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92
치팅데이 192화
39. 하찬은(5)
한차례 인사를 나누었음에도 새로 들어온 손님들이 알아보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동태탕 사장님의 배려로 6인실 룸에서 편안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박하임이 받은 카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샛별 엔터테인먼트 박선영 팀장입니다.
찾아 뵈어 인사드리기 전 APOP 정문일 이사 관련 사내 징계위원회 경과 및 조치사항을 알려드리고자 연락드렸습니다.
6일 오전 11시 3분 박하임 씨가 과로 및 영양결핍으로 리허설 도중 쓰러진 사실을 보고받은 후 샛별 엔터테인먼트는 정문일 이사를 소환해 자체 조사를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APOP 인수 과정에서 2021 하반기 매출이 부풀려진 정황을 포함해 박하임 씨에게 지급되어야 할 정산액이 정문일 이사의 친인척 계좌로 입금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히무라 쇼우 대표는 정문일 이사의 직위를 즉시 박탈하고 검찰에 고발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현재까지 파악된 미지급액을 입금하고 세부 사항을 보내드리오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또한 정문일 이사의 배임, 횡령에 관한 자세한 내용 또한 함께 첨부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관련 사항에 대한 문의는 저를 통해 언제든지 확인 가능하시며 조만간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으시길 바라옵고 안녕을 기원합니다.
[첨부파일1] APOP_가수_박하임_정산내역 [첨부파일2] 정문일 이사 징계위원회 회의록“와.”
오늘이 12월 9일이다.
박하임이 쓰러진 지 불과 3일밖에 안 되었는데 이렇게나 일을 빨리 해결하다니 감탄이 나왔다.
“어때?”
“너무 깔끔한데?”
상세 내역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믿기 힘들 만큼 신속하고 명쾌하다.
“정산 안 된 이유는 예상했지만 너무 뻔하네. 정문일이 자기 돈처럼 썼어.”
APOP 사외 이사로 재직 중인 친인척에게 성과금 명목으로 거액을 보낸 정황이 포착되었다.
묵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던 빼지도 박지도 못할 증거다.
박하임을 굴릴수록 욕심 그득한 뱃속이 채워진다고 생각했을 테니,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해왔던 거다.
“…….”
“이거 엄밀히 따지면 샛별은 관련이 없어. 정문일 문제지.”
“응.”
“재판 가져가서 돈 받아내려면 몇 년 걸릴지도 몰라. 그동안 넌 정산도 못 받고.”
“받았잖아.”
“응. 샛별 엔터테인먼트에서 너한테 피해 최대한 안 주려고 일단 정산금 지급하고 정문일에게 받아내겠다는 거야. 샛별로서는 지장이 좀 있겠지만 너한테는 이보다 좋은 방법도 없지.”
박하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고작 3일 만에 파악한 것도 말이 안 돼.”
“이렇게 쉽게 줄 수 있는 거면 그동안 왜 그랬지?”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야. 너 데뷔한 지 얼마나 됐어?”
“6년?”
“6년치 자료를 다 뒤졌다는 건데 정문일이 그걸 쉽게 내놓았겠어? 자기 치부인데?”
“그러네? 어떻게 했지?”
“몰라.”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그룹사를 뒷배로 두고 있다.
어떤 방법을 동원했는지는 몰라도 불가능한 일이 있을까 싶긴 하다.
“아무튼 그만큼 이번 일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니까 너한테는 잘된 일이지.”
“…….”
“왜 그래? 안 좋아?”
“좋아. 막연하게 좋아했는데 형 설명 들으니까 샛별이 날 얼마나 신경 써줬는지도 알겠어.”
“근데?”
“……모르겠어.”
박하임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사장님도. 종우 형도. 경호 형도. 재성이 형도. 예은 누나도. 쭉 같이 열심히 했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날 속였다고 생각하니까.”
박하임이 말을 잇지 못했다.
27억 원이라는 거액을 받아낸 기쁨보다 연습생이었을 적부터 함께한 이들에게 속았다는 슬픔이 더 큰 모양이다.
고개를 떨군 녀석은 어깨를 떨고 있었다.
“……먹자.”
동태탕을 덜어주니 눈물을 닦아내곤 숟가락을 들었다.
국물을 맛보더니 작게 읊조린다.
“맛있다.”
* * *
[가수 박하임 소속사로부터 한 푼도 못 받았다] [박하임 왜 쓰러졌나. 영양실조로 밝혀져] [샛별 엔터테인먼트, APOP 정문일 이사 고발] [히무라 쇼우, “반드시 바로잡겠다.”] [연예인 소속사 갑질 논란 재점화]예상대로 APOP 정산금 미지급 사건은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놀라운 점은 샛별 엔터테인먼트가 일을 숨기지 않고 직접 제보 및 사실을 공표했다는 점이었다.
묵은지가 말했던 대로 배도빈과 히무라 쇼우는 예술가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 치의 거짓 없는 정확한 정보가 보도되면서 일시적으로 샛별 엔터테인먼트를 추궁하는 사람도 생겨났지만 일시적 현상이었을 뿐, 모든 비난 화살은 APOP과 정문일에게 향했다.
└미친 거 아님?
└하임 같은 애들도 이런 일을 겪네
└27억;;
└샛별에선 뭐 하다가 인제 와서 저럼? 꼬리 짜르기 아님?
└경영을 분리했다잖아. 기사 좀 읽고 씨부려라.
└미정산액 파악되자마자 27억 당장 지급했잖아. 막말로 샛별이 받은 돈은 한 푼도 없는데 오히려 피해자지.
└선 지급하고 이후 정문일에게 천천히 받아내겠다는 게 진짜 대박임.
└맞아. 하임이 SNS에서 샛별 엔터테인먼트한테 감사하다고까지 했음.
└갑자기 방송 출연 안 하길래 뭔 일인가 싶더니.
└쓰러진 이유가 과로뿐만 아니라 영양실조 때문이었다는 게 충격임.
└진짜 개씨발놈이잖아
└박하임 실제로 보면 진짜 말랐음. 성인 남성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에휴. 진짜 갑질하는 놈들 다 죽였으면 좋겠다.
└ㄹㅇ 하임 13살인가? 엄청 어렸을 적부터 연습생이었던 거 생각하면 미정산뿐만 아니라 온갖 가스라이팅 당했을 듯.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했으니 오죽하겠냐 회의감 들 듯.
└이러다 은퇴하는 거 아니야?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던데
└오늘 반찬가게에서 입장 발표한다던데?
└?
└왜 그걸 반찬가게에서 함? 인스타든 뭐든 있잖아.
└모르지. 둘이 뭐 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
└반찬용이 박하임 많이 챙겨줬다고 함. 안 좋은 생각 할 때 찾아가서 밥도 차려주고 그랬대.
└지금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클 듯. APOP 쪽이랑은 엮이고 싶지 않은 거겠지.
└그렇긴 하겠다.
방송 시작 전 인터넷을 살펴보니 응원과 동정 여론이 만들어졌다.
“슬슬 시작하자.”
“입장문 띄어줄 수 있어?”
“그럼.”
보조 모니터에 박하임이 박선영 팀장과 함께 작성한 입장문을 띄어놓았다.
박하임 입장 표명이라고 제목을 설정하고 대기화면으로 방송을 시작하니 시청자 수가 순식간에 4만 명까지 치솟았다.
내 방송 평균 시청자 수가 2만 명인데, 이번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채팅창을 읽을 수 없다.
“안녕하세요. 제목으로 보셨다시피 하임이가 그간 있었던 일, 현재 심경 앞으로 활동 계획 같은 걸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화면을 전환해 박하임을 비추었다.
평소에는 좀 모자라 보여도 방송에 들어가면 표정부터 달라진다.
녀석이 싱그럽게 웃었다.
“걱정했지? 나 완전 멀쩡해.”
조금도 멀쩡하지 않다.
“영양실조라고 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 있던데 나 오늘 점심 먹고 간식으로 호빵도 먹었어. 잘 먹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나 살쪘다고 싫어하면 안 돼. 금지.”
애써 짓는 미소가 더욱 마음 아프다.
“그래도 건강해지려고 찬용이 형이랑 같이 밥 먹고 운동도 할 거니까 응원해 줘. 아. 그 얘기도 해야지.”
박하임이 이제야 미리 써둔 입장문을 봤다.
박선영 팀장은 APOP으로부터 지난 6년 동안 단 한 푼도 정산받지 못했던 일을 포함해 모든 가혹행위를 공개하길 권했지만 박하임은 그러지 않았다.
팬들이 본인을 사랑하는 만큼 이번 일로 아파할 거라며.
그러면 노래가 슬프게 들리지 않겠냐며 자신의 목소리로 팬들의 기분 좋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APOP과의 계약은 무효로 할 수 있대. 선영 누나가 내가 바라는 대로 해주겠다고 했고. 그래서 APOP하고는 이제 끝내기로 했어.”
박하임이 침을 삼켰다.
채팅창에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APOP이 아쉬워서 그런 게 아니라, 박하임이 본인의 소속사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 때문이리라.
“새 계약은 샛별이랑 하기로 했어. 이번 일 처리해 주시는 거 봐서 의지할 수 있구나 싶더라. 원래 같은 회사였으니까. 사업부만 바뀌는 거고 실제로 내가 활동하는 건 변함 없대. 완전 좋지?”
박하임이 베시시 웃었다.
“그리고 나 다음 주부터 여기 고정으로 출연할 거니까 구독 좀 눌러 줘. 뭔지 알지?”
박하임이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길래 옆에 앉아서박하임이 말해야 하는데 놓친 부분을 물으며 설명을 추가했다.
방송을 마치고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던 차, 박하임과 묵은지가 대화를 이어갔다.
“진짜? 누나도 먹으면 바로 살 쪄?”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음식 섭취를 게을리했기 때문입니다.”
“먹는 데 게을렀다고 하니까 이상하다. 안 먹어야 빠지는 거 아닌가?”
“자세한 일은 방송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저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으흥.”
“왜 그러십니까?”
“같이 하면 좋겠다. 누나도 먹는 거 조절하고 운동해야 하잖아.”
“하고 있습니다.”
“방송으로.”
“싫습니다.”
“왜?”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알아보면 좋지 않아?”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음. 인사해 주고. 웃어 주고. 난 모르는데 나 알아봐 주면 이득 같잖아.”
묵은지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도 공감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어렸을 적부터 사랑받았던 박하임과 주변인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묵은지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재밌다.
“은지 씨, 하는 김에 같이 해보는 거 어때요?”
“찬용 씨도 같은 생각입니까?”
“갑자기 생활이 바뀌면 몸이 못 버틸 것 같아서 그동안 조심했는데, 이제 조금씩 본격적으로 해도 되겠다 싶어서요.”
“음.”
“언젠가 둘이 콘텐츠 하나 하고 싶었거든요. 이번 일로 천천히 적응하면 어떨까 싶고요.”
“찬용 씨와 둘이라면 고려해 보겠습니다만.”
묵은지가 고개를 돌렸다.
박하임이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나와 묵은지를 번갈아 본다.
“박하임 씨가 건강을 되찾는 과정에 타인이 함께하는 걸 팬들이 반길 것 같진 않습니다.”
“그건 그래. 초코들 나만 좋아하거든.”
박하임의 팬을 지칭하는 말이 초코하임인데 편하게 초코라 부른다.
쌀 한 톨에서 따온 ‘톨’이라는 구독자 네임이 있는 반찬가게 구독자들을 내가 토리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그래도 아쉽다. 난 형한테 운동 배우고 형은 나한테 화장 배우면 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십시오.”
묵은지가 사자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기세로 나섰다.
박하임이 깜짝 놀랐다가 묵은지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씩 웃는다.
“글쎄?”
“안 될 것 없습니다. 채널을 새로 파더라도 해야 합니다.”
“으음. 생각해 보고.”
“뭘 망설입니까?”
“둘이 하면 무슨 재미야. 리액션 해주는 사람도 필요하잖아.”
“리액션?”
“응. 찬용이 형 얼굴이 조금만 관리하면 금방 티나서 옆에서 봐줄 사람 필요한데. 누구 없나?”
박하임이 몸을 앞뒤로 흔들려 묵은지를 도발했고.
모든 일에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했던 그녀는 일말의 저항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하겠습니다.”
“진짜?”
“네.”
설마 화장 같은 하찮은 이유로 하찬은을 시작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