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25
치팅데이 25화
6. 백반토론(4)
“팀장님, 이 영상 보셨어요?”
2017년에 설립되어 지금은 대기업을 등에 업고 성장 중인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이자 매니지먼트 기업, 홍당무의 김서진 대리가 스마트폰을 보였다.
“백우진이네.”
오형만 팀장이 100만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버 백우진을 알아보았다.
최근에는 공중파에도 얼굴을 비추며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세를 얻고 있었다.
“백반토론? 백분토론 패러딘가?”
“네. 백우진, 반찬용이라서 백반토론인데 어떤 음식이 더 맛있냐는 주제로 토론하더라고요. 여기 물냉하고 비냉.”
오형만 팀장이 눈썹을 모았다.
온갖 기발한 아이템이 쏟아지는 현 시점에 물냉면과 비빔냉면 둘 중 무엇이 더 맛있냐는 토론이 시장에 먹힐까 싶었다.
그러나 조회 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어제 업로드된 영상 조회 수가 37만을 기록하고 있었다. 100만 조회 수를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었다.
“반찬용이 누구야?”
“먹방 유튜버입니다. 최근에 급성장하고 있고요.”
김서진 대리가 ‘반찬가게’ 채널에 접속해 최근 영상을 보여주었다.
“보시다시피 구독자는 14만 명 정도인데 영상당 조회 수가 말이 안 되게 높아요. 또 1달 만에 6만 명 가까이 늘었고요.”
10만 명 이상을 구독자로 확보한 것만으로도 시장성은 충분히 입증되지만.
한 달 만에 구독자가 6만 명 이상 늘어난 상승세가 더욱 주목되었다.
“보니까 거의 합방이네. 짐꾼이랑 반야식경, 우지니어스까지. 조회 수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잖아.”
“그렇긴 한데 혼자 나오는 영상 조회 수도 좋습니다. 편집 영상만 봤지만 입담도 좋고요.”
“편집 잘하면 그렇게 보일 수 있지.”
“팀장님, 이 사람 확실합니다.”
“클 것 같으니 미리 잡자 이 말이지?”
“네.”
홍당무 엔터테인먼트는 유튜버, 스트리머, SNS 스타 등 인플루언서와 일정 수익을 나누는 대신 방송 컨택, 광고 알선, 행사 주최 등 여러 일을 대신해 주는 업체였다.
이미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튜버를 섭외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을 확보하는 일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네.”
“나쁠 거 없지. ……썸네일은 괜찮게 뽑네.”
팀장이 반찬용과 차지찬이 운동하는 영상을 가리켰다.
반찬용이 얼굴을 힘껏 뒤틀면서 스쿼트하는 장면이었다.
“네. 인트로도 좋더라고요.”
“원래 편집하던 사람입니다.”
오형만 팀장과 김서진 대리가 고개를 돌렸다.
볼이 살짝 들어가 있고 목과 손목이 앙상한 여성이 피곤한 얼굴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은지 대리도 이 사람 알아?”
“압니다.”
“그래? 어떻게?”
“가능성이 보여 모니터링 중이었습니다.”
“잘됐네. 방송 잘 알면 대화도 통할 테니 계약하기 수월할 테고. 은지 대리도 같이 만나 봐.”
은지 대리가 무표정하게 팀장을 바라보니 김서진이 어색함을 무마하려 웃었다.
“혼자 해도 괜찮습니다. 천천히 진행하면 되죠.”
은지 대리가 고개를 돌려 김서진을 노려보았다.
“어제 메일 보냈습니다.”
“네?”
“반찬가게에는 이미 연락해 두었습니다.”
“이야. 역시 우리 은지 대리. 일 하나는 기똥차게 해.”
오형만 팀장이 호탕하게 웃었고 김서진 대리는 아쉬움을 애써 감췄다.
* * *
12월 31일 토요일.
밤을 새워 편집을 마치고 아침 일찍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역사 내부는 번잡했는데, 다행히 고향으로 가는 KTX는 한산한 편이었다.
자리를 잡은 후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켰다.
잠시 기다리니 금방 100여 명 정도가 접속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눈에 익은 오래된 구독자들이다.
새벽 같은 시간에도 들어와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반하
└이 시간에?
└어디임?
└헐 야방이다
└오늘 방송 못 한다고 하지 않았음?
“고향 가려고 기차 탔어요. 공지도 올리긴 했는데 오늘 방송 제대로 못 할 것 같아서 알려드리려고 잠깐 켰어요.”
최근 한 달간 무리했으니 오늘 하루 정도는 몸도 마음도 회복할 겸 어머니와 조용히 보내려고 한다.
연말연초이기도 하니 말이다.
└피곤해 보이네
└고향이 어딘데?
└언제 돌아옴?
└토요일엔 반야식경하고 합방한다고 하지 않았음?
“맞아요. 오늘 지승이 형하고 합방하는 날인데 연말이라 가족하고 시간 보내고 내일 보기로 했어요. 피곤한 건 편집하느라 잠을 못 자서 그래요. 어우. 죽겠다. 고향은 강원도 동해시요. 맞아. 망상 해수욕장 있는 곳.”
한 시청자가 오랜만에 고향밥 먹어서 좋겠다는 채팅을 올렸다.
“그쵸. 아, 된장찌개 먹고 싶다. 제가 동해 가면 가장 먼저 먹는 게 된장찌개거든요.”
└어머니표 된장찌개 좋지
└진짜 타지에서 살다가 집에 가면 다른 거 필요없고 김치찌개, 된장찌개 같은 게 제일 좋더라
└그치. 바깥음식 먹다 보면 집밥 그리움
└나도 엄마 밥 먹고 싶다
“어머님이 채소 같은 것도 직접 기르셔서 엄청 건강한 맛인데 심지어 맛있어. 여러분도 드셔보셔야 하는데.”
└농사 지으심?
└크 직접 키운 채소면 말 다했지.
└강원도는 뭐가 맛있음?
“맛있는 거 많죠.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막국수하면 다들 비빔막국수 생각하잖아요? 그거 가짜야. 진짜는 물막국수거든.”
겨울이긴 해도 동해에 가면 물막국수는 꼭 먹어야 한다.
서울에서는 맛보기 힘든 토속적이면서도 버라이어티한 음식이다.
“옹심이도 있고. 감자옹심이라고 감자를 갈아서 뭉친 건데 엄청 쫄깃해요. 식감이 재밌어.”
그 외에도 곤드레밥이나 장칼국수, 물닭갈비도 좋아한다.
머무는 시간은 하루뿐인데 먹고 싶은 음식은 너무나 많다.
“그리고 냉면도. 강원도 음식은 아닌데 동해에 냉면 진짜 맛있게 하는 곳이 있어요. 그제 우진이하고 냉면 이야기도 했고 동해 가는 김에 거기 가보려고.”
냉면이야 서울에도 맛있는 집이 널리고 널렸지만 동해 내려가는 김에 냉면 영상도 찍을 겸 가보려 한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무 떠들면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끼치니 서둘러 마무리하고 방송을 껐다.
어머니께 출발한다고 메시지를 보내니 금방 답장을 보내셨다.
{먹고 싶은 건 없고?}오전 7:03
{된장찌개요}
{냉면도}
오전 7:03{같이 먹어요}
{그래. 조심히 와.}오전 7:04
이어폰을 끼고 다니엘 바렌보임이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을 재생하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 * *
“어머님, 저 왔어요.”
문을 열자마자 크게 인사했다.
“이게 누구야. 찬용이잖아.”
동해시 평릉동의 I식당 사장님이 날 보시더니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잘 지내셨어요? 된장 둘 포장해 주세요.”
인사를 드리고 매장 내부를 둘러봤는데 조명도 안 켜고 계신다.
내 기억으로는 항상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는데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춰 온 탓인지 사람이 없다.
구석에 놓인 식탁에는 아예 플라스틱 용기를 쌓아 두었는데 못 들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다.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한산하네요.”
“요새 홀 장사를 안 해. 배달이랑 포장만.”
“왜요?”
“나이가 드니까 버겁더라고. 지금은 딱 50인분만 주문받아. 된장찌개 해달라고?”
“네. 솜씨 여전하시죠?”
사장님이 대답 대신 씩 웃고는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유튜브를 뒤적이며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정말 배달 장사로 전환하신 지 오래되신지 포장이 깔끔하다.
“무생채는 서비스.”
“아이고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그래.”
포장한 음식을 들고 집까지 걸어갔다. 원래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동네긴 하지만 땀이 살짝 날 만큼 날이 포근하다.
5분 정도 걸어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된장찌개 냄새가 확 풍겼다.
“어머니~”
“찬용이 왔어?”
손을 닦으시며 나오신 어머니께서 반가운 얼굴을 하시다가 이내 굳으셨다.
“그게 뭐야?”
“된장찌개요.”
“사 왔어? 어디서?”
“I식당이요. 된장 끓이셨어요?”
같이 먹자고 모호하게 말씀드리지 말고 포장해 간다고 알려드릴 것을 그랬다.
“그래. 엄마가 너 주려고 다 끓여 놨는데 뭐 하러 사 와.”
어머니가 끓인 된장찌개는 몸에 좋지만 맛이 없고.
I식당 된장찌개는 직접 키운 채소와 조미료가 듬뿍 들어가 맛있다고 말할 순 없다.
“어머니 힘드실까 봐 그랬죠. 아들 왔다고 막 집안일 늘면 죄송하잖아요.”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대처다.
어머니도 으이구 하고 타박하시면서 살짝 웃으신다.
“이거 괜히 사 왔네. 우리 어머니 된장찌개가 훨씬 맛있는데. 어떡하지. 버릴 수도 없고.”
“버리긴 왜 버려. 어휴. 많이도 샀네. 이게 몇 인분이야?”
“2인분이요. 얼마 안 돼요.”
식탁에 포장해 온 음식을 깔았다.
손을 씻고 나와 상차림을 도와드렸다.
사 온 된장찌개를 어머니가 직접 끓이신 된장과 섞었더니 양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된장찌개를 한 술 떠 먹으니 정말 집에 왔다는 기분이 든다.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된장의 건강하면서도 꿉꿉한 맛과 I식당의 조미료가 한데 어우러져 향수가 느껴진다.
“와. 우리 어머니 솜씨 여전하시네.”
계란말이만큼은 I식당보다 어머니가 만드신 게 훨씬 맛있다.
“으이구. 말이나 못 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지?”
“그래도 어떻게든 차려 먹어요. 배우기도 하고. 지승이 형이라고 요리 유튜버 있잖아요. 같이 일한다는.”
“응.”
“그 형한테 일주일에 한 번씩 요리 배우기로 했어요.”
“저번에 안동식 비빔밥 해주셨지?”
“네.”
“그래. 열심히 배워서 잘 차려먹고 다녀. 저번에 보낸 반찬은 다 먹었고?”
“아직 한참 남았어요. 너무 많이 보내지 마세요. 다 못 먹어요.”
“그 정도도 못 먹어서 어째.”
“언제는 살 좀 빼라고 하시고. 지금은 그 정도도 못 먹냐고 하시고.”
어머니가 작게 웃으셨다.
“걱정 마세요. 몸 관리 잘하고 있으니까.”
어머니께서 날 뚫어지게 보신다.
젊은 아들에게 당뇨가 생겼다는 사실을 아셨을 때는 크게 놀라셨는데, 여전히 마음이 쓰이시나 보다.
“얼굴 살이 빠지긴 했네.”
“운동을 얼마나 많이 하고 먹는 건 또 얼마나 신경 쓰는데요. 요새 지찬이 형한테 운동 배워요.”
“엄마도 봤어.”
“그게 방송으로 편집하니까 그 정도지 원래는 훨씬 많이 해요. 영상은 일주일에 한 편 올리는데 실제로는 이틀에 한 번씩 가요.”
“지찬이한테 반찬이라도 해다 줘야겠다.”
“으음. 그건 안 돼요.”
“왜? 아들 운동시켜줘서 고마워서 그러는데.”
하마터면 맛이 없어서요라고 말할 뻔했다.
“그 형 식단 엄청 신경 써요. 맨날 풀이랑 닭가슴살밖에 안 먹어요.”
“먹는 재미도 없어서 어떻게 산대니?”
“그러니까요. 저도 그렇게 해야 하니까 반찬 안 보내주셔도 돼요. 어머닌 안 드세요?”
“엄만 아침 먹었지.”
벌써 11시니 아침보단 점심에 가깝다.
“아, 저 유튜브 본격적으로 하려고요.”
“잘 되는 거야?”
“이번 달 괜찮을 것 같아요. 조회 수도 엄청 늘었고 반응도 괜찮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항상 여러 걱정이 들기 마련이다.
그 걱정 이상으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테고 야무지게 다진 각오가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가 걱정된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변화도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지내고 싶으니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걸을 뿐이다.
“네가 잘 생각했겠지. 몸 상하지 않게만 해.”
어머니께서 미소 지으셨다.
어렸을 때는 이런저런 걱정을 건네셨는데 막상 직장을 그만두니 항상 내 선택을 믿고 지지해 주신다.
그게 되겠냐, 어렵지 않겠냐, 요즘 그 업계 힘들다더라 같은 속 빈 이야기 대신.
내가 충분히 고민하고 그럼에도 선택했다고 믿어 주시는 거다.
* * *
토요일.
반찬용과의 토론에서 연달아 패배한 백우진은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다음 주 목요일 백반토론을 위한 자료 조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진아.”
우지니어스의 이지혜 PD가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 바빠.”
“뭐 하는데?”
“토론 준비.”
백우진이 노트에 뭔가를 적으며 건성건성 답했다.
평일도 아닌 주말에 PD가 찾아왔으니 분명 일을 가져왔을 테지만 지금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지혜 PD가 순순히 방을 나서려 하자 백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뭐가?”
“일 있는 거 아니었어?”
“바쁘다며. 백반토론 준비하는 거지? 계속해.”
이지혜 PD의 태연한 태도에 백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뭔데. 토요일엔 그냥 집에서 쉬라고 했잖아. 몇 시야?”
백우진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7시. 토요일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퇴근 안 해?”
백우진이 일어나 소파로 향했다.
“누구 때문에 주말까지 일하는데.”
이지혜 PD가 백우진을 흘겨 봤다.
대학 동기이자 지금은 사업 파트너인 그녀는 다음 주 우지니어스 콘텐츠 준비와 편집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주말도 반납하며 일하고 있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면서. 나 바빠. 무슨 일인데?”
“백반토론 계속 준비하라고.”
“그니까 그 말하러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맞아. 그 말 하러 온 거야.”
백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지혜 PD가 스마트폰을 꺼내 백우진에게 보여주었다.
“뭔데?”
“반응 좋더라.”
백우진이 이지혜의 스마트폰을 들었다.
반찬용의 유튜브 채널 반찬가게에는 어제와 오늘 두 개의 영상이 올라와 있었는데, 모두 백반토론이었다.
‘물냉면 vs 비빔냉면편’ 조회 수가 48만, ‘초콜릿 vs 사탕편’ 조회 수는 무려 71만 회를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오늘 아침 6시에 업로드된 ‘초콜릿 vs 사탕편’은 게시된 지 고작 13시간 만에 71만 번 재생된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백우진이 반찬가게를 들락날락하며 몇 번이고 확인했다.
고작 13시간 만에 71만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은 구독자 100만 명이 넘는 우지니어스 채널에서도 드물었다.
“커뮤니티에도 퍼졌더라. 매주 목요일 일정 빼놓으라고 해서 반대하긴 했는데, 계속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지혜 PD는 백우진이 반찬용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를 통째로 비우는 걸 납득할 수 없었다.
은인이기는 하지만 백우진은 TV출연, 강연, 우지니어스, 광고 등 한 달 일정이 가득 차 있을 만큼 바빴다.
오직 친하다고 해서 하루를 온전히 내주기에는 백우진에게 타격이 크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리 판단했거늘.
어제와 오늘 분위기를 살피니 다른 곳에 출연하는 것보다 백반토론을 이어가는 게 백우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럼 수고.”
이지혜 PD가 스마트폰을 챙겨 밖으로 나선 뒤에도 백우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