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46
치팅데이 246화
47. 슈가맨(17)
백우진이 절대 못 맞힐 문제를 내라고 했더니 예전 백반토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모양이다.
사실 잡다한 지식이 워낙 많은 녀석이다 보니 부탁하면서도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백우진을 너무 무시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알지.’
이 문제의 요지는 소개팅에 적절한 음식이 아니라 어떤 음식이 혈당을 높이느냐다.
평소 헛소리를 해대도 문제가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도는 아는 녀석이다.
아마 작가들도 백우진을 떨어뜨리기보다는 슈가맨들이 올바른 지식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러지 못한 시청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준비했을 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무척 중요한 이야기를 다루는 문제다.
2번 떡볶이와 3번 짜장면이야 혈당 높이는 음식 중에서 순위를 다투고 일반인도 잘 아는 내용이지만.
1번 파스타의 경우에는 어떤 종류인지에 따라 혈당지수(GI) 차이가 많이 난다.
파스타에 사용되는 밀가루는 보통 듀럼밀인데 단백질 비율이 무척 높은 곡식이다.
제빵에 사용되는 밀가루와는 다른데,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극도로 작은 입자를 필요한 반면 파스타에 필요한 밀가루는 입자가 커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파스타 밀가루는 입자가 큰 만큼 소화가 덜 되고 그 말인즉 혈당지수가 낮다는 의미가 된다.
내가 기억하기로 흰 빵의 혈당지수가 70 내외고 파스타는 40 수준이었다.
혈당지수가 55 이하의 식품을 저당식품, 70 이상을 고당식품으로 판단하니 파스타는 당뇨환자에게 빵, 흰밥보다 좋다.
다만 현미밥에 당이 많은 고추장을 잔뜩 넣어 비벼 먹어봤자 소용없듯이, 파스타 또한 무엇과 함께 먹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오일 기반의 알리오 올리오, 앤초비, 봉골레나 당류를 가미하지 않은 토마토소스 파스타의 경우에는 혈당지수가 정말 낮아 건강식이지만.
로제, 투움바처럼 탄수화물과 당류가 많은 소스가 들어가면 떡볶이, 짜장면, 잡채 등과 다를 바 없다.
예시 사진에 나온 파스타가 알리오 올리오니 이 문제의 정답은 파스타다.
아마 떡볶이와 짜장면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4번 스테이크를 고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예시 사진을 보면 가니쉬로 감자 무스와 소스가 가득하다.
감자를 으깨어 소화를 쉽게 했으니 혈당이 많이 오르고, 스테이크 소스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당류가 많이 들어 있다.
고기를 먹는다면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먹는 방식이거나, 소스 없이 먹어야지 저런 류는 혈당 관리에 적합하지 않다.
“모두 화이트보드를 머리 위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주어진 시간이 만료되자 우왕선이 슈가맨들에게 정답을 공개하길 요구했다.
슈가맨 전원 자신 있게 화이트보드를 위로 들었다.
좌왕택이 여기저기를 돌며 정답을 확인하던 중 백우진 앞에 멈췄다.
“우진 씨, 정답이 무엇인가요?”
“떡볶이요.”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다.
“지금 90인의 슈가맨 중에서 백우진 씨만 떡볶이를 적으셨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진짜요?”
백우진이 주변을 둘러본다.
“아. 어떡해. 나만 맞힌 거야? 다시 갈까요?”
어이가 없다.
슈가맨들도 황당한지 웃는 사람이 보인다.
“아. 정답은 떡볶이니까 우진 씨만 남고 다른 분들은 전원 탈락이란 말씀이에요?”
“그쵸.”
백우진이 최양준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형, 미안해. 내가 형 몫까지 꼭 다 맞힐게.”
동동구리 최양준은 미간을 모은 채 입을 살짝 벌릴 뿐 아무 말도 못 했다.
“이유. 이유가 뭔데요?”
좌왕택이 다시 한번 물었다.
“이거 개인 유튜브에서도 얘기했던 건데 첫 만남은 어떻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느냐가 진짜 중요하거든요. 근데 떡볶이는 우리가 가장 행복했을 때 즐겨왔던 음식이에요. 학창시절. 떡볶이 냄새를 맡으면 그냥 아련해지고 왠지 그립고. 그런 기분이 그대로 소개팅 상대에게 전가되면서 분위기가 좋아질 수밖에 없죠.”
좌왕택이 잠시 당황하다가 프로 진행자답게 질문을 이어갔다.
“혈당은 생각 안 하시나요?”
“혈당?”
“혈당.”
“소개팅할 때 가장 적절한 음식이 뭐냐고 물었잖아요. 혈당이 왜 나와요.”
“슈가맨 프로젝트니까요.”
“……어?”
한때나마 저놈이 우승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던 내가 한심해진다.
“정답은 식단 조교 주지승 씨가 해주시겠습니다.”
우왕선이 주지승에게 정답 발표를 요구했다.
오른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던 주지승이 숨을 한 번 내쉬고 입을 열었다.
“정답은 1번 파스타입니다.”
“와아아아!”
89인의 슈가맨이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 백우진만이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다.
“파스타의 혈당지수는 약 40 내외로 저당식품입니다. 알리오 올리오에는 소금, 페페론치노, 마늘, 올리브유, 치즈 등이 사용되어 혈당을 크게 높이지 않습니다. 반면 짜장 소스, 떡볶이 소스, 스테이크 소스에는 당이 많이 함유되어 섭취에 주의해야 합니다.”
“소스가 문제였군요.”
“네. 참고로 고혈당 식품에는 당면, 찹쌀떡, 덮밥이 있고 저혈당 식품에는 옥수수, 라면, 시루떡 등이 있습니다.”1)
“라면이랑 시루떡은 정말 의외인데요?”
“시루떡은 팥이 섬유질과 단백질이 많아 혈당 흡수를 늦춥니다.”
“아.”
“라면은 단백질만 보충된다면 영양학적으로 상당히 괜찮은 음식입니다. 국물 섭취를 줄이고 닭가슴살 한 덩이나 참치캔 하나를 넣어 주시면 좋죠.”
주지승이 해설을 마칠 때까지 백우진은 넋이 나가 있었고.
결국 진행 요원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가야 했다.
“잠깐만! 이거 뭔가 잘못됐어! 소개팅에 적절한 음식이라며!”
쟨 진짜 천재인지 바보인지 모르겠다.
* * *
“네?”
WK북스와의 미팅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나와 백우진은 음식에 대한 역사, 문화를 다루는 콘텐츠 백반보고를 문서화해서 E북으로 엮어 판매하고자 했는데.
이창수 편집장이 내게 수필 출간을 제안했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찬용 씨가 힘들게 살아왔고 성공한 이야기를 다루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로 하는 건 괜찮은데 글재주가 없어서.”
“어……. 이미 방송에서 많이 얘기해서 팔릴지 모르겠어요.”
“방송에서는 다루기 힘든 부분도 있으셨을 테고. 또 생각을 정리하며 적어내는 글은 말과 또 다르죠.”
“음.”
“대본 작성도 오랫동안 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일단은 생각 좀 더 해볼게요.”
“네. 그럼.”
인사를 하고 나섰다.
“어떻게 생각해요?”
묵은지에게 물었다.
“지금 하는 일이 많으니 하더라도 우선순위가 될 순 없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기록을 남기는 건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바쁘게 뛰다 보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단편적인 기분은 있어도 문장으로 정리되진 않을 수 있고요.”
“그렇죠.”
“일정이 정리되면 천천히 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일기 같은 느낌으로 적는다면 굳이 출간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겁니다.”
“자기는 그래요?”
묵은지는 일기를 종종 쓰길래 물었다.
“네. 가끔 들춰보면 좋은 일을 추억할 수 있습니다. 희미했던 기억 말고 정확히 어떤 기분이었는지 다시 느낄 수 있으니 좋아합니다. 반대로 속상한 일은 일기를 쓰면서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으니 찬용 씨도 써 보시길 권합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던 일은 인상만 남을 뿐이니 사진이나 일기, 영상으로 기록할 가치가 있을 듯싶다.
“근데 진짜 그 사진이랑 영상은 어떻게 구했어요?”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우진이랑 찍은 거요. 진짜 망해서 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는데.”
조회 수가 정말 처참해서 오죽하면 채널 자체를 삭제했을까.
100단위를 기록한 영상도 몇몇뿐이고 당시에는 나는 물론이고 백우진도 무명이라 누가 저장할 이유도 없었다.
“아.”
묵은지가 드물게 내 눈치를 본다.
“백우진이 줬어요?”
“…….”
맞다.
거짓말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당황하면 말이 없어진다.
“걔는 뭘 그런 걸 가지고 있대. 나도 없는데.”
“……백우진 씨에게는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기 같이.”
“흐응.”
몰랐는데 내 주변에 예전 기록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근데 그냥 줬어요? 갑자기?”
또 대답이 없다.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실은.”
묵은지가 말을 몇 번 삼켰다가 털어놓았다.
“백우진 씨가 형들에게 견제받지 않고 우승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네?”
“찬용 씨가 곰 분장을 하고 쑥 먹는 영상을 보여주며 말하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아기돼지 삼형제 1인 3역 영상까지 보여줬단 말입니다.”
한 번 더 물으니 되레 강하게 나온다.
대체 내 예전 영상을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그랬을지 생각하게 되어 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게 그렇게 갖고 싶었어요?”
“이제는 구할 수 없지 않습니까.”
리미티드 에디션이란다.
“하핫.”
“웃지 마십시오.”
“기분 좋아서 그래요. 자기가 날 그렇게까지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묵은지가 입을 닫았다.
본인이 불리하거나 쑥스럽거나 하면 항상 저런다.
귀여워 죽겠다.
“근데 뭘 어떻게 알려줬어요?”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세부 계약 내용은 외부로 발설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잖아요. 슈가맨 엔터테인먼트.”
묵은지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젓는다.
“이 일은 제가 개인적으로 의뢰받은 일입니다. 외주 계약이니 슈가맨 엔터테인먼트와 관련 없습니다.”
아무래도 둘 사이에 뭔가 거래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이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우승하게 해달라고 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럼 조작 아니에요?”
“……아뿔싸.”
아뿔싸라는 말을 얼마 만에 들어보는지 모르겠다.
이런 단어 선택마저 귀엽다.
“뭔데요?”
1)자료출처:
2012년 2월 한국영양학회 학회지.
당면(96), 쌀밥(92), 감자튀김(85), 피자(80), 햄버거(66), 고구마(63), 핫도그‧칼국수(62), 옥수수(52), 라면(50), 시루떡(48), 두유(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