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35
치팅데이 235화
47. 슈가맨(6)
“어서 오세요.”
낙성대 시장에 위치한 육회린을 찾으니 한식예찬 참가번호 6번이었던 육혜린이 6번 테이블에 육회를 내려놓고 인사했다.
우리가 제안했던 대로 봄이 되자 매장 옆 공터에 간이 테이블을 놓았는데 손님이 제법 차 있다.
“잘 지내셨어요? 바쁘신 것 같네요.”
“조금요. 안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육혜린이 웃는다. 어머니랑 둘이 하기에 벅찰 텐데 저리 웃는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해진다.
매장 안은 테이블 위에 예약석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아마 우리를 위해 비워둔 것 같다.
“손님 많은데요?”
“오늘은 그래도 조금 여유 있어요. 육회 가져다 드릴게요.”
“아. 한 접시는 육사시미로 부탁드려요.”
“네.”
내가 주문하니 주지승이 걱정스레 묻는다.
“당 올랐어?”
“응. 요즘 방심했더니 또 오르더라고.”
공복 혈당을 90~100 사이로 유지한 기간이 오래되어 방심하고 있었는데, 백우진이 쓰러진 뒤로 다시금 혈당 체크를 하고 있다.
어지럽다거나 갈증 같은 증상이 없어서 몰랐는데 어느새 공복 혈당이 160까지 올라서 다시 조심하고 있다.
아마 양은 줄이고 음식 종류는 가리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천천히 오른 듯싶다.
“괜찮냐?”
차지찬이 물었다.
예전에는 빵이나 떡볶이 같은 걸 왕창 먹고 혈당이 오르면 무척 우울해졌는데 같은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순간의 위기에 흔들릴 필요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알고 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응. 다시 관리하면 되지.”
차지찬이 날 빤히 보더니 징그럽게 웃는다.
“난 혈당 튀면 진짜 우울해지던데.”
백우진이 엎드려 테이블에 턱을 올렸다.
“혈당 관리는 멘탈 관리야. 잠깐 안 좋아져서 우울할 수 있지. 근데 놓아 버리면 정말 답도 없어져.”
주지승이 백우진을 격려했다.
“나도 지찬이도 겪어보니 다시 일어서는 게 중요한 것 같더라고. 찬용이도.”
“얘 은근 멘탈 좋아.”
주지승이 날 칭찬하니 차지찬도 거들었다.
* * *
오후 9시 30분.
WTV 라디오 스튜디오를 찾았다.
유리창 너머 스튜디오 안으로 박하임이 보였다. 방송 중에 날 알아보곤 눈인사한다.
“찬용 씨.”
이번 분기부터 편성된 ‘달콤한 베개’ 담당 PD와 작가 한 분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유. 반가워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PD가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흔들었다.
PD들은 엘리트 의식이 과하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 있는데, 지금까지 만난 사람 모두 내게 친절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인데 예전처럼 거부반응을 느끼진 않지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묵은지는 주변에서 나를 더 부담스럽게 여길 거라며 어색해하지 말고 도리어 살갑게 대하라고 얘기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대본이요.”
작가가 대본을 넘겨주었다.
출연 약속을 잡고 파일로 받아서 한번 훑어 봤지만, 현장에서도 따로 준비해 주는 모양이다.
대본을 보며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1부가 마무리되고 광고가 진행되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형.”
박하임이 웃으며 인사했다.
“잘하던데?”
“그치. 완전 잘하지?”
“어. 오늘 편하게 해도 되겠다.”
“난 형 덕 좀 볼라 했는데.”
서로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라디오는 처음이라 박하임한테 기대려 했는데, 알고 보니 이 녀석도 아직은 긴장되는 모양이다.
“세상을 행복해지게 만드시는 분이죠? 오늘 2부 게스트는 유튜브 채널 반찬가게의 반찬용 씨입니다. 노래 듣고 인사해 볼게요.”
광고가 끝나자 박하임이 소개 멘트를 하곤 마이크를 껐다.
“난 왜 마니또 안 해줘?”
“넌 알아서 잘 살잖아.”
“외로워.”
박하임이 양손을 교차해 가슴 앞에 두곤 귀여운 척한다.
“누가 다가오길 기다리니 그렇지. 심심하면 우리 일할 때 나와.”
“출연료 줘?”
“밥 사 줄게.”
“에이.”
“순대국밥?”
“그 정도면 뭐.”
어이가 없어 웃었다.
마침 흘러나오던 노래가 끝났다.
“뷰렛의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이었습니다. 매력적인 보컬 덕에 계속 듣게 되는 노래죠?”
대화 중에 들었지만 확실히 잔잔하면서도 슬픈 노래였다.
“오늘 2부 게스트는 광고해 드렸듯이 반찬용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유튜버 반찬용입니다.”
“요즘은 유튜버보다는 방송인이나 사업가로 알려진 것 같아요. 요즘은 무슨 일 하고 지내세요?”
“세상을 행복해지게 하고 있습니다.”
소개 멘트를 고대로 읊고 나니 정적이 흘렀다. 결국 박하임과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하핫핳하. 아, 근데 진짜. 아시는 분도 많으시겠지만 찬용이 형이 진짜 행복해져라라는 이벤트를 하고 있거든요. 정확히 어떤 일인가요?”
“어렸을 때 마니또 해보신 분들은 익숙하실 거예요. 온라인을 통해서 같은 커뮤니티 이용하거나 같은 유튜브 채널 보시는 분들께 온라인 마니또가 되는 이벤트입니다.”
“온라인 마니또. 주로 유튜브겠네요?”
“네. 하임 씨도 잘 아시겠지만 악플이 사람을 정말 아프게 하잖아요.”
“그쵸.”
“유명인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온라인에서 시비 걸리거나 하는 경우가 잦은데. 사이버 불링이라고도 하더라고요.”
“네.”
“그런 걸 지양하고 서로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자. 되어 주자는 의미로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거. 왜 하시는 거예요?”
“여러 번 질문받은 일인데 일단 돈이 돼요.”
“아항핫핳!”
박하임이 크게 웃었다.
“아. 정말요? 돈이 돼요?”
“네. 좋은 일 하고 다니니까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덕분에 광고도 많이 찍고.”
“얼마 전에 유명 의류 브랜드 글로벌 앰버서더로 발탁되시고.”
“그쵸. 악어 사랑해 주세요.”
“안 돼. 안 돼. 간접 광고 안 돼.”
박하임이 장난으로 과장하며 말렸다.
“아무튼 여러 업체에서 연락 주셔서 정말 제 생에 가장 큰돈을 벌었어요. 관심 가져주신 덕분에 유튜브 조회 수도 잘 나오고요.”
“아. 좋은 일을 하니까 돈이 벌린다. 사실 나눠주는 일이다 보니까 돈을 벌 수 있단 생각은 못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몰랐어요. 왜 기부를 했는데 잔고가 늘어나지?”
“핳핳핫.”
“생각해 보니까 기업이나 시청자 분들이 저를 도와주신 거더라고요.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요즘 남사당패 행보를 보면 제 기분이 다 좋아져요.”
“하임 씨도 같이 해요.”
“저도 돈 벌 수 있어요?”
“돈 말고 순대국밥.”
“그놈의 순대국밥!”
“아까는 좋다며!”
“아. 조금 전 쉴 때 출연료 주냐고 물었더니 찬용이 형이 순대국밥 사 준다고 했거든요. 돈도 많이 벌면서 진짜 구두쇠야.”
“돈은 제 회사가 많이 벌죠. 저도 월급 받고 살아요.”
“본인이 대표잖아요.”
“뭐, 이것저것 하면 솔직히 어떻게든 챙길 수 있는데 그러다가 뉴스 나오면 어떡해요.”
박하임이 웃는다.
“성실히 월급만 받고 있어요.”
“본인이 본인한테 월급 주는 거예요?”
“그쵸. 500만 원씩 받아서 200만 원씩 적금 넣고 있어요.”
“벌이에 비해서 소박하게 사시네요.”
“아. 그럼요. 제가 계란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후라이도 좋고 스크램블도 좋고.”
“네?”
“그래서 일주일에 한 판씩 먹는데 저번 주 토요일이었어요. 마트를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직접 장 보세요?”
“네. 장 보는 거 얼마나 재밌는데요. 먹을 게 널렸어. 행복해.”
“흐흣흫흫. 아니, 알아보시는 분 많을 것 같은데.”
“그렇죠. 감사하긴 한데 가끔은 빨리 장 보고 쉬고 싶은데 솔직히 기쁘죠. 제가 뭐라고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아무튼 그 날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후딱 치우고 돌아가야지 했는데 애고머니나.”
박하임이 날 향한 채 고개를 갸웃했다.
“계란이 한 판에 만 원인 거예요. 진짜 Egg money죠.”
“그렇구나. 전 장을 안 봐서 모르는데 계란 한 판에 보통 얼마 정도 해요?”
“상품마다 다르지만 저는 6~7천 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봐요.”
애고머니. 에그머니. Egg money로 이어지는 내 개그를 못 알아들은 것 같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와. 그럼 확실히 비싸긴 하네요. 직접 장 보신다고 해서 궁금해졌는데 얼마 전에 결혼 발표 하셨잖아요.”
“네.”
“저는 두 분 반지 때문에 한참 전에 알고 있었지만.”
“고맙다.”
“히힛. 장도 두 분이 같이 보시나요?”
“마트는 같이 가는데 장은 따로 봐요.”
“왜요?”
“서로 요리 욕심이 있어서 각자 따로 사서 따로 요리하거든요. 그리고 서로 먹여줍니다.”
“이상한데?”
“결혼할 사람 생기면 그렇게 해주고 싶어져요.”
“난 우리 쵸코들하고 결혼했으니까.”
“그럼 다 해드려야지. 팬 카페 회원이 60만이었나?”
“응.”
“와. 60만인 분.”
“못 해. 못 해.”
박하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행복해져라 이야기 좀 할게요. 국내에서 또 해외에서도 난리가 났다던데 혹시 알고 계신가요?”
“누구보다도 많이 찾아보고 있습니다.”
“아. 하하핫. 평소에도 에고 서치 많이 하세요?”
“할 일 없으면 맨날 찾아봐요.”
“사실 나두.”
작게 웃었다.
“해외 유명 유튜버 알렉스 우드 씨가 대체 남사당패 이미지를 쓰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고. 왜 다들 사랑 고백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영상을 올려서 화제가 됐죠. 본 영상 조회 수가 800만. 그 외에도 대체 남사당패 정체와 고백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신흥 종교냐는 반응도 있고요.”
“종교. 크흐흣.”
“덕분에 행복해져라 이벤트를 모르는 외국인들도 I love you라고 적는다고 하는데. 이런 반응 예측하셨어요?”
“당연히 못 했죠. 근데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하임이 내가 계속 말할 수 있게 고개를 끄덕여 호응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정말 잔인하고 슬픈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21세기 문명 사회를 산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야만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쵸.”
“그래서 일상. 행복. 웃음. 이런 것들을 향한 그리움이 그만큼 커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거라 보시고요?”
“그쵸. 저희는 그냥 계기를 만들었을 뿐이에요. 행복해져라는 정말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라 더 자부심을 느껴요.”
나 혹은 남사당패가 이룬 일이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기에 더더욱 가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위대한 일에 시작을 맡았으니 말이다.
“좋습니다. 잠시 광고 듣고 오실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