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69
치팅데이 169화
35. 작은 사람(2)
식사를 마친 뒤 오늘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 수박맛 초코파이를 하나 먹을 수 있었다.
냉동고에서 꺼낸 초코파이는 상당히 그럴듯해 보였다. 겉면이 수박처럼 녹색에 줄무늬도 표현되어 있다.
반으로 갈라보니 안쪽에는 초코파이의 상징인 마시멜로우가 들어 있으며 그것을 위아래로 빨간 빵이 감싸고 있다.
초콜릿으로 추정되는 수박 씨앗도 있다.
신기해서 이렇게도 놓아보고 저렇게도 놓아보며 사진을 찍으니 묵은지가 빤히 바라본다.
“귀엽죠?”
“초코파이 하나 받았다고 사진 찍는 모습이 제법이긴 합니다.”
“저 말고요. 초코파이요.”
“모르겠습니다.”
반쪽을 입에 넣고 남은 반쪽을 묵은지에게 먹여 주었다.
차가운 표면을 사정없이 씹으니 인공적인 수박향이 느껴지면서 사이사이 수박 씨앗 같은 초콜릿이 씹힌다.
수박바와 초코파이가 합쳐진 느낌이다.
“엄청 다네요.”
“답니다.”
“좀 과한 것 같은데.”
“과합니다.”
“원래 이렇게 달았어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는 식단을 한 지 오래되었고 묵은지는 오랜 시간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않은 탓에 이렇게 자극적인 특히 인공적인 맛을 더욱 크게 느낀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느꼈던 초코파이의 단 정도와는 사뭇 달리 느껴진다.
이 상품이 특별히 더 단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 알기 힘들다.
“객관적인 리뷰는 힘들겠네요.”
“예전에도 이런 적 있었습니다.”
저당밥솥으로 지은 쌀밥 맛이 일반 밥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게요.”
그동안 식단을 잘 지킨 증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 *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부먹이냐. 찍먹이냐.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논쟁을 맛만 봅니다. 백반토론의 반찬용.”
“백우진입니다.”
목요일.
백반토론 방송일이다.
매주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이 정도 하면 많이 하지 않았나?
이제 그만할까?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어찌어찌 27번째에 접어들었다.
“오늘 주제는 크라운제과의 양대산맥이죠? 쿠크다스 대 쵸코하임입니다.”
“쿠크다스! 쿠크다스!”
백우진이 묘하게 흥분했다.
이제 막 시작된 당뇨 식단으로 인해 심신미약 상태로 보인다.
“쿠크다스 같은 멘탈. 유리보다 깨지기 쉬운 남자 멘붕 백우진 위원 자리해 주셨고요.”
“덤벼. 덤벼.”
백우진이 주먹을 이리저리 날리며 의욕을 보인다.
“인사드립니다. 초콜릿처럼 달콤한 남자. 인간 단당류. 당뇨 아저씨 반찬용입니다.”
“어. 이제 그거 안 통해. 나도 달콤해졌어.”
└진짜 미친놈들인갘ㅋㅋㅋㅋㅋ
└자랑이다 이놈앜ㅋㅋㅋ
└그러게 미리미리 신경 쓰라 했잖앜ㅋㅋㅋㅋ
└당뇨 인간들이 펼치는 최고의 과자 대결 ㄷㄷ 가슴이 옹졸해진다
└빨리 시작해!
“저부터 시작하죠.”
시청자들에게 2020년 기준 과자별 매출 순위를 보여주었다.
“2020년 과자별 매출 순위입니다. 1위는 626억 원의 고깔콘. 2위는 618억의 홈런볼. 3위는 608억의 새우깡입니다.”
표를 쭉 내렸다.
“크라운제과의 하임 시리즈는 총 253.9억 원으로 15위를 기록하고 있네요. 쿠크다스는 한참 더 내린 22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쿠크다스 시리즈의 매출액은 191.1억 원으로 닥터유바(192.6억 원)와 오감자(164.1억 원) 사이에 위치해 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팩트 공격은 항상 위협적이다.
특히나 백우진처럼 사실을 기반으로 논리를 펼치는 녀석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형.”
백우진이 드물게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뭐야?”
“내가 형보다 돈 많이 벌어. 그치?”
“그런가? 이젠 비슷하지 않나?”
백우진이 눈알을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질문을 정정했다.
“좋아. 작년 기준으로 내가 형보다 많이 벌었어. 그렇다고 내가 형한테 뭐라 한 적 있어? 갑질하거나?”
“그런 적 없지.”
“그치? 내가 아무리 돈을 더 벌어도 형은 형이고 나는 동생이잖아.”
“언제는 형 취급해 준 것처럼 말한다?”
“당연하지. 형은 형인데.”
“맞는 말이긴 한데 왤케 찝찝하지?”
“찝찝할 거 뭐 있어. 동생이 형 공경하는 게 당연하지. 안 그래?”
“그치.”
“그래. 쿠크다스랑 쵸코하임도 똑같아.”
“아.”
실책했다.
“쿠크다스는 크라운제과가 1986년에 출시한 제품이고 쵸코하임은 1991년에 판매되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쿠크다스가 형. 쵸코하임이 동생이지.”
백우진이 이런 식으로 논리를 펼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동생 쵸코하임이 돈 좀 잘 번다고 형 쿠크다스보다 낫다. 막 무시하고 욕하고 뺨 때리고 그래도 돼?”
“안 되지.”
“그치? 우리 형제끼리 치사하게 돈 얼마 버는지로 얘기하지 말자. 내가 더 잘 벌 때도 있고. 형이 더 잘 벌 때도 있는 거잖아.”
└컄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백우진 컨디션 좋은 듯
└암암 매출 차이로 형제 간에 싸우면 쓰나
└형제사이를 연봉으로 따져? 반찬용 완전 수전노네
“오케이. 네 말이 맞다. 인정.”
백우진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 이건 생각해 봤어?”
“뭘?”
“네가 운전을 해. 조수석에는 이지혜 PD가 탔고.”
“걔가 내 차를 왜 타.”
“가정을 하자고 가정을.”
“싫어. 내가 왜 걔랑 가정을 이뤄?”
└뭔 소리야 이건 똨ㅋㅋㅋㅋ
└진짜 둘이 징하게도 싸운닼ㅋㅋ
└가정을 이룬대 ㅁㅊㅋㅋㅋㅋ
내가 억지를 못 부리도록 방해할 생각인 모양인데, 헛수고일 뿐이다.
“그럼 내가 탔어.”
“싫어. 형이랑도 가정 안 이룰 거야.”
“미래의 제수씨가 탔어.”
백우진이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한테 쵸코하임이랑 쿠크다스밖에 없는데 제수씨가 배고프다고 과자 좀 달래. 그럼 뭐 줄 거야?”
“빨리 운전해서 식당 가면 되지.”
“안 돼. 고속도로야.”
“휴게소 들르면 되지.”
“휴게소 다 망했어.”
“뭔 소리야?”
“무조건 하나는 줘야 해. 그럼 뭐 줄 거야?”
자동차를 가진 사람치고 시트에 과자 부스러기 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이는 없다.
“쵸코하임도 한 부스러기하지만 과연 쿠크다스만 할까? 게다가 차 안에 두고 있던 쿠크다스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까?”
└부스러기 ㅅㅂㅋㅋㅋㅋㅋ
└제발 내려서 먹어
└옆에서 친구가 그 지랄하면 조수석 문 연 다음에 걷어차 버림
└쵸코하임도 그렇긴 한데 쿠크다스는 ㄹㅇ…….
백우진이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쵸코하임 줄래.”
역시 어떤 과자가 더 많은 부스러기를 내는지 고려하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근데 잘 부서진다는 건 부드럽다는 뜻이잖아?”
“뭐. 비슷하지?”
“딱딱한 건 노인학대라고 형이 그랬잖아. 노인 공경 안 할 거야?”
└캬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백우진 왜 이럼?
└태극권 고수
└오늘 반찬용 말 하나도 안 먹히네
└폼 미쳤다
└오늘 지나?
└백반따라에서도 졌으니까 오늘도 지면 최초 2연속 패배임.
“왜 대답을 안 해?”
백우진이 은근히 나를 밀어붙인다.
그동안 얻어맞다 보니 내성이라도 생겼는지 오늘 문장 하나하나가 날카롭다.
“아니지. 노인은 공경해야지.”
“그치? 이제 내가 먼저 말할게. 쿠크다스가 잘 부서지는 건 인정. 근데 애초에 쿠크다스는 안정된 상태에서 먹는 과자야. 소풍이나 수학여행처럼 야외용이 아니라 집에서 우아하게 클래식 같은 거 들으면서 손님한테 내놓는 과자다. 이 말씀이야.”
“쿠크다스가 접대용 과자라고?”
“그럼. 고오급 과자지.”
백우진이 여유롭게 논조를 이어갔다.
“집에서 먹으니까 부서질 리가 있어?”
“포장 뜯을 때.”
“누가 교양 없이 손으로 뜯어. 가위로 윗부분만 잘라서 쏙 빼면 되는데.”
“지금 우리 엄마 욕했냐?”
“……어?”
“똑바로 말해. 지금 우리 엄마 무시했냐고.”
백우진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린다.
└아니 거기섴ㅋㅋㅋㅋㅋ
└반찬용 이 나쁜 놈앜ㅋㅋㅋㅋㅋ
└거기서 탈룰라를ㅋㅋㅋㅋㅋ
└탈룰라의 공격적 사용
└진짜 선동 하나는ㅋㅋㅋㅋㅋ
“아니. 왜 그래! 내가 언제!”
“그랬잖아! 우리 엄마는 뭐 교양이 없어서 쿠크다스 뜯어서 나한테 주셨어?”
백우진이 몹시 당황한다.
“너 진짜 그러지 마. 우리 엄마 쿠크다스 말고 쵸코하임 주시는 교양 있으신 분이야!”
“밑도 끝도 없이 뭔 말이야! 그리고 쿠크다스 말고 쵸코하임 주시는 게 왜 교양 있는 행동인데!”
“쵸코하임이 훨씬 더 고급과자니까!”
백우진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쿠크다스는 289g 한 상자에 3,480원. 10g당 약 120원인데 쵸코하임은 284g 한 상자에 3,980원. 10g당 무려 141원이나 하지?”
“아.”
아차 싶었는지 백우진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까 돈 얘기하지 말자고 합의 봤잖아!”
“네가 먼저 고급 얘기 꺼냈잖아. 난 쵸코하임이 더 고급이라고 얘기했을 뿐인데?”
“이이익.”
“봐. 쵸코하임이 훨씬 고급지고 교양 있는 과자잖아. 이래도 우리 엄마가 교양이 없어?”
└백우진이 잘못했네
└가족은 건드는 거 아니지
└이건 백우진이 나빴다
└ㅋㅋㅋㅋㅋㅋ애 울겠닼ㅋㅋㅋㅋ
└그만해 미친놈들앜ㅋㅋㅋ
백우진이 채팅창 분위기를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치? 난 또. 오해했잖아.”
시청자들은 내가 뻔히 억지 부리는 걸 알면서도 놀릴 수만 있다면 동참해 준다.
특히나 지난 27번의 토론을 통해서 선동과 날조를 하며 억지 부리며 노는 게 서로 합의되었기 때문에 백우진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진짜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백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패배 선언?”
“형. 쵸코하임 두둔하는 이유가 뭐야?”
“……뭐라니?”
오늘 토론 주제는 시청자들이 올려준 댓글 중에서 재밌어 보이는 것을 함께 고른 것이다.
두둔하는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오늘 오전에 가수 하임 씨 인스타에 형이랑 같이 돈가스 먹는 사진 올라왔어.”
백우진이 가수 하임의 인스타에 접속해서 나와 하임이 함께 찍은 사진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뭐?”
“쵸코하임. 화이트하임. 모카하임. 오트하임. 그리고 박하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뭘?”
“지금 하임 씨하고 친하다고 쵸코하임 편 드는 거 아니야!”
백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버럭 소리쳤다.
“쵸코하임! 그거 하임 씨 거 아니야?”
놀라서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는데 그 순간 아차 싶다.
억지 논리를 통한 선동과 날조는 나 역시 대상이 될 수 있고 내가 당황한 모습을 본 시청자들이 달려들어 물어뜯기 시작했다.
└와 친분 때문이었어?
└유착 관계 ㄷㄷ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어쩐지 쵸코하임을 지지할 이유가 없는데. 인제 보니 사적인 관계 때문이었구나
└아닠ㅋㅋㅋㅋ 나만 당저씨랑 하임이랑 친한 게 더 놀랍나?
└ㄹㅇㅋㅋㅋㅋ
└한식예찬 찍으면서 친해졌나?
└월클 ㄷㄷ
└이 정도면 인맥으로 장사하는 거 아님? 공정한 토론 자리에서 인맥 때문에 이러는 게 맞나?
“아니. 잠깐. 쵸코하임이랑 하임이랑 뭐가 연이 있다는 거야?”
“이름이 같잖아!”
“성이 다르잖아! 성이! 쵸코하임은 쵸 씨고 가수 하임은 박 씨야!”
└성이 다르대 이 지랄ㅋㅋㅋㅋㅋ
└어? 가족이 아니었어?
“아니지! 하임 무슨 말인지 몰라? 독일어! 외국사람이잖아! 성이 당연히 뒤에 있지!”
└ㅁㅊ
└이건 몰랐다
└컄ㅋㅋㅋㅋㅋㅋ 이름이 쵸코고 성이 하임이었구나.
└독일어 하임은 영어로 홈이다. 즉 한 가문을 나타낼 수도 있으니 성이 맞다.
└이걸 속이려 했다고?
오늘 정말 여러 번 놀란다.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할 거라고 예측이라도 한 것마냥 내 논리에 대한 반박이 완벽히 준비되어 있다.
당황해서 백우진을 보니 이미 다 이겼다는 기분으로 턱을 들고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본다.
└해명해
└해명해
└가족기업을 인맥 때문에 지지했다? 이거 완전…….
└늬들 무슨 말 하는지 알기나 하고 떠드는 거임?ㅋㅋㅋㅋㅋㅋ
└여기 원래 이러고 놀아
“인정해. 쵸코하임. 화이트화임. 박하임. 다 같은 집안이라고.”
“……그래. 쵸코하임. 사실 하임이 거야.”
백우진이 두 팔을 벌리며 의기양양해한다.
“그럼 쿠크다스는?”
“뭐가?”
“쿠크다스는 누구 건데?”
“누구 거라니?”
“쿠크 다스는 누구 거냐고!”
백우진의 얼굴이 갑자기 사색이 되었다.
“왜 말을 못 해! 쵸코하임이 하임이 거면 쿠크다스는 누구 거냐고!”
“미쳤어? 앞에 발음 똑바로 해!”
“다스읍!”
한 번 더 외치려는 순간 백우진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