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16
치팅데이 216화
44. 지친 사람도 우울한 사람도(2)
화요일.
행복해져라 이벤트가 시작된 지 6일째 되니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확연히 늘었다.
언제나 그렇듯 대수롭지 않거나 쓸데없는 일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따라 하는 사람, 장난스러운 댓글로 즐기는 이도 있었다.
내가 평소 즐겨 보던 유튜브 영상에 항상 남사당패 이미지 사진이 보였고 로그아웃한 뒤에 찾아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건만 나를 포함해 남사당패에 따로 감사 인사와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유튜버도 있었다.
많이 지쳤는데 갑자기 댓글이 늘어서 너무 좋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가능하다면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게 해당 채널에서도 도와주셨으면 한다는 답장과 함께 치킨 한 마리씩 보내주었다.
그러는 사이 오늘 업로드된 ‘흥부한테 박씨 가져다주기’는 큰 호응을 얻었다.
업로드된 지 6시간 만에 조회 수 50만을 기록했는데, 반찬가게 안에서도 손꼽을 만한 기록이었다.
돌아가며 하나씩 올리기로 해서 내게만 조회 수가 몰린 덕이기도 할 텐데.
어제 흥부 채널에 올라온 영상과 함께 조회 수가 실시간으로 폭증하고 있다.
-얼마 만에 이렇게 나서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농사에 쫓기고 유튜브 영상 업로드하기 바쁘고 집안일 처리하기 급급해서 청이랑 영화 한 번 못 봤다.
박흥부의 구수한 어투와 진솔한 목소리로 시작된 영상은 우리 남사당패에 대한 고마움과 놀라움 그리고 부부 사이의 사랑과 신뢰로 가득했다.
-이 사람은 나 좋다고 직장이고 도시생활을 포기하고 연고도 없는 이천 장호원 시골 촌동네로 왔다. 총각 때는 그렇게 근사하던 남자가 몸빼바지 입고 밭매는 모습을 보면 가끔 미안하기도 하다.
심청의 나래이션에서도 남편을 아끼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기에.
시청자들도 40대 초반 부부의 알콩달콩한 모습이 보기 좋았던 모양인지 좋아요 비율과 댓글 수가 아주 양호하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농사 짓고 사는 건 싫은데 결혼하면 저런 사람하고 만나고 싶음
└사랑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거래
└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지지리궁상이다. 평소에 뭘 어떻게 살면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걸로 저리 호들갑인지.
└어? 시비? 악플?
└나중에라도 본인 댓글 보고 후회하셨으면 좋겠네요.
└ㄹㅇ 어서 마음이 자라야 할 텐데
└누가 봐도 둘이 잘 살고 있구만 뭐가 불만이지?
└지 현실이 불만이겠지
└어? 악플?
└본인이 처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시는 안쓰러운 분이시네요
└총을 천천히 쏜다고 안 아프진 않아요 선생님
└두 분 서로 아끼는 마음이 너무 보기 좋아요. 응원합니다.
└이건 남사당패가 잘했다
└아닠ㅋㅋㅋㅋ 도우려면 그냥 돕든갘ㅋㅋㅋ 저 야밤에 조명 쏘고 뭔 짓이얔ㅋㅋㅋㅋ
└흥부 님 리액션이 살짝 아쉬움
└너무 당황해서 말도 못 하던뎈ㅋㅋㅋㅋ
└난 저런 반응이 더 진짜 같아서 좋던뎈ㅋㅋㅋㅋ
└ㄹㅇ 호들갑 떨면 일단 연기인가 의심하게 됨
└저게 대본이면 그것대로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새벽 4시까지 일하다 간 건 맞잖아
└그러네?
내 영상과 흥부네 영상에 올라온 댓글을 보고 있자니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사무실로 왔다.
“어떻게 같이 들어와?”
“밑에서 만났어.”
“은지 씨는?”
“노무사. 직원 더 뽑으려 하는데 알아볼 게 있어서. 커피 마실래?”
“좋지.”
냉장고에서 캔에 든 아메리카노를 꺼내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래서? 육혜린 씨 도와주자고?”
오늘 모인 이유는 주지승이 한식예찬 참가자였던 육혜린을 돕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응. 성칠이가 그러는데 장사가 잘 안된대.”
“흠.”
“아직 연락해?”
차지찬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어. 다 모이는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서로 얼마나 진지하고 간절한지 공유했던 만큼 연락을 주고받는 모양이다.
“직장 그만두셨어?”
내가 물으니 주지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사장이 방송 나가고 계속 괴롭혔나 봐. 잘되면 나간다면서? 왜 안 나가? 그런 식으로.”
그러고 보니 참가자들 사연 보여줄 때 그런 인터뷰 내용이 방송에 그대로 송출된 적 있었다.
PD 인성에 혀를 내둘렀는데 그걸 또 꼬투리 잡아서 사람을 쥐잡듯이 들들 볶은 모양이다.
“어차피 장사 해보고 싶었고. 한식예찬 끝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거 보고 시작했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더라고.”
“무슨 장사 하는데?”
백우진이 물었다.
“육회. 한 달 정도 됐어.”
“근데 TV에 그렇게 노출됐는데 장사가 안될 수가 있나?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처음에는 잘 됐는데 금방 사람이 줄었대. 무슨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고.”
“음. 장소는?”
“낙성대 인헌 시장.”
한 번도 안 가 본 곳이다.
“낙성대는 J빵집밖에 안 가봤는데.”
“그럼 어떻게 도와줘? 호객행위라도 해야 하나?”
차지찬이 물었다.
“글쎄. 근데 손님이 처음부터 없던 게 아니니까 뭔가 문제가 따로 있지 않을까. 그거 해결해 주는 게 나아 보이는데.”
내 말에 주지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래. 뭐, 몰래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 가서 육회도 먹어보고 주변도 둘러보고 시작하면 좋겠어.”
“골목식당 느낌이야?”
“우리가 그럴 깜냥은 아니지. 그래서 도와줄 사람 구했어.”
“누구?”
“박정아 쉐프.”
박정아는 팔도진미에서 우승하고 한식예찬에서는 심사위원으로 나섰던 젊은 요리사다.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는 본인 매장도 크게 성장시키고 분점도 차린 만큼 도와줄 수 있을 거다.
“넌 또 뭐가 불만이야?”
차지찬이 뚱해 있는 백우진에게 물었다.
“마니또는 몰래 해야 하는데.”
무시했다.
* * *
박정아와 함께 낙성대 인헌 시장을 찾았다.
입구로 들어서자 돈가스, 족발, 핫바, 탕수육, 떡볶이 등 먹을거리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시장은 지저분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생각 외로 깔끔하다.
한참을 들어서니 작은 매장이 보였다. 육회린이란 간판이 걸려 있다.
“많이 들어와야 하네요.”
박정아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말했다.
아무래도 월세 때문에 더 좋은 환경에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은데 다른 방도가 있을까 의문이다.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아. 안녕하세요!”
우리를 본 육혜린이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흐.”
말만이라도 좋게 지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오늘 손님 몇 분 받으셨어요?”
“점심 때 한 팀 포장이요…….”
심각한 수준이다.
이제 저녁이니 술 마시러 올 사람이 있으면 몰라도 하루 매출이 2~3만 원이란 뜻인데 매장이 석 달은 유지될까 싶다.
메뉴를 보니 육회랑 물육회 둘뿐이다.
“저희 하나씩 주세요.”
“네.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매장 테이블은 셋뿐이다. 그나마도 2인용 둘에 4인용 하나라서 우리가 앉기에도 부족했다.
“홀 영업보단 배달이나 포장 위주로 해야겠네.”
주지승의 말에 박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육회랑 물육회입니다.”
육회를 슥슥 비벼서 한 입 먹었다.
쫀득쫀득한 식감이나 양념, 뭐 하나 흠잡을 것 없이 너무나 맛있다.
이번에는 내게는 조금 생소한 물육회를 먹어보았는데 새콤달콤한 맛이 일반 물회보다 살짝 덜하고.
육회랑 함께 들어 있는 메밀면이 맛있어서 특이한 냉면처럼 느껴진다.
맛있다.
차지찬과 백우진은 물론 주지승과 박정아도 표정이 밝다.
음식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뭐든 시도해 볼 수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너무 맛있는데요?”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니고요. 정말로요. 이건 육회랑 면 양 조절해서 냉면으로 팔면 진짜 인기 많을 것 같아요.”
“저도 음식 문제 같진 않아요. 가격이 문제네요.”
박정아가 입 주변을 닦아내고 말했다.
육회는 한 접시에 25,000원 물육회는 한 접시에 28,000원인데 사실 가격으로 보나 메뉴 이미지로 보나 식사보다는 안주로 봐야 한다.
“점심 장사가 안 되는 건 식사 메뉴가 아니라서 그렇고. 점심에 반주하실 어르신들에겐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죠.”
“네…….”
“주변에 큰 회사가 있거나 직장인이 많으면 저녁 회식 느낌으로 올 수도 있을 텐데 매장이 좁아서 힘들 거예요.”
“맞아요. 전화 받으면 테이블이 부족해서 못 받은 경우가 많았어요.”
“배달로 해볼 생각은 해보셨어요?”
“네. 일단 고기를 쟁여둘 순 없으니 순환이라도 하자 싶어서 배달 어플도 가입해 봤는데 아직…….”
“배달비 인상되고 배달 주문이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육회 한 접시 25,000원에 배달비 3,000원에서 5,000원 잡으면 금방 3만 원이니까. 한끼에 3만 원이면 부담되죠.”
다들 잠시 말이 없어졌다.
“고기가 신선한데. 어떻게 관리하는 거예요?”
“어. 이럴 때 재료 아낀다고 질 안 좋은 거 쓰면 더 망한다고 해서. 계속 새로 떼다 쓰고 있어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지출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순환이라도 하려고.”
“네…….”
육혜린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 일주일 동안 너무 잘되는 거예요. 막 포장 기다리시는 분들께 번호도 나눠드리고. 고기가 없어서 못 드린 분들껜 다음에 꼭 와달라고 더 많이 맛있게 준비하겠다고 했거든요.”
묵묵히 육혜린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두 배로 준비했어요. 이 정도면 충분히 나가겠다 싶었는데 절반도 못 판 거예요.”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엔 더 안 나가서 거의 30㎏가 남았거든요. 주변에 나눠드리고. 그래도 너무 많이 남으니까. 냉동하면 못 쓰니까. 엄마 갖다 드리고. 나중엔 어쩔 수 없이 버리는데. 그게 계속 이어지니까. 네.”
육혜린이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이 30㎏이지 어마어마한 양이다.
장사가 잘되나 싶다가 갑작스레 재고가 감당 못 할 정도로 쌓이니 그 절망감이 어땠을지 가늠할 수 없다.
“지금은요?”
“계약한 게 있어서 그 정도만.”
물건을 떼오는 것도 계약으로 이루어지니 마음대로 확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방법을 찾아보죠. 혹시 이 주변에 호텔이나 결혼식장, 주점 같은 곳 있어요?”
“네? 아주 가까이는 아니고.”
“그런 곳에 육회 많이 쓰거든요. 뷔페든 안주든. 그런 곳에 납품할 수 있는지부터 알아봐야 해요.”
“납품이요?”
“사람들이 안 오니까 혜린 씨가 나가야죠.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나요.”
“…….”
“혜린 씨, 본인 매장 차려서 장사하는 거 꿈이었죠?”
“네.”
“혜린 씨가 하고 싶은 일이에요. 여기 지키려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어요. 그렇죠?”
육혜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