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14
치팅데이 214화
43. 행복해져라(10)
-네. 상품성이 안 좋다고 하죠. 채소나 과일도 흠이 있는 물건은 제값을 못 받으니까요.
“네. 근데 특징이 있으면 혹시 용도도 있나요? 예를 들어 무슨 쌀은 밥을 지을 때 좋다거나. 떡을 만들 때 좋다거나.”
-있죠. 우선 떡을 만들 때는 찰기가 중요하니 아밀로스가 적은 백진주, 진상 같은 쌀이 좋고요.
“네.”
-어디 보자.
“볶음밥은요?”
박흥부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는 듯해 질문을 더했다.
-볶음밥은 인디카가 어울리죠. 쌀알이 단단하고 커야 맛있으니까요. 또 찰기가 없는 쪽이 기름이나 양념이 잘 스며들어 좋거든요.
“원래 찰기가 없는데 기름이 더해지니까 적당해지는 거네요.”
-그렇죠. 굳이 우리나라 품종 중에 찾는다면 아밀로스가 많은 품종이 좋죠. 신동진은 아밀로스가 많아서 찰기가 적고 단백질이 많아 쌀알이 단단합니다. 쌀알도 크고요. 그래서 중국집 볶음밥에 자주 사용돼요.
“와.”
쌀마다 용도가 있다는 건 묵은지와 함께 공부하느라 어느 정도 인지했지만 박흥부의 지식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또 초밥은 예찬미가 맛있어요. 쌀알에 탄력이 있어서 식감이 재밌고 찰기가 적당해서 허물어지지도 않거든요.
“또 있어요?”
-음. 이건 그냥 제 개인 기호인데 솥밥은 영호진미가 맛있습니다. 구수하면서도 단맛이 아주 좋아요.
└영호진미 사야겠다
└가격이 왤케 왔다갔다 함?
└등급 따라 다르다고 했잖아 잘 봐 봐
└10㎏에 29,000원도 있고 45,000원도 있네 뭘 사야 함?
└비싼 게 맛있는 거라고 당저씨가 그랬음
└45,000원이면 비싸긴 비싸다
└내가 찾으니까 30,000원 전후인데?
“같은 품종인데도 가격 차이가 있네요?”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질문했다.
-쌀 가격은 언제 수확했는지 도정은 언제 했는지. 특상품인지 상품인지에 따라 다르고 농가마다 다르니 잘 보고 판단하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와. 흥부 님, 오늘 정말 너무 감사해요.”
-허허. 별말씀을.
“여러분, 흥부 님 채널 진짜 힐링되니까 많이들 봐 주세요. 흥부 님, 조만간 연락 드릴게요. 오늘 감사합니다.”
-아이고. 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쳤다.
* * *
행복해져라 이벤트를 진행한 지 3일째 되는 토요일.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을 겸해서 반야식경 스튜디오에 다같이 모였다.
“요즘 유튜브에 남사당패라고 하는 사람들 많이 보이던데 남사당패가 뭐예요? 조폭인가요?”
차지찬이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질문을 읽었다.
답글로는 ‘네’, ‘착하게 산다고 선플 올리고 있대요’, ‘아주 흉악한 놈들입니다’, ‘진짠 줄 알잖아 이것들앜ㅋㅋㅋㅋ’ 같은 글이 달렸다.
“그러니까 내가 이름 바꾸자고 했잖아!”
백우진이 빽 하고 소리쳤다.
“요즘 애들은 남사당패란 말 모르나?”
주지승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고 난 어깨를 으쓱했다.
“남사당패가 뭔지 뭐가 중요해. 어차피 원래 뜻도 아니고. 안 그래?”
백우진이 눈알을 굴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뭔데?”
녀석이 스마트폰을 펼쳤다.
└남사당패 뭔가요? 사이비 종교 같은 건가요? 제가 보는 유튜브마다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같은 글 달리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듯ㅋㅋㅋㅋㅋ
└누가 자꾸 구원받으세요라고 적는 거얔ㅋㅋㅋㅋㅋㅋ
사당 패밀리 구독자 합계가 640만 명이고 TV에도 출연하면서 제법 알려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네.”
주지승이 감상을 꺼냈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겠지?”
“그치. 알고리즘 때문에 보는 것만 보잖아. 구독자 100만 명인데 나도 모르는 사람 태반이더라.”
백우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유튜브 채널 운영을 전업으로 삼는 우리조차도 모르는 대형 채널이 많으니 다른 사람들은 어련할까 싶다.
“뭐, 그래도 효과는 있잖아.”
이벤트 시작 3일 만에 행복해져라는 상당히 많은 이목을 끌었다.
수만 명이 같은 이미지를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각자 평소 즐겨 보는 채널, 자기만 안다고 생각할 만큼 작은 규모의 채널마다 선플을 달아대니 다른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 현상이 몹시도 신기하고 이상할 터다.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SNS, 지식in 등 여러 곳에 행복해져라에 관한 질문과 반응이 올라오는 중이다.
“치킨 3,000마리나 풀었는데 없으면 섭하지.”
차지찬 말했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
“흥부 님 도와주자.”
내 말에 백우진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완전 찬성.”
“그러게. 우리 장사할 때 많이 도와주셨는데 식사 대접으로 끝냈잖아. 이번 기회에 도우면 좋지.”
주지승도 같은 생각이다.
“그럼 채널 홍보해 주는 건가?”
차지찬이 물었다.
“그것도 괜찮은데. 몰래 가서 도와주는 거 어때? 농사.”
“엥?”
“지금 농사를 해? 2월인데?”
“알아보니까 웃거름도 줘야 하고 배수로 작업도 해야 해서 일손이 많이 필요하대.”
“한 해 농사 준비하는 거구만?”
“그치.”
“난 완전 찬성!”
백우진이 손을 들며 외쳤다.
마니또 게임을 하고 싶었던 만큼 반가운 모양이다.
“기왕이면 몰래 가서 하자. 우리인 거 모르게.”
“어떻게 그러냐?”
“밤에 가면 되지.”
“야, 논밭밖에 없는 데 가로등이나 있겠냐? 밤에 무슨 일을 해?”
“조명 쏘자. 우진이 말대로 밤에 몰래 가서 도와주고 그거 촬영해서 나중에 풀고.”
“잠깐. 우리가 뭘 알고 해야지. 농사 망치면 어떡해?”
“청이 누나한테 물어보면 돼!”
백우진이 박흥부의 아내를 언급했다.
“청이 누나한테 우리 갈 건데 일 알려달라고 하면 되지. 밤에 흥부 형 나올 수 있는 거 청이 누나가 말릴 수도 있고.”
“그거 괜찮다.”
내가 백우진 말에 동의하니 주지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다살다 별짓을 다 하네. 그럼 뭐, 밤에 가서 새벽까지 일하고 오자고?”
“문어랑 잠수 대결하는 것보단 정상인데.”
“원숭이랑 철봉에서 오래 버티는 것보단 낫지.”
“강아지랑 마라톤하는 것보단 나아.”
“언제 할 건데?”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니 차지찬이 말을 돌렸다.
“말 나온 김에 하자. 어차피 내일 다들 할 일 없잖아.”
백우진이 의욕을 보인다.
“오늘?”
“주중에 하면 다음날 일정 힘들잖아. 오늘이 좋지!”
“그건 그러네.”
“그럼 나 연락한다?”
“허헣.”
주지승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왜?”
“너희랑 있으면 자꾸 뭔가 일이 벌어져서.”
“얘 때문이야.”
“이 형 때문이야.”
“쟤 때문이지.”
내가 백우진을 가리켰고 백우진은 차지찬을 가리켰으며 차지찬은 날 가리켰다.
“아. 어이 없어.”
너무 황당해서 한마디 해야겠다.
“솔직히 난 아니지. 늬들이 뭐 하자고 하면 난 일단 말리잖아.”
차지찬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꺼내서 반박하려는데 백우진이 먼저 나섰다.
“너 때문에 부산까지 걸어갔잖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넌 그런 말할 자격 없어! 너 때문에 치킨 3,000마리 샀잖아!”
내가 백우진을 꾸짖으니 차지찬이 날 보며 소리쳤다.
“얜 적어도 돈으로 해결했지! 너 때문에 한 달 동안 뼈 빠지게 일하면서 돈은 돈대로 나간 거 벌써 잊었냐!”
“어? 왜 그걸 가지고 넘어져? 형도 재밌었다며!”
“그럼 뭐 걸어서 저 하늘까지는 재미없었냐?”
“난 좀 잘게. 밤새 일하려면 피곤하겠네. 깨워 줘.”
“어! 완전 노잼이었어!”
“뭐? 가고 싶다고 찡찡대던 게 누구더라?”
“내가 언제!”
“너 때문에 반찬이 일부러 악역 맡았잖아!”
“그래! 내가 그때 너 생각해서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게 잘해준 거냐? 사람을 나치 추종자로 만들어? 6만 명 앞에서!”
“얘들아 근데 오늘 밤에 가려면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겠어?”
“아. 그러네.”
“조명은?”
“내가 섭외할게.”
“그래. 니가 해.”
“……근데 왜 나만 일해?”
“니가 한다며.”
“네가 한다며.”
“너가 하고 싶은 일이었잖아.”
“아이디어는 찬용이 형이 냈잖아.”
“아니야. 마니또 하자는 건 네 생각이었어.”
백우진이 또 눈알을 굴리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 * *
토요일 11시.
이천에 있는 박흥부의 밭에 도착했다.
“근로기준법 위반이야.”
이지혜 PD가 몹시 불쾌한 얼굴로 백우진을 나무랐다.
“사장님, 진짜 이건 아니에요.”
안상규 PD도 차지찬에게 한마디했다.
“이런 일은 미리 알려줘야죠. 코스프레 준비도 못 했는데.”
최미카엘은 이상한 불만을 주지승에게 토로했고.
“…….”
묵은지는 작게 하품을 하다가 내가 패딩 지퍼를 올려주려고 다가가니 새로 나온 보드게임 이름을 읊조렸다.
내일 가서 주문해야겠다.
“누나!”
백우진이 손을 흔들며 누군가에게 인사했다.
고개를 돌리니 흥부 채널의 안방마님 심청이 옷을 두툼하게 껴 입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세상에. 이 추운 날에 괜찮으시겠어요?”
추위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올 겨울은 유독 춥긴 하다.
“응! 뭐부터 할까?”
“정말 이래도 되나 싶네.”
“뭐 어때! 우리 다 콘텐츠인데. 야참이나 준비해 줘.”
뭐가 그리 신나는지 백우진이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
“아니다. 그냥 오셨으니 남편이랑 놀다 가세요. 깨울게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저희 일하러 온 거예요. 흥부 님 놀라셔야 되거든요.”
내가 말려도 망설인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아유. 저희 몸 보세요. 기술은 없어도 흥부 형보다 힘은 나을걸요?”
차지찬이 대흉근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럼 정말 부탁드려도 돼요?”
“그럼요.”
“아, 뭐 해야 하는지만 알려달라니까?”
백우진이 한 번 더 심청을 재촉했다.
“어. 그럼 저기 비료 가져다가 여기 뿌려 주시면 돼요.”
“여기?”
백우진이 정확한 면적을 물으니 심청이 팔을 휘적였다.
어두워서 그런지 좀처럼 감이 안 잡히는데 밭 면적이 상당히 넓다.
우선 밭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육안으로 확인이 안 된다.
“그리고 여기 일자로 쭉 배수로 파주면 되고.”
“일자로? 어디까지?”
“끝까지 삥 둘러서요. 가운데도. 수로 있으니까 따라가며 다 파면 돼요.”
생각 이상으로 일이 많다.
게다가 땅이 살짝 얼어 있어서 곡괭이나 삽 같은 게 잘 들어갈지 의문이다.
“……내일 운동 안 해도 되겠는데?”
차지찬이 황망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