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07
치팅데이 207화
43. 행복해져라(3)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부먹이냐. 찍먹이냐.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논쟁을 맛만 봅니다. 백반토론의 반찬용.”
“백우진입니다.”
목요일.
백반토론, 백반보고 방송일이다.
“오늘 주제는 뭐죠?”
“탕수육! 부먹이냐? 찍먹이냐?”
└이걸?
└미쳤다
└올 게 왔네
└오늘 진짜 뒤 없다
└부먹충 극혐
└백반토론 막방임? 이걸 한다고?
다소 클래식한 주제이기는 하나 한반도 역사상 가장 뜨겁고 치열했던 논쟁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만큼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청자가 접속해 있다.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토론의 규칙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토론에서는 오직 부먹과 찍먹만을 다룹니다.”
“볶아 먹는 볶먹, 하나라도 더 먹는 담먹, 그냥 처먹 등 다 안 돼요.”
“반만 부어서 먹는다 등의 주장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백우진과 함께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나는 자랑스러운 쿠폰 앞에 바삭하면서도 쫀득하고 새콤달콤한 탕수육과 중국집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오늘 토론에 경건히 임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바로.”
└아닠ㅋㅋㅋㅋ왤케 극단적이얔ㅋ
└별짓을 다하넼ㅋㅋㅋㅋ
└이거지 괜히 다른 데로 새지 말고 찍먹 부먹 둘 중 하나로 정해라
└ㅋㅋㅋㅋㅋㅋ이게 뭐라고. 여기서 정해지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앜ㅋㅋㅋ 뭔 선서얔ㅋㅋㅋ
└찍먹파는 부먹충의 철저한 붕괴만을 추구합니다
└부먹파는 찍먹충을 박멸할 겁니다.
“그러면 맛알못 찍먹파 백우진 위원부터 시작해 주시죠.”
“맛알못?”
“네.”
“저기요. 치킨 한 마리도 못 드시면서 어디 1인 1닭 하는 사람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세요?”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크흠.”
백우진이 한 방 먹였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토론을 시작했다.
“탕수육 소스를 부어 먹냐 찍어 먹냐는 논쟁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이미 각자 무엇이 옳은지 어떤 방식을 더 선호하는지 판단이 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죠?”
“인정합니다.”
“해서 통계 자료를 가지고 왔습니다. 참고자료를 확인해 보시죠.”
백우진이 2022년 7월 한국리서치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파일을 열었다.
“찍먹을 선호하는 사람이 60%. 부먹은 22%. 어느 쪽도 괜찮다는 사람이 18%입니다. 찍먹이 부먹의 약 2.7배 더 많습니다.”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옳다고 할 순 없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럼요.”
“흠.”
백우진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표 차이가 이토록 크게 남에도 인정하지 못한다. 선거 결과를 부정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 혹시?”
└또 시작했넼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들은 틈만 나면ㅋㅋㅋㅋㅋ
└어? 국가를 부정해?
“정말 식상하네요.”
백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우진 위원, 언제까지 그런 시덥지 않은 선동과 날조로 시청자를 우롱하실 생각입니까? 탕수육 부먹, 찍먹과 같은 신성한 토론장에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임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누가 먼저 했는데! 누가 1년 내내 날조해댔는데!”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만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틀리다고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실망이네요.”
“…….”
“민주주의를 다수의 폭력처럼 말씀하시는 본인이야말로 반민주주의자가 아닌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게 맞지
└백우진 실망이네 자기 채널에선 똑똑한 척 다 하면서
└또또 건수 잡았닼ㅋㅋㅋㅋ
└지는ㅋㅋㅋㅋㅋㅋㅋㅋ
└반찬용 저럴 때마다 개열받음ㅋㅋㅋㅋ
└정상인 코스프레
└분명 맞는 말인데 킹받짘ㅋㅋㅋ
“사전에서 탕수육을 찾아보았습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녹말을 묻혀 튀긴 것에 초, 간장, 설탕, 야채 따위를 넣고 끓인 녹말 물을 부어 만든다. 부어 만든다. 애초에 탕수육은 소스를 튀긴 고기에 부어 먹는 음식입니다.”
부먹 지지자들의 반응이 뜨겁게 올라온다.
“반찬용 위원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요.”
백우진이 반박을 시작했다.
“한참 양보해서 매장에서 먹을 때는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최근 중국 음식은 대부분 배달로 이뤄집니다. 그리고 고기 튀김과 소스를 항상 따로 보내주죠. 왜 그럴까요?”
“…….”
“대답 못 하시겠죠. 왜냐? 튀김이 눅눅해지니까 따로 보내는 거고 이것이 이 찍먹, 부먹 논란의 핵심이니까요.”
백우진이 탄력을 받았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논리는 명쾌해졌다.
“부먹파는 항상 말합니다. 탕수육은 원래 소스와 버무려서 먹어야 한다고. 바삭바삭한 식감이 중요하지 않다고. 그런데 중국집에서는 튀김이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하느라 소스와 튀김을 따로 보내고. 포장 용기에 구멍을 뚫기도 합니다. 애초에 바삭바삭한 식감이 중요하지 않다면 중국집에서는 왜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하는 걸까요?”
└ㄹㅇ
└백우진 말이 맞지. 바삭바삭하게 안 먹을 거면 튀김은 왜 먹어?
└중국집에서도 식감 신경 쓴다는 말이자너~
“백우진 위원. 이러니 제가 당신을 맛알못이라고 하는 겁니다.”
“튀김 식감도 모르는 분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네요.”
“탕수육은 원래 녹말로 반죽한 고기를 주문 즉시 튀기는 요리였습니다. 소스를 부어 볶아내도 바삭함이 유지되었죠. 그런데 배달이 시작되면서 이 탕수육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나라 잃은 애통함이 느껴진다.
“본래 매장에서 먹던 고급 요리 탕수육은 배달이 시작되면서 원가 절감이 이뤄집니다. 우리가 아주 어릴 때는 탕수육이 상당히 비싼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백우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탕수육은 튀김 반죽부터 다릅니다. 질 좋은 녹말이 아니라 밀가루, 화학팽창제가 첨가되었죠. 즉 글루텐이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음?”
“지난 백반따라 촬영때 동해시의 S식당에서 먹은 메밀소바 기억 나십니까?”
“기억합니다.”
“그곳 튀김은 육수에서 장시간. 20분 이상 넣어져 있음에도 부드러운 바삭바삭한 식감이 유지되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신기해서 지승이 형한테 물으니 글루텐이 형성되지 않도록 반죽을 만들면 국물에 오래 담겨 있어도 바삭함이 유지된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시죠?”
“합니다.”
“반면 현재 배달 전문 중국집에서는 밀가루와 화학팽창제로 만든. 즉 수분에 닿으면 금방 눅눅해지는 튀김을 미리 만들어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딱딱하게 다시 튀겨내는 공정으로 조리가 이뤄집니다. 왜? 배달을 해야 하니 아주 딱딱하게 만들어서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거죠. 많은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미리 튀겨놓는 거고요.”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거예요?”
“질 떨어지는 튀김. 그 맛을 감추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이게 된 소스. 아직도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시겠습니까?”
백우진이 미간을 좁혔다.
“찍먹파들이 말하는 바삭함은 중국집에서 원가를 줄이기 위해 만든 딱딱하고 질 떨어지는 고기 튀김 맛입니다. 그것을 느끼라는 말과 다름 없습니다.”
“아니.”
“감추기 위해 소스를 강하게 만들었는데 그마저도 찍어 먹는다? 딱딱함을 바삭함으로 착각해서? 정말이지 그 아둔하고 둔감한 혀를 이해할 수 없네요.”
└반찬용 오늘 왤케 진지함?
└ㄹㅇ 왤케 논리적인뎈ㅋㅋㅋㅋ
└한때 돼지였던 자에겐 탕수육 부먹과 찍먹 논쟁은 중대사항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탕수육이 원래는 부드러운 바삭함을 추구했는데 배달 때문에 딱딱하게 튀겼고. 그걸 감추려고 소스를 강하게 만들었는데 따로 먹는 건 일부러 맛없게 먹는 방식이다?
└반찬용 말이 맞음. 탕수육 소스 예전에는 요즘처럼 심하게 걸쭉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묽었음.
└요즘도 오래된 중국집 가면 탕수육 소스가 좀 심심함. 그래서 간장에 식초랑 고춧가루 넣어 찍어 먹잖아.
“시청자들도 내 진심을 알아주시네요. 제가 비록 그동안 선동과 날조로 토론을 이어왔지만 오늘처럼 신성한 자리에서는 차마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저의 58㎏를 걸고 말씀드립니다. 현재 탕수육은 부어먹어야 그나마 먹을 만한 음식입니다!”
소리 높여 주장하니 찍먹파의 무식한 논리에 숨죽여 있던 부먹파들이 분연히 들고 일어섰다.
“그동안 틀린 말을 하면서도! 옳은 일을 하는 우리 부먹파들이 얼마나 많은 모략과 눈총을 받아 왔습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식탁 앞에 다수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짓밟았던! 쥐새끼마냥 찍찍거리며 찍먹을 강요했던 찍먹파들을 도려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옳소!!!!
└잘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눈 봨ㅋㅋ 미친 게 분명햌ㅋㅋㅋㅋ
└무서웤ㅋㅋㅋㅋㅋㅋ
└선동과 날조 안 한다몈ㅋㅋㅋ히틀러도 한 수 배우겠닼ㅋㅋㅋㅋ
└와 반찬용 말 들으니 억울해짐.
└ㄹㅇ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소스 부었다고 뭐라 한 소리 듣는 거 개열받음
└아니. 당연히 물어보고 부어야지. 같이 먹는 음식인데.
└반찬용 진짜 저거 정치 안 해서 다행이다. 부먹파들 선동당해서 날뛰는 거 무섭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백우진이 나섰다.
“탕수육이 원래 부어 먹는 거라고 하시는데. 그 전에 탕수육은 모두가 함께 먹는 요리입니다. 그런데 부먹파들은 원래 부어 먹는 음식이라며 우리 찍먹파들에게는 묻지도 않고 소스를 부어버립니다. 앞서 통계 자료에서 보듯이 무려 3배 가까이 차이가 남에도 말입니다. 이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모르십니까?”
“잘 알죠! 기득권이 힘 없는 소수를 핍박하는 일 아닙니까!”
“탕수육은 대체로 서너 명이 함께 먹습니다. 네 명이 먹는다고 볼 때 3명은 찍먹. 1명은 부먹이란 뜻입니다. 그 한 명 때문에 3명이 취향을 강요받아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다수가 말하더라도 틀린 건 틀린 거예요! 국민 대부분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주장하면 3이 됩니까?”
“수학과는 다릅니다! 음식 문화는 시간과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미 시대는 찍먹으로 향해 가고 있어요! 원칙에 얽매여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원리주의와 근본주의가 가장 무서운 법입니다!”
백우진 또한 강하게 나온다.
“전 세계가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극단주의를 배척합니다! 중세 시대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다른 종교를 억압하고 부정하고! 문화를 검열합니다! 심지어 살인, 테러를 자행하죠! 그들 또한 옹호할 생각입니까?”
└어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헉
└반찬용 IS임?
└아닠ㅋㅋㅋㅋㅋ 탕수육 얘기하다가 이슬람 극단주의가 왜 나왘ㅋㅋㅋㅋㅋㅋ
└근본주의 VS 세속화
└와 순간 정신 번쩍 드네. 그치. 근본이 항상 옳은 건 아니지
“여러분, 속지 마세요! 찍먹파의 간악한 선동에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양념치킨 사진을 보였다.
“여러분은 양념치킨을 주문하실 때 소스를 따로 달라고 하십니까? 눅눅해지니까? 아니죠! 양념치킨을 먹어도 최소한의 바삭함은 유지됩니다! 양념을 찍어 먹을 거라면 후라이드를 주문하는 것과 도대체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반반 무 많이라는 절대적 가치마저 부정할 생각입니까! 근본주의? 시대와 사람이 변해도 변치 않는 절대적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양념치킨 주문하면서 소스 따로 달라는 무식한 찍먹파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 감자튀김에 케찹 쏟아서 드십니까? 감자튀김 눅눅해지게? 튀김은 바삭해야 한다는 제1명제를 부정하고! 본인들의 사상을 강제로 주입하듯! 탕수육 소스를 튀김에 끼얹는 부먹파를 이대로 방치해야 합니까!”
└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들 진짜 뭐임ㅋㅋㅋㅋㅋㅋ
└아니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둘 다 눈 까뒤집고 말하니까 무섭잖앜ㅋㅋㅋㅋ
└나 이런 거 뉴스에서 몇 번 봤음
└백반토론 1년 넘게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그냥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되지
“옛말에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야 아냐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찍먹은 똥, 된장 구분도 못하는 인간이란 말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가며 건너란 말이 있습니다! 소스를 부어버리면 음식이 남을 땐 어쩌려고 그럽니까!”
“음식이 왜 남아! 왜 남겨! 애초에 남길 생각을 하니까!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을 하니까 남는 거 아니야!”
“치킨 한 마리도 다 못 먹으면서 허세는!”
“뭐, 뭐?”
“설거지는! 설거지는 어쩔 건데! 부어버리면 소스 그릇과 튀김 그릇 둘 다 그 찐뜩한 소스 잔뜩 묻는데! 설거지는 누가 하는데!”
“식기세척기!”
“일회용품을 누가 식기세척기에 넣어!”
└얘들 싸우는 거 보니까 그냥 내가 양보할게. 찍어 먹자.
└아니야. 내가 양보할게. 부어 먹자.
└이 더러운 꼴 보니까 싸우면 안 되겠단 생각은 든다.
└ㄹㅇ 노답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청자들이 똑똑해졌닼ㅋㅋㅋ
└반면교사냨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