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84
치팅데이 184화
38. Takers, Matchers, Givers(4)
“한식예찬 최종 라운드 시작합니다!”
세트장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른 참가자들 가족 사이에서 승주와 태린이가 손을 흔들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내가 유튜버가 되고 이제는 요리사가 되고자 이 자리에 섰다.
그 모든 과정에 승주와 태린이가 있었다.
당뇨 판정을 받고 좌절했을 때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차려주고 도시락을 싸 주었던 승주 덕에 기운을 차렸다.
그랬던 승주가 위암에 걸렸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못난 남편 만나 고생만 한 승주 생각으로 매일 밤 울고, 매일 아침 아침을 차리기 시작했다.
생전 안 하던 일을 하니 쉽지 않았다.
하지만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나물을 무치고 국 간을 보는 과정에서 승주가 나를 위해 어떤 고민을 했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눈물이 늘었다.
자꾸만 입맛이 떨어지는 승주를 위해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런 와중에도 승주는 씩씩했다.
위암 2기는 거의 다 치료되니 걱정 말라고, 힘드니까 퇴근하면 집으로 가라며 웃었다.
애써 눈물을 참으며 그럴 거라고 금방 나을 거라고 다독인 다음 날 아침.
축축해진 병원 베개 커버를 발견하고는 그녀 곁에 있기로 마음먹었다.
사표를 쓴 뒤에는 항상 함께했다.
연애할 때보다도 더 가까워지고 애틋해졌다.
입원해 있을 때는 병원 밥이 내 밥보다 낫다는 그녀의 배려 있는 농담에 발끈하기도.
집에 있을 때 내가 차린 밥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기쁘기도 했다.
국이 싱겁다는 잔소리에는 삐지기도 했고 먹은 걸 그대로 개워낼 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무작정 유튜브를 시작했고 승주는 카메라 너머에서 잔소리했다.
천 원 한 장 벌지 못했지만 그렇게 우리 둘의 이야기를 기록하던 나날이 이어지던 차.
찬용이가 내게 메일을 보냈다.
두 분 알콩달콩 대화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며 편집을 도와드려도 되냐는 말을 건넸다.
너무 고맙지만 보수를 드릴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하니 자기도 배우는 중이라 돈을 받을 만한 실력이 아니라고 했다.
못 이기는 척 편집을 맡기고 그렇게 찬용이의 손을 거친 우리 이야기는 조금씩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한 자리 조회 수였던 영상들은 순식간에 두 자리, 세 자리, 네 자리로 늘어났다.
조회 수가 늘고 우리 부부의 대화가 너무 사랑스럽다는 댓글이 달리면서 승주는 건강을 되찾아 갔다.
그리고 나도 건강해졌다.
당뇨와 승주의 투병으로 끝없이 추락하던 마음이 어느 순간 채워지고 있었다.
승주와 함께할 수 있었던 유일한 활동이 어느새 내 안에 크게 자리 잡은 것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승주가 나를 위해.
내가 승주를 위해.
승주와 내가 기적처럼 찾아온 태린이를 위해 만들었던 음식이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아가 구독자를 기쁘게 했음을.
내가 누군가를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그 놀라운 경험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오늘 나는 스스로를 향한 마지막 시험에 오른다.
앞치마를 단단히 조였다.
“아빠 빨리 해!”
* * *
최종 라운드 주제는 보양식.
내가 알고 있는 보양식은 추어탕, 삼계탕, 보신탕 정도인데 12명의 참가자 모두가 각기 다른 음식을 준비한 듯싶다.
가장 먼저 관찰한 사람은 주지승이다.
심사를 맡은 이상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주지승을 응원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너무나 어려웠던 시절을 공유했고 또 함께 성장했기에 심사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스스로 내가 정말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는데.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응원하는 마음만큼은 어쩔 수 없다.
“주지승 씨는 생선을 가지고 오셨네요. 도미인가요?”
우왕선이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미 냄비에서 뭔가가 끓고 있는데 아무래도 육수를 내는 모양이다.
오래 우려내야 하기에 국물 요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육수부터 준비하곤 했다.
“네.”
주지승은 도미의 아가미와 내장을 제거하고 비늘을 벗겨낸 뒤 물로 한 번 헹궜다.
그런 뒤에는 포를 떴는데 어찌나 집중하는지 우왕선이 말을 못 붙였다.
“어우. 너무 집중하셔서 말을 걸기가 조심스러운데. 오늘 준비한 요리는 무엇인가요?”
“도미면입니다.”
주지승이 해체한 도미를 정리하며 답했다.
도미는 머리, 몸통, 꼬리가 모두 붙은 채 살, 아가미, 내장만 제거되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생선을 저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다듬을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연습했을지 감도 안 잡힌다.
“도미면! 처음 듣는 음식인데 함석호 씨, 도미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우왕선이 함석호를 찾았다.
생소한 요리는 거의 대부분 함석호나 오미경에게 묻곤 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지식을 뽐냈다.
“도미 살로는 전을 부치고 각종 야채를 육수와 함께 끓여먹는 음식입니다.”
“얘기만 들어도 맛있을 것 같은데요. 기대가 됩니다.”
주지승은 포 뜬 도미 살을 한 입 크기로 자른 뒤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미나리, 잣, 천엽, 목이버섯, 표고버섯, 석이버섯을 순차대로 손질했다.
어떤 요리가 완성될지 계속해서 눈이 갈 것 같다.
“사대문 씨는 벌써 완성하신 듯한데요. 오늘 어떤 요리를 준비하셨나요?”
우왕선이 사대문에게 말을 붙였다.
그는 벌써 냄비 뚜껑을 닫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효종갱입니다.”
한식예찬을 진행하면서 줄곧 느꼈지만 내가 모르는 음식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효?”
“효종갱입니다.”
“하아. 이것도 처음 듣는 음식인데요. 오미경 씨, 어떤 음식인가요?”
“새벽 효. 종 종. 국 갱 자를 써서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란 뜻입니다.”
“아. 우리 가끔 밤 새 술 마시고 아침에 먹는 해장국 같은 건가요?”
우왕선의 질문에 함석호, 오미경, 박정아 세 사람이 작게 웃었다.
영문을 몰라서 나도 따라 웃었다.
“그렇죠. 그런데 아주 고급스러운 해장국이죠. 소갈비, 전복, 해삼 등 아주 비싼 재료가 들어가서 양반들이나 먹던 요리였습니다.”
“경기도 광주가 효종갱으로 유명했는데 최초의 배달 음식이란 말도 있어요. 사실 파악은 안 되지만 그만큼 사랑받았던 음식이었죠.”
박정아가 설명을 덧붙였다.
“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우왕선이 이번에는 구연자에게 다가갔다.
아예 우승권 삼인방을 먼저 조명하려는 모양이다.
“구연자 씨도 처음 보는 요리를 준비하셨는데 이건 뭔가요?”
우왕선이 미꾸라지만 한 몸통에 길이는 손가락보다 짧은 생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꾹저구예요.”
“네?”
“꾹저구.”
우왕선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함석호, 오미경, 박정아에게 설명을 바라는 눈빛이다.
“박정아 씨?”
박정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오미경 씨?”
오미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 다 모르는 눈치라 모두의 시선이 함석호에게 향했는데.
“크흠.”
함석호마저 모르는 모양이다.
난감한 듯 헛기침만 반복한다.
“이런 일은 처음이네요. 심사위원분들조차 모르는 물고기라니.”
“찬용이 형한테는 안 물었잖아요!”
하임이 소리치자 이번에는 내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가만 좀 있어! 내가 알겠냐?”
패널들과 참가자 응원 온 가족까지 모두 소리내어 웃어서 더 민망했지만.
평소와 달리 숨막힐 듯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던 최종 라운드가 한숨 쉬고 갈 틈이 생겨 안심했다.
“시간 종료!”
다른 사람들의 요리를 살피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렀다.
좌왕택이 주어진 시간이 소진되었음을 알리자 모든 참가자가 일제히 조리 도구를 놓았다.
“첫 번째 심사는 참가번호 9번 구연자 씨입니다.”
구연자가 앞으로 나섰다.
“구연자 씨는 현재 26점으로 종합 3위를 기록하고 계십니다. 오늘 결과에 따라서 최종 우승까지 노릴 수 있는데요. 구연자 씨, 우승한다면 상금으로 무엇을 하실 겁니까?”
“어.”
구연자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아직 연로하신데 이제 집에서 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구연자 본인은 웃었지만 다들 훈훈하게 웃을 뿐이었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 따뜻하다.
“저희 식당이 건물이 오래 돼서 깨끗한 곳으로 이사도 하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오늘 준비하신 보양식은 무엇인가요?”
“꾹저구탕입니다. 어머니께서 고향 음식이라고 자주 해주셨습니다.”
“좋습니다. 오늘은 시식한 뒤에 음식 설명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구연자가 심사위원과 패널들에게 꾹저구탕과 감자밥을 나눠 주었다.
생전 처음 보는 손가락만 한 물고기가 그대로 들어 있어 추어탕 같기도 한데.
살짝 힘들 것 같다.
심사위원들은 거부감 없이 맛보는데 패널 중 몇몇 표정이 좋지 않다.
갈아서 물고기 형태가 안 보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큼직하게 썬 파와 수제비, 팽이버섯, 부추 등이 들어가 있다.
생긴 걸 확인했으니 용기를 내서 꾹저구 한 마리를 떠 먹었다.
고추장을 넣어서 살짝 텁텁하긴 한데 생각보다 걸쭉하진 않다.
얼큰하면서도 비린맛이나 흙맛이 전혀 없어서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어탕 느낌이 아니다.
“맛있는데?”
“반찬용 씨 이번에도 맛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어떤가요?”
“이게 민물고기죠?”
“네.”
구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민물고기로 매운탕 끓이면 살짝 흙맛이 나잖아요? 그런데 그런 맛이 전혀 없어요. 빠가사리 같은 걸로 끓은 느낌이고. 또 다른 민물 어탕이랑 다르게 걸쭉한 느낌도 없네요. 간도 세지 않아서 되게 건강식처럼 느껴지면서도 맛있어요. 이건 좀 조심스러운데 아까 어머님께서 고향 음식이라고 하시면서 해주셨다고 하셨잖아요?”
“네.”
“이북 음식 느낌이 나지 않나. 보통 어탕이나 매운탕 종류는 비린내 잡으려고 간을 세게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요.”
“이북 느낌이 난다. 구연자 씨, 어머님 고향이 어디신가요?”
구연자의 입술이 씰룩인다.
내가 정확히 맞힌 모양이다.
“강릉이요.”
“흐하하하하!”
하임을 시작으로 스튜디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크게 웃었다.
너무 창피하다.
“아, 이게 강원도 음식이에요?”
박정아가 물었다.
“네. 양양, 강릉 이쪽에서 많이 먹어요. 근데 반찬용 심사위원이 너무 잘 보셨어요.”
헛다리를 제대로 짚은 내가 정확히 봤다는 말에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꾹저구가 맑은 물에서 살거든요. 메기나 미꾸라지처럼 흙탕물에 사는 물고기로 만든 어탕이나 추어탕하고는 다르게 맛이 깔끔해요. 흙맛도 안 나고.”
다들 놀라면서 날 봤다.
체면치레는 한 듯해 안심이다.
“또 어탕 종류가 비린내 잡으려고 간을 세게 하는 편인데 저희 집이 원래 슴슴하게 먹는 편이라 그 점도 잘 알아봐 주셨어요.”
구연자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아. 이 감자밥이 강원도라서. 감자밥에 덜어서 먹는 거예요?”
내가 물으니 구연자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위원들과 패널들이 동시에 감자밥에 꾹저구탕을 덜어 슥슥 비볐다.
얼큰한 국물이 스며든 밥을 한 입 크게 먹으니 속이 풀어진다.
“잘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었어요.”
8점을 적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