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21
치팅데이 221화
45. 악어와 새(2)
뭐부터 해야 하지?
생각해. 멍 때리지 마. 병원. 운전.
스마트폰을 꺼냈다.
-반찬. 안 그래도.
“우진이 병원 가야 해. 운전하시는 분 보내줘. 2번 트럭에 있어. 빨리.”
-용주야! 최용주!
다행히 차지찬은 군말 없이 사람을 불렀다. 상황 설명은 나중이다.
“다음. 지혜 PD.”
이지혜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찬용 씨.
“우진이가 쓰러졌어요. 저혈당 같은데 지금 어디예요?”
-바로 갈게요.
이지혜도 시간을 끌지 않았다.
혈당측정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방심해 왔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현장 근처에 있던 이지혜 PD가 먼저 도착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더니 길에 누워 있더라고요. 저혈당 증상 같아서 일단 야쿠르트 먹였는데 혈당 측정이 안 돼서 사람 불렀어요.”
“저 있어요.”
이지혜 PD가 가방에서 작은 파우치를 꺼냈다.
“어…….”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는지 허둥지둥하길래 내가 나섰다.
엄지손톱 아래를 소독하고 피를 내서 측정지에 댔다. 5초 후 83㎎/dL이 기록되었다.
야쿠르트 2개를 먹고 10분 정도 지나서 83이니 확실히 저혈당 증상이 맞았다.
저혈당이 왔을 때 혈당 조절 목표치가 80㎎/dL에서 130㎎/dL였으니 안정권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다행이다.
“어때요?”
“괜찮은 것 같아요.”
긴장이 풀린 탓인지 힘이 빠진다.
“더 안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이지혜가 가방에서 포도당 사탕을 꺼내며 말했다.
“네. 이제 괜찮아요. 좀 더 있으면 정신 차릴 거예요.”
“으.”
백우진이 정신을 차렸다.
“우진아. 정신 좀 들어?”
이지혜가 미간을 잔뜩 좁힌 채 백우진을 불렀다.
백우진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이지혜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되게 못생겼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얘 좀 봐. 헛소리하잖아. 어떡해. 백우진, 백우진!”
이지혜가 안타까워하며 백우진의 뺨을 쓸다가 뺨을 살짝 때렸다.
“악.”
“정신 좀 차려보라니까?”
한 번 더 때리니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차렸어. 진짜. 진짜.”
“진짜? 그럼 다시 봐 봐.”
“예뻐. 예뻐.”
“하. 놀랐잖아.”
“…….”
백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살려달라는 눈빛인데 농담하는 걸 보니 멀쩡해 보여서 무시했다.
* * *
저혈당은 혈당만 조절되면 금방 상태가 좋아지기에 다급한 상황은 넘겼다.
혹시 몰라서 병원에 보내놓고 오후는 남은 사람끼리 일을 마무리했다.
오늘은 나도 묵은지도 일이 많았던 터라 저녁은 배달로 해결했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광고 계약 건으로 현장에 없었던 묵은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니까요. 할머니가 야쿠르트 안 주셨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그분이 우진이 살리신 거예요.”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하필 쓰러진 위치도 트럭 근처라 가정집 방향에서는 보이는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에서는 시야가 가려져 있었다.
일찍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객사할 뻔했다.
“혈당측정기랑 주스도 휴대하고 다녀야겠어요. 번거로워서 안 가지고 다녔는데 차에라도 둬야겠어요.”
여기저기 촬영 다니면 사실 측정기나 주스를 따로 소지하기 쉽지 않다.
부피가 커서 주머니에 넣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제가 가지고 다닙니다.”
“은지 씨가요? 왜요?”
“찬용 씨가 정신을 잃으면 제가 조치해야 하니 가지고 다닙니다.”
“…….”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또 사랑스러워서 묵은지를 꼭 안았다.
“그럼 바로 병원으로 보냈습니까?”
“지혜 PD가 측정기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정상 수치로 올라와서 천천히 보냈죠.”
말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당뇨도 없는 사람이 혈당측정기를 챙겨 다니고 저혈당에 특효인 포도당 캔디까지 소지할 필요는 없다.
누워 있는 백우진을 바라볼 때의 세상 무너진 표정만 봐도 이지혜 PD가 백우진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다.
“왜 그러십니까?”
“지혜 PD가 우진이 신경 많이 쓰는구나 싶어서요.”
“백우진 씨가 당뇨 판정 받았을 때 제게 이것저것 물어보셨습니다.”
“그랬어요?”
묵은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TV를 틀었다.
WTV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보고 듣기만 해도 가슴 답답해지는 소식이 계속된 끝에 우리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백우진은 자기가 쇼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다고 뉴스 보도를 걱정했는데, 녀석이 쓰러진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기자들이 백우진을 발견했다면 뭐라도 조치를 취했을 테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지찬이 형이 엄청 자책하더라고요. 우진이 체력이나 몸 상태 생각 못 하고 시작했다고.”
“차지찬 씨 잘못은 아닙니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하나 봐요.”
-아유. 감사하죠. 쌀하고 김치면 되는데. 김하고 저기 뭐야. 참치. 비누도 주고 갔어요.
-이 비누 엄청 좋아요! 반찬가게 아저씨가 줬어요!
복이네가 한 인터뷰 영상이 뉴스에 활용되었다.
“비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까?”
“아, 직접 가 보니까 위생 문제가 있더라고요. 생활에 급급하니 손이 잘 안 가나 봐요. 마음에 걸려서 나눠드릴 때 같이 하자 싶었죠.”
묵은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비누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복이가 양손에 비누 하나씩 들고 있으니 의아해할 만하다.
다른 물건도 아니고 비누를 받았다고 저리 좋아하니 말이다.
“그냥 주면 기분 나쁠까 봐 광고하는 거라고 했어요. 어떤 느낌인지 말해달라고 했더니 기자한테 말했나 봐요.”
저 아이 나름대로 내 부탁을 들어준 것이리라.
“도브입니까?”
모자이크가 되어 있어도 알아볼 수 있는 모양이다.
“네. 보여요?”
“하얀 바탕 케이스면 달리 생각나는 제품이 없습니다.”
“딱 꼬집어서 도브 사 달라고 했던 건 아닌데 나눠드리는 물건이 다르면 괜한 일 생길까 봐 통일했어요.”
“잘하셨습니다.”
“은지 씨는 오늘 어떻게 보냈어요?”
“광고 문의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날을 잡아 처리하려 했는데 마무리 짓지는 못했습니다.”
묵은지가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찾다가 내게 보여주었다.
“다른 것은 쭉 보시면 되고 특이할 건 의류 브랜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옷이요?”
정말 뜬금없다.
“라코스트입니다. 화보 촬영 및 앰버서더 제안을 했습니다.”
“……네?”
라코스트라면 세계적인 브랜드다. 그런 곳에서 화보 촬영과 앰버서더 제안을 할 리가 없다.
“저도 놀랐습니다.”
묵은지가 제안서 문서를 열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라코스트는 창립 이래 다양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의 자유로운 연결 고리가 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동안 사회 구성원들을 한마음으로 엮으며 지친 이를 위로하신 반찬용 님께 우리 모두의 삶을 아름답게 이루는 데 함께해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라코스트의 앰버서더 2024 정책은 첨부된 파일을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말을 어렵게 썼는데 내 방식대로 해석하면 남녀노소, 국적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라코스트 옷을 입히고 싶다는 말 같다.
“우리나라만 하는 게 아니네요?”
“글로벌 앰버서더입니다.”
“전 그럴 사람이 아닌데.”
“작년 기준으로 살펴보니 화보 또는 영상이 글로벌 마케팅에 활용되긴 하지만 직접적인 대외활동은 국내에서 이루어집니다. 다만 라코스트 연간 행사 참석은 고려해야 합니다.”
“너무 부담스러워요.”
“앰버서더는 찬용 씨의 이미지를 기업이 가져갈 수도 있지만, 찬용 씨 역시 기업 이미지를 받아올 수 있습니다. 라코스트는 포지셔닝이 잘 잡힌 브랜드입니다.”
“……라코스트한테 더 안 좋지 않아요? 제가 입어 봤자.”
“그런 말씀 마십시오. 찬용 씨는 어디 놓아도 멋집니다.”
“은지 씨 눈에만 그럴 거예요.”
“아닙니다.”
묵은지는 내가 이 일을 맡길 바라는 눈치다.
“그럼. 만나는 볼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 * *
“아아아. 들리십니까.”
금요일.
이틀 동안 중노동을 했더니 몸 컨디션이 안 좋다.
잔뜩 늘어진 인사를 건네자 시청자들도 각자 방식으로 인사했다.
└ㅏㅏㅏ
└ㄷㄹㄴㄷ
└반하
└목소리 왤케 힘없음
“어제랑 그제 쌀 날라서 그래요. 힘들어 죽겠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반찬가게 보시면 아실 텐데 뉴스가 좀 아쉬워요. 이 추운 날씨에 땀을 한 바가지 흘렸거든. 근데 그걸 안 잡아주시더라고.”
하품이 나온다.
채팅창을 보니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경사가 장난 없던데
└힘들어 보이긴 하더라
└ㅋㅋㅋㅋㅋ힘든 척해서 이미지 만들려고 그러는 거 다 알아
└저 정도면 인정해 줘야 하는 부분 아니냨ㅋㅋㅋ
└ㄹㅇ
└백우진은 괜찮음?
“우진이 괜찮아요. 저혈당이 되게 위험한데 또 혈당만 맞추면 되는 거라. 와. 야쿠르트 주신 할머니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어제 우진이랑 같이 가서 따로 인사드렸어요.”
└다행이네
└백우진 ㄹㅇ 너무 약함
└그래도 살은 좀 빠졌더라
└할머니 감사합니다
└우진이 소중해
└영상 나온 복지사가 댓글 달았더라. 당저씨 사람들 배려해 주는 마음이 너무 멋지다고.
└얼마 줬냐?
“아, 뭘 또 얼마를 줘.”
박지효 복지사가 고맙게도 유튜브에 댓글을 달아주셨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일을 사려 깊은 배려로 포장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덕분에 미처 몰랐던 사람들에게 내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었다.
“근데 그 댓글이 좋아요 많이 받았잖아요. 8천 개였나? 이벤트 기준으로 보면 무조건 당첨인데. 나 칭찬하는 글에 치킨 드리면 좀 그런가? 괜찮죠?”
‘ㅇㅇ’과 ‘ㄴㄴ’과 같은 비율로 올라오다가 ‘주면 진짜 대가성 되는 거 아님?’이란 채팅이 눈에 띄었다.
“아니. 경품이잖아. 여러분, 치킨 받고 싶어서 경쟁자 자꾸 견제하시는데 치킨 많아요. 저번 주에 나눈 거 빼도 12,000마리나 있어.”
말하고 나니까 파다닥파닭의 주력 상품인 고수마요 파닭이 떠올랐다.
이벤트 상품을 지원해 주신 만큼 남사당패 모두 리뷰 방송을 하기로 했었다.
“그러고 보니 고수마요 파닭 먹어야 하는데. 난 진짜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의외로 맛있대요. 언제 하냐고? 내일. 내일 괜찮겠는데. 잠깐 물어볼게요.”
단톡방에 내일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 대신 파닭 리뷰하자는 말을 남겨두었다.
“비누? 아. 왜 치약이랑 샴푸는 안 줬냐고? 바디워시?”
└자기가 이 잘 안 닦으니까 치약 생각은 못 한 거짘ㅋㅋㅋㅋㅋ
└악.
└너무 더러워요
└좀 씻고 다녀라
“아 맞네. 치약이랑 샴푸. 제가 돈이 모자라서 그랬어요. 돈 좀 줘 봐요.”
└?
└강도 ㄷㄷ
└협박하는 거임?
“돈이 없다니까? 난 돈 없으니까 여러분이 반찬가게 이름으로 기부 좀 해요. 아까 누구였지? 루루카 님. 치약 사서 나눠드리게 돈 좀 꺼내 봐요.”
└[루루카 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됐음? 좀 나누며 살자.
└2천원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구 놀리낰ㅋㅋㅋㅋ
└2,000원이면 칫솔에 한 번씩은 짜줄 수 있나? ㅋㅋㅋㅋㅋㅋㅋㅋ
└2천 원 주면서 당당하넼ㅋㅋㅋ
└이건 반찬용도 어이없을 듯ㅋㅋ
“왜 어이없어? 2,000원 개이득인데?”
└[남사당패들러리 님이 10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진짜? 오늘 슈퍼챗 좀 쏘려고 했는데 2,000원만 쏴도 됨?
└헉
└10만 원?
└큰손 왔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들러리 님. 2,000원 따위 성에 안 차는 걸 어떻게 아시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 100,000원이면 얘기가 달라지짘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