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75
치팅데이 175화
36. 예찬(3)
주지승 외 다른 참가자들의 일상과 인터뷰도 공개되었다.
경북 영천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최은삼도 소개되었는데, 원래도 맛집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한식예찬 이후엔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새벽 3시. 최은삼 씨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합니다.
-이 시간에 출근하시는 거예요?
좌왕택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예.
최은삼은 별다른 말 없이 트럭에 올라탔다.
매장에 도착해서는 하루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이걸 전부 다 하시는 거예요? 혼자?
-혼자 하죠. 그럼.
최은삼이 허허 하고 웃으며 양파를 깠다.
5시가 넘어서니 손님들이 하나둘 최은삼 씨의 국밥집을 찾았다.
시장 사람도 있었고 작업화를 신은 사람도 있었으며 최은삼의 아버지도 있었다.
모두 국밥 한 술 뜨고 있는데 좌왕택이 최은삼의 아버지 최덕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올해로 78세인 그는 시장에서 돔배기를 비롯한 수산물을 판매한단다.
-원래 이렇게 일찍 나오세요?
-그럼.
-매일 아침 아드님 국밥 드시는 거예요?
-응.
부자가 한결같이 과묵하다.
장소가 바뀌어 최덕호의 매장에서 인터뷰가 이어졌다.
-든든하시겠어요. 아드님 매장하고 나란히 계시니까.
-든든하긴.
-효자잖아요.
-불효자야. 저런 불효자가 없어.
최덕호는 고개를 저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영상은 아침 장사를 마친 최은삼을 잡았다.
-아버님하고 무슨 일 있으셨어요?
-허허.
최은삼은 대파를 다듬으며 허허 웃고는 말이 없었다.
좌왕택이 기다리니 슬쩍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젊은 사람은 서울 올라가 살아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근데 여기서 국밥 말고 있으니 마음에 안 드시는 거죠.
-은삼 씨 실력이면 서울에서도 통할 것 같은데.
최은삼이 대파를 내려놓곤 문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는 여기가 좋아요.
고향을 바라보는 최은삼은 작게 미소 지었다.
-나고 자란 곳이라 그런지 마음이 편하더라고.
최은삼은 줄곧 고향 음식을 가져왔다. 마늘, 양파, 돔배기 등 영천하면 떠오르는 식재료를 사용해 왔다.
-나 없으면 서운할 사람 많아요. 오늘 아침 봤잖아요.
-진짜. 새벽부터 많이들 오시더라고요.
-한 사람씩 떠나는 게 참 그래요. 참 그래.
최은삼이 씁쓸하게 말했다.
영상은 예전 영천 시장이 번성했다가 지금은 규모가 많이 줄어든 사실을 전했다.
다시 화면에 나온 최은삼은 어릴 적 기억하던 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게 싫다고 했다.
본인이라도 자리를 지키고 한식예찬을 통해서 영천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정말 고향을 사랑하십니다.”
묵은지가 말했다.
“그러게요. 쉽지 않을 텐데.”
1라운드 때 돔배기가 생각난다.
지금 보니 돔배기는 고향을 사랑하는 최은삼의 마음이 담긴 음식이었다.
아버지가 파는 돔배기로 맛있는 요리를 해서 사람들에게 영천을 알리고 싶었을 텐데, 혹평을 받았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도 못 하겠다.
다음은 사대문이 소개되었다.
서산 출신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주지승과 줄곧 우승권 다툼을 해왔는데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하다.
최은삼 때와 비슷하게 매장이 소개되고 점심과 저녁 사이 한가한 시간에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오래 했죠. 17살 때부터 했으니 30년, 31년 됐습니다.
언제부터 요리를 했냐는 질문에 사대문이 답했다.
-그럼 고등학생 때부터 하신 거예요?
-예. 학교 다니기가 싫더라고요. 하하!
사대문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요리사의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자막으로 사대문은 어릴 적 부모를 여의어 학교를 다닐 사정이 못 되었다고 소개되었다.
-그 당시에는 뭐 배울 곳이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학교에서 배울 생각도 못 했고. 무작정 식당 가서 설거지부터 하면서 배웠죠.
사대문이 별일 아니라는 듯 허허 웃으며 말했다.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말도 못 하죠. 어깨 너머로 배워야 하는데 그때는 다들 자기 기술 남한테 알려주지 않았어요. 밥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럼 어떻게.
-요령껏 배워야죠. 몇 년 설거지하다 보면 차가운 요리. 샐러드 같은 거 시켜 줘요. 그럼 좋다고 하다가 또 몇 년 묵묵히 일하면 불 쓰게 해주고. 그랬습니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으셨어요?
-전혀요. 요리가 좋았으니까. 달에 20만 원 받고 식당 건물 다락방에서 자도 좋았어요.
사대문이 낡은 공책 여러 권을 꺼내 보였다.
그때 기록했던 레시피라고 소개되었는데 손때가 얼마나 많이 묻어 있는지 그의 노력이 짐작되었다.
-20만 원이요?
-예. 그때는 그랬습니다. 요리사들 환경 좋아진 지 얼마 안 됐어요.
주방 일이 힘든 사실은 도시락 장사 한 달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점심 장사만 그것도 한정 수량만 했던 나와 달리 다른 요리사들은 노동 강도가 훨씬 강할 터다.
그럼에도 박봉이었다니 그 시절 요리사들은 대체 어떻게 버텼는지 의문이다.
-자부심이 있었죠. 내가 적어도 이 요리만큼은 이 동네에서 제일이다. 적어도 먹는 걸로 장난치는 놈들하곤 다르다. 손님들도 인정해 주시니 그런 자부심으로 지내는 거죠.
우왕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게 흔들릴 때가 있긴 하더라고요.
-어떤 점이.
사대문이 핸드폰으로 가족 사진을 보여주었다.
-예쁘죠?
-가족분들이신가 봐요.
사대문이 술 한 잔의 쓴맛과 한숨을 내려놓듯 말을 뱉었다.
-단칸방에서 신혼 시작해서 아들 딸 생기니 막막하더라고요. 다른 집 애들처럼 분유 좋은 것 좀 먹이고 싶고 기저귀도 보드라운 걸로 쓰고 싶고.
사대문은 차마 말을 못 잇고 고개를 저었다.
우왕선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다.
실력 없는 편집자는 저 시간을 편집에 앞뒤를 이어붙이겠지만 사대문이 말을 잇지 못하는 표정을 클로즈업함으로써 감정을 끌어올린다.
-하루는 너무 고단해서 그때 일하던 곳 사장님하고 소주 한 잔 마시고 집에 들어갔는데. 그때가 여름이었어요.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애랑 애엄마가 기침하면서 누워 있더라고요. 곰팡이 때문에.
사대문이 고개를 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좋아하고 자부하던 요리사란 직업이 그날만큼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우왕선은 사족을 붙이지 않고 그저 사대문의 말을 들기만 했다.
-내가 요리사라서 우리 가족이 이렇게 고생하는구나. 자괴감이 들었죠.
사대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다음날 바로 일 그만두겠다고 하고 중학교 때 선배 따라 건설현장 돌았습니다. 1년쯤 했나. 어느 날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식당 하자고. 둘이서 하면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고.
사대문이 눈물을 훔쳤다.
-무슨 돈이 있어 식당을 하냐고 물으니 없는 형편에 모아둔 돈이 있다고 합디다. 그게 장인어른 퇴직금인 줄도 모르고 넙쭉 받아다가 대출까지 더해서 무작정 여길 차렸죠.
사대문이 웃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다시 우리 애, 집사람 고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서 몸이 부서져라 일했습니다.
사대문이 본인 매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이렇게 먹고 살만해졌죠. 하하하!
사대문은 한식예찬에서 우승해서 매장을 더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장인어른께 집도 사드리고 아이들 하고 싶은 공부도 원 없이 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함께 고생해 준 아내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꽤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묵은지가 사대문의 식당을 언급했다.
“잘 되다가 코로나 때 타격이 컸대요. 식자재 가격도 오르고 손님도 줄고 배달이 해결책이 되려나 싶다가 어플 수수료가 너무 크다고.”
지역 맛집으로 알려지면서 생활이 꽤나 괜찮아지기 시작하고 빚을 거의 다 갚아갈 즈음 벌어진 일이었다.
사대문은 한식예찬을 계기로 다시 한번 본인 매장을 활성화할 계획인 모양이다.
다음은 육혜린.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전문 요리사가 아니라 회사원이라 이목이 집중되었던 사람이다.
손놀림이 빠르고 야무져서 요리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터뷰는 육혜린의 퇴근길에 이루어졌다.
-어떤 일 하세요?
-출판사 다니고 있어요.
육혜린은 출판사 편집자로 6년째 근무 중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어디 가시는 거예요?
-아르바이트하러 가요.
-일 방금 끝나셨는데요?
-네.
육혜린이 웃었다.
그녀가 향한 장소는 영등포의 한 푸드트럭 앞이었다.
-엄마.
-딸. 뭐 하러 또 왔어?
-배고파서 왔지.
육혜린은 익숙하게 앞치마와 위생모, 위생장갑을 챙겼다.
-여기서 두 분이서 장사하시는 거예요?
-힘드니까 오지 말라 해도 자꾸 와요.
육혜린의 어머니 홍재선이 딸을 탓했다. 육혜린은 뒤에서 찾아온 손님을 응대 중이다.
우왕선이 물었다.
-혜린 씨 솜씨가 좋던데 왜 반대하세요?
-멀쩡한 직장 두고 힘든 일 하니까 그렇죠.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이 힘든 일 하길 바라요. 사무실에 있으면 겨울에 따숩고 여름에 시원하고 얼마나 좋아.
화면이 전환되었다.
토스트를 굽는 홍재선을 배경으로 육혜린이 진지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요리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그. 라면요리왕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주인공이 회사 마치고 라멘 포장마차를 운영하거든요. 되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라면요리왕이라는 만화가 잠깐 소개되었다.
-학생 때 물어들 보잖아요. 꿈이 뭐냐고.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그냥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업하고 그랬는데. 회사 휴게실 책장 맨 아래 그 만화책이 꽂혀 있더라고요. 밤 새면서 봤어요.
만화책 이야기를 하는 육혜린은 요리할 때와 같이 생기가 돌았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배웠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우울증이 조금 있었는데 요리할 때는 괜찮았어요.
나도 우울증으로 상담받을 때 비슷한 말을 들은 적 있다.
우울증을 이겨내는 방법 중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과 본인을 위해 밥상을 차려 먹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대충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로 때우지 말고 자신을 위한 밥상을 그럴듯하게 차리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꽤나 호전된다고 한다.
실제로도 그렇고.
-엄마도 여기서 토스트 장사 하니까 공부가 많이 돼요. 뭐가 필요하고 손님 응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끄러워. 가서 잠이나 자.
육혜린의 어머니 홍재선이 딸을 또 한 번 다그쳤다가도 육혜린이 딱 붙어 어깨를 비비니 어쩔 수 없이 웃는다.
모녀 사이가 좋아 보인다.
-회사에서는 어때요?
-다들 놀라셨대요. 퇴근 후에 그런 일 하고 있는 줄 모르셨다고.
육혜린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
-우승하면 창업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장님은 뭐라고 안 그러세요?
-저 하나 없다고 안 돌아갈 회사는 아니라서……. 잘해주지도 않고. 아. 이건 내보내지 말아주세요. 편집. 편집.
“육혜린 씨는 반드시 우승해야겠습니다.”
저런 말을 내보낸 메인 PD의 인성에 감탄이 절로 나오던 차, 묵은지의 말에 빵 터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