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17
치팅데이 217화
44. 지친 사람도 우울한 사람도(3)
우선 그동안 육혜린 본인이 정리한 문제점과 박정아, 주지승의 의견을 종합해 보았다.
“점심시간은 직장인들이 와줘야 하는데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 같아요.”
주지승이 말을 꺼냈다.
시장 입구부터 먹을 게 잔뜩이고 큰길에도 식당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서 굳이 안쪽까지 들어올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근처 사무실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리는데 오고 가는 시간을 20분으로 잡고, 음식이 준비되는 시간을 5분에서 10분으로 잡으면 정말 바쁘게 다녀야 한다.
그런 수고스러움이 육회린을 방문하는데 방해가 될 거라는 의견이었다.
“그렇다고 매장을 옮길 수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찾을 만한 곳이 되어야 해요.”
주지승의 말에 육혜린과 박정아가 귀를 기울였다.
“사실 점심 메뉴로 육회는 부담스럽습니다. 가격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물육회. 메밀면 넣은 이건 되게 맛있고 특이하더라고요. 해서 육회 양을 줄이고 육회 냉면쪽으로 선회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오.”
육회는 점심 메뉴로 적합하지 않지만 냉면은 다르다.
여름에야 말할 것도 없고 봄, 가을, 겨울 불쑥불쑥 떠오르는 음식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육회와 새콤달콤한 육수가 어우러진 메밀면은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었다.
“방송에 출연한 사람만의 시그니처 메뉴라면 분명 수고를 감내할 겁니다. 매장을 막 열었을 때처럼요. 그리고 배달도 잘 될 수 있죠.”
“냉면은 배달 음식에서도 주문량이 많으니까요.”
박정아가 한마디 거들었다.
“육회를 줄이면 단가도 맞출 수 있어요. 지금은 얼마나 들어가죠? 한 400g?”
“네. 400g 넣고 있어요.”
“너무 많아요. 50g만 넣으면 얼마나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진 생각하셔서.”
“어…… 12,000원. 아, 11,000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냉면 가격 만 원 넘은 지 한참됐어요. 육회도 들어가니까 그 정도면 괜찮죠.”
주지승의 말에 육혜린과 박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한마디 해도 돼요?”
백우진이 손을 들었다.
요식업에 전문가가 아니라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태도다.
“여기 너무 깨끗해요.”
“아.”
식당이 청결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백우진의 말뜻을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매장 안이 예쁜 카페 느낌이다.
사방이 새하얗고 테이블도 하얀색에 검은색으로 포인트만 주고 있다.
젓가락과 숟가락도 예뻐서 뭔가 육회를 먹는 장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육회하면 다들 술 한잔씩 하잖아요. 근데 뭔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에요.”
“일리 있네.”
주지승이 맞장구쳤다.
“전 사진 찍기에 좋아 보여서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여요.”
내 말에 다들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그보다 저녁이 문제예요. 점심은 육회 냉면으로 될 것 같은데 저녁으로 냉면 먹는 사람은 또 적잖아요.”
육혜린이 날 말똥말똥한 눈으로 본다.
부담스럽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식당 다니고 리뷰 보는 거 좋아해서 본 건 있거든요.”
육혜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매장 옆에 작게 공간이 있더라고요. 테이블이랑 의자 두면 매장이 좁은 것도 해결되고 감성도 있을 것 같아요. 야외에서 육회 한 접시에 소주 한잔 느낌.”
“날 조금 풀리면 괜찮겠는데?”
술 마시기 좋아하는 차지찬이 내 의견에 힘을 넣어주었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음식 장사랑 술 장사는 또 다르거든요. 그렇게 되면 테이블마다 술이 나갈 텐데 혼자 감당하기 힘들 수 있어요.”
박정아가 현실적인 문제를 제시했다.
확실히 취객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 육혜린은 장사만 잘 된다면 무슨 일이든 감당할 준비가 된 듯하다.
그 소심했던 사람이 제법 다부진 얼굴을 하고 있다.
“해보겠습니다.”
* * *
일주일 동안 연구 끝에 육혜린은 물육회를 육회 냉면으로 개량해 내는 데 성공했다.
첫 녹화 분량이 반야식경 채널에 업로드되어 그 동안 손님이 제법 늘었던 모양인지 육혜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회 양념 베이스로 육회와 메밀면을 넣어 만든 냉면은 우리가 기대한 맛이었고 반야식경 채널에 소개되자 다음 날부터 점심 주문이 쇄도했다고 한다.
특히나 배달 주문이 폭증해서 푸드트럭을 하시던 어머니까지 본업을 닫고 매장에 나오신다니 괜히 뿌듯해진다.
“와. 조회 수 잘 나오네.”
차지찬이 반야식경에 업로드된 두 영상을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
일주일 전 영상은 180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두 번째 영상은 50만을 막 넘어섰다.
“우리도 잘 되고 혜린 씨도 잘 돼서 기쁘긴 한데. 댓글 문화가 바뀌는 느낌이라 더 좋더라.”
주지승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악플 관련해서는 정말 마음고생 많이 하는 직업인지라 솔직히 가능할까 싶었건만 남사당패가 점점 더 늘고 있다.
“뉴스도 떴잖아.”
어깨가 거의 인중 높이로 올라간 백우진이 어제 뉴스를 틀었다.
이번 주 수요일에 다녀온 양양 해수욕장 전경이 펼쳐졌다.
백우진이 아는 유튜버와 협업했는데, 평소 전국 해수욕장을 돌면서 쓰레기를 모아서 재활용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채널 홍보겸 우리도 쓰레기를 주우러 양양으로 향했다.
겨울이라 서핑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막상 도착하니 해수욕장 근처 유흥업소가 많아 시끄럽고 어수선해 정신이 없었다.
-남사당패라고 들어보셨나요? 농악대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현재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놀이라고 합니다.
-WTV 예능 유튜브 계정입니다. 남사당패 이미지를 게시한 네티즌들이 행복하세요, 돈 많이 버세요, 고생하지 마세요 등 응원의 격려,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악플 보면 당사자도 아닌데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치킨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남사당패는 WTV 인기 예능 프로그램 백반따라 출연자인 반찬용, 차지찬, 백우진, 주지승이 새롭게 명명한 크루입니다.
-지난해 건강 도시락, 국토대장정을 하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쳤던 청년들이 이번에는 온라인 환경 조성에도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이들은 선한 댓글을 단 사람에게 치킨 쿠폰을 지급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몰래 돕는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농부 부부에게 하루 휴식을 주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에게 해결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야심한 밤을 틈타 양양의 한 해수욕장에서 쓰레기 2톤을 수거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인플루언서 반찬용)이미지 관리죠. 예쁘게 보여야 잘 봐주실 테니까요.
-시간적, 금전적 비용이 만만치 않으실 텐데. 그런 목적만으로 가능할까요?
-(인플루언서 반찬용)영상으로 찍어서 올리고 있잖아요? 잘 봐달라고요. 돈도 벌고 뿌듯해지기도 하고. 그리고 저희가 이렇게 해서 다른 분들도 기뻐하시고 서로 돕고 도움받으시면 좋지 않나 싶어요.
-반찬용 씨는 선행으로 잃는 건 없다. 오히려 더 받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이웃 돕기 문화, 좋은 말 건네기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야, 근데 왜 너만 인터뷰 따냐?”
영상이 끝나자 차지찬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니까. 왜 형이야? 내가 있는데?”
백우진도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얘는 연예인 취급이잖아. 우리랑 다르지.”
“아. 진짜 왜 이래. 인터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지.”
“어. 난 아무나도 아니라서 못 했나 보다.”
“요즘 이 형 자기 잘생긴 줄 아는 것 같아.”
“찬용이 잘생겼잖아.”
“아! 형! 형이 젤 나빠!”
대놓고 뭐라 하는 차지찬, 백우진보다 주지승이 날 더 부끄럽게 한다.
비난에는 익숙하지만 칭찬에는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다.
“왜? 진심이야.”
“아! 하지 말라고!”
“끄흐흐흐흣.”
평소처럼 시시덕거리고 있으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렀다.
묵은지와 이지혜 PD에게 연락이 올 시간이 지났다.
“슬슬 연락 올 때가 됐는데.”
“그러게. 잘 안 되나?”
“에이. 은지 PD 갔잖아. 그냥 얘기가 좀 길어지는 거겠지.”
* * *
“1,000마리는 너무 적습니다. 4,000마리가 좋겠습니다.”
묵은지의 제안에 신생 치킨 프랜차이즈 파다닥파닭 마케팅 부장 계정봉이 당황했다.
그동안 남사당패가 보여준 화제성에 기대어, 이번 ‘행복해져라’ 이벤트에 치킨을 공급해 브랜드 이미지를 확보하려 했건만 남사당패에서 요구하는 금액이 예상 외였다.
파다닥파닭의 주력 상품 파닭은 정가 20,000원으로 4,000마리를 지급하려면 8,000만 원이 소요되었다.
적은 투자로 큰 효과를 기대했던 파다닥파닭으로서는 난감했다.
“4,000마리요?”
“4,000마리입니다.”
계정봉 부장이 혹시나 싶은 마음에 되물었지만 묵은지는 단호히 답했다.
“어. 2,000마리는 어떠신가요?”
“4,000마리입니다.”
묵은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지혜 PD는 내심 묵은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동안 그녀가 성사시킨 일이 있었기에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았다.
“2,500마리는 어떠십니까? 저희가 처음 제안 드린 것에 2.5배나 됩니다.”
이지혜 PD는 이만 하면 조율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행복해져라’ 이벤트를 돕겠다고 나선 파다닥파닭에 이 이상을 요구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4,000마리입니다.”
그러나 묵은지는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후우. PD님, 저희도 선의로 드리는 거라 정말 이 이상은 어렵습니다. 3,000마리로 하시죠.”
“4,000마리입니다.”
묵은지가 계정봉에게 서류를 보였다.
“1차 이벤트 당첨자 목록입니다.”
계정봉이 두툼한 서류를 다급히 넘겼다. 마지막 장에 적힌 번호가 1,000번임으로 1차 당첨자가 1,000명에 달한다는 말이 되었다.
“2주차에 접어든 지금 참가자는 1주차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습니다. 해서 기존에 확보한 3,000마리 이외에 추가 물량이 필요합니다.”
“…….”
“파다닥파닭 외에도 11개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남사당패에 PPL 문의 협찬, 지원, 광고 문의를 하고 있습니다.”
계정봉이 깜짝 놀랐다.
이미 여러 경쟁업체에서 연락을 받았다면 광고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가장 먼저 파다닥파닭을 찾은 이유는 귀사만이 광고, PPL 등의 형식이 아니라 순수히 지원만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그렇죠!”
“하지만 귀사에서 광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대가 없는 일에 자금을 투입할 기업은 없으니까요.”
계정봉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광고 형식은 필요 없었다.
오히려 뜻 깊은 행사를 통해 한몫 챙긴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파다닥파닭은 치킨을 무상으로 공급해 주고 이후 언론을 통해 남사당패를 지원해 준 업체로 브랜딩할 계획이었다.
“저희는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치킨값을 올려서 이미지가 안 좋아진 몇몇 브랜드는 아주 간절히 저희와 손 잡고 싶어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배달비, 3만 원 치킨 등 여러 업체에서 업보를 쌓아 왔기에 이번 일로 이미지를 개선하고 싶을 터였다.
“1만 마리도 주실 분들을 멀리하고 귀사에게 연락을 드렸으니 파다닥파닭에서도 성의를 보여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묵은지의 설명을 들으니 4,000마리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8,000만 원이나 지출하게 된다면 적어도 광고나 PPL을 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미치겠네.’
다만 처음부터 선의라고 못을 박고 연결이 된 탓에 광고 이야기를 꺼낼 명분이 없었다.
“……그럼 4,000마리로.”
“생각해 보니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예?”
“5,000마리 주십시오.”
이지혜 PD는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강도 행각에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