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47
치팅데이 247화
47. 슈가맨(18)
묵은지에게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상하네요.”
“무엇이?”
“기왕 참가하니까 우승하고 싶겠죠. 근데 꽤 집착한다는 느낌이라서요.”
사실 조작 논란이야 우리끼리 하는 걱정이다. 잡음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미리 조심하자는 의미다.
한식예찬 심사를 맡았을 때도 주지승에게 편향되지 않도록 노력했고 그 결과 음해를 목적으로 한 기사가 났음에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백우진이 정당한 방법으로 우승한다면 시청자들도 인정해 줄 것이다.
다들 고생하는데 혼자 슈가맨 제작에서 한 발 물러난 백우진이 괘씸해서 괴롭혔는데 이렇게까지 우승을 갈망한다면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상금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으음.”
1억 원이 큰돈이긴 해도 우지니어스는 연간 10~20억 원씩 버는 대형 채널이다.
백우진에게 지급되는 돈도 상당하다.
“큰돈이긴 한데. 돈 좋아하는 녀석이기도 하고.”
“뭔가 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을 돌이켜보면 돈을 좋아하고, 상금이 크긴 해도 현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다.
분명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 싶어서 고민하다가 답이 나오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뭐. 나중에 얘기해 주겠죠.”
때가 되면 얘기해 주겠지 싶어서 말했더니 묵은지가 씩 웃는다.
“왜요?”
“평소에는 티격태격해도 결국에는 서로 신뢰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 * *
‘하아. 미치겠네.’
이지혜 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지니어스를 운영하며 나름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했건만 슈가맨 엔터테인먼트와 같이 규모 있는 회사의 행정은 그녀가 상상하던 이상이었다.
경력 있는 전문 인력을 채용해 큰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팀장 직책이 벅차기는 매한가지였다.
더군다나 슈가맨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는 터라 새로 처리해야 할 일이 계속해서 늘어났고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울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 콘텐츠도 짜야 하는데.’
이지혜가 시계를 확인했다.
점심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당장 오늘까지 우지니어스 다음 영상을 준비해야 했다.
식사를 거르기로 마음먹고 소재 찾기를 얼마간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야.”
백우진이 모니터 뒤로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밥 먹었어?”
“바빠.”
“뭐 하는데?”
“내일 방송. 말 시키지 말고 가.”
“일은 해도 밥은 먹어야지.”
“시간 없다고. 이렇게 얘기할 시간도.”
이지혜가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우지니어스는 세상 모든 지식을 탐구한다는 목적으로 운영되었고 매번 새로운 분야를 다뤘기에 다른 유튜버에 비해 준비가 오래 걸렸다.
모니터 너머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오늘만큼은 날짜가 바뀌기 전에 침대에 눕고 싶기 때문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뭘 하나 싶던 차, 백우진이 도시락을 꺼낸 모양이었다.
“딴 데 가서 먹어.”
“음. 너무 맛있다.”
“…….”
예전부터 눈치라고는 조금도 없는 녀석임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얄밉게 느껴졌다.
“대박.”
먹을 거면 조용히라도 하지 마치 들으라는 것 마냥 온갖 추임새를 넣으니 이지혜의 인내심도 점차 바닥을 드러냈다.
“음! 음! 소시지 미쳤다.”
“야!”
이지혜가 버럭 소리쳤다.
전 임직원이 제작으로 고생하는 와중에 슈가맨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백우진이 소시지를 먹는다니.
얄밉기는 했지만 혈당 관리라도 제대로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심 응원하고 있었거늘 참을 수 없었다.
“먹고 싶지?”
백우진이 젓가락으로 집은 소시지를 흔들며 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란히 놓인 도시락 두 개를 볼 수 있었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놀려댄 것이었다.
“나 진짜 바빠. 그리고 소시지 내려 놔.”
“이거 닭가슴살로 만든 거야. 먹어도 돼.”
“…….”
“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점심은 먹어야지. 와서 앉아.”
거부해 봤자 먹을 때까지 귀찮게 굴 녀석이었다.
흥분했던 탓에 집중력도 흐트러졌고 하는 수 없이 도시락 앞에 앉았다.
식단은 닭가슴살 소시지,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한 채소 샐러드. 귀리밥 조금과 방울 토마토 두 알이었다.
“사 올 거면 맛있는 거라도 사오지.”
“먹다 보니 먹을 만하던데?”
이지혜가 닭가슴살 소시지를 한 입 먹었다.
육즙이 터지면서 식감도 일반 소시지와 큰 차이가 없어 그럴듯했다.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한 샐러드도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그러네.”
“근데 먹고 나면 금방 배고파져. 이런 걸 3주나 먹은 내가 너무 기특하고 자랑스러워.”
백우진이 자아도취하여 아무 말이나 꺼냈다.
그 모습이 익숙한 이지혜는 아무 반응 없이 묵묵히 식사를 이어갔다.
뭐라 대꾸해 주면 신나서 떠벌리기에 가급적 호응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나 살 좀 빠진 것 같지 않아?”
와삭와삭.
양상추가 제법 싱싱했다.
“4키로 빠졌더라. 혈당도 내려갔고.”
그건 잘된 일이다.
대학생 때만 해도 백우진은 말랐었다. 너무 말라서 징그러울 때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눈에 띄게 살이 쪄 있었다.
처음에는 보기 좋았다가 어느 정도를 넘으니 조금씩 걱정되기도 했다.
포동포동한 볼살이 차밍 포인트라는 헛소리나 해대다가 결국 당뇨 판정을 받고 나선 걱정이 더욱 커졌다.
이번 기회에 혈당도 잡고 체중도 감량해서 예전의 건강함을 되찾길 바랐다.
“신기한 게 이제 밥 먹어도 안 졸려. 혈당 오르면 졸리고 하던 게 진짜였나 봐.”
귀리밥은 한 입에 다 넣을 만큼 너무 적었다.
“우승할 거야.”
이번에는 조금 웃겼다.
“퍽이나.”
“진짜야. 완전 건강해져서 우승할 거야.”
“상금이 그렇게 갖고 싶냐? 진즉에 관리했으면 얼마나 좋아? 너만 혈당 높아서 참가했잖아.”
이지혜는 백우진이 너무나 미련해 보였다.
상금이 크긴 해도 백우진은 우지니어스를 통해서만 연간 3억 원을 지급받고 있었다.
작년 한 해에만 18억 원을 벌어들인 우지니어스가 백우진 소유고, 웹소설 수입과 슈가맨 엔터테인먼트 지분까지 합치면 1억 원이 당장 아쉬운 입장은 아니었다.
슈가맨 프로젝트에 참가해 우승을 노리느니 미리 혈당 관리를 하는 편이 좋았다.
“상금 완전 좋지. 상금 받으면 차 바꿀 거야.”
“에휴.”
“그리고 나 게으르지 않다고 보여줄 거고.”
“……댓글 신경 썼어?”
‘형들은 다 자기 관리 철저히 하는데 백우진만 그대로네.’
‘아니 저렇게 좋은 환경에서 왜 쟤만 뚱뚱하냐. 신기하네.’
슈가맨의 관계가 단단해지고 반찬용이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백우진이 당뇨 판정을 받는 과정에서 조금씩 나오던 말이었다.
행복해져라 이벤트가 지속되며 차차 줄어들었지만 악플을 남기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신경 안 쓰는데?”
“그럼 다행이고.”
* * *
“하악. 하악. 하악.”
금요일.
오늘은 일이 바빠 모처럼 새벽에 운동을 나섰더니 백우진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스텝밀을 오르고 있었다.
차지찬이 얘기해 줘서 알고는 있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감회가 새롭다.
“열심히네.”
백우진이 슬쩍 돌아보곤 운동을 계속했다.
상금이든 뭐든 저렇게 열심히니 친구로서 다행이다 싶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으니 백우진이 내게 다가와 주저앉았다.
“헉. 헉.”
“오늘은 쉬는 게 좋을걸.”
“왜?”
“내일 미션 뭔 줄 알고.”
내일은 4주 차 녹화가 예정되었다.
5명이 한 팀이 되어 여러 동작이 요구되는 코스를 완주하는 미션인데, 오래 전 KBS 2TV에서 방영되었던 출발 드림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상당한 신체 능력을 요구하는 터라 평소에 단련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완주가 힘들 거라 판단했다.
“괜찮아. 미션 우승 못 해도 혈당 낮추면 되니까. 장기전이야.”
골든벨 첫 문제에서 탈락했지만 어드밴티지 없이도 4주 차를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20명이 탈락한 지금 백우진의 공복 혈당 수치는 중위값보다 낮아서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의 미션을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승하려면 식단과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하루가 길고 고되게 느껴지지만 드라마틱한 결과를 내기에 3개월은 턱없이 짧다.
나도 더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노력했는데 당뇨 판정 후 3개월 후 당화혈색소는 정상치에 도달하지 못했었다.
“형.”
“응.”
“형은 결혼 어떻게 마음먹었어?”
“갑자기?”
“갑자기.”
뜬금없이 나온 질문이라 되물었더니 당당하게 나온다.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해서?”
“지금도 같이 살잖아.”
“조금 달라. 근데 뭔지 정확히 얘기 못 하겠네.”
“형도 그럴 때가 있나.”
“기다려 봐.”
스트레칭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동거라고 하잖아. 같이 거주한다. 근데 내가 바란 건 살아가는 거였어. 함께하는 거. 단순히 거주 목적은 아닌 거지.”
“흐응.”
“같이 일하고. 같이 밥 차리고. 청소하고. 웃고. 혼자 살 땐 막 엄청 힘들진 않았지만 공허하다는 느낌은 있었거든. 근데 은지 씨랑 함께하면서 그런 게 하나도 없더라.”
“좋네.”
“응. 엄청 행복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
“난 일만 하는 거 같아.”
백우진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지승이 형도 가족 있고. 지찬이 형은 취미로 이것저것 많이 하고. 형도 옆에서 보면 행복한데 나만 가만히 있어.”
세상 고민 없이 보이던 이 녀석에게도 나름 고충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다 똑같이 유튜브 하고 회사 차리고 당뇨도 있는데. 나만.”
백우진은 입을 닫았다.
“야, 우리 중에 네가 제일 잘나가잖아. 새로 들어간 프로그램 반응도 좋던데. 뭘.”
백우진은 세계 유명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인지도를 바짝 높였다.
국내에선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져 큰 효과가 없지만 클래식, 순수미술, 뮤지컬, 역사 등 문화 관련 콘텐츠로 글로벌 무대에서 인지도를 쌓아가는 중이다.
“그런 거 말고.”
고개를 돌리니 백우진이 나와 눈을 마주했다.
“나 건강해지면 다시 말해볼까?”
“뭘?”
“……당뇨 있는 사람은 좀 그렇지?”
“너 그거 알아? 오늘 대화에 맥락이 아예 없어.”
“아. 그냥 대답 좀 해줘.”
“뭘?”
“내 생각인데. 당뇨 있는 사람이 사귀자고 하면 되게 별로일 것 같아.”
“그거야 뭐. 멀쩡한 것보단 안 좋겠지.”
“그치?”
백우진이 벌떡 일어나 스미스머신으로 향했다.
이상한 녀석이 요즘따라 특히 오늘 더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