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30
치팅데이 230화
47. 슈가맨(1)
일요일.
지쳐 쓰러져 있는데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쇼츠가 진짜 부담이더라. 소비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
우리 중에 쇼츠를 가장 먼저 시작한 차지찬이 고초를 토로했다.
“형은 쇼츠용 영상 따로 찍어서 그런 거 아니야?”
“예전 영상에서 끌어오는 것도 한계가 있잖냐.”
“하긴. 형은 잘 되던데? 어때?”
차지찬이 주지승에게 물었다.
반야식경은 1분짜리 쿠킹 영상을 업로드 중인데 영상당 조회 수가 몇 백만은 당연하다시피 찍히고 있다.
“편집은 익숙해졌는데 좀 단순해지더라고. 요리 쇼츠 하는 사람도 많아서 차별성 내기도 힘들고.”
“많긴 하더라.”
“나도 힘들어. 백반토론은 찬용이 형이랑 나눠서 하니까 올릴 만한 게 반으로 줄고. 지식 관련 영상은 짧게 줄여 올리니까 오해 여지도 있고 본편을 봐야 하는데 쇼츠로 만족하는 것 같기도 해. 나 요즘 조회 수 좀 줄었어. 형은 어때?”
백우진이 내게 물었다.
테이블에 볼을 댄 채 말했다.
“나 같아도 60분짜리 볼 바에야 쇼츠 보겠다.”
“나도.”
“나두.”
주지승과 차지찬도 공감하니 백우진의 고민이 더 깊어진 모양이다.
“근데 이번 명절에 운전해 보니까 우지니어스만 한 게 없더라. 목소리도 듣기 좋고 주제도 흥미롭고.”
“의외로 길어서 좋더라.”
정말 유튜브에는 답이 없는 것 같다.
어느 한쪽에서는 영상을 어떻게 줄이고 압축해서 도파민을 분비시킬지 고민이고.
또 어느 한편으로는 긴 재생 시간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근데 넌 왜 그러고 있어. 못 잤냐?”
차지찬이 내게 물었다.
“요새 계속 제대로 못 잤어. 일이 너무 많아.”
“돈 많이 벌고 좋네.”
“좋겠다.”
차지찬과 주지승이 부럽다고 한다.
어떻게 된 직업이 일상이 없어질 만큼 바쁘면 부러움을 산다.
“진짜야. 운전하다가 사고날까 봐 택시 타고 다닌다니까.”
“얼마 벌었냐?”
“자차 두고 택시 타고 다닐 만큼 많이 벌었나 봐.”
주지승과 차지찬이 또 돈 얘기를 꺼냈다.
“돈이랑 상관없다니까.”
“그래서 얼마 벌었는데.”
“우리한테만 말해 봐.”
“……계산 안 해봤는데.”
“그게 말이 되냐?”
“웃기지 말고 빨리 불어.”
말하기 껄끄러워 슬쩍 피했지만 조금도 안 통한다.
“어……. 대충 10억?”
아무 반응이 없다.
“진짜야. 내가 뭐 하러 거짓말해.”
“와.”
차지찬이 고개를 들며 한숨을 내쉬고 주지승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찬용아, 다음 광고 형이랑 같이 하자.”
“나도!”
“말했잖아. 제안 들어올 때마다 말한다니까.”
나는 남사당패 전원이 함께 찍기를 바라지만 모든 기업이 그 요구를 받아들이진 않는다.
비용이라든가 이미지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기에 내 생각만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진짜 이해 안 된다.”
가만히 있던 백우진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많이 벌면서 왜 이러고 살아. 지금 사는 게 사는 거야? 형 진짜 이러다가 큰일 나. 개인방송이라도 줄이든가. 어제 뭐 거의 시체던데.”
“이건 우진이 말이 맞다. 너 요즘 볼 때마다 쓰러질 것 같아.”
“행복해져라 할 때도 너만 죽어가고 있어.”
주지승과 차지찬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요즘은 한창 때보다 더 바쁘다.
“그제 도브 CF 찍어서 그래. 2시에 끝나서 잠을 못 잤어.”
“그니까 도브 광고한다는 말은 왜 하고 다녀서 그래.”
백우진이 꾸짖는다.
“결과적으로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좋잖아.”
“그래. 비누 받으시는 분 생각해서 꺼낸 말이었잖아.”
내가 반박하니 주지승도 나를 옹호해 주었다.
“그냥 깜빡했다고 말하면 되지. 지금 봐 봐. 온갖 일 다 떠맡았는데 도브 광고까지 하면서 자고 밥 먹을 시간도 없잖아.”
“야, 우리 같은 사람은 이럴 때 돈 모아야 해.”
차지찬도 내 편을 들어주었다.
“적당히 많이 버는 게 좋지. 쓸 시간도 없이 바쁘면 무슨 소용이야. 형 그렇게 일만 하다가 건강 잃은 거 아니야? 워라밸이 중요한 거라구.”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백우진 말이 틀리진 않다.
돈을 많이 버는 거야 당연히 좋지만 건강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일을 몇 개 줄이더라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내 말이 맞다니까. 형 2월 내내 마음 편히 잔 적 몇 번이나 되는데?”
“글쎄.”
“내가 보기엔 하루도 안 돼. 10억이나 벌면 뭐 하냐고. 사람이 죽어가는데. 반짝 끌어모으고 은퇴해서 편히 살 거 아니면 적당히 스케줄 조절해. 그리고 말조심하고. 도브 그거 문제 삼았으면 어쩔 뻔했어?”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주지승과 차지찬도 백우진이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실 뿐이다.
부우웅-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누구 전화가 울리는지 둘러보니 백우진이다.
“김기태 실장이네?”
‘걸어서 저 하늘까지’를 스폰해 주었던 WH전자의 김기태 실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김 실장님이 왜?”
“몰라.”
백우진이 전화를 받았다.
“실장님?”
-우진 씨, 잘 지내셨어요?
통화 음량이 커서 김기태 실장 목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엄청 잘 지내죠. 근데 피곤해요.”
-하하. 그러실 것 같습니다. 일이 커졌더군요.
“행복해져라 보셨어요?”
-그럼요. 요즘 남사당패 영상 안 보는 사람 찾기가 힘들잖아요. 전부 봤습니다.
백우진이 씩 웃었다.
행복해져라가 전 국민적 관심 속에서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몹시도 뿌듯하다.
-김유정 씨 영상이 특히 인상 깊더군요.
“그쵸? 열심히 사는 모습이 진짜 멋지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 WH의 광고도 떠오르고요.
“맞아요. 어떻게 하면 좋아할까 자료 찾다가 알게 됐어요. 완전 최고.”
-자사 CF를 패러디하신 거냐, 도용하신 거냐 이야기도 나왔고요.
백우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우리도 놀랐는데 우리처럼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경계할 저작권 관련 문제다.
백우진은 외로움을 타는 김유정이 잠시나마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고민하던 중 WH에서 진행했던 캠페인 광고 영상을 발견했는데.
청각장애인이 일상 생활 도중에 수어하는 사람을 만나는 광고 영상 중,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만 따와 패러디 영상을 제작했다.1)
-설마 우진 씨가 나쁜 의도로 카피한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도용이라뇨! 패러디예요!”
-하지만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영상 설명란 더보기를 눌러야 WH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다, 당장 맨 위로 올릴게요. 살려주세요. 제발.”
-그걸로 윗선을 설득할 수 있을지.
김기태 실장의 말에 백우진의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콘텐츠 제작을 한다는 사람이 원작가 허락 없이 영상을 베겼다는 오해와 그에 따라올 비난, 행복해져라 이벤트를 향한 응원 열풍이 본인 때문에 무너질 거란 두려움, 캠페인 영상 감독에 대한 미안함 등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생각을 정리할 수 없을 거다.
-만약 우진 씨가 책임감을 느끼신다면 작은 부탁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할게요!”
무슨 일인지 듣기도 전에 수락부터 한다.
내가 도브에게 연락받았을 때 딱 저랬다.
-저희가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용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서 신제품부터 적용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텍스트로 보여주거나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기능이 중심인데.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 일어, 불어 등 17개 언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게 가능해요?”
-최대한 빨리 준비해야 했습니다.
굳이 설명 듣지 않아도 이 자리에 앉은 모두가 사정을 이해했다.
작년 WH 유장혁 회장의 손자이자 세계적인 음악가 배도빈이 일시적 시각장애를 겪으며 WH전자에서는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을 위한 제품을 개발 중이었는데.
여러 매체를 통해 장애인을 위한 기술 개발에 진척이 있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었다.
-배도빈 이사님께서 우진 씨를 언급하시더라고요. 좋은 일도 하고 인지도도 높으니 이번에 행복해져라와 함께 콜라보해보면 어떻겠냐고요.
“할게요. 당연히 해야죠. 근데 배도빈 씨가 절 지목했다고요?”
-연예인은 잘 모르는데 우진 씨는 아신다고 무조건 섭외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백우진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조예와 능숙한 외국어 능력, 진행 능력을 인정받아 오케스트라 대전 관련 프로그램에 사회자로 출연했는데 그때 배도빈도 인터뷰한 경험이 있었다.
도중에 배도빈을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된통 당하기만 해서 백우진에게는 흑역사였다.
-아무튼 흔쾌히 수락하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바쁘다고 하셔서 걱정했거든요.
“……설마 CF 도용 얘기 일부러 꺼내신 거예요?”
-저희 캠페인 리마인드시켜 주셨는데 나쁠 것 없지요. 하하하!
백우진이 속았다는 기분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WH광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히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WH에서 잘 넘어가 준 덕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럼 언제부터.”
-자세한 얘기는 조만간 날을 잡죠. 며칠 정도는 내주실 수 있죠?
“네?”
-준비할 게 많다 보니. 3일 정도 괜찮죠?
시간이 없어도 만들어야 할 입장이었기에 백우진은 순순히 대답하고 통화를 마쳤다.
“잘 됐네.”
“응…….”
“너랑 반찬이랑 다른 게 뭐냐?”
“시. 시끄러워.”
“이야. 백우진 바쁘겠네. 어? 3일이나 빼려면 영상도 미리 찍어야 하고.”
“워라밸 지켜야 한다며. 거절해야 하지 않아?”
차지찬과 주지승이 번갈아가며 놀리니 백우진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