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65
치팅데이 165화
34. 대단한 사람(3)
“반찬용 심사위원 대단히 감격한 표정인데요?”
좌왕택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네. 정말 맛있어요. 가리비 식감이 너무 부드럽고 곁들인 소스도 절묘해요. 양파, 마늘, 고추가 적절히 어우러져서 단맛, 매운맛, 감칠맛이 다 느껴져요.”
몇 점을 줘야 할지 너무나 고민된다.
“사실 요즘 몇몇 식당. 아니, 꽤 많은 곳에서 매운맛을 지나치게 강조하는데 저는 그게 맞나 싶더라고요. 우리나라의 매운맛은 그게 아닐 텐데.”
심사위원과 패널들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가리비찜은 정말 맛있게 매운 음식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알려주는 것 같아요. 마음 같아서는 10점 드리고 싶은데 뒤에 어떤 음식이 나올지 몰라서 기준이 되는 점수로 9점 드리겠습니다.”
정말 마음만은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으나 어떤 요리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첫 번째 요리부터 만점을 줄 순 없다.
해서 9점을 들었다.
“시작부터 높은 점수가 나옵니다.”
“반찬용 씨 말씀대로 사실 한국 음식이 예전부터 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정아 심사위원이 내 말을 받아주었다.
“어? 진짜요?”
“맞아. 예전엔 이렇게까진 맵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럼 언제부터 매워진 거예요?”
박정아 심사위원의 말에 진행자와 패널이 각각 반응을 보였다.
“그전부터 기조를 보였지만 보통 2010년대 초를 시작으로 봅니다. 매운맛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무엇이죠?”
“떡볶이?”
“라면!”
패널들이 하나씩 대답했다.
“네. 떡볶이는 200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평범하게 맵고 단 떡볶이가 대중적이었죠. 그러다가 2010년 무렵부터 아주 매운 떡볶이가 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기폭제가 생겼죠.”
“매운볶음면!”
방송 도중이고 오뚝이로부터 지원받은 프로그램인지라 상품명을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누구나 아는 상품이다.
삼양의 불닭볶음면.
2012년에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특유의 감칠맛과 매운맛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다.
삼양에게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는데 이 무렵부터 불닭볶음면을 위시한 매운 음식들이 전성기가 열렸다.
이후 외식산업, 식품산업의 트렌드였던 마라, 로제, 투움바 등 모두 매운맛에 베이스를 두고 있으니 한국인이 얼마나 매운맛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매운맛 트렌드가 10년 넘게 지속되는 현상도 그 때문이리라.
“그럼 상당히 최근에 두드러진 일이네요. 매운 걸 먹는 게.”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요.”
박정아 심사위원이 말을 마치자 함석호 심사위원이 입을 열었다.
“3라운드 주제가 매운맛인데 각 참가자가 어떤 매운맛을 보여주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함석호 심사위원의 말이라 더욱 중요하게 들린다.
“최근 외식 트렌드에 맞춘 감칠맛이 강하고 강렬한 매운맛을 보여줄지 아니면 전통적인 얼큰한 맛을 강조할지 기대됩니다. 그런 면에서 주지승 씨의 음식은 그 경계를 잘 타고 있군요. 잘 먹었습니다.”
함석호 심사위원이 주지승에게 9점을 주었다.
일단 함석호에게 높은 점수를 받으면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도 높은 점수를 받아 왔기에 내 일인 것인 양 기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박정아, 오미경 두 사람도 각각 9점씩 주었다.
이찬석이 입을 뗐다.
“저도 다른 심사위원과 마찬가지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최근 배달업체가 많아지면서 캡사이신을 남용하는 곳이 많아졌는데 그런 저질 음식이 아니라 마늘과 양파, 고추로 감칠맛과 매운맛이 적절히 조합되었네요. 8점 드리겠습니다.”
“시작부터 높은 점수가 나왔습니다. 패널 점수 48점까지 합계 92점으로 주지승 씨가 현재 1위로 올라갑니다.”
“라운드 우승까지 노려볼 높은 점수네요.”
우왕선과 좌왕택이 다음 참가자를 심사대로 불러냈다.
“최은삼 씨, 설명 부탁드립니다.”
“예. 소갈비를 영천 양파와 청양고추로 만든 매운 양념으로 푹 쪄냈습니다.”
최은삼이 매운갈비찜과 흰밥을 심사위원과 패널들에게 나눠주었다.
특별하진 않지만 생김새와 냄새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갈비찜이다.
“음.”
고기가 뼈와 너무나 잘 분리된다.
고기를 찢어보니 양념이 상당히 잘 배여 있다. 밥과 함께 입에 넣으니 달달하면서도 매운 양념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허우. 허.”
열기를 식히려고 입김을 불며 먹으니 풍미가 더욱 강해지고 뒤로 갈수록 단맛이 강해진다.
주지승의 가리비찜이 감칠맛과 매운맛을 적절히 조합했다면 최은삼의 갈비찜은 단맛과 매운맛의 만남이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자 우왕선이 말을 걸었다.
“이번에도 반찬용 씨가 감탄하네요. 맛이 어떻습니까?”
“너무 맛있어요. 저는 최은삼 씨가 재료를 일찌감치 압력솥에 넣으시길래 어떻게 될까 싶었는데 왜 그러셨는지 알 것 같아요. 육질이 너무 부드러워요.”
최은삼은 조리가 시작되자마자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모든 재료를 압력솥에 넣었다.
주변을 깔끔히 정돈하고도 시간이 한참 남아서 다른 사람이 어쩌나 구경했는데, 저래도 되나 걱정했다.
그러나 매운갈비찜을 먹고 난 뒤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만드실 때 갈비살에 칼집을 되게 섬세히 넣으시더라고요. 양념이 고기 안쪽까지 잘 배도록 신경 쓰셨고 압력솥으로 오래 쪄서 이렇게 부드러운 육질이 나온 것 같아요. 양파를 많이 넣어서 눅진해진 양념이 달달하면서도 매콤한데 부드러운 갈비랑 너무 잘 어울려요. 진짜 밥 한 공기 따로 먹고 싶어요.”
고민된다.
주지승의 가리비찜도 너무나 맛있었지만 최은삼이 내놓은 갈비찜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매운맛에 약한 내가 먹기에 딱 좋을 만큼 적당히 매우면서도 단맛과 어우러지는 비율이 완벽하다.
고심 끝에 10점을 적어 보였다.
“10점! 반찬용 심사위원이 10점을 내놓았습니다. 오늘 너무나 팽팽한데요.”
박정아 심사위원이 입 주변을 닦고 입을 열었다.
“반찬용 씨가 정확히 보셨어요. 매운갈비찜은 양념 배합과 그것이 배어드는 문제, 육질에도 신경 써야 하는데 이 갈비찜은 그것을 모두 만족하고 있어요. 정해진 시간 내에 완성시킬 수 있는 숙련도가 돋보이는 음식이었습니다.”
박정아 심사위원이 참가번호 3번 최은삼 씨에게 9점을 주었다.
이어서 함석호가 입을 열었다.
“우리 전통 한식은 대체적으로 삼삼합니다. 궁중음식이나 제사음식 모두 그렇습니다.”
다들 경청한다.
“특히 고급 요리는 국경을 불문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합니다. 짜고 달고 매운 것들은 호불호가 생기기 때문에 높은 사람에게 음식을 내야 하는 요리사 입장에서는 조미료 맛은 적당한 선에서 지키고. 그냥 먹어도 맛있는 좋은 재료의 맛을 한계까지 끌어올려야 했죠.”
그럴듯하다.
왕이나 양반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내놓았다가 무슨 경을 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지방맛을 포함해 매운맛, 떫은맛 등 모든 종류의 맛, 향미를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 조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갈비찜은 많은 사람이 두루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수준 높은 음식으로 봅니다. 최은삼 씨가 한식예찬에서 처음으로 제 실력을 선보이신 것 같네요. 잘 먹었습니다.”
최은삼이 10점을 준 함석호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오미경과 이찬석도 연달아 9점씩 주면서 최은삼은 3라운드 만에 총점 95점으로 현재까지 모든 라운드를 통틀어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지금 최은삼 씨가 말씀도 제대로 못 하시는데. 오늘 정말로 기대가 됩니다.”
감격한 최은삼은 소감도 못 밝히고 눈시울을 적셨다.
앞선 두 번의 경합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다음 순서로 사대문과 육혜린이 각각 82점, 83점을 기록했고.
청주에서 낙지볶음집을 운영하는 참가번호 7번 박성칠(37)의 차례가 돌아왔다.
음식을 나눠줄 때 매운 냄새가 역할 만큼 풍겨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박성칠 씨, 매운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데. 먹어도 괜찮습니까?”
“많이 매우실 텐데 그럼에도 계속 드실 수밖에 없으실 겁니다.”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청주에서 파는 그 맛 그대롭니까?”
“네. 맞습니다.”
이건 좀 힘들 것 같아서 심사위원석에 준비된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낙지와 야채를 집어 입에 넣으니 불향이 확 올랐다.
박성칠이 조리할 때 프라이팬을 움직여 낙지가 불에 직접 닿도록 조리하며 이목을 끌었는데 과연 헛수고는 아니었다.
이런 솜씨가 있으니 맛집으로 소문난 것 같은데 역시나 매운맛이 올라온다.
“아우.”
혀가 아프다 못 해 고통이 귀 안쪽까지 전해진다.
두피가 가려울 정도로 매운맛을 느낀 건 너무 오랜만이라 몹시 고통스럽다.
급히 우유를 마셨지만 소용이 없어 괴로워하는데 옆에서 이찬석이 음식물을 뱉었다.
다들 놀라 고개를 돌렸고 이찬석이 입을 열었다.
“박성칠 씨, 이걸 먹으라고 내온 겁니까?”
“예?”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조리 솜씨가 없는 분도 아닌데 대체 왜 본인 음식을 스스로 망칩니까?”
함석호와 박정아, 오미경 모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건 캡사이신 수용체, 통각 세포가 유별한 극히 일부 사람이 즐기는 음식입니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자랑스레 내놓을 음식이 아니에요.”
이찬석이 1점을 적었다.
오미경 심사위원이 뒤를 이었다.
“조금 전 함석호 심사위원이 말씀하셨듯 좋은 재료를 쓸 때는 양념이 재료 맛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조리합니다. 그리고 보통 양념이 센 음식은 재료 맛을 감출 때 많이 쓰죠. 박성칠 씨가 쓴 낙지는 싱싱해서 식감이 쫄깃하고 야채도 신선해서 아삭했어요. 굳이 이렇게 맵게 만드셨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오미경 심사위원이 4점을 적었다.
박성칠은 입을 꾹 다문 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본인 매장을 운영하시면서 자부심도 있으실 거예요.”
내 차례가 되어 입을 열었다.
“경연 프로그램인 만큼 평소보다 더 신경 썼을 테지만 평소에도 좋은 재료를 쓰고 계신 걸로 압니다. 그래서 제게는 좀 더 아쉬웠던 것 같아요.”
박성칠의 낙지볶음을 좋아하는 사람이 분명 있으니 맛집으로 소문이 났을 거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박성칠 씨가 좋은 재료에 강렬한 불향을 덧입힌 매운 낙지볶음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음식이라 조심스럽지만 특정 집단의 취향에 맞춰진 거라 두루 먹긴 어려울 듯싶습니다.”
6점을 적어 보였다.
함석호는 심사평을 거부하고 2점을 내놓았으며 마지막 박정아가 5점을 주었다.
“박성칠 씨의 낙지볶음이 틀리진 않았어요. 분명 현재 외식 트렌드를 반영해서 완성도를 높인 요리입니다. 하지만 반찬용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특정 집단을 위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볶는 방식, 재료 손질 등 훌륭하셨지만 먹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