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70
치팅데이 170화
35. 작은 사람(3)
“여러분, 아시죠? 이 형 원래 아무 말이나 막 뱉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들짝!
└아 맵다 매워
└진짜 반찬용 정신줄 놓았낰ㅋㅋㅋㅋㅋㅋ
└100만 유튜버 정치성향 드러내
└왜 대답을 못 해!
허약한 백우진의 손을 뿌리치고 한 번 더 몰아붙였다.
“왜 이렇게 당황해?”
“너 같으면 안 그러겠냐!”
“그러고 보니 지금 오른쪽에 앉아 있고…….”
└헉
└이거 빼박이네
└나무위키 수정하러 가야겠다
└ㅋㅋㅋㅋㅋ백우진 진짜 당황했나보다 말 좋아하는 애가 입맛 뻥긋거리넼ㅋㅋㅋㅋ
백우진이 어떻게든 내 입을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다.
“그러니까 왜 대답을 못 하시냐고요.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좌불안석하고. 어?”
“또 뭐!”
“왜 우불안석은 안 하시죠? 아까부터 좌불안석만 하시고. 지금 정치 성향 드러내시는 겁니까?”
백우진의 눈이 거의 튀어나왔다.
“야!”
└야이앀ㅋㅋㅋㅋㅋ
└뇌절ㅋㅋㅋㅋㅋㅋㅋㅋ
└반찬용 돌았음?ㅋㅋㅋㅋㅋ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해서 막 나가는 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불안석 이지랄ㅋㅋㅋㅋㅋㅋㅋ
└백우진 빡돌았닼ㅋㅋㅋㅋ
└야래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
순간적으로 뇌내 필터를 거치지 않은 드립이 나오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미친놈이 되어야 좌우 편가르기 하는 사람들에게서 안전해진다.
“아까부터 대답은 안 하시고 계속 소리만 치시는데 태도를 명확히 하십시오! 좌입니까 우입니까!”
백우진이 입만 뻥긋거린다.
“그러고 보니 우진. 오른쪽으로 진격한다는 뜻 아닙니까? 그럼 우파악!”
백우진이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아악! 놔! 이거 안 놔?”
“너 죽고 나 죽자! 혼자만 죽을 것 같아?”
“아아아아악!”
얼마 후.
겨우 진정하고 자리에 앉으니 캠에 담긴 모습이 난리도 아니다.
백우진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방송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힘은 내가 세지만 주짓수를 배운 백우진이 자꾸 이상한 기술을 자꾸 걸어대서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의외로 백우진이 꽤 버티네
└ㄲㅂ
└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기넼ㅋㅋㅋ
└진짜 애새끼들도 아니고 뭐 하는 짓임?
└나이 34, 32 먹은 놈들이 방송 중에 머리끄댕이 잡고 잘하는 짓이닼ㅋㅋㅋㅋㅋㅋㅋ
└짜고 치는 거지 설마 진짜였겠냨ㅋㅋㅋㅋ
└서로 진심으로 안 싸웠잖아. 주먹질 한 번 안 하고 그냥 부둥켜안고 있더만
└나 토론하다가 이렇게 싸우는 거 뉴스에서 봤음
└ㄹㅇ 고증이었던 거임ㅋㅋㅋㅋ
└와 진짜 백반은 천재다. 살짝 풀어졌던 백반토론 긴장감을 이렇게 끌어올리네
└변화구 지렸다
└이걸 이렇게 포장한다고?
“…….”
창피해진다.
백우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녀석이 내 손을 잡고 일어나자 등과 엉덩이를 털어주고 물을 주니 다들 연출된 장면으로 봐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운이 좋다.
“힘만. 세 가지고. 학. 하악.”
“그러길래 왜 자꾸 덤벼.”
“이 입 닫게 하려고.”
“아. 힘들어 죽겠네. 여러분 오늘 방송 여기까지 할게요.”
└다음 주부터 그냥 토론 말고 그냥 글러브 끼고 나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얘들 진짜 왜 이럼ㅋㅋㅋ
└먹고 살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두 사람 땀 흘리는 모습 보니 안심이 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우애 좋게 운동하면서 살 빼시기 바랍니다.
└혈당 조절 개이득
방송을 마치고 나니 정신이 들어온다.
“진짜 선 넘지 마.”
백우진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너야말로 선 넘지 마.”
“웃기시네. 내가 뭐 어쨌는데.”
“하임.”
“뭐.”
“정치인 건드는 건 무서우면서 연예인 건드는 건 안 무섭냐?”
백우진이 일어나 앉았다.
“정치인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도 무섭지만 연예인 팬덤도 조심해야 해. 하임 팬이 얼마나 많은데.”
“…….”
“특별히 친분이 있지도 않은데 이런 식으로 언급되는 거 본인도 기분 좋지 않을 수 있잖아. 팬들이면 더 그럴 수 있고.”
“……알았어.”
이제 백우진 차례다.
어느 순간부터 백반토론이 조금씩 과열되는 일이 생겼다.
오늘도 사실 조금이라도 웃기고 싶다는 마음에 무리수를 던진 것이다.
그것을 자각한 뒤로는 이런 식으로 방송 후에 서로의 언행을 지적하는 시간을 가졌다.
“형도 조심 좀 해. 거기서 다스가 왜 나와? 한참 지난 떡밥이었기에 망정이지 분위기 굳었으면 어쩔 뻔했어?”
묵묵히 듣는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반박할 이야기가 있어도 일단은 듣는 게 우선이다.
“나도 알아. 백반토론 원래 이런 식이라 어느 정도까지는 시청자들도 받아주는 거. 근데 여기서 끝낼 거야?”
백반토론이 1회부터 헛소리하며 농담 따먹는 예능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행운이었다.
나는 선동과 날조로 공격, 백우진은 억울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접수 역할이 굳어지면서 어지간한 억지는 웃어넘기게 되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존 시청자들에 국한된 이야기다.
백우진은 그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거 분명 누가 클립 따서 쇼츠로 올릴 텐데 우리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생각 하겠어?”
“그치.”
반성과 지적 시간 뒤에는 서로 칭찬할 거리를 찾는다.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반성만 하다간 백반토론이 즐겁지 않게 될 것만 같아서 우리끼리라도 칭찬해 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매출 차이를 형 동생 관계로 받아친 건 좀 놀랐어. 반박할 거리가 없더라.”
“당연하지.”
“미리 생각해 둔 거지?”
“내가 형 한두 번 상대했어? 형이 어떻게 나올지 뻔해.”
“진짜?”
내가 씩 웃으니 백우진이 심통 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건 좀 신박하긴 했어.”
나도 가끔 놀랄 때가 있다.
민트초코를 민초(民草)로 엮은 일이라든가 문어를 문어지다, 무너지다로 이은 점, ‘사탕 들렸어?’, ‘너 넙치된 거야’ 등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이걸 떠올렸지 싶은 드립이 있다.
물론 그중에는 사용하기 꺼려지는 것도 있는데 오늘은 자체검열하기 전에 입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우진아.”
백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우리 진짜 많이 크긴 했나 봐.”
“뭐가.”
“예전에는 이런 거 신경 안 썼잖아. 구독자 늘었다고 조심하고. 방송국 물 좀 먹었다고 이것저것 신경 쓰고. 책임질 식구 있으니 몸 사리고.”
“다 그런 거지 뭐.”
“그치. 근데 계속 그러면 우리가 경쟁력이 있을까 싶네.”
“무슨 말이야?”
“그렇잖아. 날것 그대로일 때로 성장했는데 조금씩 말 조심하고. 하고 싶은 말 못 하고. 그러다 보면 올드 미디어하고 반찬가게가 뭐가 다른가 싶어. 아니지. 마이너 버전이지.”
내가 여러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이유는 유튜브 채널과 구독자가 나를 지지해 주기 때문이다.
예전에 묵은지와도 얘기 나눈 적 있는데 반찬가게가 온전해야 방송이든 강연이든 광고든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조금씩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구독자들이 내 곁에 남아 있을까 걱정된다.
“웃기시네. 그게 조심하는 거야?”
백우진이 건 딴지에 웃음이 터졌다.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다.
* * *
유리창 너머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간다.
“웃기시네. 그게 조심하는 거야?”
“그래서. 다음 주엔 뭐 할까?”
“이젠 할 것도 없어.”
“그 말 우리 첫 회부터 하고 있는 거 아냐?”
오늘 방송 내용이 걱정되어 피드백을 하려 했으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로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임을 깨달았다.
각자 1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버로서 본인의 영향력을 자각하고 있다.
사람이기에 실수할 때도 있으나.
그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스스로 경계하며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두 사람이 앞으로도 잘해나갈 거란 믿음이 생긴다.
“피자 대 치킨 어때?”
“……나 진짜 아무 생각이 안 나.”
“그것도 첫 회부터 얘기했어.”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일은 대단하고 그만큼 어렵다.
어쩌면 나는 그런 일을 1년 가까이 매주 수행하는 두 사람을 재능이 있으니까 하는 얄팍한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모르겠다.
찬용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번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생각한다고 과연 가능한 일일까.
찬용 씨와 함께 살면서 그가 식사할 때, 씻을 때, 무엇을 볼 때 심지어 멍하니 앉아 있을 때조차 방송에서 쓸 농담을 고민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득문득 정말 뜬금없는 타이밍에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던지며 이건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내가 웃으면 다음 주나 혹은 다음 날 혹은 당일 방송에서 언급하는데.
저 머리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도 상상하기 힘들다.
“그럼 뭐 해.”
“그냥 피자 대 치킨 해.”
“아 진짜 생각 안 난다고.”
“언젠 뭐 있어서 했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은지 씨.”
“은지 씨, 이 형 혼 좀 내줘요. 방송 이렇게 하다가 반찬가게 망하겠어요.”
백우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두 분 모두 혼나셔야겠습니다.”
찬용 씨의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귀엽다.
“오늘 방송 때문에 더더욱 광고 붙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백반토론만 한 콘텐츠에 1년 가까이 광고가 붙지 않은 이유는 모두 두 분 탓입니다. 크라운해태에게 고소당해도 할 말 없습니다.”
“난 아무 상관 없어요!”
백우진이 소리쳤다.
“백우진 씨는 하임 씨 팬에게 악플 받을 테니 법률적인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백우진이 입을 쩍 벌렸다.
“진짜 고소하진 않겠죠?”
“글쎄요. 하지만 당해도 싸다는 건 확실합니다.”
“……이번 백반토론 올리기 전에 후시 녹음 같은 거라도 할까?”
찬용 씨가 백우진에게 물었다.
“뭘?”
“쵸코하임이랑 쿠크다스 많이 먹어 달라고. 맛있다고.”
“면책용인 거 뻔한데 통할까?”
“그렇게라도 하면 봐주지 않을까?”
“형 혼자 해. 난 상관없어.”
“하임이한테 너 욕 좀 해달라고 해야겠다.”
“어?”
“하임이가 팬카페에 글 하나 쓰면 너 인생 끝이야.”
“언제 봤다고 하임이, 하임이야? 돈가스 한 번 같이 먹었다고. 내가 속을 것 같아?”
“에? 한다? 연락한다?”
“해라.”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믿음직스럽던 두 사람이 금방 유치하게 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