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199
치팅데이 199화
42. 성공(3)
12월 28일 목요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부먹이냐. 찍먹이냐.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논쟁을 맛만 봅니다. 백반토론의 반찬용.”
“백우진입니다.”
“오늘은 당근 대 오이. 무엇이 더 맛있는지를 두고 심도 깊고 격식 있는 토론을 진행하겠습니다.”
└ㅗㅗㅗㅗㅗㅗ
└격식 좋아하넼ㅋㅋ
└오이 핵노맛
└어쩜 저리 뻔뻔하게 말하짘ㅋㅋ
내 앞에 자막으로 당근을 넣고 백우진 앞에는 오이라고 적었다.
“토론 진행에 앞서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빨간 당근을 지지한다고 해서 보수 진영을 지지한다는 오해는 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마찬가지로 백우진 위원이 녹색 오이 입장에 섰다고 진보 진영을 지지한다는 오해도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맞아. 맞아.”
└?
└뭔 개소리얔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그딴 생각을 햌ㅋㅋㅋ
└지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아넼ㅋㅋㅋ
└까비
└까비는 또 뭔뎈ㅋㅋㅋㅋㅋㅋ
“그럼 백우진 위원, 오이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풀입니다. 우리는 이 식물의 열매를 먹습니다.”
“그렇군요. 당근은 산형과의 두해살이풀입니다. 한 해를 사는 오이보다 무려 2배나 많이 사는 당근이 우월하지 않을까요?”
“……어?”
“오이오이. 코이츠 그런 것도 몰랐던 거냐고. 더블유더블유더블유.”
└아ㅋㅋㅋㅋㅋ 1년을 더 산다곸ㅋㅋㅋㅋㅋ
└시작부터 어지럽넼ㅋㅋㅋ
└오이오잌ㅋㅋㅋㅋㅋㅋㅋㅋ
└뭔 말투얔ㅋㅋㅋㅋ
“그럼 뭐 200년 사는 거북이는 인간보다 우월하냐?”
“논점을 흐리지 마세요! 지금 당근과 오이를 비교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누가 헛소리를 하는데!”
“자, 자. 진정하시고 제대로 당근 대 오이에 입각한 발언만 해주시길 바랍니다.”
하마터면 내 논리가 무너질 뻔했다.
어르고 달래니 백우진이 눈을 흘기며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현재 오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채소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위는 토마토, 2위는 양파, 3위가 오이와 양배추로 각각 연간 7,100만 톤이 생산되죠. 반면 당근은 4,200만 톤으로 6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1)
“확실히 생산량에서는 차이가 있네요.”
“그만큼 많이 먹기 때문이죠. 많이 먹는 이유는 더 맛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또 뭐가 아니야?”
“우리가 당근과 오이 둘 중 무엇이 더 맛있는지 토론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당근과 오이는 기본적으로 맛이 없습니다.”
백우진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채소혐오 ㄷㄷ
└아ㅋㅋㅋㅋ 맛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곸ㅋㅋㅋㅋ
└둘 다 맛있는데?
└맛알못
└오이 진짜 노맛임
“하지만 오이 요리는 맛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니 백우진이 참고사진을 보여주었다.
오이소박이 사진이다.
“오이소박이. 아삭한 식감과 더불어 새콤달콤한 양념에 부추까지. 정말이지 오이의 잠재력을 폭발시킨 음식이라 할 수 있는데요. 한여름에 갓 만든 오이소박이. 이거 참을 수 있습니까?”
└이건 인정이지
└크
└ㄹㅇ밥도둑
└잘 만든 오이소박이는 진짜 꿀맛인데
시청자들 반응이 좋다.
오래된 오이소박이는 물렁해져서 식감이 몹시 안 좋은데, 다들 상태 좋은 오이소박이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1999년 LA 타임즈에는 기자들이 세계 여러 음식을 맛보며 평가한 적 있습니다. 그때 기자들이 선정한 다시 먹고 싶은 음식 톱 10에 이 오이소박이가 포함되어 있었죠. 아삭한 식감과 새콤달콤한 양념 그리고 오이 특유의 향긋한 향을 높이 평가한 거죠.”
“오이소박이는 맛있죠. 인정합니다.”
짜장면에 놓인 오이, 냉면에 놓인 오이, 김밥의 오이 등은 호불호를 타지만 오이소박이는 사실 관리만 잘되어 있다면 나도 집어 먹는 반찬이다.
“하지만 당근 김치도 맛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당근 김치 먹어보긴 했어?”
“그럼요.”
“여러분 당근 김치 아세요?”
└당근 김치가 뭐임?
└ㅋㅋㅋㅋㅋ진짜 첨 들음
└한국인이 김치로 못 만드는 채소는 없다더니
└당근으로도 김치를 만들어???
“봐. 당근 김치랑 오이소박이는 인지도부터 달라.”
“여러분.”
진중한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1937년을 기억하십니까?”
“……악.”
역시 백우진은 아는 모양이다.
물음표가 반복해 올라오는 채팅창을 확인하곤 이야기를 풀어갔다.
“당시 소련 연해주에는 수많은 우리 선조가 살고 계셨습니다.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일제를 피해 소련으로 피신하신 분들이죠.”
백우진이 입술을 깨문다.
“1937년 스탈린은 그분들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킵니다. 그곳은 아주 척박했죠. 김치를 담그고 싶어도 배추가 없어 그럴 수 없었습니다. 우리 선조께서는 고향음식. 김치가 사무치게 그리우셨고 배추를 대신할 채소를 찾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근이었죠.”
목 아래가 묵직해진다.
“당근을 채 썰어 소금에 절이고. 식초, 설탕, 마늘, 고춧가루로 버무려 만든 당근 김치는. 한국 당근이란 뜻의 러시아 말 까례이스까야 마르꼬브로 불리며 중앙아시아와 소련인들 사이에서 사랑받아 왔습니다.”
침을 한 번 삼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로 이주당한 우리 선조께서 그 척박한 지역에서 고향을 그리며 만드신 당근 김치. 그 와중에도 소련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당근 김치를 방금 인지도가 없다고 하셨습니까?”
“아니. 그게.”
“모르면 부끄러운 일 아닙니까? 우리 선조들의 한 서린 음식을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난 그런 뜻이 아니라.”
“변명하지 마세요!”
└우우 백우진 쓰레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나 진짜 반성함
└당근 김치가 그렇게 만들어졌구나
└그것도 몰랐음?
└백우진 진짜 인성이 글러먹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렇게까지 말한다고?
“변명 아니야! 나도 알고 있었어!”
“알고도 그런 망언을 내뱉었단 말씀입니까!”
“그게 그 뜻이 아니잖아!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없다고!”
“지금 시청자들이 무식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런 겁니까!”
└나 알고 있었는데 백우진 시청자 무시하네
└저저 요사스러운 혀
└아닠ㅋㅋㅋㅋㅋ 이걸 어떻게 받아치냐곸ㅋㅋㅋㅋ
└백우진 님 실망이에요. 구독 취소합니다.
└이제 보니 백우진이 선민사상이 있었네
“죄송합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숙였다.
“빠르게 인정하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날 물어 죽일 듯이 노려보는 시선을 무시하고 내 논리를 펼쳤다.
“당근과 오이. 생산량에 차이가 있다고 하셨는데 사실 좀 더 면밀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양만 많다고 좋은 건 아니니까요.”
백우진은 씨익씨익댈 뿐 대꾸하지 않았다.
“영양가입니다. 오이가 마이너스 칼로리 식품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알아.”
“비타민C를 제외하면 영양소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비타민C조차 미미한 수준입니다. 먹어도 배가 고픈 쓸모없는 채소라 할 수 있죠.”
“다이어트에 좋잖아.”
“허허. 아실 만한 분이 왜 이러실까.”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몸에 영양소가 충분히 공급되어야 요요 없는 다이어트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워 왔습니다. 심지어 그것을 알려준 사람 중 한 분이 백우진 위원 본인이지 않습니까?”
“그럼 당근은 뭐 영양소가 좋다는 말이야?”
“물론입니다. 당근을 먹으면 야맹증 예방 및 시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죠.”
“아닌데?”
“……아니라고요?”
“응. 아니야.”
백우진이 인터넷을 검색해 참고자료를 보여주었다.
“당근에 비타민A가 들어 있고, 비타민A가 결핍되면 야맹증이 올 수 있는 건 사실인데 비타민A는 당근에만 있는 게 아니야. 고기, 생선, 계란노른자, 우유에도 들어 있어. 굳이 찾아 먹을 필요가 없는 거지.”
“……그래도 먹으면 좋지 않습니까?”
“전혀.”
“그래도 뭔가 좋지 않겠습니까?”
“당근이 눈에 좋다는 말은 2차대전 당시에 영국의 페이크 전술이었어. 독일 공군 비행기를 격추할 때 레이더란 새로운 장비를 은폐하려고 조종사들이 당근을 많이 먹어 밤에도 잘 볼 수 있다고 했거든. 그게 와전돼서 당근을 먹으면 야맹증에 좋다는 얘기가 퍼진 거야.”
오이는 영양가가 없고 당근은 건강에 좋다는 논리가 너무나 허무히 무너지고 말았다.
“2차대전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당시에 당근은 아동학대의 주범이었어.”
“무슨 말씀이시죠?”
“설탕 같은 감미료는 전쟁물자로 사용해야 해서 아이들이 먹을 간식이 없었어. 영국 정부는 당근에 단맛이 있으니 아이들에게 당근은 맛있는 거다, 몸에 좋은 음식이다 설파하면서 당근을 먹였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장려한 일이 어떻게 아동학대라고 말씀하십니까?”
└ㄹㅇ 당근 줬다고 아동학대라고 하면 편식하는 아이한테 채소 먹으라고 하는 것도 아동학대지
└백우진 너무 나가네
└ㅋㅋㅋㅋㅋㅋ당근 김치로 정신이 없죠?
└오늘도 반찬용이 이기겠네
여론도 내 편이다.
당근이 맛있는 음식은 못 되어도 몸에 나쁜 음식은 아니다. 먹을 게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했다고 아동학대가 될 순 없다.
“사진을 봐.”
백우진이 인터넷 창에 2차대전 당시 당근을 먹던 아이들을 검색했다.
1
*출처: EASTER 1941, british pathe.
“아.”
“저 아이들의 표정을 봐! 저게 애기들이 지을 표정이야? 특히 가운데! 당근을 먹으라고 한 사람을 원망하는 게 딱 보이잖아!”
“그.”
“이 사진을 보고도 당근 아동학대가 아니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표정 진짜 안 좋넼ㅋ
└너무 싫어하잖앜ㅋㅋㅋㅋ
└이거 보고 웃는 놈들은 뭐냐. 저 사진 실제임.
└엄밀히 말하면 아동학대는 아니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먹을 거 주고 싶었던 거잖아.
“아니요! 이것은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을 못 배우고. 못 입고. 못 먹었던 아동학대의 참상입니다! 지금 사진에 나온 아이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았던 거예요! 전쟁 도중 부모를 잃고 당근조차 못 먹었던 아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어른이 나빴네
└이건 ㄹㅇ이다. 정치권에 있는 나이 많은 늙은이들 때문에 대체 얼마나 많은 젊은이, 아이들이 피해받냐?
└돈 많은 집 애들은 고생 안 했지
└아동학대 맞네
“그래서요?”
“응?”
“그래서?”
“아니. 아동학대라고!”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어른이 맞습니다. 하지만 당근이 아이를 학대했습니까? 아니죠.”
“어?”
“냉정하게 생각하면 당근밖에 못 준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나치의 잘못이고요. 대체 당근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거죠?”
백우진의 눈이 흔들린다.
“우진 씨, 선동과 날조는 막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사실을 기반해야 효과가 있는 겁니다.”
“날조는 형이 하는 짓이잖아!”
“글쎄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여러분, 당근이 정말 아동학대를 저지른 주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근은 사람을 살리는 데 이용된 식품입니다. 참고자료 보십시오.”
2
*2)
“엥?”
“한 유명 웹소설, 김홍도 in 파리의 댓글창입니다. 작가님 감금당해 있다면 다음 편에 당근 먹는 걸 넣어주세요. 즉, 당근은 위험을 알리는 신호로 사용됩니다. SOS인 것이죠.”
“SOS 좋아하시네! 감금자님 힘내세요라고 하잖아!”
“왜 그리 흥분하시죠?”
“내가 쓴 거니까! 뭐? 고맙습니다 감금자님? 저 댓글 쓴 인간 어딨어! 어디 갔어!”
1)참고자료:
인류 ‘최애’ 채소는 토마토, 농민신문, 2021.01.01.,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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