은 점수를 주면서 육혜린은 1라운드에서 심사위원단에게 35점, 패널에게 42점을 받아 총 77점을 획득했다.
앞서 심사위원단에게 36점, 패널에게 34점을 받아 총 70점을 획득한 참가번호 3번 최은삼이 현재로서는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고.
굴밥과 굴냉국을 만든 참가번호 2번 이상호는 심사위원단에게 38점, 패널에게 40점을 받으며 합계 78점으로 현재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여러 참가자들의 음식을 맛보았는데 심사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성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함석호 심사위원은 과묵한 편이고 한식계 대부로 존경받는 입장이라 왠지 전통적인 음식을 좋아할 거라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독특한 음식을 높이 평가하는 듯하다.
박정아 심사위원은 재기발랄하다는 표현이 딱인데 지식이 풍부해서 참가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요리의 목적과 결과물을 비교하여 얼마나 완성도가 높은지 보는 느낌이었다.
반면 이찬석 심사위원은 서글서글한 인상과 달리 상당히 꼰대스러운데 비싼 재료를 사용한 음식은 높이 평가하고 비교적 저렴한 식재료는 저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천사채를 활용한 육혜린, 꽁치조림을 한 참가번호 10번 김한열에게는 한식예찬에 어울리는 재료를 다뤄달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꺼냈다.
함석호 심사위원이 10월 꽁치는 훌륭하다고 말하니 금새 태도를 바꾼 점도 마음에 안 든다.
마지막으로 맛칼럼리스트 오미경은 건강한 음식을 선호했는데 짠 돔배기전에는 6점을 주며 다소 박한 평가를 내렸고 육혜린의 해물잡채에는 8점을 주며 비교적 높이 평가했다.
“마지막 참가자만 남기고 있는 시점에서 현재 순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왕선 진행자의 말과 함께 중앙 스크린에 현재까지의 점수가 기록되었다.
1위는 4번 참가자 사대문(48) 씨의 홍합밥과 토마토 홍합탕이었는데 총 90점을 획득하여 압도적인 점수 차를 보였다.
나중에 꼭 레시피를 따라해 보려 한다.
“그리고 현재 최하점은 참가번호 3번 최은삼 씨입니다.”
상어 고기 요리를 한 최은삼은 줄곧 최하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1라운드부터 4점을 감점당하고 시작하게 된다.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면 오늘의 마지막 요리를 맛보겠습니다. 참가번호 12번 주지승 씨의 쏘가리빵입니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음식을 만들었다.
원래도 생각하기 힘든 조합으로 요리를 만들어 왔지만, 꿈을 향한 첫 번째 무대에서 주지승이 과연 어떤 맛을 준비했을지 기대된다.
“아. 쏘가리빵이라. 이거 난해한데요?”
진행자 우왕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그거 아니에요? 참돔 줬더니 생선가스 해 먹어서 혼난 사람!”
“맞아. 나도 봤어. 비싼 생선 줬더니 이상하게 먹는 거.”
가수 하임의 말에 다들 웃으며 공감한다.
사실 쏘가리가 워낙 비싼 생선이라 빵으로 만들어 먹는다는 게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은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왕선이 주지승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맞습니다. 본선 첫 번째 라운드라 아주 호사스러운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맛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주지승이 자신감을 내비쳤다.
“좋네요. 그럼 바로 시식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주지승이 두 사람 앞에 빵을 하나씩 놓았다.
나는 하나를 온전히 다 먹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그렇게 많은 빵을 만들진 못한 듯싶다.
“어.”
주지승이 내 앞에 온전한 빵 하나를 두었다.
“하나가 남네.”
심사위원은 다섯 명이라 둘씩 짝 지으면 하나가 남아서 나만 하나를 온전히 받았다.
감동이다.
“이거.”
내 왼쪽에 앉은 오미경 심사위원과 오른쪽에 앉은 박정아 심사위원 눈치를 보니 고개를 젓는다.
“배가 불러서 나눠 먹으면 될 것 같아요. 그렇죠, 선생님?”
박정아가 오미경에게 물었다.
“좋죠. 찬용 씨가 하나 드시면 되겠네요.”
이런 행운이.
주지승의 센스에 감탄하고 오미경, 박정아 심사위원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다.
다만.
하나 걱정되는 점이 있다.
조금 전 오미경, 박정아 심사위원이 말했듯이 이미 앞서 11개 요리를 먹었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배가 부른 상태다.
그중에는 돔배기처럼 짠 음식도 홍합밥과 토마토 홍합탕처럼 감칠맛이 강한 음식도 있었기에 혀가 지쳐 있다.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심사위원과 패널들에게 어필되기 힘들 것이다.
내가 인지한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건만, 그럼에도 주지승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디.”
쏘가리빵은 높이가 10㎝ 남짓한 직육면체 형태로 겉면이 노릇노릇하여 먹음직스럽긴 하나 그 외에는 특이할 게 없었다.
“빵 가운데를 가르셔서 안쪽에 있는 내용물과 빵을 함께 드시면 됩니다.”
주지승의 설명대로 빵을 찢으니 걸쭉하고 빨간 소스가 주륵 흘러내렸다.
비강을 탁 치고 올라오는 매운 냄새는 어딘가 익숙하다.
“매운탕.”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와. 신기해. 매운탕을 빵 속에 넣은 거예요?”
다들 한 마디씩 하며 놀라는데 과연 빨간 소스와 쏘가리, 각종 야채가 섞인 모습이 응축된 매운탕을 보는 느낌이다.
여기에 물만 넣고 끓이면 그대로 매운탕이 완성될 것 같다.
“어디.”
빵에 소스를 뜸뿍 찍어 입에 넣으니 갓 구운 포근한 빵과 진하면서도 눅진한 소스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씹으니 매운탕의 달짝지근하면서도 얼큰한 맛 뒤에 버터의 고소한 향이 은은히 비강을 채우는데.
보드랍고 도톰한 빵 사이로 생선살과 각종 야채가 씹힌다.
“너무 맛있어.”
“너무 맛있다는 말 나왔습니다! 반찬용 씨! 어떤가요?”
“저희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하시거든요. 주말마다 고성 북천, 양구 수입천 안 다니는 데가 없으셨어요.”
“네.”
질문했던 우왕선이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겨울에는 빙어, 은어 잡아 오시고 여름에는 빠가사리. 뭐 저는 아버지가 물고기 잡아 오실 때마다 그저 좋았는데. 어머니는 또 다르셨거든요.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으니까 이 양반이 물귀신이 됐는지 금도끼 은도끼 나눠주고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 그렇게 마음고생하시다가 아버지가 오시면 반가우시면서도 미운 거예요. 그때 속앓이하셨던 어머니께 이 쏘가리빵을 드렸더라면! 아! 어머니도 인정했습니다.”
“흐하하하! 속앓이래. 쏘가리.”
하임이 크게 웃어 내 드립을 받아주었다.
“아! 어머니도 인정하시는 겁니까!”
“그렇죠! 이 속앓이빵만 드렸으면 당신 내일부터 출근 강으로 해! 말씀하셨을 겁니다. 너무 맛있어요.”
내가 10점을 드니 함석호 심사위원이 입을 열었다.
“매운탕을 농축된 소스로 만들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얼마나 연구하셨을지 짐작이 됩니다.”
함석호의 말에 주지승의 얼굴이 밝아지는 듯했다.
“단순히 걸쭉하게 만들었으면 몹시 짜고 매웠을 텐데 빵과 잘 어우러지더군요.”
주지승이 할 말이 있는지 눈치를 봤는데 우왕선이 놓치지 않고 눈을 바라보며 발언권을 주었다.
“여기 WTV에서 백반따라라는 맛집 프로그램을 하는데 거기서 짬뽕빵이라는 게 소개되더라고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는데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지승의 추가 설명에 함석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운탕맛 빵을 만들었다는 발상력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주지승에게 9점을 주면서, 홍합밥과 함께 오늘 요리 중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
“우선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찬석 심사위원도 평을 시작했다.
“쏘가리는 수돈이라고도 불렸는데 맛이 돼지고기만큼 좋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만큼 식감이 좋은데 이 빵 안에 쏘가리가 거의 한 마리 들어 있는 것 같더군요. 처음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주 호화로운 빵이었습니다.”
이찬석 심사위원이 10점을 주었다.
뒤이어 박정아 심사위원이 9점, 오미경 심사위원이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이유로 다시 10점을 주면서.
심사위원단 점수 48점, 패널 점수 45점을 받아 주지승이 1라운드 단독 우승을 차지했다.
“한식예찬! 1라운드 우승자는 참가번호 12번 주지승입니다!”
우왕선과 좌왕택이 힘차게 선언하자 주지승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꿈에 한 발 더 가까워진 그를 보니 괜스레 울컥한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박정아 심사위원의 후배 김상희가 인사를 건넸다.
“쉿.”
박정아 심사위원이 눈치를 주자 김상희 요리사가 머쓱하게 웃었다.
TV프로그램 녹화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또 다른 요리사들은 어떻게 경연에 참가하는지 보고 싶다고 조르고 졸라 겨우 얻은 기회였다.
고작 한 번으로 끝낼 순 없었다.
“어땠어?”
방송국을 빠져나오며 박정아 심사위원이 오늘 경연에 대해 물었다.
“다들 진짜 상상도 못 한 요리를 하더라고요. 준비 진짜 많이 했겠어요.”
“그만큼 진심이니까.”
“네. 먹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아, 해물잡채 어땠어요? 진짜 괜찮으셨어요?”
“음. 식감이 좀 아쉽더라. 본인도 알아서 신경 많이 쓴 것 같던데.”
“평가는 좋게 하셨잖아요.”
“그래? 난 나름 엄하게 줬는데.”
박정아 심사위원이 6번 참가자가 만든 해물잡채를 떠올리며 답했다.
10점 중 7점을 부여했는데 발상력은 좋았지만 미역줄기 식감에 호불호가 갈릴 듯싶었고 무엇보다 간이 필드에서 내놓기에는 너무 심심하다고 판단했었다.
“전 7점 받은 적 없는데.”
김상희가 선배에게 평가받았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너보단 훨씬 잘하시던데?”
“아.”
김상희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자극받으려고 온 거 아니었어?”
“네. 맞아요. 참. 근데 심사위원에 반찬가게 있더라고요?”
“아. 반찬용 씨?”
“네. 약간 얘기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명확하게 언급하진 않았지만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비전문가인 반찬용에게 한식예찬 심사위원 자격이 있는지 논란이 생길 수 있었다.
“나도 처음엔 어 싶었는데 괜찮더라고.”
박정아 심사위원이 말했다.
“반찬용 씨 유튜브는 안 봐서 몰랐는데 지식도 센스도 있더라. 12번 참가자 재료만 보고 매운탕 아닌 거 알아봤잖아. 말도 재밌게 하고.”
박정아가 속앓이빵 드립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거야 원래 아는 사이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아니야.”
박정아는 단호히 부정했다.
“네 말대로 아는 사람이라서 발견했다면 6번 참가자가 잡채 만들 때 하나하나 조리한 걸 눈치챘겠어?”
“아.”
“주지승 씨 경우엔 다들 딱 보니까 매운탕 재료고 반죽하고 있으니 수제비나 칼국수로 다들 생각했잖아. 잘 안 보이기도 하고 크게 관심 가질 요리도 아니고.”
김상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쏘가리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매운탕에는 큰 관심이 없어 다른 참가자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관심 가는 요리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반찬용 씨는 한 사람, 한 사람 관심 있게 보더라고. 말 잘한다고 들었는데 말수가 적길래 옆에 봤거든. 진지하더라.”
박정아 심사위원도 한식예찬 심사위원에 비전문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의아했었다.
우승 상금 3억 원과 한식예찬 우승자라는 명성.
본인만의 매장을 꾸리고 싶은 요리사라면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는 경연이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던 박정아 심사위원은 한식예찬 참가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대회에 임하는지 짐작했기에 심사만은 진중하게 이뤄지길 바랐다.
그런데 반찬용은 비전문가임에도 그 어떤 사람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며 전문가들도 미처 잡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때로는 박정아도 놀랄 만큼 세세한 평을 하여 비전문가가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요리사가 가장 기뻐하는 말. 맛있다는 말을 정말 재밌게 풀어서 했다.
“정말 괜찮더라.”
“선배 말 들어보니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누구나 편견은 있으니까. 자기 생각이 편견인 걸 자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멋진데.”
박정아 심사위원은 한때 한 경연에서 경쟁자였고 현재는 나란히 심사위원석에 앉은 사람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