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90
치팅데이 190화
39. 하찬은(3)
나쁜 생각이라도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서둘러 박하임의 집으로 향했다.
“진짜 왔네.”
박하임이 기운 없이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물었다.
“뭐 좀 먹었어?”
박하임이 고개를 저었다.
식탁에 샐러드와 고구마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먹지 않은 모양이다.
“쓰러졌다며.”
“……꾀병.”
“내가 바보냐? 꾀병인지 아닌지 보고도 모르게?”
박하임이 소파에 앉아서 무릎을 끌어안았다.
“영양결핍이래. 포도당 맞았어.”
“야, 그럼 뭐라도 먹어야지. 저건 왜 그대로야.”
샐러드를 가리키는 한숨을 쉰다.
“뭐라 그러지 마. 나 힘들어.”
직접 만나 보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잔뜩 내몰려 있어 무슨 말을 하든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다.
일단 뭐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냉장고를 열었더니 아무것도 없다.
식기도 없어 집을 살피니 거실에 TV조차 없다.
집 전체가 휑하다.
마음 같아서는 데리고 나가서 소화가 잘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데, 워낙 유명인이라 그러기도 여의치 않을 듯싶다.
그렇다고 혼자 두고 재료를 사 오자니 무슨 짓을 벌일지 불안하다.
하는 수 없이 배달 어플을 다운로드받아서 카톡으로 받았던 주소로 음식을 주문했다.
그러고 하임 옆으로 가서 앉아 있기를 얼마간.
녀석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 봐.”
“뭘 알아야 하지.”
“안 궁금해?”
“궁금하지.”
“근데 왜 말이 없어?”
“네가 안 하니까.”
비슷한 상황은 겪지 못했지만 유사한 상태였던 적은 있어서 안다.
너무 아프고 지친 상태에서는 누군가의 개입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짜증만 날 뿐이다.
그러나 막상 옆에 누군가 있으면 늦든 빠르든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시기가 온다.
난 그걸 기다렸을 뿐이다.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것은 녀석이 내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니 말이다.
“재작년부터 일이 너무 많아.”
앨범 활동 기간이 아님에도 한식예찬을 포함한 온갖 예능에 출연하는 것으로도 박하임이 얼마나 무리하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식단도 이상하고.”
“그치! 형이 봐도 이상하지!”
고개를 끄덕이자 때마침 벨이 울렸다.
박하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배고픈 거 같아서 배달 시켰어.”
“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녀석이 반색했다.
“죽.”
사람이 저렇게까지 절망할 수 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
“너 지금 속 망가져서 자극적인 거 먹으면 탈 나. 조금씩 회복해야 해.”
“햄버거…….”
대신 죽을 받아와 녀석 앞에 놓았다.
“먹어.”
“이런 거 싫어.”
“맛있어. 먹어 봐.”
박하임이 망설이다가 한 숟가락 먹더니 눈을 깜빡인다.
“진짜 맛있어.”
B사의 냉이불고기현미죽은 속이 불편할 때 먹기 좋다.
“냉이가 소화를 돕고 불고기로 맛과 단백질도 챙기고. 죽이긴 해도 현미라서 탄수화물 흡수가 엄청나게 높진 않아. 양껏 먹어.”
내 말은 안 들리는 모양이다.
열심히 먹는다.
상당히 배고팠을 텐데 절반도 못 먹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
“아. 배불러.”
“너 식단 언제부터 그렇게 한 거야?”
“연습생 때부터.”
하임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원래 좀 통통했는데 먼저 데뷔한 선배 중에 나랑 비슷한 사람 있었거든. 무섭더라.”
얘기를 들어보니 한숨이 나온다.
하임의 선배 중 통통한 사람이 있었는데, 데뷔하고 나서 온갖 조롱에 시달리다가 끝내 은퇴했다고 한다.
그걸 보고 나서 자진해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했다.
“나 데뷔할 때 콘셉트가 그쪽이었거든. 남동생 느낌.”
“응.”
“살 빼니까 알아봐 주는 사람도 생겨서 좋았는데 비시즌 때 갑자기 살이 막 찌는 거야.”
아마 잘못된 다이어트 방법 때문일 거다.
영양소가 불균형을 이루어 식욕은 자꾸만 상승하는데, 강제된 상황이 지속되니 몸이 영양분을 잘 흡수하도록 변화한 것이다.
“그때부터 못 살게 굴어.”
“그건 내가 도와줄게.”
“어떻게?”
“다이어트 제대로 하는 법. 너 이렇게 하다간 몸 망가져.”
“…….”
“나랑 지찬이 형이 도와주면 회사에서도 별말 안 할걸? 홍보도 되고.”
“차지찬? 짐꾼?”
300만 유튜버 명함이라면 APOP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거다.
차지찬과 함께 콘텐츠를 진행함으로써 얻는 부수적인 것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
“근데 시간이 없어.”
“그래. 그것도 궁금했어. 활동 중인 사람이 너밖에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일을 시켜?”
“회사가 어렵대.”
하임이 APOP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선배들 다 계약해지하고 나가고. 회사 매출은 떨어지고. 같이 연습하던 애들은 쫓겨나가다시피 했어.”
“…….”
내가 알기로 APOP은 꽤 큰 회사였는데 내부 사정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회사 팔린 건 알지?”
“몰라.”
“어떻게 몰라?”
“연예계 관심 없어.”
박하임이 눈을 굴리다가 말을 이었다.
“작년 초에 샛별 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되면서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아니었어. 사업부가 나뉘었거든.”
“샛별? 배도빈?”
샛별 엔터테인먼트는 배도빈이 프로듀서 히무라 쇼우와 함께 설립한 회사다.
“연예계 일 모른다면서 샛별 엔터테인먼트는 알아?”
백우진이 배도빈을 광적으로 좋아해서 관련 영상을 여럿 찍었는데 편집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연예계라고 하기엔 좀 다르지 않나?”
“하긴. 그 사람은 다른 차원이긴 해. 아무튼 샛별에서 먼저 제안했대. 현재 직원 유지하고 이쪽 일은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게 해준다고.”
“샛별에선 뭐가 좋다고?”
경영권을 보장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굳이 빚을 진 APOP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
“클래식 하는 사람들 키운다고 하던데 자세한 건 몰라.”
배도빈 이후 클래식 음악 시장은 기적이라고 할 만큼 성장했다.
그런 배도빈이 베를린 필하모닉으로 적을 옮겼으니 샛별은 새로운 스타 뮤지션이 필요했을 터다.
추측하기로 APOP이 그동안 뚫어놓은 유통망과 줄을 댄 방송국을 활용할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인 대표가 한국에서 기반 없이 활동하기 쉽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럼 사장님이라고 했던 게 히무라 쇼우 말했던 거야?”
“아니. 난 인사 한 번 하고 못 봤어.”
“그럼?”
“정문일 사장님.”
“인수됐다며.”
“그냥 똑같던데?”
이 녀석에게 뭔가를 기대하면 안 될 것 같다.
아마도 회사 지분이 팔렸지만 샛별 쪽에서 사업부를 나누어 정문일이 하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기에.
관례상 사장 혹은 대표로 부르는 것 같다.
“근데 너랑 무슨 상관이야?”
“뭐가?”
“이미 회사는 팔렸잖아. 사업 분리해서 경영은 하고 있고. 근데 왜 널 그렇게 못살게 구는 거야?”
“나도 몰라. 어렵대.”
상식적으로 어려울 리가 없다.
뭔가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사람을 이 지경이 되도록 굴리는 블랙기업에서 뭔가를 제대로 가르쳤을 리도 없거니와 10살 때부터 춤과 노래만 연습했던 박하임이 회사 내부 사정을 파악했을 리도 없다.
그저 어렸을 적부터 함께 일해온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니까, 자기가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뭐 이상한 거 없었어? 작은 거라도.”
“……미경이 누나가 도망가라고 했었어.”
“미경이 누나?”
“경리 해주던 누난데 재작년에 퇴사했어.”
APOP이 샛별에 인수되기 전이다.
“앞으로 일 엄청 많아질 거라고 했어.”
이제 좀 뭔가 퍼즐이 맞춰진다.
자금난을 겪는 APOP 대표 정문일로서는 어떻게든 샛별 엔터테인먼트에게 회사를 팔고 싶었을 거다.
샛별로서는 당연히 재무현황을 검토했을 테고 단기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박하임을 가혹하게 몰아붙였을 거다.
다만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인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지금도 하나뿐인 대형 연예인인 하임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유가 궁금하다.
“무슨 생각해?”
박하임이 물어서 내 추측을 설명하니 눈썹을 잔뜩 모으고 고개를 기울인다.
“뭐 짚이는 거 있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니까 샛별에서 인수해서 자금난은 해결됐는데 왜 널 못살게 구냐고.”
“돈이 부족해서?”
“부족할 리가 없잖아. 샛별 엔터테인먼트 배도빈 거라고. 우리나라에서 돈 제일 많은 집 3세잖아.”
박하임이 눈알을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안 힘들면 난 왜 정산 못 받아?”
“그건 또 뭔 말이야? 정산을 못 받다니.”
“나 가르치고 앨범 작업하고 접대도 하느라 돈 엄청 들어갔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PAK했던 애가 정산을 못 받는 게 말이 돼? 이 집은?”1)
“월세. 사장님이 내주고 있어.”
“미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 * *
클래식, 록, 뉴에이지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17개 음반을 프로듀싱하여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전설적인 프로듀서 히무라 쇼우는 작년 초 클래식 음악가들을 스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배도빈 이후 매해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완전히 자리잡기 위함이었는데.
한국 시장을 노리고자 인수한 APOP에 잡음이 들려왔다.
1사업부 유일한 스타 박하임이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어쩌다가?”
“과로와 영양결핍 때문이라고 합니다.”
히무라 쇼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국 연예계 사정을 모르기도 해서 정문일이 하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필요한 일에만 협조를 요구했는데.
소속 연예인이 다른 문제도 아니고 과로로 쓰러지게 둘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일찍이 배도빈이 어렸을 적 과로로 쓰러진 뒤로 그와 같은 일에는 유독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정문일 씨한테 연락해. 당장 들어오라고.”
“네. 알겠습니다.”
박하임은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인기 연예인이었다.
언론과 팬들의 관심도 높아서 APOP은 이번 일에 책임을 피할 수 없을 테고.
자칫 잘못했다간 APOP을 소유한 샛별 엔터테인먼트와 그 소유주 배도빈의 이름에도 타격이 생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린 음악가가 영양결핍에 걸렸다고 하니 히무라 쇼우는 정문일을 용서할 수 없었다.
1)퍼펙트 올 킬(PAK):
아이차트에서 6개 음원 사이트 실시간, 일간 차트 1위를 모두 석권하고 아이차트 주간 누적,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한 음원에 부여되는 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