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43
치팅데이 243화
47. 슈가맨(14)
“아으으.”
슈가맨 프로젝트 첫 주 녹화를 마친 다음 날 백우진이 앓는 소리를 내며 출근했다.
“좋은 아침.”
“왔냐.”
토요일, 20층 건물을 계단으로 4번 올랐던 백우진은 기어이 팀을 우승시키고 말았다.
우리의 정의로운 시도가 도리어 녀석의 승부욕을 자극시킨 것이다.
결국 이번 주 공복혈당을 10㎎/dl만큼 줄여서 판단하게 되었는데 천만다행이게도 모든 힘을 쓴 녀석은 일요일 개인 미션에서 처참히 꼴등을 기록하였다.
그에 따라 백우진은 3일 동안 슈가맨 프로젝트가 지급하는 저당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에구구. 에구구.”
백우진이 의자에 쓰러지다시피 앉았다. 무리하게 근육을 쓴 이틀 차니 한창 아플 때다.
“나 진짜 하나만 물어보자.”
백우진이 말했다.
“형들이 나 우승시켜 주고 싶어서 티 안 나게 관리해 주려는 건 알겠어.”
“…….”
무슨 뜻인지 몰라 주지승과 차지찬을 보니 두 사람도 황당해하는 눈치다.
“운동 빡세게 해야 혈당 잡히니까. 납주머니 차고 걸었으면 우승은 힘들어도 혈당 관리에는 도움이 될 테니까. 티 날까 봐 괴롭히는 척하는 건 알겠어.”
뭔가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다.
“근데 인간적으로 도시락은 너무하잖아.”
백우진이 슈가맨 도시락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이거 뭔데.”
“뭐가?”
“사람 밥이 아니잖아.”
살펴보니 곤약밥, 삶은 계란, 구운 아스파라거스, 열무김치, 생당근이 들어 있다.
혈당이 한창 높았을 때 이런 식으로 먹곤 했다.
“괜찮구만. 탄단지에 무기질까지 제대로 챙겼구만.”
차지찬이 말했다.
“영양소만 채우면 다야? 사람이 이걸 먹고 어떻게 살아.”
아스파라거스를 집어 먹었다.
“뭐가. 맛있기만 하구만.”
백우진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똥을 싸고 일어났는데 변기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만큼이나 황당한 모양이다.
“어디 아파?”
백우진이 물었다.
“형이 그러면 안 되지.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형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먹기 위해 산다며!”
순간적으로 긍정할 뻔했다.
식성이 많이 변하긴 했어도 이런 끔찍한 식단을 진심으로 좋아하기란 이번 생에 불가능할 듯싶다.
“네 혀가 가공식품에 혀가 절여져서 그래.”
이번에는 차지찬이 생당근을 집어 먹었다.
“맛있기만 하구만.”
“형이야말로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니야? 이건 맛없어. 맛없는 거라고.”
“나도 맛있는데?”
주지승이 삶은 계란 반쪽을 먹었다.
“와. 나 진짜 어지럽네? 아저씨들. 내가 아저씨들 뭐 좋아하는지 몰라? 왜 자꾸 우기는데!”
“넷이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셋은 맛있다고 하고 혼자만 어지럽다고 하니 진정 번뇌하는 건 시주의 마음인 것으로 사료되오.”
“나무관세음보살.”
주지승의 말에 내가 염불을 외니 백우진이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한다.
“불평하지 마. 이거 지승이 형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만들어 집까지 배달한 거야.”
차지찬의 말에 백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너 괴롭히려고 이러냐? 너 당뇨 판정받은 지가 언젠데 혈당이 그 모양이야?”
“…….”
“작년에 반찬 관리하는 거 못 봤어? 얜 이런 식단 스스로 만들어 먹었어. 프로그램 덕에 운동시켜 주고 밥 가져다주면 고마워하는 게 맞지 않냐?”
차지찬이 정색하고 물으니 백우진이 시무룩해졌다.
“미안. 고마워.”
“알았으면 오늘부터 퇴근할 때 사당점 들러.”
“어?”
“매일 와. 게으름 피우지 말고.”
“…….”
“당뇨 합병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놈도 아니면서 대체 뭔 생각으로 살아? 너 그렇게 맘 편히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운동도 안 하다가 진짜 죽어.”
“알아…….”
백우진이 힘없이 대답하곤 어디론가 터벅터벅 걸어갔다.
녀석이 멀어지자 주지승이 씩 웃었다.
“그래도 지찬이가 우진이 생각해 주네.”
“그러게.”
정색했지만 말 속에는 백우진을 위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당뇨병 판정을 받고도 몇 개월간 혈당 관리를 못 한 녀석에게 따끔하게 경고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니.
우승시킬 수 없다고 해도 속으로는 백우진이 건강해지길 바라는 거다.
“뭔 소리야?”
차지찬이 미간을 좁혔다.
“걸어 다니지도 못하게 해야 뭔 게임을 하든 탈락할 거 아니야.”
“……맞다. 이런 인간이었지.”
내가 이 인간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잠시 잊고 있었다.
* * *
슈가맨 프로젝트 가편집본을 확인했다.
최미카엘과 안상규가 의도한 바가 잘 드러나 있고 진행도 매끄럽다. 우왕선, 좌왕택 두 진행자가 노련해서 분위기를 잘 이끌었다.
촬영 도중에도 알아서 편집점을 만드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기에 잘 섭외했단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내러티브가 마음에 든다.
100인을 선정할 때도 각자의 사연을 들어보긴 했지만 컷 편집된 영상을 보니 마음이 동한다.
36번 슈가맨, 26살 경비업체 직원 이나연 씨의 인터뷰다.
-첫 주 촬영 끝났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무서워요.
-무서워요?
-네. 되게 큰 프로그램이잖아요. 듣기로는 넷플릭스에도 올라가고. 인터넷에 욕 같은 거 올라올까 봐.
-무슨 욕이요?
-뚱뚱하니까. 자기관리 못 하고 게으르다고.
-평소에 그런 말을 들으셨어요?
이나연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참으려는 모습이 더욱 안타깝다.
이나연은 유도 선수 출신으로 국가대표 상비군 경험도 있는 유망한 인재였다.
부상으로 인해 뜻을 펼쳐 보기도 전에 은퇴해야 했고 이후 경비업체에서 근무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수년에 걸친 3조 2교대 근무(주주야야비휴)로 망가진 생활 패턴과 피로로 활동량이 줄어들었고.
운동선수 출신으로 왕성한 운동량에 맞춰져 있던 신체는 자연스레 지방이 축적되게 되었다.
타인과 타인의 재산을 지키는 존경스러운 직업을 가졌고 그에 충실했지만 정작 본인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정말 젊은 나이에 당뇨병 판정을 받았고 직장에서는 상사로부터 폭언까지 듣고 있다고 한다.
원본 영상에만 담긴 내용으로 혹시나 이나연이 피해를 받을까 봐 컷 편집본에서는 해당 내용을 덜어냈다고 기획1팀 이상호 대리가 설명해 주었다.
-처음에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 되돌아갈 줄 알았어요.
-운동도 하셨으니까.
-네. 근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꼭 제 모습을 찾고 싶어요.
외적인 모습만 얘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나연이 찾고 싶은 모습은 예전의 밝고 당당했던 자신일 거다.
내가 그랬으니까.
다음은 71번 슈가맨, 42살 인터넷방송인 최양준의 인터뷰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치고 최양준의 예명 동동구리란 이름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다.
방송 경력이 15년 정도 되고 7~8년 전에 구독자 50만 명을 기록했던 인기 먹방 유튜버였는데.
구설수나 논란 하나 없었음에도 점차 인기가 줄어 현재는 1개월 전 영상 조회 수가 1만이 채 안 되었다.
-지원하게 되신 계기는요?
-하핫.
영상 속 동동구리가 멋쩍게 웃은 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많이 힘든 상황이신가요?
-그렇죠.
-방송 계속하시던데.
-이제 돈이 안 돼요. 식비도 안 나오는걸요.
-그럼 생계는 어떻게.
-대리운전하고 있어요.
-그럼 방송하고 대리운전까지 하시는 거예요? 힘들진 않으세요?
-그렇죠. 힘들어도 어떡해요. 우리 애 밥은 먹어야지.
멋쩍게 웃던 동동구리는 사라지고 자식 굶길 순 없다는 아버지가 보였다.
-몸 힘든 거야 괜찮아요.
-그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왜 이런 일 하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많고 괜히 시비 거시는 분도 많고.
최양준은 하루 6시간 방송하고 밤새워 근무하고 나면 아침이 되어서야 귀가한다고 한다.
그 역시 생활패턴이 망가지고 오랜 세월 축적된 과식이 몸을 망가뜨렸는데 슈가맨 중 혈당이 가장 높아서 치료가 시급했다.
-유튜브 포기하면 되는데. 이게 내 손으로 그만치 이룬 게 처음이라 미련이 남아서. 반찬용 님 보고 좀 배우려고요.
뜻하지 않은 말이 나왔다.
-대단하더라고요. 난 당뇨 판정 받고도 유튜브 콘셉트를 못 바꾸겠던데 반찬용 님은 대번에 바꾸데요? 생활 습관도 그렇고. 돈도 잘 버시고. 하핫! 보고 좀 배우려 왔습니다.
이번 주 촬영장에서 보면 잘 오셨다고 인사라도 드려야겠다.
-정말. 정말 간절합니다.
-건강과 상금까지 챙겨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대강의 흐름만 파악하고자 편집실로 들어왔는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한참 흘렀다.
잘되었다는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리니 기획1팀 이상호 대리가 흠칫 놀랐다.
“왜 그러세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떠셨어요?”
“좋네요. 저보다 나은데요?”
“아닙니다.”
뭔가 불편해하는 눈치다.
“아. 제가 너무 오래 있었죠?”
“아닙니다. 전 그냥 뭔가 이사님 마음에 안 드시나 싶어서.”
말도 없이 너무 뚫어지게 쳐다본 모양이다.
“전혀요. 이대로 진행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다음부터는 미카엘 씨랑 같이 봐요.”
“네. 알겠습니다.”
편집실을 나서서 문을 닫았다.
날 이사님으로 칭하며 잔뜩 긴장한 이상호 대리를 보니 뭔가 나도 어색해진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10평 원룸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지냈던 내가 대체 언제 이렇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다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히 안다.
나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이들이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건강해지도록 도와야 한다.
내가 그들 덕분에 이 어울리지도 않는 직함과 이름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사님!”
사무실을 가로지르는 도중에 송노을 작가가 다가왔다.
“3주차 대본이 이상해서 상규 팀장님께 여쭤보니 이사님이 추가하신 거라고 하셔서요.”
송노을 작가가 3주차 촬영대본을 보여주었다.
당뇨, 비만과 관련한 퀴즈인데 백우진에게는 백우진이 못 맞힐 문제만 제시하라고 적혀 있다.
내가 쓴 것 맞다.
“진짜 이사님이 쓰신 거예요?”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백우진이 안 보인다.
“꼭 좀 부탁할게요.”
“어……. 네.”
아주아주 어려운 문제를 찾아 달라고 부탁하니 송노을 작가가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참가자의 사정을 알게 된 이상 더더욱 녀석을 내버려 둘 수 없다.
절대로 녀석이 1억 원을 챙기는 게 배 아파서 이러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