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8
치팅데이 18화
4. 칼로리(2)
짐꾼 헬스장을 찾았다.
평소에는 사람으로 가득한데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그런지 한산하다 못해 조용하다.
“후읍. 후읍.”
아무도 없나 싶어 안쪽으로 들어가니 차지찬 혼자 스쿼트를 하고 있다.
한쪽에 큰 원판을 3개씩 끼웠으니 120㎏쯤 되나 싶은데, 작은 체구로 저만한 무게를 번쩍번쩍 드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형.”
“어, 왔어?”
“걷고 있을게.”
“오케이. 후욱. 후욱.”
시작은 항상 20분 걷기다.
이후 스트레칭과 본 운동, 정리 운동을 한 뒤에 집까지 걸어가는 살인적인 과정을 거치지만 오늘은 공부한다고 했으니 훨씬 쉬울 거다.
가벼운 마음으로 런닝머신에 올라 걷기를 얼마간 차지찬이 다가왔다.
“조용하고 좋지?”
“그러게. 이브라서 그런가?”
“아마? 아침에는 사람 좀 있었는데 다들 일찍 들어가더라.”
“형은? 사람 안 만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사교적인 차지찬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있으니 의아하다.
혹시 내 운동을 봐주려 남았나 싶어 부담된다.
“오늘 하체하는 날이라서.”
“응?”
“음?”
뭐가 문제냐는 묻는 표정이다.
“징그럽다. 정말. 운동이 그렇게 좋아?”
“그럼. 너도 하다 보면 나처럼 돼.”
“120㎏씩이나 짊어지고 스쿼트할 정도로 좋아하고 싶진 않은데.”
“120㎏?”
“저거.”
차지찬이 사용하던 바벨로 시선을 옮기니 갑자기 화를 낸다.
“야, 저게 어떻게 120이야.”
“아니야?”
“봉은 뭐 조상이 들어주냐?”
“맞네. 봉은 얼마나 돼?”
“20㎏.”
봉만 들어도 20㎏라니.
원판을 끼지 않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대단해 보인다.
“아무튼 걸으면서 들어.”
차지찬이 런닝머신 속도를 4㎞/h에서 6㎞/h로 높였다.
편하게 걷고 있었는데 눈치도 빠르다.
“내가 보니까 너 다이어트를 잘못 알고 있더라고. 적게 먹는다고 좋은 게 아니야.”
“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빠지지 않아?”
“적게 먹는데 어떻게 많이 움직이냐?”
“……그래서 힘든 거 아니야?”
“당연히 힘들지. 안 되는 일을 하려니까.”
“형이 설명을 못 하는 거야. 아니면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거야?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생각해 봐. 살이 왜 쪄?”
“많이 먹어서.”
“많이 먹는다는 기준은?”
“……칼로리?”
“그래. 권장 칼로리란 개념이 있고 음식마다 칼로리가 표기되니까 칼로리를 적게 섭취하면 살이 빠진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잘못되었다고.”
계속 들을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들어 네가 하루에 2,000kcal를 먹고 2,000kcal를 썼어. 그런데 1,000kcal만 먹으면 나머지 1,000kcal만큼 살이 빠진다고 생각하지?”
“응.”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아니지. 그건 네가 먹는 걸 줄여도 2,000kcal를 소모해야 가능해.”
“아니야?”
“섭취 칼로리가 줄면 소비 칼로리도 줄어. 안 먹는데 어떻게 움직여.”
“그래서 다이어트가 힘든 거 아니야?”
차지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방 1㎏은 7,800kcal야. 칼로리 다이어트 이론에 따르면 7,800kcal를 소모하면 지방 1㎏이 빠지는 거지. 근데 이 런닝머신 1시간 타면 칼로리가 얼마나 소모될까?”
“몰라.”
“70㎏ 나가는 사람이 1시간 걸으면 300kcal 정도 써. 26시간을 걸으면 지방 1㎏이 빠진다는 말이지. 넌 몸무게가 더 나가니까 좀 덜 걸어도 될 거야.”
고개를 돌려 차지찬과 눈을 마주쳤다.
26시간이나 걸어야 고작 1㎏ 뺄 수 있다니.
이보다 절망적일 순 없다.
“근데 이 계산은 틀렸어.”
차지찬이 스마트폰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다.
“여기 나오는 리듬체조 선수는 하루에 고작 643kcal밖에 안 먹어. 그리고 운동으로만 1,755kcal를 소모해. 기초대사량이 1,320kcal니까 총 소모량은 3,075kcal지?”
“응.”
“643kcal를 섭취했으니 하루에 2,432kcal가 마이너스되고.”
“암산 왜 이렇게 잘해? 문과라고 숫자도 못 센다는 사람이.”
“계산은 잘해.”
얄미워 죽겠다.
“이 선수는 이런 과정을 6주 동안 했어. 2,432 곱하기 42니까 102,144kcal를 소모한 거고 칼로리 다이어트 이론에 따르면 약 13㎏이 빠져야 해.”
암산이 안 되어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아무튼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실제로는 1.5㎏밖에 안 빠졌어. 이상하지 않아?”1)
“어…….”
“왜 안 빠졌을까?”
“모르겠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이 선수가 이미 너무 마른 상태였기도 하고. 애초에 인체가 소모하는 칼로리는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해.”
“이 다큐멘터리에선 계산했잖아.”
“장담하는데 불가능해. 애초에 식품에 표기된 칼로리도 근사치야. 다 틀려.”
“…….”
“아무튼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 일반적인 상황으로 보면 기초대사량이 낮아졌기 때문에 13㎏이 아닌 1.5㎏만 빠진 거야.”
살을 빼려면 기초대사량이 높아야 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우리 몸은 굶으면 대사량을 줄여. 적게 먹어도 마찬가지야.”
“왜?”
“살려고.”
“먹는 게 없으니 일단 소비를 줄인다?”
“그렇지. 근데 순서가 있어. 기초대사량은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야. 그러니 이걸 줄이면 생명에 위협이 되지. 그래서 굶거나 적게 먹으면 가장 먼저 활동대사량부터 줄여.”
“아, 그래서 밥을 적게 먹으면 움직이기 힘들구나.”
“그래. 굶으면 힘없고 움직이기 싫어지는 이유야. 그리고 움직이지 않으면 근손실이 생기고, 기아 상태가 길게 이어지면 결국 기초대사량도 낮아져. 활동을 안 해도 먹는 게 없으니 몸이 생명활동을 천천히 줄이는 거야. 아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지.”
“이해했어.”
“좋아. 그럼 이 상태에서 먹는 게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다시 건강해지겠지?”
“요요가 와.”
“……왜?”
“굶었으니 몸에서 필요한 영양분이 많을 거 아니야.”
“응.”
“그러니 조금만 먹어도 어떻게든 많이 흡수하려 해. 예전에는 많이 들어와도 적당히 흡수하고 버렸는데 이제 그럴 여유가 없잖아.”
“잠깐. 그럼 먹는 게 다 소화가 되는 게 아니야?”
“이제야 이해하는 것 같네. 그래. 평상시에 3,000cal를 먹어도 3,000cal를 전부 흡수하진 않아. 예를 들어 평시에 60%만 흡수한다 치면 기아 상태일 때는 80~90%를 흡수하는 거지.”
“아.”
“이걸 살찌기 쉬운 체질이 되었다고 표현하는 거야.”
“잠깐만. 그럼 운동하면 된다는 말 아니야?”
“말했잖아. 활동대사량을 낮춘다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저칼로리 식단과 고강도 운동을 이어가는데, 이러면 몸이 망가져. 너 목이 마른데 그거 무시하고 계속 뛸 수 있어?”
“못해.”
“영양분도 마찬가지야. 부족해서 몸이 신호를 보내는데 그걸 무시하고 운동만 하면 어떻게 되겠어.”
“어떻게 되는데?”
“못 해. 언젠가는 포기하게 돼.”
“정신 바짝 차리면?”
“말했잖아.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야. 영양분이 부족한 상태는 목이 마른 상황이랑 같아. 갈증을 의지로 참아낼 수 있어?”
고개를 저었다.
“살 못 빼는 사람한테 의지 문제라고 하는 인간들은 무식한 거야. 너도 마찬가지고. 다이어트는 의지 문제가 아니야. 올바른 방법으로 하는가. 그게 중요하다고.”
“근데 좀 이상해. 마른 사람이면 몰라도 난 지방이 많잖아. 좀 안 먹어도 부족한 에너지를 지방에서 가져오면 되는 거 아니야?”
“뭐 어디 예금해 뒀냐? 어떻게 필요할 때마다 꺼내다 써.”
“그런가?”
“그래. 사람 몸이 그렇게 편리하지가 않아. 기계가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방을 태우기는 해. 근데 적게 먹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어?”
“활동량이 줄어든다며.”
“그래. 활동량이 줄잖아? 그래서 생기는 근손실으로 인한 기초대사량 저하와 활동 대사량 저하가 함께 오지. 그럼 어떻게 돼.”
“……잠깐만. 정리 좀.”
차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굶어서 살을 빼면 목표치까지 가긴 해. 왜? 내 지방을 빼다 쓰니까. 근데 그것 때문에 활동량이 주니까 활동 대사량이 떨어지고. 근육도 주니까 기초 대사량도 떨어져. 그런 상황에서 정상 체중이 되어서 음식을 먹으면 그전보다 살이 더 찐다는 말. 그런 뜻이야?”
“그렇지.”
요약하면 적게 먹는데 살은 안 빠지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몸이 되는 거다.
“근데 여기 나오는 리듬체조 선수는 먹는 게 적어도 운동 엄청 많이 하잖아.”
차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처럼 할 수 있어?”
“아니.”
“그리고 저렇게 해도 문제는 있어. 왜 저렇게까지 했는데 6주 동안 1.5㎏밖에 안 빠졌을까? 저렇게까지 하는데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아?”
설명을 듣다 보니 원래 걷기로 한 20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런닝머신에 기록된 40분을 보니 그동안 5㎞ 걸었던 게 효과가 있긴 한 듯하다.
엄청나게 힘들진 않다.
런닝머신에서 내려 바닥에 주저앉아 상의로 땀을 닦았다.
“아까 봤던 다큐멘터리를 보면 탄자니아 하자족과 서구인의 하루 소비 칼로리를 비교한 자료가 나와.”
“응.”
“하자족은 매일 10㎞를 걷고 뛰면서 수렵 생활을 하고 서구인은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어느쪽이 더 많은 칼로리를 소비할까?”
“당연히 하자족이겠지.”
“아니. 차이가 없어.”
“엥?”
“이상하지?”
“말이 안 되잖아.”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활동량이 어마어마할 텐데 앉아 있는 사람들하고 똑같다니.
얼토당토 안 되는 이야기다.
“말이 돼. 아까 먹는 게 줄어들면 대사량을 낮춘다고 말했지?”
“응.”
“우리 몸은 원래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해. 적게 먹으면 적게 쓰려고 하고 많이 움직이면 많이 먹으려고 하거나 적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려고 해. 그래서 항상 내 몸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려 하지. 이걸 항상성이라고 해.”
“응.”
“근데 하자족은 하루에 먹는 양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니까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더 적은 에너지를 쓰도록 몸이 변한 거야.”
“좀 풀어서 말해줘.”
“너 처음 여의도에서 집까지 걸어갔을 때 어땠어?”
“죽을 것 같았어.”
“5~6㎞ 정도 됐나?”
“응.”
“근데 지금도 하루에 5㎞는 걷잖아. 죽을 만큼 힘들어?”
“어.”
조금 전에도 느꼈지만 확실히 수월해졌다.
그러나 쉽다고 하면 더 어려운 걸 시킬 게 뻔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할 순 없다.
“웃기고 있네.”
차지찬이 이죽였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사용하는 근육이 발달하고 그 행위 자체에 익숙해져. 한마디로 쉬워지는 거야. 몸이 그 활동에 적응한다고.”
“응.”
“그리고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소비하는 칼로리가 적어지지.”
“그럼 하자족 사람들은 엄청나게 움직여도 활동 대사량이 낮다는 말이야?”
“그렇지.”
“……그럼 운동을 왜 해?”
“그렇지. 이제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네. 자, 지금까지 넌 칼로리 때문에 살이 찐다고 생각했잖아.”
“응.”
“아니야. 살이 찌는 원인은 인슐린 때문이야.”
“엥? 좋은 거잖아.”
당뇨병 판정을 받고 나서 인슐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데, 이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혈당이 높아져서 문제가 생긴다.
“인슐린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호르몬이 지방분해효소를 파괴해. 지방이 분해되지는 않고 합성은 촉진되니까 살이 찌지.”
“아.”
“그런데 인슐린이 분비되는 원인은?”
“높은 혈당.”
“정답. 인슐린은 혈당을 잡으려고 분비되지. 즉, 혈당 관리 자체가 살 빼는 방법이야.”
차지찬이 내 뱃살을 가리켰다.
“혈당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해.”
“적게.”
적게 먹는 거라고 말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비정제 음식 먹고 운동하기.”
“그렇지. 칼로리는 아무 상관 없어. 하루에 5,000kcal를 먹어도 당이 많이 오르는 탄수화물 위주 식단을 하면 살이 찌고. 지방이나 단백질 위주로 먹으면 살이 안 쪄. 왜?”
“혈당이 안 오르니까. 혈당이 오르지 않으면 인슐린 분비도 적어지니까.”
“이제야 말이 통하네. 그러니까 헛짓하지 말고 밥은 적당량만 먹고 식이섬유 많이 들어간 야채랑 고기 마음껏 먹으라고. 운동해서 근육량을 늘리고.”
“식이섬유가 포도당 흡수 방해하니까?”
“그렇지.”
“근육이 커지면 포도당이 혈관으로 가기 전에 근육에서 포도당을 사용하니까?”
“고러치!”
단순히 많이 먹는다고, 많은 칼로리를 섭취한다고 살이 찌는 게 아니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배고픔을 참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먹는 음식의 종류만 바꾸면 많이 먹어도 상관없다니.
당장 내일부터는 고기라도 많이 먹어야겠다.
“고마워. 이제 진짜 알겠어.”
“이 정도야 뭐.”
“그럼 난 갈게. 크리스마스 잘 보내.”
“어디 가?”
“어디 가긴? 집에 가야지?”
“운동 안 했잖아.”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9시 다 됐잖아. 형도 쉬어야지.”
“뭔 소리야, 인마. 몸 식기 전에 시작하자.”
“……나 40분이나 걸었는데?”
“잘했네. 몸 잘 풀렸으니까 오늘 좀 더 할 수 있겠다.”
차지찬이 웃었다.
“어우. 징글징글하다.”
“징글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