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35
치팅데이 35화
9. 일어서다(1)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부먹이냐. 찍먹이냐.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논쟁을 맛만 봅니다. 백반 토론의 반찬용.”
“백우진입니다.”
다시 한 주가 흘러 목요일이 돌아왔다.
앞선 ‘물냉면 vs 비빔냉면’과 ‘초콜릿 vs 사탕’ 그리고 저번 주에 했던 ‘김치 vs 피클’ 모두 큰 호응을 얻었던 만큼 부담이 크다.
방송국 PD도 관심을 보인다고 하고 시청자도 5,000명이 넘으니 실수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위축되기도.
웃기지 못하면 안 된다는 압박도 장난이 아니다.
한 번 숨을 길게 내쉬고 멘트를 이어갔다.
“오늘은 큰 거 왔죠?”
“큰 거죠.”
“바닐라 vs 민트초코. 무엇이 더 맛있는지를 두고 진지하고 투명하며 건전한 토론을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건전한 토론 이 지랄ㅋㅋㅋㅋ
└백우진 이겨라!
└반찬용 진짜 뻔뻔하넼ㅋㅋㅋㅋ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투명한 토론이랰ㅋㅋㅋ
└민초 vs 바닐라 ㄷㄷ
└토론할 필요가 있나?
└ㄹㅇ 바닐라 압승인데
└응~ 치약~
└민초단은 굴하지 않는다!
“오늘도 함께합니다. 바닐라가 좋아서 피부도 옷도 차도 벽지도 모두 하얗다는 살아 있는 조랭이떡 백우진 위원. 토요일에 식사 맛있게 하셨죠?”
“네. 맛있게 했습니다.”
“얼마나 맛있었나요?”
“진짜 맛있었어요.”
“그렇군요. 참고로 백우진 씨는 토요일에 고급 중식당에서 접대를 받으셨다는 점, 시청자 여러분들께선 판결하실 때 감안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정말 힘들다.
패배한 사람이 다음 토론 입장을 먼저 정하도록 약속했는데.
‘김치 vs 피클’에서 피클이 더 맛있다고 주장하다 패배한 백우진은 이번에 바닐라를 선택했다.
애초에 나조차 민트초코보다는 바닐라를 선호하니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상황을 길게 끌어서 시청자 투표까지 가야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확보되니 만큼.
미리미리 호감도 작업을 해놓는 게 중요하다.
“그 뇌물성 접대를 해주신 게 반찬용 위원이라는 점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백우진이 반격했다.
└ㅋㅋㅋㅋㅋㅋㅋ지가 밥 사주고 뇌물 받았다고 몰아가넼ㅋㅋㅋ
└치사하게 로비하네
└근데 어차피 토론 이겨도 밥 사는 거 아님? 저녁 사면서 로비하는 게 무슨 이득이 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리얼ㅋㅋㅋ
└빡대가맄ㅋㅋㅋㅋㅋㅋ
└민트초코 지지에 뇌물까지? 넌 졌다
└바로 투표해!
“……민트초코의 주권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민트초코 독립 운동가 반찬용입니다.”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늘은 저부터 말씀드릴게요.”
세 번 연속 패배하면서 약이 바짝 오른 백우진이 적극적으로 토론에 임했다.
이런 상태의 백우진을 정면으로 상대해서는 가망이 없다.
“그러시죠.”
“바닐라. 인류가 아주 오래 전부터 활용해 온 향신료입니다. 기원전 1,000년 전에도 이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동, 중부아메리카 등 여러 지역에서 중요한 교역품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글쎄요?”
“향이 좋으니까요. 2022년, 옥스퍼드 대학과 카롤린스카 대학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 결과를 보시죠.”
백우진이 미리 보내준 참고 자료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연구팀은 세계 9개 문화권 235명에게 여러 냄새를 맡게 했습니다. 그 결과 문화권을 구분하지 않고 바닐라 향이 가장 선호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죠.”1)
└응~ 바닐라가 최고야~
└민트초코 버려
└바닐라가 압승이짘ㅋㅋㅋ
└민트초코 싫어하진 않지만 둘 중에 고르라고 하면 무조건 바닐라짘ㅋㅋ
└이미 이김.
시청자들은 여전히 바닐라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민트초코의 주권을 주창하는 민초단이 가끔 보이긴 하지만 바닐라 지지자들에 의해 채팅이 금방 묻혔다.
“바닐라 향이 가장 선호된다는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그럼 끝났죠?”
“아니죠. 바닐라 향이 인기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민트초코 역시 대단히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자료를 보시죠.”
시중에 판매되는 여러 민트초코 관련 식품을 보여주었다.
“배스킨라빈스의 민트초콜릿칩, 좋은데이 민트초코 소주, 오레오 민트크림. 심지어 KFC에서는 민초치킨까지 출시했었죠.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민트초코 상품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민트초코를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 걸까요?”
└민초 좋아!
└아…… 민초치킨은 좀;;
└배라 민초 맛있음.
└우웩
└민초는 차갑게 먹어야 함. 따뜻한 민초는 나도 싫음
└저거 막상 먹으면 맛있음. 진짜임.
└치느님 모독하지 마라
실수했다.
그마저 있었던 민초단조차 차가운 민초만 지지하는 소극적 민초단과 적극적 민초단으로 분열했다.
백우진이 여유롭게 미소 짓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여러분, 사실 민트초코는 아이스크림 중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입니다.”
미리 편집해 둔 신문기사를 꺼냈다.
“아메리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탑10을 선정하는 설문 조사가 있었습니다. 민트초코는 4위를 차지했고 이건 딸기맛보다도 높아요.”2)
시청자들의 반응이 분분해졌다.
딸기맛보다 민트초코가 더 선호된다는 사실이 확실히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형, 이렇게 자료를 편집하면 안 되지.”
“어?”
“내가 이 자료 안 찾아봤을 것 같아?”
백우진이 키보드를 빼앗더니 아메리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을 검색했다.
그리고 내가 편집했던 기사를 클릭한 순간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1위는 바닐라넼ㅋㅋㅋㅋㅋ
└민초 4위밖에 안 되죠?
└이걸 편집했넼ㅋㅋㅋㅋㅋㅋㅋ
└1위부터 3위 다 짜르고 딸기맛보다 맛있다고 선동한 거였어?
└와 반찬용 진짜 치사하네
└이기기 위해선 못할 게 없는 남자 ㄷㄷ
“그리고 하나 더.”
이미 어질어질한데 백우진이 또 한 번 나섰다.
“바닐라가 고급 향신료라는 사실 알고 있어요?”
“…….”
무의미한 저항이라 생각하지만 차마 내 입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백우진은 의기양양하게 바닐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합성 바닐라향 덕분에 쉽게 접하고 있지만 사실 바닐라는 엄청난 고가의 향신료예요.”
백우진이 미리 보내주었던 뉴스 보도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영국 BBC 방송에서 보도된 내용이에요. 2017년 마다가스카르에 이너워란 사이클론이 상륙했는데, 이 때문에 바닐라 가격이 상승했어요. 마다가스카르는 전 세계 바닐라 생산량의 75%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때 바닐라의 가격은 1㎏당 600달러. 비슷한 시기의 은보다 비쌌어요.”3)
└ㅁㅊ
└은보다 비싸다고???
└에이. 생산 문제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문제잖아.
└그렇다 해도 은보다 비싼 게 말이 되나ㅋㅋㅋㅋㅋㅋ
“그렇죠. 일시적인 현상이긴 했지만 평소에도 100달러 정도에 거래됩니다. 1㎏에 100달러면 상당히 비싸죠.”
시청자들이 수긍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생산에 차질이 생겨 비싸졌음에도 바닐라가 거래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은보다 비싸게 살 만큼 바닐라가 맛있기 때문이죠.”
완벽한 논리다.
내가 바닐라 입장에서 주장했다 해도 이렇게 얘기했을 거다.
“이렇게 비싼 바닐라가 민트초코보다 맛이 없다고 하는 것은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논란?”
“바닐라보다 싼 민트초코가 더 맛있다는 주장은 자칫 반자본주의자로 오해받을 수 있죠.”
└어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우진 오늘 칼 갈았넼ㅋㅋㅋㅋ
└매섭다
└반찬용 지가 한 고대로 돌려받깈ㅋㅋㅋㅋㅋ
백우진이 설마 이렇게까지 독하게 나올 거라곤 예상 못 했다.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을 텐데, 이번 주에는 정말 이기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반자본주의 자체가 나쁘진 않지만 그들 중에는 파시스트, 나치, 아나키스트들이 많거든요.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쯤에서 승복하시는 게 좋아요.”
└구차하다 빨리 패배 인정해
└민트초코 좋아하면 아나키스트…… 메모…….
└이건 졌다
└반찬용도 이건 못 뒤집지
입을 굳게 닫고.
눈물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채팅창은 이미 바닐라 지지자로 가득하고 탄압당한 민초단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믿는다.
여론에 휩쓸려 잠시 보이지 않을 뿐, 민트초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숨죽여 날 응원하고 있다.
“……백우진 위원.”
“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백우진과 시청자들이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를 꺼내냐며 반응했다.
“선조가 명나라로 도망가려 할 때 백성들은 의병을 조직해서 전국 각지에서 싸웠습니다. 그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조총 든 왜적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일제강점기. 쌀을 빼앗기고 땅과 이름마저 빼앗겨도 꿋꿋하게 살아갔던 우리 선조를 기억하십니까?”
“……갑자기 무슨 말이야?”
“IMF 때.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가정을 잃고, 미래를 잃었음에도 잡초같이 생명을 이어온 우리 부모 세대를 기억하십니까! 그들 모두의 이름을 아십니까!”
한을 토해내는 심정으로 물었다.
백우진은 대답이 없었고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민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ㅠㅠ
└돌았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초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핍박받고 즈려밟혀도 꿋꿋하게 일어선 우리. 우리 민족! 민초를 잊을 수 있습니까!”